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철의 마을 코비가 들려주는 지방소멸 대책 [환경] 런던 사람 붙잡고 코비(Corby) 아느냐 물으면 열에 아홉은 고개를 갸웃한다. 잉글랜드 중부 노샘프턴셔의 이 작은 도시는 지도에서도 곧잘 지워지고, 관광안내서에도 좀처럼 이름을 올리지 못한다. 그런데 이 이름 없는 마을이야말로 영국 산업의 흥망과 노동자의 자존심, 그리고 재생의 몸부림을 압축해 보여주는 표본이다. 심지어 지금 한국 곳곳의 조선소 도시, 탄광마을에 던질 질문까지 품고 있다.
코비 중심가(Discover Corby | A Visitor s Introduction to Corby)
숲마을에서 유럽 최대 제철소로
코비는 원래 로킹엄 숲(Rockingham Forest)에 파묻힌 조그만 촌락이었다. 로마시대부터 이 땅 아래 철광석이 묻혀 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별다른 일 없이 수백 년을 흘려보냈다. 1931년의 인구는 고작 1596명. 이름 그대로 있으나마나 한 마을이었다. 그런데 2021년 인구는 6만 2341명으로 늘어났다.
반전은 스코틀랜드에서 왔다. 1879년 새뮤얼 로이드(Samuel Lloyd, 1827~1918)가 로이드 철광회사를 세우고, 1903년 글래스고의 스튜어트 앤 멘지스 사와 합쳐 스튜어트 앤 로이드 사가 되면서 코비는 삽시간에 유럽 최대 규모의 제철·제강 단지로 탈바꿈했다. 1933년에는 320만 파운드를 들여 대규모 제철소를 새로 지었고, 이듬해부터 스코틀랜드 노동자들이 떼로 몰려들었다. 어찌나 스코틀랜드 사람이 많았던지 코비는 작은 스코틀랜드 라는 별명을 얻었다.
레인저스와 셀틱 팬클럽이 나란히 있고, 로버트 번스(Robert Burns, 1759~1796) 문학회가 열리고, 스코틀랜드계 교회가 줄줄이 들어섰으며, 지금도 매년 하일랜드 게임이 열린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코비 노동자들이 만든 강관이 영불해협 바닥에 깔려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연합군에게 연료를 실어 옮겼다. 이른바 플루토 작전 (해저송유관)이다. 시골마을 하나가 2차세계대전의 숨은 조연이 된 셈이다. 1950년에는 정부가 코비를 신도시 로 지정하고 건축가 윌리엄 홀포드(William Holford, 1907~1975)가 도시계획을 새로 짰다.
알렉산더 네이스미스 작 로버트 존스 초상화, 1787년(위키피디아)
철이 식던 날, 마을도 식었다
호황은 영원하지 않았다. 1979년, 국유화된 영국철강공사가 코비 제철소 폐쇄를 발표했다. 최대 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소식에 노동자들은 코비 제강업 사수 운동(Retention Of Steelmaking In Corby: ROSAC) 을 조직해 웨스트민스터까지 행진했지만 흐름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결국 6000명 넘게 해고됐고, 실업률은 한때 30%에 육박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철을 뽑아내던 손들이 하루아침에 갈 곳을 잃은 것이다.
그래도 코비는 주저앉지 않았다. 1990년대 들어 새로운 산업단지를 유치했고, 1994년 발전소가, 2001년에는 로킹엄 자동차경주장이 들어섰다. 지금은 스케이트보드와 BMX(묘기 자전거)을 즐기는 청년들의 성지 아드레날린 앨리 (Adrenaline Alley)가 유명하고, 도심에는 마이클 그레바트(Michael Grevatte, 1943~ )가 만든 제철노동자 동상이 코비 큐브(시청 겸 문화공간) 앞을 지키고 있다. 철은 사라졌어도, 철을 다루던 사람들의 자부심은 동상으로 남았다.
마이클 그레바트가 만든 제철노동자 동상(Corby Steelworker | Art UK)
코비가 길러낸 사람들
크리스토퍼 해튼(Christopher Hatton, 1540~1591)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총애를 받아 대법관 자리까지 오른 인물로, 무도회에서 춤을 어찌나 잘 췄던지 춤추는 대법관 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의 근거지였던 로킹엄 성이 바로 코비 인근에 있다. 콜린 덱스터(Colin Dexter, 1930~2017)는 1959년부터 코비 그래머스쿨에서 고전학을 가르치다 청력을 잃고 교단을 떠난 뒤, 명탐정 모스 시리즈를 써서 전 세계 추리소설 팬을 사로잡았다.
빌 드러먼드(Bill Drummond, 1953~ )는 열한 살에 코비로 이사와 자랐고, 훗날 밴드 케이엘에프(KLF)를 결성해 1994년 100만 파운드 지폐를 실제로 불태우는 기행으로 이름을 남겼다. 제임스 애시워스(James Ashworth, 1989~2012)는 코비 출신 군인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뒤 영국 최고 무공훈장인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추서 받았다. 유리예술가 알렉산더 벨레셴코(Alexander Beleschenko, 1951~ )는 우크라이나 이민자 부모 아래 코비에서 태어나 지금도 영국 곳곳의 건축 유리작품을 만들고 있다.
배우 브렌던 코일(Brendan Coyle, 1963~ )은 다운튼 애비 의 존 베이츠 역으로 유명한 배우로, 북아일랜드 티론 출신 아버지와 스코틀랜드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코비에서 태어났다. 아일랜드와 영국 이중국적을 갖고 있다. 루이스 해밀턴(Lewis Hamilton, 1985~ )은 코비에서 자랐고, 아버지 손에 이끌려 여섯 살 무렵부터 카트 경주를 시작했다. 당시 코비 인근 트랙에서 카트를 타던 소년이 훗날 포뮬러원(F1) 사상 최다 우승 기록급의 일곱 차례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코비에 있는 실내 익스트림 스포츠 시설인 아드레날린 앨리에서 자전거 공중회전을 연습하던 샬럿 워딩턴(Charlotte Worthington, 1996~ )은 2020년 도쿄올림픽 BMX 프리스타일에서 여성 최초로 360도 백플립을 성공시키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요리사로 일하다 스물이 다 돼서 자전거를 처음 잡은 사람이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다.
1575년경이 크리스토퍼 해튼(위키피디아)
한국에 던지는 질문
코비의 궤적은 낯설지 않다. 외지의 자본과 노동력이 몰려와 마을을 일으키고, 국가 산업정책 한 번에 그 마을이 무너지고, 남은 사람들이 다시 무언가를 길러내는 이야기는 군산과 거제의 조선소, 태백과 정선의 탄광촌에서도 똑같이 반복됐다. 다른 점이 있다면, 코비는 제철소가 사라진 자리에 유물이 아니라 사람이야기를 세웠다는 점이다. 동상 하나, 헤리티지 센터 하나로 노동의 기억을 박제하는 대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와 소설가와 록스타를 배출하며 마을의 이야기를 계속 써 내려갔다.
지역소멸을 걱정하는 한국에서 흔히 나오는 처방은 산업단지를 하나 더 유치하거나 관광지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코비의 사례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산업이 떠난 뒤에도 그 땅에 남을 이야기 와 정체성 을 누가, 어떻게 만들어 가는가. 하일랜드 게임이든 BMX 경기장이든, 결국 사람이 자기 마을을 자랑스러워할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핵심이다. 지방을 살리는 일은 결국 공장 굴뚝을 다시 세우는 일이 아니라,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다시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게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코비에 있는 로킹엄 성의 정문(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