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병 100개로 박정희 강제 하야 황당 공소장 쓴 검사 [사회혁신]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3권을 펼쳤다. 최상엽(崔相曄, 1937~2025) 항목에서 가장 황당한 대목은 1972년 서울대생 내란예비음모 사건의 공소장이었다. 변호인 이병린은 이를 상상과 추리와 억측과 가공을 뛰어넘는 환상의 아홉 고개 라고 불렀다. 5명이 어떻게 학생 9만 명 중 5만 명을 동원해, 화염병 100여 개로 경찰 저지선을 뚫고, 박정희(1917~1979)를 강제 하야시킨다는 것인지. 그 황당한 시나리오를 공소장에 그대로 적은 검사 중 한 명이 최상엽이었다.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1937년 경북 포항 출생, 사법고시와 행정고시 동시 합격
최상엽은 1937년 2월 14일 경상북도 포항에서 태어나 1955년 포항고를 졸업했다. 1956년 서울법대 입학, 1961년 제13회 고등고시 행정과와 사법과, 두 시험에 모두 합격했다. 110명이라는 이례적으로 많은 합격자를 낸 이 기수에서 최종영(대법원장), 박상천(법무부장관), 박희태(국회의장) 등을 배출했다. 서울법대 동기 중에는 안우만(1937~ , 전 법무부장관 ), 정해창(1937~ ,전 법무부장관), 윤영철(1937~ ,헌법재판소장) 등 화려한 인맥이 즐비했다. 흥미롭게도 안우만과는 생년월일이 똑같았다.
세계사 속의 동류, 환상의 시나리오 를 만든 기소자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구조가 떠오른다. 소련 대숙청 시기 검사들이 만든 거대한 음모 시나리오들이 그렇다. 평범한 사람 몇 명이 거대한 국가 전복계획을 세웠다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를 검사가 공소장에 진지하게 적었다. 최상엽이 만든 9단계 거사계획도 같은 종류의 허구다. 다만 한국의 경우 그 허구를 만든 검사들이 처벌받지 않고 평생 출세했다는 점이 다르다.
1971년 서울대생 내란예비음모 사건, 조작임을 알면서도 기소
최상엽의 반헌법 행위 정점은 1971년 서울대생 내란예비음모 조작사건이다. 조영래(1947~1990), 이신범(1950~ ), 장기표(1949~2024), 심재권(1946~ )을 신문한 최상엽과 박종연(1927~ )은 중앙정보부의 송치의견서가 조작에 근거한 것임이 분명함에도 그대로 공소장을 작성했다. 1심 재판장은 정기승(1928~ ), 배석판사가 서성(1942~ )이었다. 배석판사 서성이 합의과정에서 조작이라고 이의를 제기하자, 그의 집으로 협박전화가 걸려왔다. 1972년 5월 10일, 정기승은 검찰공소장을 거의 복사한 듯한 정찰제 판결문으로 이신범과 장기표에게 징역 4년, 조영래와 심재권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47년이 지난 2019년에야 재심 무죄가 확정됐다.
1972년 5월 10일 서울대생 내란음모조작사건 1심 선고공판.(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973년 고려대 민우지 사건, 50일 불법구금과 전기충격 고문
같은 해 최상엽은 정경식과 함께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사무국장 김낙중을 간첩활동 혐의로 조작 기소했다. 함상근 등 학생들은 50일간 영장 없이 불법 구금되고 코에 물 붓기, 잠 안 재우기, 전기충격 등 고문을 당했다. 검찰 면담 때 도청장치가 설치돼 있어 학생들이 정보부의 조작 사실을 발설하면 또다시 끌려가 재수사 명목의 고문을 당했다. 최상엽은 무기징역과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2017년, 44년 만에 재심에서 전원 무죄가 선고됐다.
1973년 11월 1일 열린 고려대 민우지 사건 선고공판.(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974년 문인 간첩단 사건, 고병택 사건, 16억 원의 배상
최상엽은 1974년 보안사가 조작한 문인 간첩단 사건 과 재일한국인 고병택 간첩조작 사건도 기소했다. 고병택은 7년 4개월을 복역한 뒤 2013년 재심 무죄, 2014년 국가배상 16억 원 판결을 받았다.
1974년 3월 12일 문인간첩단조작사건 공판(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역대 최장수 대검 공안부장, 1982년부터 5년간
최상엽은 1982년 8월부터 1987년 5월까지 무려 5년간 대검 공안부장을 지내며 역대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그 기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삼민투위 사건, 「깃발」사건, 건국대 점거농성 사건을 모두 지휘하며 민주화운동을 좌경 용공세력으로 규정해 가혹하게 탄압했다. 그리고 지검장과 고검장을 한 번도 거치지 않고 1997년 곧바로 법무부장관에 임명됐다.
최상엽(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소련식 환상의 음모 기소는 가장 위험한 사법부패로 평가된다. 그러나 한국에서 그 허구를 만든 검사는 처벌받지 않고 최장수 공안부장과 법무부장관까지 오르는 경력으로 보답받았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환상의 아홉 고개 를 떠올렸다. 허구의 음모로 학생들을 가두던 그 문법이, 50여 년이 지나 다른 옷을 입고 돌아온 것은 아닌지를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