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는 울산 김상욱의 승부수… 시의회 벽 넘어야 [사람들] (편집자 주) 지역이 처한 현실과 과제는 저마다 다르다. 인구 감소와 산업 전환, 기후위기와 일자리 문제에 대응해 지방정부들도 각자의 해법을 찾고 있다. 시민언론민들레는 [지역의 선택]을 통해 지역의 미래를 바꾸려는 정책과 실험, 그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살펴본다. 첫 순서는 석유·석유화학 중심의 산업도시에서 미래 에너지 도시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울산이다.
지난 6월 8일 김상욱 울산시장이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 후 발언하고 있다. 2026.9.11. 연합뉴스
대한민국 산업화를 떠받친 울산이 다시 한번 산업구조 전환의 갈림길에 섰다. 석유·석유화학과 자동차·조선으로 성장한 울산이 수소·암모니아·풍력과 인공지능(AI)을 다음 성장동력으로 삼을 수 있을까.
취임 석 달을 앞둔 김상욱 울산시장이 내놓은 답은 에너지는 울산 이다.
울산이 이미 갖추고 있는 석유와 가스, 석유화학 산업 기반에 수소·풍력·암모니아 등 미래에너지 산업을 더하고, 에너지 관련 공기업과 연구개발(R&D) 기능까지 집적해 울산을 동북아 에너지 허브 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산업도시 울산의 체질을 바꾸는 일은 시장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시민사회의 지지는 물론 시의회의 협조와 중앙정부의 지원, 기업의 투자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김 시장이 당장 마주한 첫 번째 시험대는 정치다.
울산시의회 22석 가운데 국민의힘이 15석을 차지하고 있다. 민주당은 6석, 진보당은 1석이다. 5개 구·군 기초단체장 역시 국민의힘 4명, 민주당 1명으로 집행부와 지방의회의 정치 지형이 엇갈린다. 전형적인 여소야대 구도다. 여기에 보수 성향이 강한 시민사회도 우호적이지 않다.
김 시장은 취임 초기부터 시민주권 시정 을 내세우며 여소야대 정치지형을 돌파하려 하지만, 번번이 시의회 문턱에 막혀 잰걸음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지난 7월 16일 김 시장의 핵심 공약인 공론화 제도를 뒷받침하기 위해 발의된 공론화위원회 설치 조례안은 울산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심사 단계에서 부결됐다. 부결된 조례안은 주요 정책과 지역 현안에 대해 시민과 전문가, 이해관계자가 참여해 상설 또는 비상설 공론화위원회와 실무 전담조직인 공론화추진단을 설치·운영하는 내용이었다.
시와 의회의 충돌은 최근 추경예산안 심사에서 다시 불거졌다.
시의회 행자위는 지난 10일 120 울산민원센터 운영 관련 인건비 등 1억 2242만 원을 전액 삭감했다. 이 외에도 행자위는 에너지 도시 울산을 만들기 위한 전초기지인 서울본부 운영경비 등 시가 제출한 추경예산안에서 모두 36억 7456만 원을 삭감했다.
이에 김 시장은 11일 기자회견과 시민들에게 드리는 호소문 을 통해 시의회를 존중하고, 의원님들의 의견을 듣고 한 분 한 분 잘 모시려 하는 마음으로 시정에 임하고 있다 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자위에서 120민원센터를 사전 상의나 일부 수정 요구 또는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기습적으로 예산 전액을 삭감해 참담함과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고 울분을 토로했다. 내주에 열리는 시의회 예산결산위원회에서 예산안을 원안대로 통과해 달라고 호소했다.
행자위 추경안 심사에서 전액 삭감된 120 울산민원센터 예산은 김 시장의 제1호 결재 로, 서울시의 다산콜센터를 벤치마킹해 이를 고도화했다. 시민들에게 원스톱 민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10일 김상욱 울산시장이 자신의 유튜브채널을 통해 힘없는 시장이라 죄송하다면서 시의회에서 120민원센터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고 시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2026.09.11. 유튜브채널 김상욱TV 갈무리
김 시장은 시민들이 언제든지 민원과 정책을 제안하고 소통하는 창구가 필요하고, 돈이 들어가는 일도 아니며, 비리와 불공정을 제보할 제보창구로 기능하게 하려 했다 면서 시민의 민원도 듣지 말고, 비리 제보도 받지 말라는 취지인지, 누구를 위한 전액 삭감인지, 실망스럽고 혼란스럽다 고 말했다. 이어 시민의 공복으로, 시민의 혈세로 월급받는데, 이게 맞나 싶다 며 의회의 예산 삭감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울산시 서울본부 예산 삭감에 대해서도 지난 두 달간 시청 공무원들과 함께 정부 예산안에 3조가 넘는 국비예산을 반영시켰다 면서 국회 예산심의에 대응하고, 중앙부처와 소통하며 국가사업을 기획해야 2~3년 뒤에는 예산을 반영해 국가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데 그 어느 때보다 인력과 예산을 강화해도 모자란 서울본부의 예산이 사라졌다. 누구를 위한 예산 삭감이냐 고 반문했다.
그는 시의회의 정당한 지적과 의견 제시에 적극 귀 기울이겠지만 상식적이지 않고 부당한 시의회의 잘못된 시도에 대해서는 시민들께 더 적극 알리겠다. 시민의 힘을 믿고, 불의와 잘못됨에 타협하지 않고 나아가 울산시민들께 더 살기 좋은 울산 만들어드리고 싶다 면서, 시민들을 향해 울산 시정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 고 호소했다.
여소야대 속에서도 시정 운영 평가 3위
취임 초기 시의회와의 충돌이 이어지는 정치적 상황과 별개로 김 시장에 대한 시민들의 직무수행 평가는 상승했다.
지난 8월 리얼미터에서 실시한 광역자치단체장 평가에서 김 시장의 긍정 평가는 48.8%로 전월보다 1.5%포인트 상승했다. 전국 순위는 7위에서 3위로 네 계단 올랐다. 소속 정당의 지역 지지도와 단체장 직무평가를 비교하는 정당지표 상대지수 역시 120.3으로 전국 3위였다. 100을 넘으면 소속 정당의 해당 지역 지지도보다 단체장 개인의 직무수행 평가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뜻이다.
하나의 여론조사를 시정 전반에 대한 평가로 확대해석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취임한 지 석 달도 되지 않아 개별 정책의 성과를 평가하기에는 이르다. 다만 김 시장이 취임 초기부터 에너지와 산업 에이엑스(AX, 인공지능 전환), 시민주권과 소통이라는 비교적 분명한 메시지를 반복하고 있는 시점에 맞물려 직무평가가 상승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김 시장이 처한 정치지형을 고려하면 전국 3위라는 숫자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
1980년생으로 민선 9기 최연소 광역단체장인 김 시장은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지만 12·3 내란 이후 계엄 해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며 당과 갈등을 빚었고, 이후 국민의힘을 탈당해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이러한 배경으로 김 시장은 우호적이지 않은 국민의힘이 장악한 시의회를 상대하면서 보수·중도층의 지지를 넓히는 동시에, 민주당과 진보당 지지층까지 끌어안아야 하는 정치적 조건에 놓여 있다. 김상욱 시정이 진영보다 실용 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김 시장에게 실용주의 는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생존조건에 가깝다.
2024년 12월 7일 김상욱 의원이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에 대해 투표한 뒤 로텐더홀에서 울먹이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4.12.7 연합뉴스
김 시장이 시민 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도 이런 정치환경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후보 시절부터 진정한 민주주의는 시민이 권력자를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가 시민을 무서워하는 것 이라며 시민 중심 행정을 강조했고, 인수위도 시민이 주인 되는 민주도시 울산 을 시정 철학으로 내세웠다. 취임 이후엔 조직개편과 독립 합의제 기구 설치, 행정 과정 공개 등을 통해 이를 제도화하려 하고 있다.
의회의 절대다수가 보수 정당이고 자신이 속한 민주당 안에서도 정치적 뿌리가 깊지 않은 시장에게 가장 강력한 정치적 기반은 결국 시민 여론일 수밖에 없다. 매일 아침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신문 읽어주는 시장 생방송을 진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요 뉴스와 울산 현안을 설명하고 시민 의견과 민원을 직접 듣는다. 정책 결정 과정과 공무원 업무보고 역시 온라인으로 공개하고 있다.
의회와 언론, 행정조직을 거쳐 시민에게 전달되던 기존 지방행정과 달리 시장이 스마트폰을 통해 시민과 직접 소통하는 방식이지만, 이 역시 울산의 정치 지형에서 녹록지 않다.
지지층에는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반대층에는 정치 방송 이나 홍보 행보라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국민의힘 지지세가 강하고 시의회도 국민의힘이 장악하고 있는 울산의 정치구조에서 김 시장의 시민 직접 소통이 강해질수록 정치적 반발 역시 커질 수 있다.
정치적 승부수 넘어 산업적 승부수 에너지는 울산
이런 조건에서 김 시장이 정치적 논쟁보다 산업과 민생을 전면에 내세우며 던진 대표적인 의제가 에너지는 울산 이다.
울산은 이미 대표적인 에너지 산업도시다.
울산항은 석유와 천연가스, 암모니아, 나프타 등을 취급하는 대한민국 최대이자 세계 4위 규모의 액체화물 항만이며,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1680만 배럴 규모의 석유비축기지도 자리 잡고 있다. 북항에는 석유제품 170만 배럴과 엘엔지(LNG) 405만 배럴을 저장할 수 있는 코리아에너지터미널이 상업 운영 중이다.
울산에는 대규모 가스복합발전소와 에스오일(S-OIL), 에스케이(SK) 에너지, 대한유화, SK가스, 롯데케미칼, 롯데정밀화학, 카프로 등 석유정제·석유화학 산업시설도 집적돼 있다.
HD현대중공업 조선소 전경. 2026.9.11. HD현대중공업 홈페이지
여기에 S-OIL의 샤힌 프로젝트(대규모 석유화학 복합시설 구축 사업), 현대자동차의 수소연료전지 신공장, 에이치디(HD)현대중공업의 선박용 수소엔진 기술개발 등 울산이 기존 에너지 산업과 미래에너지 산업을 연결할 수 있는 산업 기반도 갖추고 있다.
울산이 수십 년간 석유와 가스 분야에서 쌓아온 산업기반과 기술, 물류 인프라를 수소·암모니아·풍력 등 새로운 에너지 산업으로 확장하는 것이 에너지는 울산 전략의 핵심이다.
이를 보여주는 상징 사업이 가칭 에너지자원공사 의 유치다.
김 시장은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의 통합을 전제로 한 에너지자원공사의 울산 유치 문제를 두고 울산에 하나 달라 가 아니라 대한민국에 어디가 좋은가 를 따져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지역에 어떤 기관을 배치하는 것이 대한민국 전체의 기능과 효율을 높이고 국민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울산에는 이미 에너지 저장시설뿐 아니라 에너지를 가공하고 산업현장에서 소비할 기업까지 밀집해 있다. 여기에 에너지 공기업과 연구기관, 연구개발(R&D) 기능까지 모은다면 정책과 연구, 생산·저장·가공·소비를 하나의 지역 안에서 연결할 수 있다. 그가 에너지자원공사의 울산 유치를 지역 이기주의를 넘어 국익을 우선하는 것 이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순한 공공기관 하나의 유치 경쟁이 아니라 대한민국 에너지 산업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어떤 지역에 관련 기능을 집적하는 게 효과적인지를 놓고 경쟁하자는 것이다. 에너지는 울산 이라는 메시지가 단순한 지방정부의 공공기관 유치 구호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시장이 그리는 에너지 지도의 범위는 국내에 머물지 않는다.
후보 시절부터 북극항로를 에너지 안보와 연결해 울산을 국제적인 에너지 저장·가공·물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구상 단계의 사업과 확정된 사업은 구분할 필요가 있지만, 울산의 에너지 전략을 국제 물류까지 확장하려는 방향은 취임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에너지자원공사 유치 과정에서도 김 시장은 사우디 아람코와 러시아 등과 협력해 석유·가스 저장시설과 가공시설을 확충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7일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김상욱 울산시장이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석유공사 통합으로 설립될 가칭 에너지자원공사 의 울산 유치를 촉구하는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2026.9.7. 연합뉴스
AI와 에너지 결합…청년이 떠나는 산업도시 바꿀까
김 시장이 에너지와 함께 강조하는 또 하나의 축은 산업 AX 대전환이다.
그는 울산의 청년 인구 유출을 단순한 주거·문화 문제가 아니라 미래형 일자리 부족이라는 산업구조의 문제로 보고 있다. 자동차와 조선·석유화학 등 기존 제조업을 AI와 결합해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청년층을 붙잡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산업 AX와 에너지는 울산 은 그래서 별개의 정책이 아니다. 산업 AX가 울산 제조업의 생산방식을 바꾸는 것이라면 수소·암모니아 등 미래에너지는 그 제조업을 움직이는 에너지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수십 년간 구축한 산업기반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AI와 미래에너지를 결합해 다시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것이 김 시장이 그리는 울산 대전환의 핵심이다.
울산만의 독자적인 성장보다 초광역 협력을 강조하는 것도 김 시장이 구상하는 미래다. 유니스트(UNIST·울산과학기술원)를 중심으로 부산·울산·경남의 연구역량을 연결하고, 광주와 AI 분야에서 협력하는 등 도시마다 강점을 가진 산업·연구 기능을 묶어 더 큰 경제권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울산과 부산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보고, 울주군 서생면과 부산 기장군 해안을 잇는 공동 해안마라톤을 제안한 것도 행정구역을 넘어선 협력의 한 사례다.
김상욱 앞에 놓인 두 가지 질문 시민주권 에너지
결국 김상욱 시정이 던지는 질문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시민주권 이 울산의 정치와 행정이 작동하는 방식을 바꾸겠다는 질문이라면, 에너지는 울산 은 울산이 앞으로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하나는 정치와 행정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산업 정책이다.
아직은 어느 쪽도 답이 나온 단계가 아니다.
에너지자원공사를 실제로 울산에 유치할 수 있는지, 수소와 암모니아 등 미래에너지가 석유화학 이후 울산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지, 산업 AX가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넘어 청년 일자리로 연결될 수 있는지, 부산·경남·광주 등 다른 지방정부와의 협력은 선언을 넘어 실제 공동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아울러 시민과 직접 소통하면서도, 정치적으로 국민의힘이 다수인 시의회를 설득하고 협력을 끌어내는 능력도 이미 시험대에 올랐다. 시민주권을 강조하는 것과 대의기관인 의회를 설득하는 일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울산 . 석유와 석유화학으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었던 울산이 AI와 미래에너지를 결합한 새로운 산업도시로 다시 한번 변신할 수 있을까. 취임 석 달이 다가오는 김상욱 시정의 성패를 넘어 산업도시 울산의 다음 10년을 좌우할 실험이 시작되고 있다.김시몬 기자 simonn09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