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배경 학생, 거점 마련 보다 이름을 불러줘야 [사람들] 서울시교육청이 이주배경학생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거점 지원체계를 손보고 있다. 올해 3월 내놓은 ‘2026 서울 이주배경학생 교육지원 및 다문화교육 종합계획 에는 중부권에 제2서울다문화교육지원센터를 새로 세우고, 학생의 국적 수와 밀집도를 결합한 가중치 지표 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AI 동시통역, 다국어 상담, 진로 체험, 원스톱 연계가 한 곳에 모인다고 했다.
제2다문화교육지원센터 구축...서울 다문화교육 체계 정비 (사진출처 : 서울시교육청 보도자료)
숫자를 보면 왜 필요한 일인지 알 수 있다. 2025년 4월 1일 기준 서울의 이주배경학생은 2만 2,002명. 전체 학생의 약 2.95%, 100명 중 세 명이다. 최근 5년간 서울의 전체 학생 수는 줄었는데 이주배경학생은 13.6% 늘었다. 그중에서도 중도입국·외국인 학생은 22.3% 늘었다. 줄어드는 교실 안에서 늘어나는 아이들이다.
거점 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지도 위에 점을 찍으면 그곳이 중심이 된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사람과 제도를 세운다는 뜻이니, 분명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나는 거점 이라는 단어를 읽으며 한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새 학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 한국말은 조금씩 늘었지만 아직 친구들 웃음의 온도를 정확히 읽지 못하는 아이. 쉬는 시간에 교실 구석에 서서, 누가 먼저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던 아이.
그 아이에게 필요했던 것은 거점이 아니었다.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었다. 오늘 체육 시간에 같이 할래? 라고 물어주는 친구 한 명. 이 단어는 이렇게 쓰면 돼 라고 옆에 앉아 알려주는 선생님의 손길. 학부모 상담에 오신 부모님이 통역이 없어 머뭇거릴 때, 천천히 말씀하셔도 된다고 먼저 웃어주는 누군가.
올해 4월 초·중등교육법이 개정됐다. 그동안 다문화 학생 이라 부르던 아이들을 이제 법은 이주배경학생 이라 부른다. 교육감이 밀집 완화 대책을 세울 수 있는 근거도 함께 생겼다. 국가가 아이들을 부르는 이름을 바꾼 것이다. 나는 이 개정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린다. 법이 바꾼 것은 아이를 부르는 호칭 이지, 교실에서 그 아이의 이름 이 하루에 몇 번 불리는지가 아니다. 출석부에 이름은 있어도, 그 이름이 불리는 횟수는 다른 문제다.
서울시교육청 전경 (이미지 출처 : 서울시교육청)
제도가 아이에게 닿는 마지막 한 걸음은 결국 사람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번 계획은 솔직하게 멈춰 선다. 교육청은 한국어교육과 사례관리, 보호자 상담, 위기학생 지원을 전담할 정원 외 다문화 특별학급 전담교사 를 배치하겠다고 했는데, 그 방식은 교육부에 제안 하는 것이다. 교육청이 스스로 세울 수 있는 것은 센터와 지표와 지원체계지, 아이 옆에 앉을 사람이 아니다. 올해 6월 시작한 퇴직교원 연계 찾아가는 한국어교실 도 마찬가지다. 기존 사업에서 빠졌던 학생 100여 명을 지원하는 이 사업의 인력은 공무원연금공단을 통해 모집한 퇴직교원 자원봉사자다. 아이와 1대 1로 매칭된다.
결코 이 사업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교단을 떠난 선생님이 다시 학교를 찾아가 아이 옆에 앉는 장면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특별하고 귀하다. 다만 그 귀한 장면이 정규 인력이 아니라 선의로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은 기록해 두어야 한다. 건물은 예산으로 짓고, 지표는 행정으로 만들고, 사람은 봉사로 메운다. 이 순서가 이번 계획의 진짜 구조다.
가중치 지표도 그렇다. 국적 수와 밀집도를 섞어 현장의 교육 난이도를 수치로 잡아내겠다는 발상은 영리하다. 숫자로 현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다만 숫자는 아이가 얼마나 외로운지는 알려주지 못한다. 난이도 높은 학교를 찾아낼 수는 있어도, 그 학교 4학년 2반 창가 자리에 앉은 아이가 오늘 몇 마디를 했는지는 지표에 잡히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다문화 교육 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말이 때로는 아이를 다른 아이 로 먼저 세워버린다. 한 연구자는 이주배경학생 정책이 여전히 결핍 중심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놀고 실수하고 칭찬받고 사과할 수 있는 일상이다. 그 일상이 가능하려면 교실이 아이를 기다려주어야 한다.
정근식 교육감은 7일 오후 청사 3층 컨퍼런스룸에서 열린 제1차 서울 미래교육 토론회-공약 이행 토론회 에서 기본교육은 누구나 자신의 배경과 형편에 관계없이 인간다운 삶에 필요한 본질적인 배움을 보장받을 권리이자 공교육이 책임져야 할 책무라고 밝혔다. (이미지출처 : 서울시교육청)
올해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와 서울시교육청 주민참여예산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교육비특별회계 예산안을 들여다보는 기회도 있었다. 그래서 바깥에서 던지는 비판이 아니라, 결국 내년에 내가 들고 확인해야 할 숙제에 가깝다. 삻의 터전, 우리 가족들이 있는 관악으로 와 본다. 학운위는 분기에 한 번 심의안건 묶음을 받아 읽고 회의에 나간다. 우리 학교에도 외국인 학생들이 있고 아이들은 잘 어울리고 있다. 학교도 잘 보살피고 있다. 이것은 비판을 위해 깎아낼 대목이 아니라 그대로 적어야 할 사실이다.
그래서 더 생각하게 된다. 운동장에서 한데 어울려 뛰노는 모습, 급식실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서로 장난치는 모습. 앞에서 내가 떠올린, 교실 구석에 서서 누군가 말 걸어주기를 기다리던 아이와 이 아이들 사이에 놓인 것은 무엇인가. 내가 아는 한 그것은 거점도, 센터도, 가중치 지표도 아니었다. 아이의 이름을 외운 담임교사, 말이 늦되는 아이를 재촉하지 않는 교실의 공기, 서툰 한국어로 걸려 온 전화를 끊지 않고 받아주는 교무실이었다.
우리 학교는 이주배경학생 밀집학교가 아니다. 다문화 특별학급도 없고 이중언어강사도 없다. 교육청이 올해 바로지원 한국어교실 을 새로 만들며 밝힌 사유가 정확히 그 상태다. 비밀집지역 학교에서 입국 초기 아이가 기댈 곳은 사실상 담임교사 한 사람뿐이다.
그러니까 우리 학교가 잘하고 있다는 말은 제도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제도가 비워 둔 자리를 사람이 메우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사람은 바뀐다. 담임은 해마다 바뀌고 교사는 전보를 간다. 올해 잘 어울리는 교실이 내년에도 잘 어울린다는 보장은 그 교실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 지금 잘 되고 있다는 사실이 안심의 근거가 아니라 불안의 근거인 이유가 여기 있다.
서울의 이주배경학생은 남부권 일부 지역에서 9% 넘게 밀집해 있고, 2019년 문을 연 첫 다문화교육지원센터도 구로·금천·영등포를 고려해 영등포에 자리 잡았다. 지도 위에서 관악은 점이 찍히는 동네가 아니다. 거점은 점을 찍는 일이고, 점 바깥에는 언제나 면이 남는다. 우리 동네 교실에 앉은 아이들은 그 면 위에 있다. 잘 지내고 있다는 이유로 세어지지 않는 아이들이다.
거점이 생기는 것은 좋은 일이다. 센터도 지표도 필요하다. 교육감은 배경과 형편에 관계없이 배움을 보장하는 것이 공교육의 책무라고 했고, 학교가 홀로 부담을 감당하지 않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그 말은 옳다. 그렇다면 확인해야 할 것은 센터가 언제 문을 여느냐가 아니다. 그 안에 상시로 앉아 있을 사람이 몇 명인지, 그 자리가 정원 안의 자리인지 밖의 자리인지다. 전담교사 배치 제안이 받아들여졌는지는 내년 교육부 정원 협의에서, 퇴직교원 100여 명의 자리가 선의를 넘어 체계가 되었는지는 내년 교육비특별회계 예산서에서 드러난다.
교육의 가장 작은 단위는 예산도, 조직도, 지표도 아니다. 한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다. 다음 운영위원회에서 나는 안건 목록을 다시 펴 볼 생각이다. 거기에 그 아이들의 이름이 한 번이라도 올라 있었는지부터 말이다.조태희 시민기자 jotaehu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