이스라엘군, 힌드의 목소리 주인공 차량에 총격 인정 [사회혁신] 2024년 1월 이스라엘군의 총격에 숨진 다섯 살 소녀 힌드 라잡. 적신월사에 구조를 요청하는 소녀의 애절한 목소리는 녹음으로 영화에 등장해 듣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이스라엘군(IDF)이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다큐멘터리 드라마 힌드의 목소리 주인공 힌드 라잡 등이 타고 있던 차량에 총격을 가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참극이 발생한 지 2년 7개월 만의 일이라고 영국 BBC가 19일(현지시간) 전했다. 이 영화는 지난 4월 국내에서도 개봉해 많은 이들의 마음을 헤집어놓았다.
IDF는 성명을 통해 자체 조사 결과 당시 병력이 해당 차량에 총격을 가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군 당국은 라잡을 포함한 일가친척 7명, 구조를 위해 출동했다가 희생된 구급대원 2명의 사망 경위에 대한 형사 수사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밝혔.
그러나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두고 가자지구 내 이스라엘 인권 침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힌드 라잡 재단은 이스라엘군의 수사 계획에 대한 신뢰가 없다 고 밝혔다. 재단은 성명을 통해 이렇게 보도된 조사가 실제로 이루어진다 해도 진정한 정의를 향한 진정한 진전으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 면서 이스라엘의 내부 조사는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어 신뢰할 만한 책임 추궁 메커니즘으로 간주될 수 없다 고 덧붙였다.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사망한 5세 소녀 힌드 라잡의 사진을 들고 있는 할머니 2026.8.19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총격 사건은 2024년 1월 29일 가자시티의 텔 알하와에서 일어났다. 다섯 살 소녀 라잡은 친척들과 함께 차량으로 이동 중에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았다. 탑승자 가운데 유일하게 목숨이 붙어 있던 라잡은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지부(PRCS)에 전화를 걸어 구조를 요청했다. 통화는 3시간 넘게 이어졌다. 적신월사 팀은 이스라엘군과 조율해 안전을 확보한 뒤에야 출동할 수 있다며 빨리 달려가자는 구급대원을 만류하는 한편 저를 데리러 와줄래요” 애원하는 라잡에게 조금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들은 소녀에게 좌석 아래 몸을 숨기고 누구도 널 노리지 못하게 해”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날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힌드의 연약한 목소리는 그 아이의 사망이 확인된 뒤에도 적신월사 직원들을 내내 괴롭혔다.
응급 상담원 라나 파키흐는 힌드와 몇 시간이나 통화 중이었고, 그동안 남자 상담원은 적신월사의 중재를 통해 구급차가 현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군에 요청했다. 파키흐는 아이가 여러 차례 누군가 와서 자신을 구해달라고 간청했다고 2024년 2월 BBC에 털어놓았다.
그녀는 아이가 어느 순간 어두워지고 있다고 말하더라 면서 그녀는 무서워했다. 아이는 얼마나 자기 집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지 알고 싶어했다. 나는 얼어붙었고 무력했다 고 당시를 돌아봤다.
이스라엘 군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얘기를 듣고 달려온 구급차는 어스름이 내릴 즈음, 라잡의 차량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 이르렀다며 이스라엘군의 진입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사무실에 전화로 알렸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포격을 받아 두 명의 구급대원 유수프 알제이노와 아흐메드 알마둔이 목숨을 잃었다. 힌드의 시신은 며칠 후 다른 사망자들과 함께 발견됐다.
PRCS는 (이스라엘) 점령군은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해 라잡을 구하고 친척들 시신을 수습할 수 있도록 사전 조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적신월사 팀을 의도적으로 표적으로 삼았다 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IDF는 PRCS 구급차의 안전이 왜 확보되지 않았는지, IDF 대변인이 주민들에게 사전에 공지한 것과 달리 주행 중인 차량을 향해 발표한 경위 등을 수사하기로 결정했다 고 밝혔다.
사건 직후 이스라엘군은 현장에 자국 병력이 없었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라잡이 이스라엘군 탱크가 자신이 숨어있는 차랑을 향해 다가온다고 말한 전화 통화 녹음이 공개되면서 국제적 논란이 거세졌다. 유엔 조사위원회는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의혹을 제기하면서 라잡 일가 사망 사건을 근거로 들기도 했다.
지난 7월 31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칸 유니스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모습 2026.7.31 AFP 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은 지난해 3월 23일 이른 아침 가자지구 남부 라파의 탈 알술탄 지역에서 의료진과 유엔 직원 등 팔레스타인인 15명이 숨진 사건에 대해서도 형사 수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당시 이스라엘군은 긴급 출동 중이던 구급차와 소방차, 유엔 차량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그들의 시신은 일주일 후 부서진 차량 옆 얕은 무덤에서 발견됐다.
이스라엘군은 당초 해당 차량들이 야간에 전조등과 비상등을 끈 채 접근해 어쩔 수 없이 총격을 가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숨진 구급대원 리파트 라드완의 휴대전화에서 비상등을 켠 차량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발견되자 기존 설명이 잘못됐음을 나중에 인정했다.
이스라엘군은 당시 총격에 범죄 행위가 있었다고 의심할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판단했다 고 수사에 착수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IDF는 2년 전 데이르 알발라에서 월드 센트럴 키친(WCK) 직원 7명이 사망한 사건과 국경없는의사회(MSF) 직원 4명이 사망한 사건 등 세 건의 다른 사건에 대해서는 형사 수사에 나서야 할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WCK은 이스라엘군 검찰의 진술을 강력히 규탄하며 독립적인 조사를 요구했다.
페니 웡 호주 외교부 장관은 이스라엘 정부가 IDF 공습에 숨진 WCK 구호요원 조미 프랭콤의 사망에 책임이 있는 이들을 기소하지 않은 결정에 대해 분노한다 고 밝혔다. 그는 이번 결정이 우리가 기대하는 책임성에 훨씬 못 미친다 며 이스라엘 대사를 초치했다. 웡 장관은 20일 성명을 통해 조미와 그의 동료들을 위한 정의를 위해 이스라엘을 계속 압박할 것 이라고 밝혔다. 이 공격으로 영국 국적자 3명, 팔레스타인과 폴란드, 미국-캐나다 이중 국적자 한 명도 사망했다.
WCK는 이번 결정이 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고 말하며, 군 수사가 서로 다른 시간대와 사건을 혼동 하고 IDF의 불법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전가한다 고 말했다.
IDF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주도한 이스라엘 공격으로 촉발된 가자 전쟁 발발 이후 전쟁 범죄 혐의에 관한 포괄적인 보고서를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스라엘이 군사 작전을 시작한 이후 가자지구에서 7만 3000명 이상 사망했으며, 그중 지난해 10월 휴전 발표 이후 약 1200명이 사망했다고 하마스가 운영하는 보건부가 밝혔다. 유엔이 신뢰할 만한 집계로 인정한다.
IDF는 국제형사재판소(ICC)를 비롯한 국제법 조치를 막기 위해 스스로를 조사하고 있음을 보여주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IDF는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비난과 자국 군대에 대한 면책 처벌에 대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인권단체들은 이스라엘군에 대한 형사 수사가 유죄 판결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인권단체 예쉬 딘의 전무이사 지브 스탈은 BBC에 군인과 지휘관들이 저지른 범죄를 고발해도 거의 기소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며 군인이나 지휘관이 유죄 판결을 받는 더 드문 경우에도 범죄의 심각성과는 거의 무관한 형벌을 받는다 고 개탄했다.
아카네 도모코 국제사법재판소(ICC) 소장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한편 ICC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지난해 2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를 문제 삼아 ICC 인사들을 계속 제재해 온 가운데 최근 아카네 도모코 소장을 제재한 데 대해 사법기관 독립에 대한 노골적 공격 이라고 비판했다. 이 기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판사와 검사, 직원들을 표적으로 삼은 이런 조치는 법치주의를 해친다. 사법 주체가 법률을 적용했다는 이유로 위협받는다면 위험에 처하는 건 국제 법질서 자체 라고 주장했다. ICC는 직원들과 잔혹 행위 피해자들을 확고히 지지할 것 이라며 이번 제재에 흔들리지 않고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고 덧붙였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공동 성명을 내 ICC는 세계에서 가장 끔찍한 범죄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한 정의 실현에 기여하고 있다 며 이런 중요한 일을 하려면 외부 압력 없이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고 말했다. 폴커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미국의 제재가 철회돼야 한다며 각국에 보복 표적이 된 재판소 관계자들을 보호해달라 고 촉구했다. ICC 본부가 있는 네덜란드의 톰 베렌드선 외무장관은 아카네 소장을 만나 지속적 지원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아카네 소장은 이미 2023년 3월 전쟁범죄 혐의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체포영장을 발부했다가 러시아 당국에 지명수배된 상태다. 세예 법률가는 네타냐후 체포영장 청구 업무를 맡았다. 역시 네타냐후 체포영장 청구에 간여한 칸 검사장은 지난해 2월 미국 제재 목록에 오른 뒤 성비위 의혹이 불거져 지난달 해임됐다.
미국 정부는 전날 관할권에 동의하지 않은 국가의 당국자들을 조사, 체포, 구금 또는 기소하려는 ICC의 노력에 직접 관여해 왔다 며 아카네 소장과 압둘라예 세예 수석 공판 법률가를 제재 명단에 올렸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출범 직후인 지난해 2월부터 ICC 인사들을 줄줄이 제재 명단에 이름을 올려 판사 18명 중 9명, 차장검사 2명 전원, 전직 검사장 1명과 직원 1명이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됐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ICC 가입 조약인 로마규정 당사국이 아니다. 그러나 ICC는 범죄가 당사국 영토에서 발생한 경우 관할권을 갖는다는 로마규정 조항에 따라 네타냐후 영장을 발부했다. 팔레스타인은 2015년 ICC에 가입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19일 오후 총리 관저에서 취재단에게 이번 제재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며 미국을 포함한 관계국들과 의사소통을 계속해가면서 대응하겠다 고 말했다. 앞서 일본 외무성도 기타무라 도시히로 외무보도관 명의로 성명을 내고 일본은 ICC 소장인 아카네 도모코 판사가 미국에 의해 추가로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것을 확인했다 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일본은 국제사회의 가장 중대한 범죄를 기소하고 처벌하며 법치주의를 유지하는 노력에 있어서 상설 국제형사재판소인 ICC를 일관되게 지지해 왔다 며 이러한 관점에서 발표된 조치는 매우 유감스럽다 고 지적했다.
임병선 에디터 byeongseon1610@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