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극우 대모 르펜 전자발찌 차고 대선 나설 수도 [뉴스] 프랑스 극우 지도자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의원이 7일(현지시간) 파리 근처 불로뉴비양쿠르에 있는 TF1 저녁 뉴스 프로그램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7.7 풀 사진 AP 연합뉴스
어쩌면 내년 프랑스 대선에서 전자발찌를 찬 채 유세하는 극우 대모 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유럽의회 자금을 유용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어 네 번째 대선 출마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던 국민연합(Rassemblement National, RN)의 마린 르펜(58) 의원이 7일(현지시간) 항소법원 선고 결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2년과 전자발찌 착용 가택구금 1년과 벌금 10만 유로(약 1억 7000만원), 피선거권 박탈 45개월을 선고받아 내년 대선 출마 길이 일단 열렸다.
2심 재판부는 피선거권 박탈 기간 가운데 30개월을 유예했고, 남은 15개월은 지난해 3월 31일 1심 선고 이후 이미 기간을 충족했다고 판단해 르펜의 대선 출마 앞에 놓인 걸림돌을 치워버렸다.
한껏 고무된 르펜 의원은 이날 저녁 TF1 방송에 출연해 프랑스의 부흥을 시작하기 위한 캠페인을 오늘 밤부터 시작할 것 이라고 대선 출마의 뜻을 분명히 한 뒤 내 입장은 바뀌지 않을 것 이라고 다짐했다.
르펜 의원은 항소심에서 전자발찌 착용 조건이 붙을 경우 제대로 된 선거 운동을 할 수 없다며 대선 출마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으나 이날 선고 후 입장을 바꿨다. 그녀는 항소심 결과에 불복해 전력을 다해 대법원에 상고할 것이라며 이 경우 항소심 판결 효력이 정지된다 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전자발찌 없이 선거운동을 할 것 이라고 자신했다.
그녀가 출마를 선언한 이날은 2027년 4월 18일과 5월 2일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와 2차(결선) 투표를 10개월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이다. 대법원은 내년 초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 르펜 의원은 선거운동이 가장 중요한 시기로 접어들 때 전자발찌를 착용할 수도 있다고 영국 BBC는 내다봤다.
르펜 의원을 비롯한 전·현직 RN 관계자 20여명은 2004∼2016년 유럽의회 활동을 위해 보좌진을 채용한 것처럼 허위 서류를 꾸며 보조금을 받아낸 뒤 실제로는 당에서 일한 보좌진 급여 지급 등에 쓴 혐의(공금 횡령·사기 공모)로 기소됐다. 지난해 3월 1심 법원은 르펜 의원이 유용한 자금을 47만 유로(8억 원)로 인정하고 그에게 징역 4년(전자팔찌 착용 상태로 2년간 가택 구금 실형)에 벌금 10만 유로, 5년간 피선거권 박탈의 즉시 집행을 선고했다고 연합뉴스는 보도했다.
르펜 의원은 항소심 재판부가 피선거권 박탈 기간을 대폭 축소한 것에 대해 프랑스 국민이 투표의 자유를 되찾아 기쁘다 며 자격 박탈은 심각한 민주주의적 문제다. 최종 결정권은 프랑스 국민에게 있다 고 말했다.
프랑스의 극우 대모 마린 르펜이 7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보조금 횡령 혐의 항소법원 재판부 판결 이후 조르당 바르델라 국민회의(RN) 대표 등과 회의를 마친 뒤 TF1 방송 출연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6.7.7 로이터 연합뉴스
그녀는 이어 조르당 바르델라(30) 당 대표와 함께 곧바로 대선 캠페인을 시작할 것 이라며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바르델라 대표를 총리로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바르델라 대표는 RN 지지자들 사이에서 르펜 의원보다 인기가 많다. 그가 대선에 출마할 경우 르펜 의원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낸다는 여론조사가 그동안 꾸준히 발표돼 왔다. 이에 사법 리스크가 있는 르펜 의원보다 바르델라 대표가 나서는 게 더 안전하다는 당내 의견도 있었다. 아무튼 두 사람은 8일 북서부 사르트 지역의 한 시장에 함께 대중 앞에 첫 공개 행보를 보일 예정이다.
르펜 의원은 개인의 정치적 야망 때문에 대선 후보로 나서는 것이냐는 진행자 질문엔 아니다 라며 우리는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로, 나는 대통령 역할을 준비해 왔고 바르델라는 총리 역할을 준비해 왔다. 이 정치적 조합이 프랑스를 변화시키고 국민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고 강조했다.
르펜 의원의 대선 출마는 이번이 네 번째다. 유럽의회 의원 등을 지내다 2011년 부친 장마리 르펜(지난해 1월 7일 별세)의 뒤를 이어 당 대표에 오른 뒤 이듬해부터 대권 도전에 나섰다. 2012년 첫 대선 출마 때 그녀는 득표율 17.9%로 프랑수아 올랑드, 니콜라 사르코지에 이어 3위를 차지하며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좌절하지 않은 르펜 의원은 이후 본격적으로 당의 이미지를 쇄신하며 지지기반을 넓혔고, 이런 노력으로 2017년 대선에선 결선까지 올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대결을 펼쳤다. 이때 32%포인트 차라는 엄청난 격차로 패배한 르펜 의원은 2022년 마크롱과의 재대결 격차를 17.1%p로 절반 가까이 줄이는 데 성공했다.
RN은 현재 정당 지지율에서 독보적 1위를 달리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집권 가능성이 높다. 르펜 의원은 대선 주자들 간 1차 대결 시나리오에서 1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다만 상위 2명이 진출하는 결선에서는 앞선 두 차례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다른 정당 지지자들이 반(反)극우 기치 아래 결집할 가능성이 있어 최종 결과를 낙관하기 어렵다.
BBC 보도에 따르면, 정치적 반대자들은 르펜이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도 대선 출마의 길을 터준 법원 결정을 비판했다. 우파 공화당 사무총장 오스만 나스루는 AFP 통신에 그녀의 출마는 프랑스 국민의 정치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또 다른 후퇴 라고 단언했다. 전 총리 가브리엘 아탈은 범죄 기록도 있고, 공공 자금 횡령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인물이 출마할 수 있도록 한 결정에는 도덕적 문제가 있다 고 지적했다.
르펜의 주요 대선 경쟁자 중 한 명으로 예상되는 전 총리 에두아르 필리페는 출마 결정은 르펜에게 달려 있지만, 그녀는 두 차례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을 프랑스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고 말했다.
만약 대법원 항소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지를 묻자 르펜은 두고 보자, 그리고 프랑스가 판사가 될 것이다. 오늘 저녁의 좋은 소식은 그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기 때문 이라고 답했다. 그녀는 지난해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 뒤 누구나 오해할 수 있다 고 말한 뒤 대법원이 잘못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고 덧붙였다.
2021년 6월 1일(현지시간) 룩셈부르크에 있는 유럽공공검찰청(EPPO) 본부의 로고. 2021.6.1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편 극우 정당의 유럽연합 자금 유용 의혹은 프랑스를 넘어 유럽 주요 국가로 번지고 있다. AFP 통신에 따르면, 유럽공공검찰청(EPPO)은 RN과 유럽의회 내 극우 동맹의 재정 비리 의혹과 관련해 지난달 30일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의 극우 정당과 관련된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유럽공공검찰청은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유럽의회 내 한 전직 정치단체의 EU 기금 사용에 대한 수사의 일환으로 프랑스 및 기타 유럽 국가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고 밝혔다.
유럽의회 내 극우 동맹의 재정 비리 의혹은 지난해 7월 프랑스 일간 르몽드가 독일·오스트리아 매체들과 함께 유럽의회 재무국의 내부 보고서를 폭로하며 외부에 알려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RN은 같은 기간 극우 성향의 교섭단체 정체성과 민주주의 (ID) 동맹들과 함께 430만 유로(60억원)를 부당하게 지출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정체성과 민주주의 엔 RN 말고도 이탈리아의 동맹(Lega), 독일의 독일대안당(AfD) 등이 포함됐다.
이 자금의 상당액은 RN의 실질적 리더인 르펜 의원의 지인들과 관련된 회사들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르펜 의원의 전 보좌관이 운영에 깊이 관여한 홍보 에이전시는 형식적인 입찰 절차를 거쳐 ID로부터 170만 유로(23억원)를 받아 간 것으로 재무국은 파악했다. 또 이 보좌관의 부인이 운영하는 인쇄업체는 140만 유로(19억원) 이상을 받아 간 뒤 일감은 저비용으로 하청업체에 위탁하고 중간에서 26만 유로(3억 6000만 원)를 챙긴 것으로 추정된다.
정체성과 민주주의 는 2024년 유럽의회 선거 이후 주요 정당이 유럽을 위한 애국자 라는 새 그룹으로 옮겨가면서 사실상 해체됐다.임병선 에디터 byeongseon1610@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