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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99세에도 지휘봉 잡은 헤르베르트 블롬스테트

99세에도 지휘봉 잡은 헤르베르트 블롬스테트
[사람들]
2012년 리허설에 열중하는 헤르베르트 블롬스테트. 그는 인터뷰를 통해 100세 생일 날까지 지휘봉을 잡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게티 이미지  99세 생일을 두 달 앞둔 시점까지 지휘봉을 잡아 세계 주요 포디엄을 돌아 많은 지휘자들에게 살아있는 교범이었던 헤르베르트 블롬스테트가 4일(현지시간) 스웨덴 예테보리 자택에서 세상과 작별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전했다. 고인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인연으로 가장 잘 알려진 스웨덴계 미국인 지휘자였다; 비록 영국 오케스트라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지는 못했지만, 그는 종종 런던 콘서트홀에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또는 그가 연관된 다른 오케스트라들을 지휘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텔레그래프의 한 평론가는 2017년 5월, 그가 페스티벌 홀에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공연에 대해  그의 나이의 절반 정도 되는 지휘자 중 베토벤과 브람스 프로그램에 이렇게 신선함과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고 평했다. 블롬스테트는 멘델스존, 슈베르트, 브루크너, 슈트라우스 등 19세기 독일과 오스트리아 작곡가들의 음악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지만, 힌데미트의 영향도 어느 정도 받았다. 그에게 베토벤의 위대한 합창 교향곡 같은 작품들은 항상 진행 중인 작품이었다. 고인은 2017년 그라모폰 잡지 인터뷰를 통해 그 기억은 결코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으며, 내가 또 다른 곡에 집중적으로 작업할 때만 사라진다 면서 잠들려고 할 때 그 소리가 있는데, 음악가가 음정이나 프레이징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라고 되물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장으로서는 드물게, 블롬스테트는 독실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신자로 술, 담배, 커피, 차, 고기를 피했다. 그는 또 재림교의 안식일인 토요일에는 연습을 거부했으나 공연에는 나섰다. 리허설은 강도 높고 지치는 작업이지만 콘서트는 축하이자 영적 소통이다. 그는 가장 가까운 재림교회를 찾아 설교할 수 있는 특권을 자주 누렸다. 때때로 그의 엄격한 종교 원칙과 음악 제작에서처럼 타협을 거부하는 태도는 특히 초기 시절에 문제를 일으켰다. 그는  하지만 직장을 잃어도, 항상 더 나은 무언가가 찾아왔다 고 말했다.     헤르베르트 손슨 블롬스테트는 1927년 7월 11일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에서 태어났으며, 스웨덴 출신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선교사이자 목사였던 아돌프 블롬스테트와 그의 부인 알리다(본명 토르손)의 세 자녀 중 둘째였다. 그는 심한 류머티즘을 앓았던 훌륭한 피아니스트였다. 그가 두 살 때 가족과 함께 예테보리로 돌아왔고, 곧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공부하며 피아니스트 어머니와 첼리스트인 형제와 함께 베토벤 피아노 트리오를 연주했다. 아홉 살 때 그는 교회에 가서 새벽까지 오르간을 연주했다. 그의 근본주의자 아버지는 스웨덴 및 핀란드 예수재림교회 회의장이었으며, 어린 헤르베르트는 어린 시절 일부를 웁살라에서 보냈다. 그는 신학을 공부하고 의학을 공부하는 것을 고려했으나 결국 음악을 선택, 스톡홀름 왕립음악원과 잘츠부르크의 이고르 마르케비치에게서 지휘를 배웠으며, 그곳에서 알렉산더 깁슨, 다니엘 바렌보임, 볼프강 자발리쉬 등과 같은 반에 있었다.   1954년 프로 데뷔를 하던 시절의 블롬스테트. 소렌 호프만/SVT/TT 이후 뉴욕 줄리어드 스쿨에서 장 모렐과 함께 일하며, 카네기 홀 백스테이지에 몰래 들어가 세계 최고의 지휘자들이 오케스트라 리허설을 하는 것을 들었다. 1949년 그는 맨해튼에 있는 레너드 번스타인의 아파트 문을 두드렸고, 지휘자에게 탠글우드 학생으로 받아들여졌으며, 1953년에는 쿠세비츠키 지휘상을 수상했다. 그는 다음 해 스톡홀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프로 데뷔를 했고, 곧 스웨덴 노르셰핑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으로 임명되어 7년간 연마했다.     한편, 그는 다름슈타트에서 존 케이지에게 현대 음악을 배웠으며, 나중에 처음으로 버섯을 찾아 돌아다니는 작곡가를 만난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케이지는 이것이 자신의 음악을 은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내게 말했지. 이 버섯들을 봐. 직선이나 삼각형, 원형으로 자라지도 않고, 온도와 습도가 적절하면 이들이 나타난다. 내가 원하는 건 이것이다. 최종 목표는 마음을 자유롭게 하고 모든 규칙을 없애는 것 이라고 말하더라. 블롬스테트는 1962년 코펜하겐의 덴마크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합류했으며, 1975년에는 뛰어난 게스트 공연 후 옛 동독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를 그의 포트폴리오에 추가했다. 그는 전체 작품을 뒤집는 놀라운 경험 중 하나였다 고 돌아보며, 오케스트라가 철의 장막 뒤에 위치해 있어 몇 년간 거의 변하지 않은 정성스러운 음악적 사운드 에 기여했다고 덧붙였다.   2015년 빈 필하모닉과의 리허설 - 게티 이미지 그는 한 인터뷰에서 오케스트라를 처음 들었던 경험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전쟁 직전, 11살이나 12살 때, 라디오에서 카를 뵘이 지휘하는 슈타츠카펠레가 레거의 모차르트 변주곡을 연주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경험이 저에게 엄청난 인상을 남겼다. 그 소리는 내가 들어본 적 없는 것이었다. 드레스덴에 머무는 동안 블롬스테트는 베토벤의 첫 교향곡 연주를 녹음했으며, 그와 점점 더 밀접하게 연결되게 됐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일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부는 항상 나를 완전히 내버려 뒀다. 우리가 가끔 겪었던 유일한 문제는 서구 화폐를 충분히 구하지 못해 악보를 임대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오케스트라가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오페라 오케스트라 역할로 되돌아가자 그는 떠났다. 1985년 그는 에도 드 와르트의 뒤를 이어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이 되어 기술적 탁월함뿐 아니라 풍부한 음색의 생동감 있는 앙상블로 단련했다. 그는 2년 후 오케스트라를 런던으로 데려왔고, 1995년 방문 후 데일리 텔레그래프 평론가는 그의 스타일은 활기차면서도 명료하고 신중하게 악보를 형성한다 고 썼다.       또한 그는 자신이 자라온 스칸디나비아 작곡가들인 시벨리우스와 닐센을 소개하는 한편 닐센의 교향곡을 녹음해 미국 청중에게 이 작품들을 알렸다. 블롬스테트는 1998년 옛 동독으로 돌아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의 음악감독이 되어 오케스트라 음색을 다듬는 데 기여하며 250년이 넘는 음악 제작을 이어갔다. 라이프치에 함께한 그는 2001년 늦었지만 처음으로 영국 BBC 프롬스를 방문했고, 2016년에는 안드라시 쉬프와 함께 베토벤의 황제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기 위해 다시 방문했다. 또한 2010년 프롬스에는 구스타프 말러 유겐도체스터와 함께 힌데미트, 말러, 브루크너의 전형적인 블롬스테트 프로그램으로 출연했다.   2020년 빈 필하모닉 볼에서 - APA-픽처데스크 GmbH/셔터스톡 블롬스테트는 좀처럼 쉬지 않았으며, 90세가 되어서도 암스테르담 왕립 콘서트허바우, 베를린과 빈 필하모닉,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뉴욕 필하모닉 등 전 세계 오케스트라와 90회의 연주를 지휘했으며, 99세가 되어도 샌프란시스코에서 지휘를 계속했다. 그가 처가를 통해 물려받은 스웨덴의 시골 저택은 언제나 비워져 있었다. 큰 키에 마른 체격의 블롬스테트는 항상 차분하며 평온하고 섬세해 보였고, 거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휴대전화는 갖고 다니지 않았다. 그는 나이나 경험에 상관없이 모두를 대화에 포함시키고 싶어했다. 블롬스테트는 1955년 스웨덴 음악학자 발트라우트 페터센과 결혼했는데 10년 전 스톡홀름 학생 시절에 만난 적이 있었다. 그녀는 2003년에 먼저 세상을 떠났다. 부부는 네 딸을 두었으며, 그는 딸들과 함께 실내악 연주를 즐겼다. 89세 때인 2016년 독일 밤베르크 심포니와 함께 한국을 방문해 공연했는데 우리 팬들에게 마지막 모습이 됐다.  그는 원래 100세가 되는 내년까지 공연 일정이 잡혀 있었다. 생전 마지막 무대가 된 지난 5월 15일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공연에서는 휠체어를 타고 말러 교향곡 9번을 지휘했다. 당시 그의 건강 문제로 공연이 잠시 중단됐고 올해 남은 지휘 일정은 취소됐다. 블롬스테트는 특히 브루크너와 베토벤 해석으로 이름을 날렸다. 지난 4월 그를 초청해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공연한 베를린 필하모닉은 악보에서 끊임없이 정직과 진실을 찾으려 한 음악 사상가였다 고 추모했다.임병선 에디터 byeongseon1610@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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