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제로 선언’ 시대 끝난다…유엔 Race to Zero, 6년 만에 실행 체제로 전환 [환경] 유엔의 대표적인 넷제로 캠페인 레이스투제로(Race to Zero) 가 6년 만에 역할을 바꾼다. 수천 개 대기업의 탄소중립 선언을 끌어내며 2050 넷제로 를 선언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던 기존 캠페인 방식에서 벗어나, 이미 세운 목표를 실제 감축과 투자로 연결하는 실행 체제 로 전환하는 것이다.
유엔 기후변화 고위급 챔피언은 지난 6일(현지시각) 레이스 투 제로를 독립적인 캠페인으로 운영하는 대신 유엔의 글로벌 기후행동 의제에 통합한다고 밝혔다. 기존 파트너와 기준, 네트워크는 새롭게 만들어지는 ‘넷제로 활성화 그룹(Net Zero Activation Group)’으로 옮겨간다. 이 그룹은 이달 말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유엔의 대표적인 넷제로 캠페인 레이스투제로(Race to Zero) 가 6년 만에 역할을 바꾼다./ Net Zero Coalition | United Nations
2020년 시작된 넷제로 선언 물결
2020년 유엔(UN)의 지원을 받아 공식 출범한 레이스 투 제로는 기업, 지자체, 투자자 등 민간 주체의 2050년 넷제로(Net Zero, 탄소 중립) 달성 약속을 모으는 글로벌 캠페인 역할을 해왔다.
출범 당시 네슬레(SWX: NESN), 어도비(NASDAQ: ADBE), 디아지오(NYSE: DEO) 등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 1000여 곳이 서명자로 참여했으며, 출범 1년 만에 참여기업 수가 두 배 이상 급증하는 등 범세계적인 호응을 얻었다.
당시는 지금과 기업 기후경영 환경이 크게 달랐다. 과학기반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의 기업 넷제로 표준조차 나오기 전이었다. 기업마다 ‘탄소중립’과 ‘넷제로’의 의미가 달랐고, 2050년 목표만 발표한 뒤 구체적인 중간 감축계획을 공개하지 않는 기업도 적지 않았다.
레이스 투 제로는 기업과 도시, 금융기관, 대학, 의료기관 등 비정부 주체들에게 공통된 넷제로 기준을 제시하고 참여를 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기본 구조는 단순했다. 이른바 5P 체계였다. 넷제로를 약속(Pledge)하고, 계획(Plan)을 세우고, 실행(Proceed)하고, 진행 상황을 공개(Publish)하며, 이후 정책 로비까지 넷제로 목표와 일치시키라는 ‘설득(Persuade)’하라는 것이었다.
2022년 중반에는 참여 기업만 약 7000개에 달했다. 2024년 말 기준으로는 기업뿐 아니라 도시·지역·금융기관 등 150개국 이상의 1만5700개 이상 기관이 레이스 투 제로에 참여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비정부 넷제로 연합으로 성장한 셈이다.
가입 기준도 시간이 지나면서 강화됐다. 기업 등 참여 기관은 가입 후 12개월 안에 전환계획을 공개하고, 단기 행동과 2030년까지의 계획을 설명하도록 요구받았다. 직접 배출인 스코프1뿐 아니라 전력 사용에 따른 스코프2,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스코프3까지 감축 범위를 넓히고 기업의 정책 로비 활동도 넷제로 목표와 일치시키도록 했다.
석탄 규정 후퇴 논란…자발적 넷제로 캠페인의 한계도 드러나
그러나 참여자가 늘어날수록 문제가 복잡해졌다.
대표적인 사건이 석탄이었다. 지속가능미디어 트렐리스에 따르면, 레이스 투 제로는 2022년 기준을 강화하면서 회원사에 신규 석탄 프로젝트를 개발하거나 금융을 제공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후 일부 대형 은행들이 이 같은 공동 약속이 경쟁법·반독점법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고, 몇 달 뒤 레이스 투 제로는 석탄 관련 표현을 ‘단계적 퇴출(phase out)’로 완화했다. 구체적인 종료 시점도 명시하지 않았다. 기후단체들은 이를 금융권의 압력에 따른 후퇴라고 비판했다.
이는 결국 기준을 누가 결정하고 누가 참여 기업을 감독할 것인지라는 ‘넷제로 거버넌스’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소수 전문가 그룹 위주의 의사결정 구조 역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게다가 최근 SBTi의 기업 넷제로 표준이나 국제표준화기구(ISO)의 기후 관련 표준 개발 등 구체적인 세부 표준이 마련되면서, 레이스 투 제로의 기존 역할은 1단계로 종료되는 수순이다. SBTi는 지난 6월 기업 넷제로 표준 2.0(Corporate Net-Zero Standard V2.0)을 발표했으며, 이미 1만1000개 이상의 기업이 과학기반 감축목표 설정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새로운 2.0 기준에 따른 공식 목표 검증은 2027년 초 시작될 예정이다. ISO도 지난 6월 세계 최초의 국제 ‘넷제로 정렬(Net Zero Alignment)’ 표준을 만들기 위한 공개 협의를 시작했다.
유엔 역시 이런 흐름에 맞춰 올해 글로벌 기후행동 의제를 개편했다. 새로운 2026~2030년 체제에서는 새로운 선언을 늘리는 것보다 기존 약속을 실행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30개의 공동 목표와 120개의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중심으로 정부·기업·도시·투자자의 행동을 연결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