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넘어 미래로 왜 북한에만은 예외인가 [뉴스] 지난 22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 상공에서 수리온 헬기가 이동하고 있다. 전날 인근 DMZ에서 지뢰 추정 폭발 사고로 육군 장병들이 중상을 입어 군 당국이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 사진 = 연합뉴스
최근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건을 둘러싸고 수구 언론과 보수 정치권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포문을 열고 있다. 그들은 또다시 ‘북한의 도발’과 ‘악마화’라는 신상필벌식 이념 공세의 전열을 정비하며, 한반도를 극단적인 대결과 냉전적 긴장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분단선 접경지역에서 벌어지는 참극과 갈등의 파편을 두고 이들이 내뿜는 증오의 언어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진부하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 사태를 바라보는 저들의 철저한 이중잣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 무참하게 짓밟혔던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 서린 역사가 한일 관계의 현안으로 부상할 때마다, 혹은 1980년 5월 광주를 핏빛으로 물들였던 신군부의 학살과 과거 독재 정권들의 국가폭력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가 터져 나올 때마다 국민의힘과 극우 개신교 세력, 그리고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수구 언론은 언제나 한목소리로 목청을 높여왔다. 과거의 불행에 집착하지 말고, 과거는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
그들은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나 역사적 반성, 피해자의 한을 풀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과거에 발목 잡힌 구태’로 치부하며 무자비하게 묻어버리려 했다.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역사적 단죄를 회피하기 위해 그들이 전매특허처럼 내세웠던 슬로건이 바로 ‘과거를 넘어 미래로’였다.
북한에게만 적용되지 않는 과거를 넘어 미래로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이 너그럽고 담대한 ‘미래지향적 태도’는 왜 유독 북한을 향할 때만큼은 단 한 번도 적용되지 않는가? 왜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단 한 번도 과거의 적대를 잊고 화해와 평화의 미래로 함께 나아가자”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가? 왜 북한과의 충돌과 과거사 앞에서는 유독 피비린내 나는 증오와 극단적인 대결, 그리고 징벌적 타격만을 목놓아 외치는가?
이 기괴한 불균형과 이중잣대의 이유를 물으면 그들은 언제나 북한의 대외 도발, 호전성, 그리고 참혹한 북한 인권 문제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이를 가림막 삼아 국가보안법이라는 사상의 사형틀이자 낡은 통제 장치를 21세기에도 철통같이 고수해 왔다.
하지만 진실은 명확하다. 그들에게 북한은 절대로 ‘화해와 협력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수구 기득권 세력이 누리고 있는 분단 체제 속의 온갖 특권, 그리고 한국 사회 내부에 뿌리 깊게 박힌 각종 사회적 폐습과 구조적 부조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북한은 언제나 ‘세계 최악의 독재국가이자 상종할 수도 없는 절대악’의 자리에 영원히 묶여 있어야만 한다.
북한이라는 존재를 타자화하고 악마화함으로써 남한 민중들에게 끊임없이 안보 공포를 주입하는 공포정치야말로 그들이 권력을 유지하고 대중의 개혁적 열망을 통제하는 가장 견고한 권력 기반이기 때문이다. 수구 권력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한사코 반대하며 ‘안보 공백’을 핑계로 대지만, 그들이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안보의 공백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시민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이성을 회복하여 자신들이 수십 년간 빚어낸 ‘가상의 북한 프레임’과 ‘적대적 분단 신화’가 산산이 깨져버리는 상황 그 자체다.
북한을 국빈방문 중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마친 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2024. 06. 19 [스푸트니크=연합뉴스]
북한을 악마화하는 인권 공세 의 진실
서방 언론과 국제무대에서 북한 인권의 ‘증인’을 자처해 온 주요 탈북자들의 증언은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맞지 않는 황당한 허구로 가득 차 있다. 수용소 출신이라 주장하며 인권 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던 신동혁은 자신의 증언에 거짓이 섞여 있었음을 인정했으며, 심지어 그의 친부가 직접 북한 매체에 등장해 그의 주장들을 증거와 함께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박연미 역시 북한에는 세계지도가 없으며, ‘나’나 ‘사랑’ 같은 기본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소학교에서 1+1=2조차 가르치지 않는다”는 등 소학교 1학년 교과서만 확인해도 즉시 논파될 허황된 거짓말을 일삼았다. 오죽하면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마저 이러한 왜곡을 접하고 어이없어하며 실소를 금치 못했을 정도다. 미국 의회에 증인으로 나섰던 이순옥은 ‘쇳물 처형’이라는 자극적인 괴담을 진실인 양 유포했으나, 이에 대해 다른 탈북자들조차 북한은 고철 하나도 귀해서 아이들에게 모아오라고 시키는 나라인데, 그 귀한 쇳물을 그런 식으로 쓴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거세게 면박을 주는 등 내부에서조차 외면받는 자극적 소설에 불과함이 드러났다.
개인의 왜곡된 증언을 넘어 조직적인 언론과 정보기관을 통해 유포된 대형 사건들 역시 사후 조사와 검증을 통해 명백한 낭설로 판명되었다. 대표적으로 1976년 발생했다고 주장되었던 ‘해주 폭동’ 사건이나, 북한 당국이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는 ‘송림제철소 학살’ 소문 등은 자극적인 프레임을 씌우기 위해 가공된 전형적인 허위사실 유포 사건이었다. 이러한 왜곡은 북한의 실제 사회적 맥락이나 객관적 검증 절차를 완전히 배제한 채, 오직 반공주의적 선전선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듬어진 기만적 가짜 뉴스에 불과하다.
서방이 북한을 악마화하기 위해 전매특허처럼 내세우는 ‘정치범수용소’와 참혹한 인권 유린 프레임 역시 실제 경험자들의 증언을 통해 그 신뢰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억류되었다가 풀려난 미국인 매튜 토드 밀러(Matthew Todd Miller)는 자신의 북한 내 수감 생활에 대해 특별한 고문이나 가혹행위 없이 대부분 간단한 농사일을 하며 지냈고, 쉬는 시간에는 휴대전화 사용까지 허용되었다”고 증언했다. 수용소 내에서 상시적인 학살과 비인간적인 고문이 자행된다는 서방 측의 극단적인 주장과 정반대되는 이러한 진술은, 서방 세력이 부풀려온 ‘정치범수용소’와 인권 유린 담론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철저히 가공되고 날조된 프레임이라는 의구심에 강력한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대북 왜곡과 과장으로 점철된 언론 기관들의 생태계 북한 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공론화하고 확산시키는 주체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이들의 목적이 순수한 인권 개선이 아니라 불순한 이념 공세에 있음이 더욱 명확해진다. 데일리NK, 자유아시아방송(RFA), 미국의 소리(VOA), 그리고 조선일보 등은 미 정부의 자금이나 극우 기득권의 이해관계에 깊이 연동된 매체들이다. 이들은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나 가짜 탈북자들의 자극적인 증언을 교차 검증도 없이 교묘하게 포장하여 상업적·정치적으로 소비해 왔다. 과장과 왜곡, 오보로 점철된 이러한 선전 기관들이 북한 인권 담론의 여론 형성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현재 유통되는 대북 인권 정보들의 심각한 불신과 허구성을 증명하는 결정적 방증이다.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코리아소사이어티 주최 비욘드 유토피아 상영회에서 공동 제작자인 수미 테리 박사(왼쪽 세 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레이첼 코언 공동 제작자, 탈북민 북한 인권 활동가 이서현씨. 2024.1.5. 연합뉴스
체리피킹 된 비극과 북한 인권 담론의 숨겨진 속내
더욱 심각한 문제는 수구 권력이 이러한 편향된 인권과 역사 담론을 가림막 삼아 전쟁의 비극을 지독하게 선택적으로 재구성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납북자 문제나 튀르키예군의 양녀 아일라 이야기, 서울대병원 학살 사건 등 인민군과 좌익 세력에 의해 희생당한 사례만을 집요하게 강조하며 이념적 적개심을 고취시킨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작 보도연맹 학살, 국민방위군 사건, 노근리 학살, 산청·거창 민간인 학살, 그리고 후술할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자행한 초토화 폭격에 이르기까지, 국군과 유엔군 및 우익 세력들이 민중들에게 수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욱 참혹하고 대규모로 저지른 수많은 전쟁범죄와 민간인 학살의 역사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고 망각을 강요하고 있다.
결국 서방 패권 세력과 국내 수구 정치권이 북한 인권에만 유독 목소리를 높이는 진정한 속내는 따로 있다. 북한 정권을 붕괴시켜 친미 꼭두각시 정부를 들어앉힌 뒤, 북한 땅에 매장된 석유와 석탄, 희토류 등 막대한 지하자원을 독점 수탈하려는 탐욕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최저 고졸 이상의 기본 학력을 갖추었으면서도 극단적인 저임금 노동이 가능한 북한 주민들을 19세기 ‘쿨리(Coolie)’ 수준으로 전락시켜 마음껏 노동착취를 일삼겠다는 자본의 계산이 깔려 있다. 이는 과거 19세기 제국주의 열강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를 침략하면서 ‘근대화’와 ‘백인의 의무’를 명분으로 내세웠던 추악한 식민지배의 역사가, 오늘날 서방에 의해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세련된 포장지를 뒤집어쓴 채 경제적 지배라는 현대적 형태로 재현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한국전쟁의 왜곡된 신화와 거짓된 구원의 역사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계보를 잇는 이 수구 권력에게 한국전쟁 역시 왜곡된 신화의 영역에 존재한다. 서울시 오세훈 시장이 추진한 광화문광장의 ‘감사의 정원’ 파동 등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듯, 이들은 겉으로는 공산진영의 침략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준 미군에 대한 숭고한 감사를 표방한다. 그러나 그 진실한 속내를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은 추악한 사대적 신화가 도사리고 있다.
저 흉악한 북한 때문에, 일제강점기 친일 부역으로 모은 우리의 기득권을 마음껏 누리라고 미군정이 만들어 준 숙주 대한민국이 통째로 사라질 뻔했는데, 상전인 미국이 군대를 끌고 와서 우리를 다시 살려주셨다!”
결국 그들에게 한국전쟁과 분단은 민족의 비극이 아니라, 친일 기득권 세력이 신분 세탁을 거쳐 ‘반공 투사’로 부활하고 권력을 영구화할 수 있게 해 준 거룩한 구원의 역사였던 셈이다. 이처럼 수구 권력의 생존 기반이 분단과 적대에 단단히 얽혀 있기에, 그들은 북한과의 평화로운 공존이나 ‘과거를 넘어서는 미래’를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공포해 하는 것이다.
고든 창이 자신의 SNS에 올린 글. 문재인은 북한 요원(agent)일 수 있다며 곧바로 북한 요원이건 아니건, 우리는 문재인을 북한 요원으로 대우해야 한다. 그는 자유와 민주주의와 한국을 전복하고 있다고 썼다. 본인 스스로 아무런 근거 없이 색깔론을 펼치고 있음을 백일하에 고백한 꼴이다. [고든 창 SNS계정] 시민언론 민들레
언어의 세뇌를 넘어서: ‘낡은’ 색깔론이 아니라 ‘그릇되고 잘못된’ 색깔론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들 수구 세력이 유포하는 이념 공세를 비판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대해서도 엄밀한 교정이 필요함을 직시해야 한다. 수구 진영의 이념적 공세나 종북 몰이에 대해 흔히 비판 진영조차 낡은 색깔론”, 시대착오적인 이념 프레임”이라는 표현을 습관적으로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매우 위험한 함정을 포함하고 있다. ‘낡았다’거나 ‘시대착오적이다’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과거 냉전 시기나 특정 시점에는 그러한 색깔론과 반공주의 공세가 타당하고 정당했다’는 식의 면죄부를 은연중에 내포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진실을 말하자면, 색깔론과 적대적 이념 공세는 단 한 번도 정당했던 적이 없다. 그것은 과거에도, 지금도, 민중의 눈과 귀를 가리고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찍어 누른 폭력이자 기만이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낡은’ 혹은 ‘시대착오적인’이라는 타협적인 수식어를 완전히 버려야 한다. 저들의 색깔론과 분단 프레임은 지나간 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처음부터 왜곡되고 조작된 ‘그릇된’ 생각이며, 역사를 모독하는 ‘틀린’ 주장이자, 사회를 병들게 하는 ‘잘못된’ 죄악이다. 언어의 명확성을 바로 세우고 이들의 논리가 본질적으로 ‘그릇되고 틀린 것’임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야말로, 저들이 구축해 놓은 세뇌의 언어망을 깨부수고 기만적인 담론 체계를 해체하는 첫걸음이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의 진실과 ‘대북 도발’의 은폐된 역사
2020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 등을 대하는 남한 사회의 태도 역시 이러한 기만적 프레임의 연장선에 있다. 이 사건 이후로 현재까지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과 그들이 주로 모인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조차 북괴”와 같은 냉전주의적 혐오 표현이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북한의 조치를 ‘상식 밖의 야만적 도발’로 규정하며 분노를 배설했지만, 정작 남북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간 근본적인 원인 제공자와 남한 측이 선제적으로 저지른 적대 행위에 대해서는 놀랍도록 철저히 침묵했다.
우리가 진정한 한반도의 평화를 논하고자 한다면, 여기서 한 가지 뼈아픈 진실을 마주해야만 한다. 과연 대한민국의 대북 도발은 존재하지 않았는가? 대중들이 백과사전처럼 소비하는 ‘나무위키’ 같은 플랫폼을 보라. ‘북한의 대남 도발’이라는 항목은 수십 년 치가 연도별, 건별로 아주 상세하게 박제되어 있지만, 정작 ‘남한의 대북 도발’이라는 항목은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이는 철저하게 남한과 서방 패권 세력 중심의 기만적인 피해자 서사로만 덧칠해진 반쪽짜리 역사이자, 구조적인 은폐의 결과물이다.
대북전단 살포 문제의 실체만 보아도 이들의 위선은 적나라하다. 박상학과 같은 인물들이 주동하는 극우 탈북민 단체들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과 리설주 여사의 얼굴을 일본 성인물(AV) 표지에 천박하게 합성하는 등, 입에 담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저열하고 모욕적인 전단을 북측으로 쉴 새 없이 살포했다. 이는 단순한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상대방의 최고 존엄을 짓밟고 체제의 근간을 모독하는 가장 악질적인 체제 도발 행위였다. 상대의 얼굴에 침을 뱉으면서 평화를 유지하자는 것은 오만한 기만이다.
이러한 대북 도발은 민간의 일탈을 넘어 국가 공권력 차원으로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어왔다. 최근 윤석열 정권은 북한의 심장부 평양 상공에 무단으로 군사용 무인기를 침투시켜 삐라를 살포했고, 이를 통해 의도적으로 북한의 군사적 대응을 유도하는 위험천만한 전쟁 불사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나아가 제국주의의 본산인 미국이 벌인 도발의 역사는 더욱 참혹하다. 2019년 미군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도청하기 위해 북한에 비밀리 침투하려던 작전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을 무참히 살해하고 그 시신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하도록 끔찍하게 훼손하여 수장시켰다는 경악스러운 사건은 서방 패권 세력의 악랄한 본질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을 종합해 볼 때, 매년 한반도 일대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을 두고 겉으로 ‘방어적 성격’이라 우기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그 작전계획의 세부 실행 항목에는 언제나 북한 수뇌부를 암살하고 정권을 폭력적으로 전복시키려는 이른바 ‘참수작전’이 핵심으로 포함되어 있다. 상대의 최고지도자를 제거하겠다는 노골적인 살인 계획을 세워두고 국경 앞에서 대규모 전쟁 연습을 벌이면서, 도대체 어떻게 상대방에게는 도발하지 말라”고 뻔뻔하게 훈계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는 북한의 일방적인 광기나 도발이 아니다. 4.27 판문점 선언과 9.19 군사합의를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대북전단 살포 묵인과 무인기 침투, 그리고 참수작전 등 극악무도한 대북 적대행위를 끊임없이 자행해 온 남한 당국과 제국주의 세력의 오만함이 누적되어 폭발한 결과물일 뿐이다. 진영을 막론하고 맹목적인 북괴” 타령으로 혐오를 쏟아내기 전에, 남한이 스스로 자행해 온 이 끔찍한 대북 도발의 역사부터 처절하게 성찰하는 것이 평화로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도리다.
2008년 6월 27일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 [연합뉴스 자료사진]
‘선(先) 비핵화’라는 기만과 한반도 평화의 실체적 조건
남한과 서방 패권 세력이 수십 년간 한반도 평화의 핵심 의제라며 주창해 온 ‘북한 비핵화’ 역시 그 전제부터 심각한 구조적 인식 오류를 안고 있다. 그들이 강요하는 ‘선(선) 비핵화’ 프레임은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국가의 생존권과 자주권을 완전히 포기하고 조건 없이 항복하라는 압박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비핵화 협상이 매번 아무런 성과 없이 공전을 거듭하고 대결로 치달은 이유는 단순하다. 북한의 핵무기가 누군가를 무차별 폭격하기 위한 공격용 수단이기에 앞서, 제국주의적 침략으로부터 스스로의 자주권을 지키는 최소한의 ‘방패’이자 생존 수단이라는 본질을 철저히 외면해 왔기 때문이다.
북한이 집요하게 핵에 집착하게 된 바탕에는 현대 국제정사가 보여준 잔혹한 교훈이 존재한다.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강대국들로부터 영토 보전과 안전 보장을 약속받았던 우크라이나는 결국 강대국의 침략 앞에 무력하게 무너지는 희생양이 되었다. 서방의 달콤한 경제 지원과 관계 개선 약속에 속아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했던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 역시 서방의 군사 개입 속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러나 북한이 핵이라는 절대적 방패에 집착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남한 사회와 서방이 고의적으로 외면하고 가려온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무자비한 초토화 폭격이라는 역사적 비극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미 공군이 북한 지역에 퍼부은 폭탄의 양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쟁 전체 전선에서 사용된 폭탄의 양을 뛰어넘는다. 미군은 북한의 주요 도시와 마을, 농촌, 심지어 수력발전소와 저수지 둑까지 무차별적으로 폭격했다. 평양은 도시 전체의 90% 이상이 잿더미로 변해 형태를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었고, 신의주, 원산, 흥남, 사리원 등 주요 도시들은 지도상에서 사실상 소멸했다.
당시 미 공군 전략폭격사령관이었던 커티스 리메이는 후일 우리는 3년 동안 북한 도시의 80% 이상을 잿더미로 만들고 수백만 명의 주민을 죽였다”고 담담히 고백했을 정도다. 민간인과 군인을 가리지 않고 하늘에서 쏟아지던 네이팜탄과 무차별 폭격의 화염 속에서 영토 전역이 완벽한 잿더미로 변했던 이 처참한 경험은 북한 주민들과 당국에게 실존적인 영구적 공포와 트라우마를 각인시켰다.
강대국의 침략으로부터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수령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강력한 자위적 군사력을 가져야 한다.”
이 극단적인 생존 본능과 공감대는 이후 북한이 보여준 핵 집착은 물론, 1인 독재와 유일체제, 극단적인 군사주의와 권위주의 통치, 그리고 이에 따른 인권 문제 등 북한 내부 체제 상당수가 형성되는 결정적인 출발점이자 원형이 되었다.
따라서 북한의 시각에서 볼 때, 미국과 서방이 말하는 ‘핵 없는 평화’란 언제든 자신들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기만적이고 실체 없는 약속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핵은 제국주의 세력의 무력적 압박과 체제 붕괴 시도로부터 국가와 민중을 수호할 유일하고 확실한 물리적 담보물인 것이다.
진정으로 한반도에서 핵 없는 평화를 원한다면, 상대를 향한 위협과 압박이 아니라 북한이 수십 년간 뼈저리게 느껴온 ‘실존적 공포의 해소’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난 수십 년간 서방과 남한은 언제나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대규모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양적·질적 강화, 미사일 탄두 중량 제한 해제, F-35 스텔스 전투기와 핵추진 잠수함, 전략폭격기 등 미군의 첨단 전략 자산의 지속적인 한반도 전진 배치는 북한 당국과 민중에게 실시간적인 생존 위협과 묵시록적 공포로 다가갈 수밖에 없다. 상대를 미증유의 공포로 몰아넣으면서 동시에 무장 해제를 요구하는 것은 외교적 협상이 아니라 다짜고짜 목에 칼을 겨누고 ‘항복을 종용’하는 폭력에 불과하다.
과거 이명박 정권이 대외적으로는 원칙을 부르짖으면서 뒤로는 남북정상회담을 구걸하기 위해 비밀 접촉과 뒷거래를 시도했던 오만함이나, 미국 트럼프 행정부 시절 존 볼턴 같은 극우 강경파들이 하노이 회담 등에서 보여준 고압적이고 일방적인 태도는 북한으로 하여금 대화라는 프로세스 자체에 대해 깊은 불신과 회의감을 갖게 만들었다. 상대를 대등한 주권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단지 ‘거래의 대상’이나 ‘언젠가 붕괴시켜야 할 적’으로 대하는 서방과 남한 수구 세력의 오만한 태도가 결국 수십 년간 어렵게 이어져 온 모든 대화의 끈을 잘라버린 것이다.
기만의 프레임을 넘어 참된 자주와 평화의 길로
‘비핵화’는 제재와 군사적 압박, 그리고 치욕적인 굴복을 통해 쟁취할 수 있는 전리품이 아니다. 남한과 국제사회가 북한으로 하여금 스스로 핵을 내려놓게 만들고 싶다면, 명목상의 빈껍데기 약속이 아니라 대북 제재를 과감하게 해제하고 그들이 느끼는 정당한 안보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불가역적인 손을 먼저 내밀어야 한다. 미군 철수를 포함한 대북 적대시 정책의 완전하고 철저한 철회, 그리고 확고한 평화협정 체결만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이라는 무거운 방패를 내려놓게 만들 유일하고 정당한 명분이 될 수 있다.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뉴욕 한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26.9.23 [공동취재 제공] 연합뉴스
DMZ 지뢰 폭발 사건과 같은 접경지역의 비극을 근본적으로 막는 길은 또다시 확성기를 틀고 군사적 대결 수위를 높이며 북한을 악마화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구 세력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전매특허처럼 써온 이중잣대의 가면을 찢어발기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친일의 과거도, 국가폭력의 참상도 미래를 위해 잊자 고 말했던 자들이 왜 유독 북한을 향해서는 화해의 손길을 거부하고 영원한 적대를 강요하는가? 그 기만적인 이중성을 직시해야만 비로소 한반도 문제의 본질이 보인다.
국제사회의 대등한 주권국가로서 북한의 지위를 명백히 인정하고, 힘의 논리와 굴종의 강요가 아닌 상호 존중과 자주적 평화의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 분단 기득권 세력이 구축한 ‘적대적 공존’의 사슬을 끊어내고 한반도 민중의 생명과 자주권을 최우선에 두는 것. 그것만이 ‘비핵화’라는 기만적인 공수표와 수구 세력의 이념적 세뇌를 넘어, 이 땅에 전쟁이 없는 진정한 평화와 통일의 미래를 개척하는 유일하고 확실한 길이다.김대윤 시민기자 kimdaeyun020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