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독재정권 통치 수단으로 전락시킨 러시아 [교육]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8월 10일 부랴티아 공화국 울란우데에서 도시 개발 관계자 및 도시 전문가들과 회담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도시 개발, 지역 기반 시설 및 대중교통에 초점을 맞춘 일련의 고위급 회담을 위해 러시아 극동 지역을 방문했다. 2026.8.10.EPA 연합뉴스
2022년 2월 이후 러시아에서 가장 크게 바뀐 부분 중 하나는 교육이다. 2023년 한 기자회견에서 푸틴 대통령은 전쟁에서 이기는 사람은 장군이 아니라 선생님”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이는 전쟁을 오래 끌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면도 있지만 아예 사회의 기본 체질을 전쟁 모드로 바꾸겠다는 의도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러시아의 교육 시스템은 심각하게 이념화되었고 이 과정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학위’ 없고 ‘전공’만 있는 소련 교육 시스템으로 회귀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러시아는 볼로냐 프로세스(Bologna Process)에서 탈퇴했다. 볼로냐 프로세스는 유럽에서 개발한 교육 시스템으로, 고등교육 제도의 표준화 및 국가 간 호환을 위한 협력 체제를 말한다. 즉 이 시스템 안에 있는 국가는 같은 생태계에 속한 다른 국가와 학생 교류, 학위 상호 인정, 유학 등의 협력이 수월해진다. 우리도 알고 있는 학사(4년), 석사(2년) 제도가 바로 이 시스템이다. 한국은 가입국은 아니지만 호환이 잘 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이 생태계 안에서 교류를 잘 활용하고 있다.
러시아는 2003년에 가입해서 잘 유지해 오다가 2022년에 탈퇴를 선언하면서 다시 과거의 소련 시스템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소련 시스템 은 기존의 4+2 시스템을 포기하고 수학 기간, 학위 명칭, 필수 조건 등을 대폭 바꾼다는 의미다. 학사 , 석사 , 박사 라는 호칭을 폐지하고 기본 고등교육 (전공에 따라 4년에서 5.5년까지 다양), 특수 고등교육 (1년), 전문 고등교육 (대략 박사에 해당)으로 개편된다. 졸업장에서도 학위 개념이 사라지고 전공 만 남게 된다. 예컨대 국어국문학 학사 가 아니라 국어 교육 전공 , 경영학 석사 가 아니라 경영 전공 과 같은 명칭으로 졸업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외국인 학생을 러시아로 유치하는 절차가 훨씬 복잡해질 것이고 반대로 러시아 학생이 해외 대학으로 진학하는 길도 많이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2025년부터는 TOEFL이나 IELTS 같은 영어 시험도 러시아 내에서 테러 행위 로 간주되어 불법화되었기 때문에 이 시험들을 치르려면 아예 외국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사실상 교육 목적의 국제 교류가 매우 어려워진 셈이다.
내용보다 가치나 이념 우선시 하는 교육
학교가 점점 이념화되어 가는 것도 큰 문제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아이들이 등교하면 수업 시작 전에 필수적으로 국기 게양식을 해야 하며 매주 월요일 첫 수업으로는 중요한 것에 대한 이야기(Разговоры о важном) 라는 과목이 신설되었다. 진로나 디지털 위생, 환경 보호 등 상대적으로 무난한 주제도 다루긴 하지만 러시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어떻게 우월한지, 전쟁이 왜 정당한지, 러시아 문화가 얼마나 위대한지 등 다른 나라에서는 충분히 논란이 될 만한 내용들로 한 주의 시간표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참전 병사들에게 편지 쓰기, 위장용 그물 짜기, 전선용 촛불 만들기 같은 활동도 보편화 되어서 학교의 일상을 크게 바꿔 놓았다.
내가 90년대에 학교에 다녔을 때와 현재의 학교를 비교해 보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가치 에 대한 강조다. 소련이 붕괴하고 러시아가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학교를 다녔던 우리는 특별히 주입받는 이념이 없다고 할 정도로 어느 한쪽에 크게 치우치지 않는 교육을 받았다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소련 시스템의 잔재가 분명히 남아 있던 상황이라 완전히 자유로운 교육을 받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 부모 세대가 받은 교육과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역사 수업을 예로 들자면 러시아의 영광스러운 역사적 사건들을 조금 더 자세히 배우고 부끄러운 역사를 조금 덜 다루긴 했지만 공산주의 이론이나 혁명의 핵심 사상 같은 이념적 과목은 전부 다 사라졌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우리에게 반정부 성격의 다큐멘터리를 보여주기도 했고 스탈린의 만행에 대해서도 많이 가르쳐 주었다. 민주주의나 선거, 인권 같은 개념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운 기억은 딱히 없었지만 공산주의의 우월성이나 자본주의의 타락성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었다.
국정 역사교과서 가르치며 선동 기관으로 전락한 학교
하지만 지금은 다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개인의 인생보다 국가가 더 중요하고 개인이 추구하는 자유와 편안함보다 국익이 우선이라고 가르치는 경향이 매우 뚜렷하다. 개인의 삶보다 애국심을 강조하며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곧 애국이라고 가르치는 교육기관과 종교기관들의 행태가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물론 학생들이 이를 진심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지만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결국 밖으로 공개적으로 하는 말과 속으로 생각하는 바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릴 때부터 이러한 이중성을 학습하는 것이 과연 사회에 이로운 일인지 의문이다.
교과서의 다양성도 사라졌다. 전국 교육기관을 통제하는 단일 제도가 도입되었고 국정 역사교과서 도입 같은 조치들이 실행되었다. 이 국정 역사교과서는 큰 논란이 되었다. 비전문가들이 쓴 이 교과서는 역사적 사실보다는 국영 TV방송에서나 나올 법한 말투로 가득 차 있고 선동적인 화법으로 쓰여 있다. 소련 역사의 미화, 스탈린 만행의 축소, 러시아와 서방 국가 간의 영원한 적대적 관계 강조 등이 많이 포함되었다. 검증된 역사적 사실보다 대통령이나 참모들의 왜곡된 발언이 마치 역사적 진실인 것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을 아주 잘 보여주는 것이 2026년에 오스카상 다큐멘터리 부문을 수상한 영화 Mr. Nobody against Putin 이다. 사실상 러시아의 학교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장소에서 특정 정보와 아젠다를 주입하는 선동 기관으로 전락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2023년 9월 1일부터 러시아 고교 수업에서 채택될 러시아 및 세계 국정 역사교과서 발표 자리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대통령 보좌관(왼쪽)과 세르게이 크라브초프 교육부 장관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3. 8. 7 (타스=연합뉴스)
맹목적 국가주의 교육이 러시아 미래에 어떤 영향 끼칠까
2026년부터는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중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대거 고등학교 진학을 거부당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SNS를 통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당국은 언론을 통해 여론 진화에 나섰다.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며 중학교 졸업 후 일반 고등학교보다 전문(기술)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더 애국적인 행동 이라고 선동하기 시작했다. 언론을 동원해 대학 진학 자체를 은근히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리기 시작했다. 대학을 가 봤자 노동 시장에서 큰 가치도 없고 실물 경제에 도움이 안 되는 법률가 나 경영자 가 되느니 전문 기술학교에 가서 실용적인 지식을 배우면 졸업 후 구직도 쉽고 국가에도 더 도움이 된다는 식이다.
벨랴코프 일리야 수원대 인문사회대 교수
여기에 저출산 문제까지 끌어들였다. 서방 국가의 사례를 들면서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으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기보다 일자리를 구하고 커리어를 쌓으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며 출산율을 높이려면 여성의 교육 수준을 제한해야 한다는 납득하기 힘든 망언들까지 나오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교육부 장관마저 2025년부터 대학교 진학률이 낮아져서 다행이다 라는 뉘앙스의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한 러시아 야권 정치 평론가는 국민의 교육 수준이 낮아지는 경향을 마치 훌륭한 실적인 것처럼 내세우는 것은 주권 국가의 정부가 아니라 점령지 당국이나 할 법한 소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현재 러시아의 교육은 세계로부터 고립된 채 국가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선동 도구로 퇴행해 버리는 길에 들어섰다. 아직 불가역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맹목적인 국가주의를 강요하는 이런 변화는 향후 러시아 사회와 미래 세대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교육자로서 깊이 우려스럽다.벨랴코프 일리야 abnormal.ily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