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늄 농축 이란은 폭격, 사우디엔 허용… 미 이중잣대 [국제] 미국이 우라늄 농축 중단을 요구하며 이란과 전쟁까지 벌이면서, 사우디아라비아엔 자체 핵연료 농축의 길을 열어주는 원자력 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미국의 핵 비확산 정책이 전략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또 한 번의 예외와 이중잣대를 드러내 빈축을 사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22일(미 동부 시간)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과 사우디의 압둘아지즈 빈 살만 에너지부 장관이 평화적 원자력 협력 협정과 부속 양자 안전조치 협정에 서명했다 고 발표했다. 사우디 에너지부도 동시에 발표했다. 이 협정은 미 원자력법 123조에 근거하고 있어 통상 123 협정 으로 불린다. 이 협정과 부속 협정은 미 의회로 이송된다.
미 에너지부는 발표문에서 이 두 협정을 통해 핵 비확산을 포함해 몇 가지 우선순위의 경제적, 전략적 목표를 진전시키는 수십 년에 걸친, 수십억 달러 가치의 파트너십을 위한 법적 토대가 마련됐다 며 두 협정은 높은 수준의 핵 안전과 안보, 비확산 기준을 유지한다 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협정의 세부 내용은 전혀 소개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사우디아라비아 실세 총리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18일 백악관 건물 안을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5. 11. 18 [백악관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미국-사우디, 핵농축 허용 123 협정 체결
이란엔 우라늄 농축 포기 요구하며 전쟁
이날 양국의 123 협정 서명은 일단 작년 11월 18일 백악관 정상회담 합의의 연장선에 있다.
당시 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방미한 사우디의 실세 총리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함께 전략적 방위협정(SDA)에 서명하고 민간 핵에너지 협력 협상의 완료를 공동 선언했기 때문이다. 협상 완료 선언 이후 8개월 만에 협정 체결로 구체화한 셈이다. 그동안 사우디의 숙원이었던 민수용 원전의 건설은 미국 기술을 활용해 이뤄지게 됐다.
문제는 미국이 이번 협정을 통해 제한적이지만, 사우디에 핵연료 농축과 재처리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웨스팅하우스와 다른 미국 기업들이 사우디 내 원자로 2기(추가 건설 포함) 건설 사업에서 큰 몫을 갖는 계약을 확정 짓고자 사우디가 2년 후 자체 핵연료 농축을 시작할 길을 열어줬다 라고 풀이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우라늄 농축 허용의 핵심 쟁점은 트럼프 행정부가 ▲ 사우디 영토 내의 우라늄 농축 시설 건설 동의 여부 ▲ 동의한다면 그 시기 ▲ 사우디 인력의 접근 허용 여부 등이다. 로이터는 협정에 엄격한 안전장치가 없다면 자국 영토에 우라늄 광석이 매장된 사우디는 이론상 농축 시설을 이용해 (핵무기용)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다 고 지적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미국은 사우디 영토 안에 원전을 건설하고, 핵연료용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플루토늄 추출) 기술을 이전하되, 농축·재처리 접근은 미국 인력에만 허용하는 블랙박스 방식이 거론된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2026년 7월 22일에 공개된 제공 영상에서 캡처한 화면으로, 미 중뷰사령부(CENTCOM)가 이란을 타격 중이라고 밝힌 상황에서 미상의 장소에 파편이 흩어져 있고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미 중앙사령부 제공. [로이터=연합뉴스]
핵농축 허용 원자력 협정은 중동에서 최초
추가 의정서의 고강도 사찰 의무서도 열외
본말이 전도돼 지금은 호르무즈 해협 문제로 미국이 13일째 이란에 격렬한 폭격을 퍼붓고 있지만, 비핵화 협상 중이던 올해 2월 28일 이스라엘과 함께 선제공격을 감행했을 때의 명분은 이란의 핵 개발 능력 제거였다. 작년 6월 이란 핵 시설 3곳을 폭격한 것도 그래서였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장기간 우라늄 농축 중단, 보유 우라늄 폐기, 핵무기 영구 포기,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사찰 및 검증 허용 등을 강제하고자 전쟁 중인 것이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는 평화적 핵 이용의 권리를 인정하는 대신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IAEA 사찰과 안전조치를 핵심 원칙으로 삼는다. 미국 역시 그동안 이러한 원칙을 앞세워 이란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문제 삼아왔다. 이중잣대가 아닐 수 없다. 누차 평화적 핵 이용을 다짐하는데도 이란의 우라늄 농축을 막고자 6개월째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사우디에는 중동 최초로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의 길을 터주는 원자력 협정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사우디는 주요 비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 (MNNA, 2025년 11월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공식 지정)으로서 관리가 가능한 파트너이고 이란은 통제 불가능한 적대국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하지만, 미국의 태도가 핵 비확산이란 보편적 원칙이 아니라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른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특히 미국과 영혼의 동맹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유일한 핵무기 보유국이란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도착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영접을 받고 있다. 2025. 05. 13 사우디 왕실 제공. [AFP=연합뉴스]
미국, 핵 비확산 원칙 제 입맛대로 적용
단순 핵 협력 넘어 중동 핵 도미노 자극?
이번 미-사우디 간 123 협정 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09년 미국-아랍에미리트(UAE) 간 123 협정 과도 비교된다. 당시 중동에선 최초였다. 당시 UAE는 골드 스탠더드 에 따라 원전 기술을 제공받는 대신에 영구히 핵연료를 직접 생산하지 않고 IAEA 추가 의정서에 따른 고강도 사찰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현재 UAE는 주로 한국의 도움으로 건설된 4기의 민간 원자로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사우디는 지난 협상 과정에서 이 두 가지를 거부했고 마침내 관철했다. 현재 한국을 포함해 143개국이 이 추가 의정서에 따른 사찰 의무를 지키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UAE와는 달리 미국은 2년간 공동연구를 통해 상업적 타당성이 입증되면, 사우디에 자국 또는 수입 우라늄의 농축을 허용해준다는 얘기다. 이는 미국 기원의 핵물질과 기술에 대한 농축·재처리·재이전은 원칙적으로 미국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123 협정의 기본 원칙에 대해, 국가안보상 필요를 이유로 예외를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빈 살만 왕세자는 석유 의존형 경제를 다각화하는 차원에서 민수용 원전 건설과 이를 위해 미국과의 123 협정 추진에 주력해왔다. 특히 그는 2018년 3월 이란이 핵무기를 가지면 우리도 가능한 한 빨리 그 뒤를 따를 것이다 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있다는 점에서 제한적 이지만 추후 핵농축과 재처리를 허용하는 이번 협정은 양국 간 단순한 원자력 협력을 넘어서 중동에서 핵 도미노 를 자극할 공산이 크다. 튀르키예, 이집트, UAE뿐 아니라, 적대국인 이란도 향후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사우디와의 균형 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 3월 7일, 이란 나탄즈 핵 시설의 위성 사진. 반토르(Vantor)에서 제공한 이 사진은 시설이나 터널에서 새로운 손상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2026.3.7.AP 연합뉴스
NYT 동맹국 하나를 위해 핵 기준을 완화,
불길 휩싸인 중동에 새로운 핵확산의 시대
뉴욕타임스는 이제 트럼프 대통령은 미 의회와 중동 전역의 동맹국들을 상대로, 긴밀한 동맹국 하나를 위해 핵 기준을 완화한 것이 이미 불길에 휩싸인 중동 지역에서 새로운 핵확산 시대를 열어젖히는 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설득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고 지적했다.
이런 위험성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에 핵농축과 재처리를 허용하는 결정을 내린 데는 상당한 경제적 반대급부가 있음은 물론이다. 미 에너지부 발표문만 봐도 123 협정은 사우디 원자력 에너지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 기업의 접근성을 크게 확대해 사우디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하는 동시에 미국 산업과 근로자, 공급망에 이익을 가져다 준다 면서 미국 원자력 기술 수출 확대와 미국 내 고임금 일자리 창출 및 장기적 경제 성장을 기대했다. 미 언론들에 따르면,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AP1000 원자로를 독점 공급하고, 웨스팅하우스의 계약 규모만 수십억 달러에 이르며, 30년간 유효한 이 협정의 경제적 효과가 수백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사우디는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중동에서 미국의 핵심 안보 파트너다. 미국으로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사우디 원전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차단하고, 자국의 중동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전략적 이해도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3일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의회 크네세트 본회의장에서 열린 토론에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참석하고 있다. 2025. 07. 23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사우디-이스라엘 국교 정상회 위한 포석?
트럼프에 대한 극심한 불만에 주어진 당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번 결정에 대해 블룸버그는 사우디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극심한 불만을 품고 있는 시점에 주어진 당근 이라고 평가했다. 사우디를 포함한 걸프 동맹국들은 미국의 선제공격에 따른 이란의 보복 공격으로 미군 기지를 유치하고 있는 자신들도 큰 타격을 받자, 이란은 물론 미국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출해왔다. 특히 빈 살만은 지난 5월 초 미국이 이란의 호르무즈 봉쇄에 대응해 프로젝트 프리덤 추진 당시 미군 항공기의 영공 통과를 불허해 트럼프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뉴욕타임스는 이번 협정을 중동 전쟁이 격화하는 와중에 사우디를 미국 주도 질서에 묶어두기 위한 시도 라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이번 협정이 사우디의 이스라엘 국교 정상화, 즉 아브라함 협정 가입을 유도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작년 11월 약속한 전략적 방위협정(SDA)과 F-35 판매, 그리고 이날 서명한 원자력 협정은 사우디가 이스라엘과의 국교 정상화의 조건 으로 요구해온 사안 중 일부다. 다만, 빈 살만은 이스라엘 국교 정상화는 실현 가능한 팔레스타인 국가를 향한 되돌릴 수 없는 경로 가 보장될 때만 가능하다고 기존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 이번 협정을 계기로 사우디의 아브라함 협정 가입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이유 에디터 yooillee22@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