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민주시민교육, 보이텔스바흐 협약으로 충분한가 [교육] 국가교육위원회 홈페이지 갈무리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2016년 3월 26일 사단법인 징검다리 교육공동체 출범식을 통해 학생, 학부모, 교사,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민주시민교육을 자리잡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 그는 민주시민교육의 원칙과 지침을 정립하는 데 1976년 체결된 독일 학교의 정치교육에 관한 사회 협약인 보이텔스바흐 협약의 취지를 따르겠다는 뜻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 뒤 교육 전문 매체들에는 종종 보이텔스바흐 협약을 소개하는 글들이 실리곤 했다. 임태희 전 경기도교육감도 지난 4월 재선 도전 의사를 밝히며 학생들이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스스로 건전한 판단력을 기르도록 하는 보이텔스바흐 협약의 기본 취지를 도내 학교 수업에 시범 도입하고 있다고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진보와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교육감 출신들끼리 이 협약이 정치와 이념을 초월해 학교 현장에서의 민주시민교육이 지향하는 가치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다고 본 것이다.
보이텔스바흐(Beutelsbacher Konsens)는 옛 서독 바덴 뷔르뎀부르크주의 자그마한 도시로 1976년 옛 서독의 교육학자, 정치인, 행정가들이 이념과 진영을 아울러 고개를 맞대 정치교육에서 특정한 가치를 강요하거나 편향된 시각을 주입하지 않도록 하게 하는 원칙들을 마련했다. 세 가지 원칙을 천명했는데 첫째 강요 금지의 원칙. 정치교육은 학생들에게 특정한 견해를 강요하는 것이어선 절대 안 된다고 규정했다.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판단력을 침해받지 않게 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는 것이었다.
둘째 논쟁성의 원칙.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논쟁이 되는 문제는 수업에서도 논쟁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한 견해가 유일한 정답으로 제시되지 않고 다양한 관점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이해 증진의 원칙. 학생들이 스스로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의 힘으로 입장을 정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한다는 취지다.
JTBC 뉴스 화면 갈무리
반 세기가 흐르는 동안 이 협약은 여러 나라들의 민주시민교육 준거 틀로 자리잡았다. 대통령 소속 행정위원회인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학교시민교육 국가 기본원칙(안) 을 만들었다고 21일 밝혔다. 또 배재고 야구부의 이른바 스타벅스 응원 파문으로 학교 현장의 차별과 혐오 문화에 대한 사회 전반의 우려가 높아진 시점에 뒤늦게 지침이 마련된 것이다.
국교위는 기본원칙이 보이텔스바흐 협약의 근본 취지를 그대로 따랐다고 밝혔다. 곽 전 교육감이 처음 기치를 높이 올린 지 10년 만의 일이다. 학교에서 혐오와 차별을 배격하고 사회적 쟁점은 교사가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국교위에 따르면 기본원칙에는 지난해 12월 구성된 민주시민교육 특별위원회가 그동안 전문가 논의를 바탕으로 마련한 학교시민교육의 기준과 원칙 등이 담겼다. 기본원칙은 헌법과 법령, 국가교육과정에 따라 옳고 그름이 분명한 사안은 명확하게 교육하되, 사회적으로 견해가 갈리는 사안은 교사가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도록 했다.
특히 학교는 학생에게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편견, 모욕, 따돌림, 조롱과 비하, 혐오와 차별의 말과 행동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반(反)시민적 행위임을 깨닫도록 가르친다 고 명시하는 한편, 극단주의 배격을 강조했다. 또 학교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발생하는 시의성 있는 공적 사안들을 교육활동의 주제로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다룬다 고 밝혔다.
아울러 정당한 학교시민교육 활동은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등 관련 법령에 따라 보호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국교위는 기본원칙에 대한 국민 의견 수렴에 나선다. 22일과 25일 국민참여위원회 온라인 토론회를 개최하고 23일에는 부산에서 현장 토론회도 연다. 국민참여위원회는 학생, 학부모, 교육 관계자, 일반 국민 등 500명으로 구성됐고 교육정책 수립 과정에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국민 소통 창구 역할을 한다. 국교위는 오는 31일까지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국민들의 의견을 받는다.
그런데 국교위가 마련한 기본원칙이 학교 현장에 적용할 때에는 적잖은 걸림돌이 존재한다. 우선 무엇보다 일부 학부모들의 교권 침해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없어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학교 현장에서는 교사의 입에서 노무현 이나 광주 란 단어만 튀어나와도 학부모가 득달같이 민원을 넣어 왜 편향된 정치와 이념 교육을 하느냐 고 항의해 결과적으로 교사를 정치적 중립 이란 미명 아래 입을 다물게 만들고 있다.
또 보이텔스바흐 협약 자체가 어린 학생들이 오직 학교에서만 삶의 원칙과 태도에 대한 학습을 하던 시대의 협약이란 점을 간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배재고 스타벅스 사태에서 보듯 학교를 비롯해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든 일간 베스트 저장소 (일베) 문화와 혐오의 문화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순식간에 전파되는데 학교 민주시민교육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황희두 노무현재단 이사 제공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이 지난 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이런 우려가 근거 없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많은 국민이 학교 민주시민교육 강화를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노조 정책연구원 의뢰로 ㈜마이크로밀엠브레인이 지난 4월 17∼22일 만 16세 이상부터 70세 미만의 국민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6.0%는 현재 학교 내 시민교육 수준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사의 정치적 편향을 걱정하는 국민이 많았다. 현실 정치의 쟁점과 사회 문제 수업을 둘러싼 우려에 대해선 응답자의 63.6%가 교사의 정치적 편향에 따른 왜곡된 시각 주입 을 꼽았다. 학교 현장에서는 이런 식으로 양쪽 모두의 민원이 빗발칠 가능성이 없지 않아 교사들을 힘들고 지치게 만드는데 국교위가 이를 차단할 어떤 복안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가 2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날 공정위는 배재고 야구부의 6개월 출전 정지 징계에 관한 재심의를 해 1개월로 징게를 경감했다. 2026.7.20 연합뉴스
한편 광주제일고와 경기 중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응원 구호를 외쳐 파문을 일으킨 배재고 야구부가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위원장 이영진) 재심의에서 출전 정지 징계 감경 처분을 받았다. 공정위는 2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회관에서 제19차 위원회를 열어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공정위가 내린 6개월 출전 정지 처분을 1개월 출전 정지 로 감경 조처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산하 단체 징계에 관한 최종심 역할을 하며, 재심의 결과는 의결 직후 효력이 발생한다. 이에 따라 배재고 야구부는 다음 달 6일 개막하는 제54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됐다. 배재고는 다음달 11일 오후 5시 서울 양천구 목동구장에서 인천고와 1회전 경기를 치른다.
이영진 위원장은 배재고 선수들의 부적절한 행위는 규정에 어긋나는 징계 사유 라며 다만 선수들은 광주제일고를 찾아가 사과하고 피해 당사자들은 용서한 뒤 선처를 호소한 점을 고려했다 고 밝혔다. 이어 학생 선수들은 배움의 과정에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1심 징계인 출전 정지 6개월은 과중하다고 봤다 고 설명했다.
봉황대기는 배재고가 올해 출전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전국 대회다. 배재고 야구부 3학년 선수들은 공정위의 재심 결과에 따라 대학 입시와 프로야구 진출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서 이날 결과에 관심이 쏠렸다.임병선 에디터 byeongseon1610@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