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로그인   회원가입   초대장  
모니터링&뉴스레터   페투미X사회혁신
페투미X사회혁신   서비스 소개   아카이브   이야기   이용 안내
페이지투미는 사회혁신분야의 새로운 정보를 일주일에 3번, 메일로 발송해드립니다.

link 세부 정보

정보 바로가기 : 에이브러햄 링컨, 세계사를 바꾼 통나무집 촌뜨기

에이브러햄 링컨, 세계사를 바꾼 통나무집 촌뜨기
[사람들]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고 가장 자주 오해받는 인물이다. 통나무집에서 태어나 정규교육이라곤 일 년 남짓 받은 게 전부였다는 그가 어떻게 나라 전체를 갈라놓은 전쟁을 끝내고 노예제를 무너뜨린 대통령이 됐는지 살펴보면, 역사라는 게 얼마나 얄궂은 장난을 좋아하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1863년의 링컨(위키피디아) 촌구석 변호사, 워싱턴으로 올라가다 링컨은 켄터키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인디애나와 일리노이를 전전하며 자랐다. 책이라곤 성경과 몇 권의 법률서가 전부였는데, 벽난로 불빛에 의지해 밤새 읽었다는 일화는 후대에 살이 붙었을지언정 그의 독학 근성만큼은 사실이다. 스스로도 내 교육은 부족함, 그 자체였다 고 농담 삼아 말하곤 했으니, 자기비하 개그의 원조라 해도 손색 없다. 키가 190센티미터 가까운 장신에 팔다리는 유난히 길고 얼굴은 못생겼다는 소리를 곧잘 들었는데, 정작 본인은 그걸 무기로 삼았다. 상대 정치인이 그를 두 얼굴을 가진 인간 이라 비난하자 내가 얼굴이 두 개라면 왜 하필 이 얼굴을 들고 다니겠느냐 고 받아쳤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회자된다. 유머는 그가 평생 짊어진 우울증을 견디는 방식이기도 했다.   1847년경의 링컨(위키피디아) 나라가 두 쪽 나던 날 1860년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남부 여러 주가 연방 탈퇴를 선언했다. 노예제를 유지하려는 세력이 아예 나라를 쪼개려 든 것이다. 제퍼슨 데이비스(Jefferson Davis, 1808~1889)를 수반으로 한 남부연합이 들어섰고, 1861년 남북전쟁이 터졌다. 여기서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남부의 반란은 명분 좋은 주권 타령으로 포장됐지만, 본질은 인간을 재산으로 취급하겠다는 기득권의 발버둥이었다. 링컨은 처음엔 노예해방보다 연방 유지를 앞세웠으나, 전쟁이 길어지며 노예해방이야말로 연방을 지키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는다. 1863년 1월 1일 노예해방령을 선포했고, 이는 단순한 인도주의 선언이 아니라 전쟁의 성격 자체를 바꾼 정치적 승부수였다.   노예제 문제를 두고 스티븐 더글러스와 토론을 벌였던 1858년의 링컨(위키피디아) 게티즈버그, 272개의 단어 1863년 11월, 격전지 게티즈버그에서 그는 채 3분도 안 되는 연설을 남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 라는 구절로 요약되는 이 연설은 짧아서 오히려 강했다. 정작 그날 두 시간짜리 본 연설을 했던 유명 연설가 에드워드 에버렛(Edward Everett, 1794~1865)은 지금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곁다리로 몇 마디 보탠 링컨만 역사에 남았다. 말이 길다고 힘이 세지는 게 아니라는 증거를 여기서 확인한다. . 1863년 11월 19일 정오 무렵 촬영된, 게티즈버그에서의 링컨을 담은 단 두 장의 확인된 사진 중 하나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중앙에 앉아 있는 링컨은 이 사진이 찍히고 약 3시간 뒤 그 유명한 연설을 했다. 링컨의 오른쪽에는 그의 경호원인 워드 힐 라몬이 있다. (위키피디아) 총알 한 발, 그리고 남은 숙제 전쟁은 1865년 4월 사실상 끝났지만, 링컨은 승리의 기쁨을 며칠도 누리지 못했다. 남부 배우 존 윌크스 부스(John Wilkes Booth, 1838~1865)가 쏜 총에 맞아 이튿날 세상을 떠난다. 노예제를 완전히 폐지하는 수정헌법 13조가 의회를 통과한 지 겨우 석 달 만이었다. 그는 자신이 지켜낸 나라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떠났다.   1865년 4월 14일 포드 극장 대통령 전용석에서 발생한 링컨 암살 사건을 묘사한 삽화. 왼쪽부터 암살범 존 윌크스 부스, 에이브러햄 링컨, 메리 토드 링컨, 클라라 해리스, 헨리 래스본(위키피디아) 한국에서 다시 읽는 링컨 여기서 한국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링컨이 맞섰던 것은 우리 몫을 지키겠다 며 총을 든 세력, 즉 헌정질서를 부정하고 나라를 쪼개려 한 반란세력이었다. 2024년 12월 3일 밤, 이 나라에서도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시도가 있었다. 무력으로 국회를 봉쇄하려던 윤석열의 논리 역시 질서 니 안보 니 하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벗겨보면 결국 자기 권력을 영구히 지키려는 몸부림이었다는 점에서 남부연합의 명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링컨이 남긴 교훈은 두 가지다. 첫째, 헌정을 파괴하려는 세력과는 타협이 아니라 원칙으로 맞서야 한다는 것. 둘째, 진짜 통합은 잘못을 덮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분명히 하고 그 책임을 물은 뒤에야 온다는 것이다. 그는 종전 후에도 남부를 무자비하게 응징하기보다 누구에게도 원한 없이 재건하자고 말했지만, 노예제라는 근본 범죄 자체를 눈감아준 적은 없다. 처벌 없는 화해는 화해가 아니라 봉합에 불과하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 한국사회가 마주한 질문도 다르지 않다. 윤석열을 두목으로 한 내란을 일으킨 자들을 어떻게 심판하고, 그 이후 사회를 어떻게 다시 묶어낼 것인가. 링컨의 답은 단순했다. 잘못은 잘못이라 역사에 기록하고, 가해자를 강력하게 처벌하고 그 위에서만 새 나라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1920년 다니엘 체스터 프렌치 작품(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최근 3주간 링크를 확인한 사용자 수

검색 키워드


주소 : (12096) 경기도 남양주시 순화궁로 418 현대그리너리캠퍼스 B-02-19호
전화: +82-70-8692-0392
Email: help@treeple.net

© 2016~2026. TreepleN Co.,Ltd. All Right Reserved. / System Updated

회사소개 / 서비스소개 / 문의하기 /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