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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유시민의 ‘필연’과 ‘정화’가 위태로운 이유

유시민의 ‘필연’과 ‘정화’가 위태로운 이유
[칼럼]
유시민의 설화가 화제다. 최근 작가 유시민이 이재명 정부를 향해 ‘필연적 실패’와 ‘썩은 내’ 운운하며 독설을 퍼부었다. 정치권에 파장이 일었고, 이번엔 유시민에 대한 비난이 난무했다. 처참한 몰락” 따위가 그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유시민의 설화를 둘러싼 논쟁은 대전환의 징표이다. 유시민이 강조해 마지않는 ‘필연’과 ‘정화’는 근대문명의 목적론적 세계관을 대표하는 목록어이기 때문이다. 유시민의 필연 과 정화 가 위험하다 지난 7월 15일 유시민은 유튜브 방송에서 옳다 그르다를 떠나 (이재명 정부가) 필연적 실패의 길로 가고 있다 고 일갈했다. 며칠 뒤인 21일에는 절대 권력은 100% 부패한다 며 모든 어물전은 다 썩는다 고 했고, 썩은 내가 나기 전에 빨리 그것을 정화해야 한다 고 덧붙였다. ‘필연적 실패’에 썩은 내”라니, 파장은 더욱 커졌다. 나에겐 특히 두 단어가 귀에 꽂혔다. 필연 과 정화 가 그것이다. 그 말은 언뜻 날카로운 경고처럼 들리지만, 실은 자신의 판단을 절대적 진리로 전제하고 타자를 거짓이나 무지한 존재로 간주하는 배제의 문법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진리의 언어’가 아니라 ‘독선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인 이재명 전 대표가 유시민 작가, 도올 김용옥 선생과 새 정부의 과제 등을 주제로 대담한 영상이 15일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됐다. 2025.4.15 [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유튜브 화면 캡처, 이재명 정부의 실패는 필연적인가? 그렇다.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 메가 프로젝트도, 부동산 정책도, 기본사회를 통한 불평등 해소도 실패의 가능성이 커 보인다. 세계경제의 불확실성과 지정학적 불안정성, 기후격변 등 생태환경의 예측불가능성 때문이다. 더욱 위태로워 보이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이재명 정부의 확신과 강한 추진력 때문이다. 최근의 롤러코스터 주가에서 목격하듯이 강한 추진력은 강한 반동을 낳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세상일이 그렇듯이, 일부는 성공할 수도 있으나 전부를 성공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이재명 정부는 썩었는가? 그렇다. 매우 썩은 것 같다. 그러나, 나의 촉수는 이재명 정부보다 민주당을 향한다. 내가 경험하는 전북의 민주당은 심하게 썩은 내가 난다. 지방선거 과정을 보면서 더욱 그러한 생각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전북에서 민주당은 절대권력이다. 나는 민주당의 경선과정에서 의미있는 노선투쟁이나 정책 경쟁을 관찰하지 못했다. 오로지 경선 승리를 위한 이해관계의 이합집산만 있을 뿐이었다. 물론 내가 발견하지 못한 훌륭한 당원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유시민과 그의 동지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 정부는 실패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패의 필연성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유시민과 그의 동지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 정부든 민주당이든 절대권력은 썩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썩어가는 부패의 치명적인 현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   6·3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이어진 16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대한체육회, 방송 라이브 취재진 등의 진입과 관련해 진입 불가한 상황을 알리고 있다. 2026.6.16 공동취재단 연합뉴스 두 신념의 눈빛: 정치적 신념의 종교화, 종교적 신념의 정치화 유시민의 발언 며칠 후 여권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이 라디오에서 흥미로운 말을 보탰다. 요새 눈빛이 왜 저럴까 하는 사람 둘이 있다 며 유시민 작가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나란히 지목한 것이다. 장동혁을 두고는 동공이 이상하다, 하여간 정상이 아니다 라고 했고, 유시민을 두고는 저런 말 할 때 이 눈을 보면 원래 그런 친구가 아니었다 고 했다. 나는 유인태의 직관이 정확하다고 본다. 물론 두 사람의 위치는 정반대다. 한쪽은 야당의 지도자이고, 한쪽은 진보 진영의 논객이다. 그런데 눈빛이 닮았다. 왜 닮았을까. 나는 장동혁의 심리와 유시민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그들의 표정을 읽을 수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엄청나게 화가 나 있고, 눈빛이 보통사람들과 다르다는 점이다. 장동혁은 이재명 정부를 마치 적(敵)그리스도를 대하듯 질타한다. 그는 여러 차례 기독교인으로서의 자신의 신앙적 소신을 밝힌 바 있다. 그는 2025년 3월 한 집회에서 ”이번 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의 기독교적 신념을 정치적으로 실현코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에게 장동혁은 야당 대표가 아니라, 마치 십자군의 한국 총사령관 같다. 이렇게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종교적 신념의 정치화’. 유시민은 정반대 방향에서 같은 자리에 도착한다. 유시민은 이재명 정부를 마치 거짓 선지자를 대하듯 질타한다. 그는 자신의 오랜 정치적 신념을 신앙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민주주의일 수도 있고, 평등일 수도 있다. 더욱 심오한 이념적 지향일 수도 있다. 나에게 그는 이른바 민주진보 진영의 총사령관처럼 보인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치적 신념의 종교화’. 결국 두 사람 모두 신념을 절대화한다. 필연적 실패 라는 말이 위험한 것은 실패를 예상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필연으로 못 박기 때문이다. ”썩은 내의 정화 가 위험한 것은 정화의 필요성을 주장해서가 아니라, 깨끗함을 절대선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정치적 독선은 흔히 정치적 지지자의 정동을 격발해 그와 그의 진영을 정치적 승리자로 만들어준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자신마저 파괴하는 역사적 후과를 목격하곤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반도체 수요에 맞춰서 현재 진행 중인 생산 거점들을 빠르게 완성해야 한다 며 서남권에 대규모 신규 투자를 통해 압도적인 공급역량을 미리 확보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사진은 이날 경기도 용인시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공사현장의 모습. 2026.6.29, 연합뉴스 우리는 결코 순수한 적이 없다 ‘필연’과 ‘정화’라는 독선과 배제의 언어는 정치적 위험신호만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관이다. 그리고, 그것은 철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필연’과 ‘정화’가 지극히 목적론적 언어이기 때문이다. 근대정치의 최전선, 아니 최후의 전선에서 작동되는 논리라는 말이다. 한때 우리는 마르크스의 ‘필연적 법칙’을 쫓았고, 베버의 ‘이념형’을 이상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전 지구적 기후재난의 시대, 21세기 철학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인류가 반드시 밟게 될 필연의 법칙도 없고, 도달해야 할 순수의 세계도 없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브뤼노 라투르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인간 및 비인간 행위자들을 포함한) 우리들은 서로 얽혀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동의 세계를 만들어왔다. 그것이 어떤 때는 사회주의 세계가 되기도 하고, 또한 어떤 때는 자유주의 세계가 되기도 했다. 라투르에 따르면, 근대문명은 자연과 사회를, 순수와 오염을, 사실과 가치를 깨끗이 갈라 정화(purification) 하려 했다. 하지만 실제 세계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기후변화와 원자력발전소와 유기농업에서 우리가 목격하듯이 인간과 비인간, 기술과 자연, 정치와 사물이 뒤섞인 하이브리드(혼종/잡종)가 끝없이 증식했다. 정화하려 할수록 잡종은 늘어났다. 이것이 라투르의 통찰이다. 그리하여, 그의 결론은 이것이다.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결코 순수한 적이 없다.” 미국의 신-인문학자 도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과 ‘반려종 선언’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우리는 기계와 유기체가 뒤섞인 사이보그이고, 다른 종들과 오염되고 감염되며 얽혀 살아온 반려종(companion species)이다. 순수한 종, 순수한 진영, 순수한 노선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다. 해러웨이에게 문화는 항상 ’자연문화‘이고, 자연 역시 항상 ’문화자연‘이다. 정화 라는 말이 위험한 것은 바로 이 복잡성과 다원성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썩은 부분을 제거하면 순수 그 자체가 남는다고 상상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과 세계도 애초에 ‘순수’였던 적이 없다. 정화의 칼은 언제나 누가 썩었는가 를 판정하는 정치권력이나, 이단을 색출하는 종교권력으로 변신했을 뿐이다. ※사실은 녹색생태운동과 생명평화운동이야말로 ‘정화’와 ‘순수’에 진심이었다. 순수한 자연을 이상화했고, 녹색 유토피아를 절대화했다. 그리고, 이는 운동적 정체(停滯)의 한 원인이 되었다. 자연 없는 생태”를 주장한 『어두운 생태학』의 저자(티머시 모턴)는 이를 ‘아름다운 영혼’ 신드롬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잡종의 발명 그렇다. 잡종도 종이다. 저명한 동물생태학자이자 인기있는 유튜버인 최재천은 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 는 영상을 만든 적이 있다. 자연이 사랑하는 것은 순종이 아니라 잡종이다. 순수를 고집하는 종은 환경이 바뀌면 먼저 사라지고, 이것저것 뒤섞인 잡종은 살아남아 새로운 국면을 연다. 진보주의의 필연적 법칙 도, 극단적 정교일치의 복음주의도 결국은 ‘하나의 종’일 뿐이다. 저마다 자기 종만이 순수하고 정통이라 믿지만, 넓게 보면 다 특정 시대가 낳은 하나의 종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21세기가 그 어느 종에게도 순종의 안락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우리는 분명 대혼돈과 대전환의 한복판에 서 있다. 기후, 생태, 기술, 지정학이 한꺼번에 요동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거기에 걸맞은 ‘잡종적 비전’과 ‘잡종적 가치’와 ‘잡종적 전략’이 요구된다는 말이다. 만약 대한민국이 대전환 선도국 이 되기를 고대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낡은 순종’을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잡종’을 발명해야 한다. 작가 유시민의 ‘주장’ 자체가 위험한 것은 아니다. 잘못된 일도 아니다. 문제는 ‘필연’과 ‘정화’라는 주장의 내적 논리다. 그것이 잡종을 거부하고, 우연성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와 그의 동지들의 무의식적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지개처럼 영원히 다다르지 못할 ‘진보의 가치’를 지키려 하면서, 그와 그의 동지들은 ‘보수(保守)’가 되는 역설에 빠지게 된 것이다. 부동산 문제도, 경제성장도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주요섭, ‘신-성장주의의 폭주, 각비(覺非)의 생명운동’ 참조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348). 그냥 해볼 뿐이다. 정확히 말하면, 처음부터 정답은 없었다. 우연하게도 한반도의 생민(生民)은 자본주의-민주주의 체제를 선택(당)했고, 혼신을 다했으며 나름대로 최선의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21세기의 전반부의 전반부가 지나고 있는 오늘, 우리는 ‘문명의 전환’, 혹은 ‘축의 전환’이 운위되는 인류사적 대전환기를 살고 있고, 새로운 공동세계를 만들어가야 할 지점에 서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기업 투자계획 발표 후 손을 잡고 있다. 2026.6.29. 연합뉴스 다시, 이재명 정부의 정신은 무엇인가? 장동혁의 창끝도, 유시민의 말끝도 결국 이재명 정부를 향한다. 그가 대통령이고, 권력을 쥐고 있고, 미래의 키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선 이재명 정부에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 정부는 무엇을 지향하는가? 핵심가치는 무엇인가?(주요섭, ’이재명 신문명시대의 정신 은 무엇인가?‘ 참조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695 참조.)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는 하나의 잡종이다. 진보와 중도, 이념과 실리, 확장과 결집을 뒤섞는다. 나는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를 지지한다. 그러나 실용주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용주의‘가 ’생존주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인간도, 사회도 생존을 목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기본소득‘을 배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꿈이 있어야 한다. 공동의 의미를 생산해야 한다.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의 잡종적 실용주의는 대체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가? 어떤 세계를 꿈꾸며, 어떤 서사를 제공할 수 있는가? 이재명 정부가 답해야 할 것은 필연 도 정화 도 아니다. 그 잡종적 실용주의가 끝내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 이름을 제시하는 일이다. 당장이 아니어도 좋다. 하나가 아니어도 좋다. 나는 물론 그 이름이 생명문명 이라고 믿는다. ’생존‘이 아니라 ’생명‘, 관리가 아니라 공동세계, 순수의 회복이 아니라 잡종의 발명, 그리고 ’영성‘. 실용주의가 새로운 서사에 접속하는 순간, 필연적 실패 의 예언은 빗나갈 수도 있다. 주요섭 (사)밝은마을 생명사상연구소대표 유시민이 말하고자 했던 것도 필연적 실패 가 아니라 이런 질문이었을 것이다. 장동혁이 겨누려 했던 것이 적그리스도 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였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이재명 정부가 답할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우리 스스로 답해야 할 일이다. 한국사회가 제각각으로 대답하고 토론해야 할 일이다. 그것은 도달해야 할 목표만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다시 묻는다. 지금 여기 당신을 설레게 하는 꿈은 무엇입니까?주요섭의 살림정치 JYS@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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