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ESG】 억대 외주 없앤 AI…ESG 담당자 야근은 그대로? [채용] 주요 AI 툴은 일단 다 써보고 있습니다.”
최근 만난 한 대기업 ESG 담당자의 말입니다. 챗GPT와 클로드, 제미나이를 번갈아 쓰며 회사 업무에 가장 잘 맞는 도구를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AI는 호기심에 써보는 도구에 가까웠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보고서 초안을 쓰고, 공시 기준을 찾고, 영문 문장을 다듬습니다. 그린워싱 위험이 있는 표현도 걸러냅니다.
ESG 실무에 AI가 빠르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다만 담당자의 일이 줄어드는 방식은 아닙니다. 외부에 맡겼던 업무가 회사 안으로 들어오면서, 담당자의 역할과 노동의 성격이 함께 바뀌고 있습니다.
ChatGPT 생성 이미지
가이드라인을 먼저 먹여놓죠”…보고서 검수하는 AI
AI가 가장 깊게 들어온 업무는 지속가능성보고서 검수입니다.
대기업 담당자 A씨는 회사의 그린워싱 가이드라인과 공시 기준을 AI에 먼저 입력합니다. 이후 보고서 원고를 넣고 기준에 맞지 않는 문장과 보완할 항목을 찾습니다. 그는 기준이 되는 문서를 먼저 먹여놓고 보고서를 돌린다”며 그린워싱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난 표현이나 공시 기준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지 확인한다”고 말했습니다.
수백 쪽짜리 보고서를 출력해 빨간펜으로 오탈자를 찾던 풍경도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기업 esg 실무자 B씨는 임원이 직접 빨간펜을 들고 초안의 오탈자를 잡아낼 정도로 많았었는데, AI를 활용한 뒤 오탈자가 확실히 줄었다”고 말했습니다.
영문 보고서 작업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번역과 윤문, 용어 통일을 AI가 먼저 처리합니다. 같은 용어가 페이지마다 다르게 번역됐는지, 보고서 전체의 어조가 일정한지도 점검합니다.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고치는 대신, AI가 먼저 훑고 담당자가 최종 확인하는 방향으로 업무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AI, 억 단위 컨설팅 비용 줄여...인하우스화 가속
AI가 보고서 초안과 번역, 윤문을 맡으면 담당자의 업무도 크게 줄어들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조금 다릅니다.
실무자 B씨는 지속가능성보고서 발간 업무에서 기획과 유관부서 소통이 전체의 40%, 작성과 윤문·검수가 60%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는 보고서가 100~150쪽에 달한다”며 전체 톤 앤 매너를 맞추고 글을 쓰는 데 들어가는 공수가 상당히 크다”고 말했습니다.
AI가 주로 맡는 업무는 뒷단의 60%입니다. 하지만 그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외부 컨설팅사가 하던 작업을 인하우스 담당자에게 넘어온 것에 가깝습니다. 과거에는 부서별 자료를 취합한 뒤 컨설팅사에 초안 작성과 문체 통일, 번역, 윤문을 맡겼습니다. 담당자는 결과물을 받아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수정 의견을 보냈습니다.
이제는 이 과정이 AI 프롬프트 창 위에서 반복됩니다. 담당자가 직접 공시 기준과 내부 자료를 입력하고,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질문과 명령을 고칩니다. 초안이 나오면 원자료와 대조해 틀린 수치와 과장된 표현을 일일이 잡아야 합니다. 컨설팅사에 보내던 수정 요청을 AI를 상대로 직접 수행하는 셈입니다.
B씨는 예전에는 컨설팅사에 억 단위 외주를 줬는데, 이제는 AI 유료 구독료랑 500만원짜리 AI 솔루션 도입해서 내부 인력이 검수하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된다”며 회사 입장에서는 엄청난 비용 절감이지만, 담당자 입장에서는 외주 업무가 통째로 내재화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AI, 보고서는 써주지만...유관부서와 싸워주지 는 않는다
보고서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일은 여전히 AI가 대신하기 어렵습니다. B씨가 말한 앞단의 40% 에 해당하는 소통과 데이터 수집 영역입니다.
이는 각 부서에 전화를 걸어 지난해와 달라진 사업을 묻고, 수치가 바뀐 이유를 확인하며 빠진 자료를 다시 요청하는 일입니다. 실무자 C씨는 유관부서에 직접 연락해 전년 대비 변경점을 묻고 실제 데이터를 끌어내는 과정은 여전히 사람이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며 자료 제출이 늦어지는 부서를 설득하거나,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증한 원인을 생산 현장에 직접 물어 바로잡는 일까지 AI가 대신해 줄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공시 판단도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C씨는 기업의 특수성을 고려해 어떤 항목까지 외부에 공개할지 결정하는 일은 결국 AI가 아닌 사람이 책임져야 하는 영역”이라고 설명했습니다.
C씨는 대화를 끝내며, AI가 많은 일을 하지만, 내 퇴근 시간을 앞당겨 주지는 못했다”고 웃픈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여전히 담당자들의 노고가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어쩌면 이는 AI에게 대체 당하지 않은 자들만이 할 수 있는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릅니다. AI가 저렴하게 보고서 초안을 뚝딱 만들어낼수록, 역설적으로 이 내용이 진짜인가 를 검증하는 인간의 판단력은 더욱 비싸졌습니다.
송준호 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