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재앙 시대에 필요한 세계 문학이란… [뉴스] 지난 9월 5일, 네팔 누와코트 지구 데비가트의 트리슐리 강변에서 한 불교 승려가 갑작스러운 홍수로 희생된 이들의 넋을 기리는 기도를 올리고 있다. 2026.9.5. AP 연합뉴스
네팔의 기후재앙
2026년 8월 26일, 우리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장면을 목격했다. 네팔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히말라야 빙하가 붕괴하면서 일어난 복합 연쇄적 기후재앙으로 1300명이 넘는 사망자와 한국인 9명, 외국인 587명을 포함해 4800~5000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사건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히말라야 기온이 올라가면서 산비탈을 지탱해 주던 영구동토층이 녹아 지반이 매우 불안정해진 상태에서 네팔 랑탕리룽 산의 거대한 빙벽과 암반이 무너졌다. 이 붕괴로 인해 지구 반대편 지진계에 규모 5.2의 진동이 감지될 정도였다. 무너진 흙과 얼음 더미가 상류의 계곡과 강을 막아 순식간에 천연 댐(빙하호)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물이 급격히 고였다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로 터지면서 거대한 물 폭탄이 하류로 쏟아졌다. 수위 12m, 초당 1만 1000t, 시속 180km의 급류는 트리슐리 등 3개 강이 만나는 지점을 강타해 발전소, 다리, 집, 사람, 가축을 모조리 흽쓸어갔다. 붕괴 지점에서 20km 떨어진 국경 지역까지 흙, 바위, 콘크리트, 건물 잔해와 시신까지 범벅된 급류가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7분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와 유사한 빙하호가 히말라야 전역에 최소 3000개에서 최대 3만 개(호수의 크기 기준에 따라 연구결과가 달라짐) 있으며 최소 70개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머리에 얹고 살아가는 셈이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비 한 방울 없이 맑은 날, 엄청난 대홍수를 맞이한 네팔의 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의 0.01%이며 이번 기후재앙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GDP의 10%(50억~80억 달러)에 이른다. GDP의 10%를 차지하는 관광산업 역시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이번 참사는 동일본 대지진(후쿠시마 원전사고) 등 역대 주요 재난과 비교하더라도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재앙이라는 인류세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이산화탄소를 가장 적게 배출한 최빈국이 가장 먼저 희생되는 기후 부정의의 적나라한 사례이기도 하다.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아직 네팔 현지에서는 실종자 수색이 계속되지만, 뉴스 보도와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인류 역사를 바꿔놓을 기후재앙의 신호탄이라기보다는 개발도상국에 닥친 불행한 사고로 치부된다. 유럽 선진국과 네팔의 상황을 비교하면서 정확하고 신속한 경보체계와 대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세계 전역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고유가와 경제불황, 보호주의와 극우정치로 혼란스러운 현실이니 당장 눈앞의 과제가 산더미인 걸까? 기후재앙은 여전히 부차적이고 미래의 일이며 인류의 삶과 대량생산소비 경제의 방향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일까? 인간이 화산이나 지진처럼 대규모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지질학적 힘이 된 인류세에 우리 곁으로 부쩍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가 느껴지지 않는 걸까?
『인류세에서 죽음을 배우다』(로이 스크랜턴, 안규남 옮김, 시프, 2023)
여러 해 전, 『인류세에서 죽음을 배우다』(로이 스크랜턴, 안규남 옮김, 시프, 2023)라는 책에서 인류세와 죽음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밀접한지 알게 되었다. 저자는 2003년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미군 병사이고 바그다드 전장에서 ‘세상의 종말을 풀어놓은’ 듯한 파괴와 죽음을 경험했다. 제대 이후 그의 감정은 2010년대 전반에 쏟아져나온 기후변화보고서로 이입되었다.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데이터와 그래프는 생생한 죽음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는 몽테뉴의 주장처럼 철학을 한다는 것이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면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철학적인 시대로 진입했다. 왜냐면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 바로 인류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라는 결론에 이르고, 대학원에 입학해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이 책을 집필했다.
죽는 법을 배우는 게 개인 차원의 웰다잉은 물론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가는 여정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문명 역시 기후위기라는 형식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외면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 청년이 워싱턴DC 수뇌부의 결정에 따라 이라크 전장으로 내몰리듯, 네팔 강변의 평온한 일상이 하루아침에 끔찍한 흙탕물이 덮치는 악몽으로 변하듯, 죽음은 시도 때도 없이 엄습한다. 문제는 우리가 개인적·문명적 죽음을 의식하고 거기에 대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류문명, 문자의 발명과 함께 시작된 문학은 이런 죽음의 진리를 탐구한다. 저자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작품 중 하나인 「길가메시 서사시」(기원전 21~20세기)에서 기원을 찾는다.
우루크의 왕 길가메시는 결혼식 첫날밤 다른 남자의 신부를 취하는 등 폭정을 일삼고, 그의 행동을 괘씸하게 여긴 신들은 야생인간 엔키두를 만들어 대적하게 한다. 둘은 죽도록 싸우다가 친구가 되어 세상을 함께 떠돌면서 삼나무 숲을 파괴하고 괴물 훔바바를 죽이는 악행을 계속한다. 너무 많은 살육에 대한 처벌로서 신들이 엔키두를 죽음에 이르게 하자(죽은 그의 코에서 벌레가 기어 나오는 장면은 강력한 죽음의 이미지, 작품 전체의 백미로 꼽힌다) 길가메시는 깊은 슬픔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그는 영원히 살기 위해 전설의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우트나피시팀을 찾아가는데 그의 이야기는 구약성경 속 노아의 방주와 매우 비슷하다. 길가메시는 우트나피시팀이 알려준 영생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끝내 죽음에 이르지만,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을 인류문명의 유산으로 남긴다.
『변화하는 행성 지구를 위한 문학』(마틴 푸크너, 김지혜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5)
반복되는 길가메시 이야기
길가메시 서사시에 대한 해석을 다시 만난 건 『변화하는 행성 지구를 위한 문학』(마틴 푸크너, 김지혜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5)에서였다. 저자는 하버드대 영문학·비교문학 교수이고 전 세계 영문과 학생들이 배우는 『노턴 앤솔로지(세계문학 선집)』 최신판의 편집자이기도 하다. 이 책 역시 심각한 기후재앙과 제6차 대멸종 앞에서 문학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묻는다는 점에서 앞의 책과 공명한다. 다만 저자는 서구 식민주의의 기원인 16세기 대항해 시대 이후 현대 신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가 더욱 조밀하게 얽혀 온 역사와 함께 발전해 온 ‘세계문학’이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파고든다.
저자가 바라보는 「길가메시 서사시」는 인간의 자연정복이자 도시 생활에 대한 찬양이다. 기원전 3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 최초의 도시국가인 우루크의 왕 길가메시는 야생인간 엔키두에게 문명사회의 음식인 맥주와 빵을 주어 길들였다. 둘은 거대한 삼나무를 마구 베어내는데 이는 도시에 기반한 인류문명, 자연파괴 그리고 문자기록으로서 문학의 역사가 동시에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길가메시가 야생과 죽음의 세계까지 주유하지만 결국 우루크의 안온한 성벽 안으로 돌아와 평온한 죽음을 맞는 것도 결국 도시 생활의 승리이다. 특별한 점은 우트나피시팀이 겪은 대홍수 이야기인데 성경에서 노아의 홍수는 오만하고 방탕한 인간에 대한 여호와의 징벌인 데 비해, 여기에서 대홍수는 어쩌다 보니 일어난 일 또는 너무 늘어난 인구를 조절하는 자연의 섭리이다.
수메르 점토판에 새겨진 길가메시 서사시
저자에 따르면 문학은 그 기원부터 인간과 자연, 도시와 야생을 나누고 전자를 우월하게 여기는 이분법적 사고 위에서 형성되었다. 현재의 기후재앙을 낳은 사고가 20세기 대가속기 이후,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16세기 서구 식민주의 이후가 아니라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을 유사 이래 수많은 문학작품이 증명해 준다. 그러나 고전이 된 텍스트는 고정된 해석을 허용하지 않고 다양한 의미의 창고로서 비평과 해석에 열려 있다. 오늘날 「길가메시 서사시」는 생태비평의 중요한 작품으로서 숲의 파괴가 참혹한 죽음으로 이어지는 걸 보여주는 증거로 종종 인용된다. 저자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결국 ‘문학은 처음부터 인간 중심적이었다, 하지만 텍스트의 다양한 결은 인간 중심성이 얼마나 바람직하지 않은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그러니 생태비평에 맞는 생태문학을 찾기보다는 모든 문학작품에 깃든 생태적 측면을 다시 읽어내어 오늘날 필요한 교훈으로 삼자’는 것이다.
여기에 그친다면 이 책의 가치는 문학계에 한정될 것이다. 저자는 세계문학이란 개념을 가져와서 좀 더 실천적인 측면으로 나아간다. 세계문학 내지 연구방법으로서 비교문학의 창시자는 독일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이다. 그는 제자 에커만과의 대화에서 중국 문학을 폄훼하는 제자를 꾸짖으면서 우리 조상들이 아직 숲에서 살던 때에 이미 그들에게는 소설이 존재했다네. … 세계문학의 시대가 임박했고, 그 시대를 앞당기는 일에 모두 힘을 보태야 하네.”라고 말했다. 여기서 세계문학이란 동서고금의 텍스트가 각자 빛을 발하면서 어우러진 무지개와 같은 존재이자 인류의 보편성, 소통 가능성을 가리킨다. 20세기 미국을 필두로 전 세계에서 대학교육이 대중화되고 문학 독자가 늘면서 꽃피운 세계문학 선집은 보통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시작해서 중국의 루쉰, 일본의 나쓰메 소세키에 이른다.
흥미로운 대목은 저자가 세계문학의 주요 텍스트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을 든다는 점이다. (선언문이 문학 텍스트라는 게 의아하겠지만 오늘날 문학비평의 대상으로서 텍스트는 전통적인 시, 소설, 수필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만화, 광고, 논픽션을 넘어 무한정 확장된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로 시작해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로 끝나는 「공산당 선언」은 국경을 넘어 ‘우리’라는 집합명사를 만들어내며 자본가라는 특정 인물군을 넘어 자본주의라는 구조를 제시함으로써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문학의 전범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기후재앙을 자초한 ‘우리’, 대멸종 위험에 처한 비인간존재까지 포함한 ‘우리’, 자본주의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면서 그 구조를 전환해야 하는 ‘우리’…. 이런 각성과 새로운 호명, 세계를 다르게 보는 방식이 전환의 출발점이고 문학은 여기에 도움을 준다.
대홍수와 세계문학
6000명이 넘는 인명피해, 막대한 재산피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된 자연, 엄청난 잔해와 쓰레기, 그 속에서 죽어간 무수한 비인간 생명…. 이런 네팔의 대홍수 앞에서 세계문학을 이야기하는 게 너무 한가롭다는 느낌을 스스로도 지우기 어렵다. 7분 만의 괴물 같은 급류가 할퀴고 간 상처는 희생자들의 가족과 지역사회, 네팔 역사에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히말라야의 다른 계곡에서, 또 다른 지역에서 더 큰 재앙이 일어나 네팔 대홍수가 덮이지 말라는 법도 없다.
문제는 재난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길가메시 서사시와 구약성경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기원전 대홍수는 수천 년간 전승되면서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고 자연파괴의 징벌을 성찰하는 계기로 읽히고 해석되었다. 반면 네팔 대홍수는 높은 언덕으로 도망가면서도 그 스펙터클을 담으려는 현장의 스마트폰 영상으로 기록돼 전 세계에 쇼츠로, 밈으로 수없이 유포되고 있으나 그것이 갖는 문명적 의미를 성찰하는 데 이르지 못할 수도 있다. 네팔 주민들의 고통과 슬픔에 감정이 이입되지 않는다면 수많은 재난영화의 한 장면처럼 남게 될지 모른다. 어쩌면 네팔의 작가가 시나 소설로 승화시킬 수도 있고, 히말라야 신의 분노로 그 지역에서 대대손손 이어지는 설화가 탄생할 수도 있다.
한윤정 녹색연합 공동대표
중요한 건 잘 기억하는 일이다. 단편적인 정보가 아니라 세계관이 담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건 문명사회가 해왔던 기억의 방식이다. 기후재앙 시대에 필요한 스토리텔링! 이것이 책의 결론이다. ‘우리는 냉혹한 교훈과 뼈아픈 결론이 담긴 이야기에 기꺼이 귀 기울일까? 전에는 그랬다. 인간이 문학을 생산하는 이유는 어려운 선택을 피하지 않고 집단적인 행동에 참여하기 위해서이지, 그저 자기만족이나 얻으려는 것이 아니다. … 이제 그 의사소통 도구(문학)가 우리의 집단적 스토리텔링 활동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 이제 전 세계의 이야기꾼들이 단결해야 할 때가 아닐까? (151쪽)한윤정 녹색연합 공동대표 yunjeong_han@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