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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치외법권 특권 누리는 튀르키예의 고양이

치외법권 특권 누리는 튀르키예의 고양이
[사회혁신]
톰빌리(Tombili)는 공연장이나 전시장, 학교 등을 부지런히 드나들며 ‘홍보대사’를 자처하는 활동파 고양이들과는 달랐다. 이스탄불 카드쾨이 지역의 한 골목을 굳건히 지키며, 주민들이 주는 사료와 간식을 마다하지 않아 10여 년의 생애 동안 육중한 몸매를 유지해왔다. 계단에 지긋이 어깨를 기대고 누워 거리의 행인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게 행적의 전부였지만 소셜 미디어에는 팬클럽이 결성됐다. 식이요법과 운동 따위를 가볍게 무시해버리는 태도가 매혹적이었던 걸까. 아니면 녀석의 자태에서 ‘현자’의 모습이라도 발견했던 걸까.   육중한 몸매로 인터넷 스타가 된 뚱냥이 톰빌리.   미켈란젤로의 ‘아테네학당’의 중앙에 묘사된 견유학파의 대가 ‘디오게네스’. 계단에 비스듬히 앉아 행인들을 바라보는 뚱냥이는 철학자를 연상케 한다. 톰빌리의 외양은 계단에 비스듬히 누운 채 알렉산더 대왕에게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 달라”고 했다던 철학자 디오게네스와 닮았다. 디오게네스는 기성의 권위에 저항하며 자연 그대로의 삶을 따르고자 했던 ‘견유학파(Cynic)’의 대가다. 견유학파는 그리스어로 개를 뜻하는 ‘퀴니코스’가 그 어원이다. 튀르키예의 어딘가에서 견유학파에 버금가는 ‘묘유학파(猫儒學派)’의 창시자로 뚱냥이를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아나톨리아 고양이 프로젝트(Anadolu Kedisi Projesi)’가 톰빌리의 동상 제작을 위해 서명 운동을 시작하자 무려 1만 7천 명의 시민이 동참했고, 카드쾨이 구청이 이를 정식 승인했다는 점이다. 청동상은 톰빌리를 스타로 만들었던 그 포즈 그대로 재현되었고, 그가 살았던 골목에서 세계 동물의 날인 2016년 10월 4일 제막되었다. 수백 명의 시민이 모인 가운데 카드쾨이 부구청장이 직접 개막 연설을 맡았다. 이 동상은 뉴욕 월가의 황소상, 도쿄 시부야 역 앞의 개 하치코상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 10대 동물 조각의 반열에 올랐다. 디오게네스가 스스로를 세계 시민인 ‘코스모폴리탄’이라 선언했듯, 톰빌리 역시 지구 동물 공동체의 당당한 일원임을 온 세상에 천명한 셈이다.   뚱냥이 톰빌리의 동상은 뉴욕 월가의 황소, 도쿄 시부야 역 앞 하치코와 더불에 세계 10대 동물 조각으로 꼽힌다. 그 명성이 자자했던 탓이었을까. 세워진 지 한 달 만에 동상이 사라지는 소동이 벌어졌다. 구청은 동상의 도난 소식을 발표했다. 소셜 미디어는 분노한 시민들의 메시지로 들끓었고, 국내외 언론의 보도가 잇따랐다. 심지어 러시아 대사관마저 외교 채널을 통해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했을 정도다. 아마도 범인은 장물로 팔아치우기도 전에 체포될 수도 있겠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동상은 이틀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톰빌리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동상 곁에는 시민들이 두고 간 꽃과 사료, 그리고 붉은 홍차가 온기를 더하고 있다. 튀르키예어 위키피디아의 ‘톰빌리’ 항목은 녀석의 생애와 행적, 죽음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며 영어와 러시아어를 포함한 22개 국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인에게 읽히고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어 서비스는 지원되지 않지만 말이다. (https://tr.wikipedia.org/wiki/Tombili)   튀르키예 생태계에서 고양이는 인간을 넘어서는 최상위 포식자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출처 : 윤희만 한국어의 ‘도둑고양이’라는 단어는 튀르키예어로 번역하기가 무척 난감하다. 이 나라에서 그 말은 ‘둥근 사각형’이나 ‘뜨거운 얼음’처럼 지독한 형용모순이다. 음식을 조금 훔쳐 먹었다고 해서 고양이가 매질을 당하는 일 따위는 이곳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지난 코로나19 창궐 시기, 엄격한 통행금지령이 내려졌을 때도 사람들은 서로 품앗이를 해가며 골목마다 고양이 사료를 챙기는 일을 잊지 않았다. 전례 없는 물가 폭등으로 주류 판매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와중에도, 그 빈 자리를 채운 것은 사료 가게들이었다. 튀르키예 생태계에서 고양이는 인간을 넘어서는 최상위 포식자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난 1,500여 년 동안 줄곧 이러한 지위를 유지해왔다는 사실이다.   김득신의 풍속도. 18세기 말-19세기 초. 간송미술관 소장. 한국어의 ‘도둑고양이’라는 단어는 튀르키예어로 번역하기가 난감하다. 오늘날 동물 권익을 높이 외치는 서유럽의 과거를 되짚어보면 사뭇 흥미롭다. 13세기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는 검은 고양이를 악마 숭배의 상징으로 규정했다. 이후 흑사병이 창궐해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자 고양이들은 마녀와 결탁했다는 이유로 대대적인 학살을 당했다. 합리주의가 널리 퍼지면서 종교적 비난에서는 벗어났지만 이번에는 사회적 계급 투쟁에 휘말려 들어갔다. 18세기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팔자가 늘어진 고양이들을 타도해야 할 부르주아 계급과 동일시하며 고양이 학살 사건을 벌였고, 이는 프랑스 대혁명의 전조가 되기도 했다. 반면, 같은 기독교권이었음에도 중세 비잔틴 제국의 고양이들은 서유럽과 전혀 다른 대우를 받았다.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번성한 항구 도시였던 탓에, 정박한 배에서 들끓는 쥐를 잡는 고양이들은 크게 환영받았다. 또한 해상 무역을 통해 교류하던 이슬람 국가들의 문화적 영향도 한몫했다.   오토만 시대의 고양이 미니어처 그림. https://muslimheritage.com/cats-islamic-culture/ 이슬람 세계에서 고양이가 절대 강자의 입지를 선점하게 된 배경에는 선지자 무함마드의 일화가 자리한다. 무함마드가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려는데, 옷 소매 안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잠들어 있었다. 선지자는 잠든 고양이를 깨우지 않기 위해 옷을 잘라내고 일어섰다고 전해진다. 이후 이슬람 세계의 고양이들은 최고 종교 지도자조차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치외법권’을 누리게 되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실수로라도 고양이를 죽인다면, 지옥행을 면하기 위해 모스크를 지어 바쳐야 한다고 믿는다. 7채부터 17채까지라는 등 죄값에 대한 설은 분분하지만, 본질은 하나다. 고양이를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다. 고양이의 확고한 지위 때문인지 튀르키예에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자는 종종 보았어도, 혐묘인들은 아직까지 마주치지 못했다.   이슬람에서는 고양이가 최고 존엄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사진 : Arif Asci. The Street cats of Istanbul. 2009. 튀르키예인들의 유별난 고양이 사랑은 단순한 동물 보호 차원을 넘어선다. 이슬람 세계의 석학 알 발키(Al-Balkhi, 850–934)는 지리학자이자 지도 제작자로도 명성을 떨쳤다. 그는 세상의 지도뿐 아니라 인간 마음의 지도를 읽는 데도 능했던 모양이다. 알 발키는 ‘신체와 영혼의 양식’(Masalih al-Abdan wa al-Anfus) 이라는 원고에서 우울증이나 강박증, 정신질환을 앓아 이른바 ‘미친 사람’의 범주에 묶이던 이들을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환자로 진단했다. 정신병을 악령의 소행으로 보고 육체를 고문해 치료하려 하던 중세 기독교권의 접근과는 사뭇 다른 시각이었다. 알 발키는 정신병을 고치기 위해 아름다운 음악과 향기, 사우나(하맘) 등과 더불어 동물과의 접촉 을 권장했다. 연약하고 굶주린 동물을 보살피는 행위는 한 생명을 구하는 길인 동시에,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어서 인간 내면을 치유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배려를 받는 동물이 오히려 인간의 영혼을 고치는 의사 노릇을 하게 되는 셈이다. 당시 사람들은 덩치가 크거나 관리가 까다로운 개, 말, 당나귀보다 몸집이 작고 스킨십이 쉬운 고양이를 자연스레 선호했고, 이로 인해 고양이는 영험한 동물이며 마음의 병을 낫게 해준다는 믿음은 민간에 널리 퍼져나갔다.   알 발키는 심리적 위안과 영혼의 치유를 위해서 동물 접촉을 권장했다. 출처 : 이혜승 튀르키예의 고양이들은 선지자 무함마드라는 이슬람 최고 존엄의 권위를 등에 업고, 동시에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주는 다정한 심리 상담사로서 오랜 시간 사랑받아 왔다. 사탄의 메신저라는 누명을 쓰고 수난을 당하는 드라마는 이곳에서 쓰여지지 않았다.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남부럽지 않게 천수를 누리다가 평화롭게 생을 마감하는 갈등 없는 동화 가 있다면, 튀르키예의 고양이들이야말로 그 주인공일 것이다. 지난 6월, 예기치 못한 고양이 난입 사건으로 ‘황실 러시아 발레단’은 튀르키예를 넘어 가디언, CNN, BBC를 비롯해 러시아와 중국 등 전 세계 언론에 이름을 알렸다. 혹시 튀르키예 무대에 오를 계획이 있는 한국의 예술가들이 있다면, 그들의 공연장에도 고양이 한 마리가 천연덕스럽게 걸어 나와 연주자들과 접촉하는 행운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혜승 튀르키예 통신원 lhs@mind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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