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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배재고 사건 민주주의 공통규범 공유 실패 보여줘

배재고 사건 민주주의 공통규범 공유 실패 보여줘
[사회혁신]
교육부에서 국정과제 중 하나인 민주시민교육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자주 멈추어 서게 되는 질문이 있다. 민주시민교육은 과연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헌법, 선거, 인권, 참여, 토론, 다양성의 가치를 지식으로 가르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아주 작은 순간들, 예컨대 타인의 고통을 농담으로 소비하는 말, 역사적 상처를 승부의 구호로 바꾸는 장면, 온라인 분노가 교육적 성찰을 밀어내는 속도까지 함께 다루어야 하는가. 민주시민교육을 둘러싼 논의는 자주 제도와 내용의 문제로 정리된다. 무엇을 교육과정에 넣을 것인가, 어떤 자료를 만들 것인가, 교사의 정치적 중립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학교에서 토론교육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가 주요한 쟁점이 된다. 모두 중요한 질문이다. 그러나 현장의 사건들은 때때로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민주주의는 교과서 속 개념이 아니라, 학생들이 서로를 부르는 말 속에서 먼저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것 아닌가 하는 질문이다. 배재고 야구부 사건을 보며 내가 오래 붙들게 된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이 사건은 단지 학교운동부 학생들이 부적절한 구호를 외친 사건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기억이 학생들의 일상 언어 속에서 어떻게 연결되지 못했는지, 역사적 상처가 왜 경기장의 조롱으로 변질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장면이 온라인 플랫폼으로 옮겨가면서 왜 곧바로 징계와 응징의 언어로 증폭되었는지를 묻는 사건이다. 민주시민교육이 다루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장면이다.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주의를 사랑하라고 말하는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 민주주의가 어떤 말에서 상처 입는지, 어떤 농담에서 배제되는지, 어떤 침묵 속에서 방치되는지, 어떤 알고리즘 속에서 분노의 상품으로 바뀌는지를 가르쳐야 한다. 학생들이 5·18을 ‘아는 것’과 5·18 앞에서 자기 말의 무게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차원의 배움이다. 전자는 지식이고, 후자는 공통감각이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민주시민교육 자문위원으로서 나에게 하나의 경고처럼 다가왔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제도교육의 내용으로 정리하는 데 익숙하지만, 정작 민주주의를 살아 있게 하는 말의 윤리, 기억의 책임, 관계의 절제, 미디어 환경 속 판단의 속도에 대해서는 충분히 교육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1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공정위원들이 배재고 야구부에 대한 징계 여부를 심의하고 있다. 2026.7.1 연합뉴스 덕아웃에서 말이 구호가 되는 순간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배재고와 광주제일고 경기 중, 배재고 일부 선수들이 상대 덕아웃을 향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구호를 반복해 외쳤다는 내용이 급속하게 디지털 공간을 통해 확산되었다. 이날 덕아웃에서 나온 말은 응원이면서 동시에 조롱이 되었다. 특히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둘러싸고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프로모션 논란이 있었고, 스타벅스코리아가 사과했지만 광주, 5·18, 국가폭력, 민주주의의 기억을 건드린 사건으로 남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덕아웃에서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광주제일고를 상대로 한 구호는 경기 중 장난이나 즉흥적 응원을 넘어, 역사적 상처를 경기장의 언어로 끌어들인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광주제일고 측은 즉시 항의했고, 심판은 배재고 측에 주의를 주었다. 보도에 따르면 구호가 이어지자 광주제일고 코치진이 강하게 항의했고, 심판진이 중재한 뒤에야 소동이 일단락되었다고 한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경기장 안에서 어떤 말이 허용 가능한 응원으로 여겨졌고, 어떤 말이 상대의 존엄과 공동체의 기억을 훼손하는 말로 감지되지 못했는가이다. 덕아웃은 학생선수에게 또 하나의 교실이다. 그곳에서 학생들은 상대를 부르는 법, 이기고 있을 때의 태도, 분노를 다루는 법, 집단의 흥분 속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배운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덕아웃에서 벌어진 말실수 하나가 아니다. 덕아웃이라는 교육과정의 어두운 구석에서, 한국사회가 충분히 가르치지 못한 역사감각과 공통감각이 한꺼번에 드러난 사건이다. 디지털 공간으로 옮겨간 말, 알고리즘의 법정이 열리다 덕아웃의 구호는 경기장에서 끝나지 않았다. 생중계 영상과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장면이 잘려 나갔고, 잘려 나간 장면은 다시 캡처와 댓글, 기사 제목과 SNS의 분노로 증식했다. 경기가 생중계된 유튜브 영상에 감독과 코치의 제지 여부를 묻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처럼 말은 공중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가 되어 이동했다. 경기장의 순간은 플랫폼의 사건이 되었고, 플랫폼의 사건은 사회적 재판의 형식을 띠기 시작했다. 포스트 미디어 시대의 특징은 사건이 공론장으로 천천히 들어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건은 먼저 짧은 영상이 되고, 이어서 감정의 증거가 되며, 다음으로 즉각적 판단의 재료가 된다. 사람들은 전체 경기의 맥락을 보기 전에 짧은 장면을 본다. 사과문을 읽기 전에 댓글을 읽는다. 학교의 조치가 나오기 전에 징계의 수위를 상상한다. 알고리즘은 사건의 배경을 넓히기보다 감정의 속도를 높인다. 이때 연관성은 사유의 연결이 아니라 반응의 접속이 된다. 이것이 연관성의 초위기이다. 원래 교육은 사건과 나 사이의 의미 있는 관계를 묻는 과정이다. 이 사건은 왜 나와 관련되는가”, 나는 이 말 앞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우리 공동체는 어떤 기억을 함께 지켜야 하는가”를 묻는 일이 교육이다. 그러나 알고리즘은 이 질문을 자주 건너뛴다. 대신 누가 잘못했는가”, 얼마나 징계해야 하는가”, 누구 편에 설 것인가”를 빠르게 묻게 한다. 물론 분노가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역사적 상처를 조롱한 말 앞에서 분노하지 않는 사회는 이미 윤리적 감각을 잃은 사회이다. 그러나 분노가 교육을 대신할 수는 없다. 온라인의 분노가 학생 개인의 신상 공격, 학교 전체에 대한 낙인, 지역 감정의 재생산으로 흘러갈 때, 우리는 또 다른 비교육적 폭력 앞에 서게 된다. 덕아웃의 잘못된 구호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알고리즘의 법정이 만들어내는 과잉 응징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일 서울 강동구 배재고 정문 앞에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배재고 야구부 학생 선수들은 지난달 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광주제일고와 경기 중 스타벅스 가야지 , 탱크 데이 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 구호는 지난 달 스타벅스 코리아가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에 맞춰 텀블러 할인 이벤트를 하며 5·18 탱크데이 라고 홍보했던 사건을 연상케 해 공분을 샀다. 2026.7.1 연합뉴스 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의 징후 이 사건은 한국사회가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공유하면서도,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공통감각을 충분히 공유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같은 말을 두고 누군가는 장난”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지역 비하”라고 하며, 누군가는 정치적 과잉 반응”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민주주의 기억의 훼손”이라고 한다. 의견 차이는 민주주의의 자연스러운 조건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의견 차이를 함께 다룰 공통의 문법이 약하다는 점이다. 공동체는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곳이 아니라 달라도 함께 지켜야 할 선을 아는 곳이다. 특히 민주주의 공동체는 승패의 순간에도 타인의 고통을 조롱하지 않는 감각, 지역의 역사적 상처를 유희의 언어로 소비하지 않는 감각, 특정 집단의 기억을 경기장의 자극적 구호로 바꾸지 않는 감각을 필요로 한다. 이번 사건은 그 감각이 충분히 공통의 규범으로 내면화되지 못했음을 드러냈다. 광주제일고의 대응은 이 사건이 단지 한 학교의 불쾌감으로 끝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광주제일고 교장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항의서한을 제출했고, 혐오와 조롱이 고교야구 경기장에서 여러 목소리로 울려 퍼진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밝혔다. 또한 모든 경기에서 상대를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응원과 표현을 금지할 것을 촉구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 대응은 단순한 항의가 아니라 경기장을 다시 교육의 장으로 만들라는 요구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광주’라는 지역을 특정 지역의 기억으로만 가두지 않는 일이다. 5·18은 광주의 기억이지만, 동시에 한국 민주주의의 기억이다. 광주가 아프면 민주주의가 아픈 것이다. 그런데 그 기억이 학생들에게 자기 삶과 연결된 공적 기억으로 전달되지 못할 때, 역사적 사건은 시험 범위 안의 지식으로만 남고, 온라인 밈과 경기장 조롱의 재료로 변질될 수 있다. 이것이 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의 가장 아픈 장면이다. 징계와 교육의 두 환원주의를 넘어서 사건이 터지면 사회는 곧장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한쪽은 강한 징계를 요구한다. 학생선수의 자격, 지도자의 책임, 학교의 명예, 협회의 징계를 말했다. 다른 한쪽은 교육을 말했다. 학생들이 아직 배우는 과정에 있으니 징계보다 교육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두 주장 모두 일부 타당하다. 그러나 둘 중 하나만 선택하면 사건의 복합성이 사라진다. 징계만 강조하면 문제는 몇몇 학생의 잘못으로 축소된다. 그러면 덕아웃의 언어 문화, 학교운동부의 지도 체계, 역사교육의 빈틈, 미디어 환경의 영향, 경기장 응원 규칙의 부재는 뒤로 밀린다. 학생 몇 명을 강하게 징계하면 사회는 잠시 안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안도는 오래가지 않는다. 비슷한 말은 다른 경기장, 다른 교실, 다른 온라인 공간에서 다시 나타날 수 있다. 반대로 교육만 강조하면 책임이 흐려질 수 있다. 몰라서 그랬다”, 어리니까 배워야 한다”, 앞으로 교육하겠다”는 말이 사과의 언어가 아니라 책임 회피의 언어가 될 수 있다. 교육은 면죄부가 아니다. 교육은 잘못을 더 정확히 보게 하고, 책임을 더 깊이 감당하게 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학생이라는 이유로 책임을 지우지 않는 것도 비교육적이고, 학생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분노의 표적으로 세우는 것도 비교육적이다. 필요한 것은 징계 없는 교육도 아니고, 교육 없는 징계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책임 있는 제재와 회복적 교육의 결합이다. 배재고는 사과문을 통해 광주제일고 선수단, 학부모, 동문, 광주시민 등에게 상처와 실망을 준 점을 사과했고, 해당 학생 선수를 학칙과 절차에 따라 처리하며 야구부 전원을 대상으로 스포츠맨십, 인권 감수성, 공동체 의식, 선수 윤리에 관한 특별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 조치가 형식적 사후 수습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특별교육은 ‘한 번 듣고 끝나는 교육’이 아니라 운동부 문화의 재설계로 이어져야 한다.   김대중 전남광주통합특별시교육감이 취임 첫날인 1일 오후 광주제일고등학교를 방문해 최근 전국대회 경기에서 상대 팀인 배재고 선수단의 지역 비하성 응원으로 상처를 입은 야구부를 위로하고 있다. 2026.7.1 연합뉴스 책임 있는 회복과 연관성 교육 이 사건 이후 학교와 교육청, 협회가 가져가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책임 있는 회복 절차를 세우는 일이다. 책임 있는 회복은 잘못을 가볍게 만드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잘못을 더 정확히 보게 하는 방식이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외친 말이 왜 상대 학교와 광주 시민에게 상처가 되었는지 배워야 한다. 지도자는 왜 그 말이 덕아웃에서 가능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학교는 운동부가 경기력만이 아니라 시민성을 배우는 교육과정이라는 사실을 제도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회복 절차에는 몇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공식 사과는 출발점일 뿐이다. 그 다음에는 사건 경위의 사실 확인, 현장 감독자의 책임, 학생선수 언어문화, 상대 학교와의 회복적 대화, 역사적 기억에 대한 학습, 경기장 응원 규칙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서울시교육청도 배재고를 상대로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고, 국민신문고 민원이 접수되어 경위를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중요한 것은 행정 조사가 교육적 재구성으로 이어지는가이다. 두 번째 과제는 연관성 교육을 새롭게 설계하는 일이다. 학생들에게 5·18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왜 어떤 말은 누군가의 삶과 연결되는가. 왜 어떤 농담은 공동체의 상처를 건드리는가. 왜 스포츠는 승패 이전에 상대의 존엄을 요구하는가. 왜 온라인에서 사건은 쉽게 분노의 상품이 되는가. 이런 질문을 교육과정 안으로 가져와야 한다. 연관성 교육은 역사교육, 미디어 리터러시, 인권교육, 스포츠맨십, 지역 이해 교육을 따로 떼어 놓지 않는다. 그것들을 하나의 시민교육 과정으로 엮는다. 학생은 5·18을 과거의 사건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말과 행동을 판단하게 하는 민주주의의 기준으로 배워야 한다. 학생선수는 상대 팀을 이겨야 할 대상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경기장을 함께 만드는 시민적 타자로 배워야 한다. 온라인 이용자는 영상을 퍼 나르는 관객이 아니라, 사건의 의미를 어떻게 연결하고 확산할지 책임지는 미디어 시민으로 배워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덕아웃의 몇몇 학생만이 아니다. 그런식으로 해결하면 다시 덕아웃의 구호가 밈이 되어 확산되고 집단적 조롱문화가 된다. 우리는 그 구호를 가능하게 한 공동체의 빈자리, 그 구호를 분노의 상품으로 만든 알고리즘의 회로, 그리고 그 사이에서 교육이 아직 해야 할 일을 보아야 한다. 학교는 징계를 피하는 곳이 아니지만, 징계로 교육을 끝내는 곳도 아니다. 학교는 공통된 것이 희미해진 사회에서 다시 공통의 감각을 배우는 마지막 공적 장소이어야 한다.  정용주 서울천왕초교장 jyj@mind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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