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각료·자민당 핵심 야스쿠니 참배 …한·중 거센 반발 [국제] 8월 15일, 일본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에서 제2차 세계 대전 항복 81주년을 맞아 우익 단체 회원들이 일본 국기와 플래카드를 들고 전몰자를 추모하고 있다. 2026.8.15. 로이터 연합뉴스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패전일(‘종전기념일’)인 15일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대신(방위상)을 비롯한 현직각료와 집권 자민당 핵심간부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또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도 스즈키 슌이치 간사장을 통해 ‘다마구시료’(玉串料. 신사 제사의식에 내는 공물과 신주에 대한 사례비)를 냈다.
이날 도쿄 구단에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는 현직 각료(국무위원)로서는 고이즈미 방위상 외에 기가와타 히토시 어린이·여성정책담당상, 오노다 기미 외국인정책담당상 이 직접 참배했으며, 이로써 현직 각료들의 패전일 야스쿠니 참배는 7년 연속 이어졌다.
이에 한국과 중국 등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 만행을 겪었던 나라들은 거세게 비판하고 나섰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정부는 이날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정부는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쟁범죄자를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의 책임 있는 지도급 인사들이 또다시 공물을 봉납하거나 참배를 되풀이하는 등 역사를 망각한 시대착오적인 행위를 한 데 대해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일본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이 역사를 직시하고 과거사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진정한 반성을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고 강조했다.
중국 외교부도 대변인 입장 자료를 통해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군국주의의 정신적 도구이자 상징 이라고 지적한 뒤 이는 역사적 정의에 대한 모욕이자 문명의 기본 규범에 대한 도전이며 전후 국제질서에 대한 도발 이라고 비난했다.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방위상이 8월 15일 일본 도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여 제2차 세계 대전 항복 81주년을 맞아 전몰자를 추모하고 있다. 2026.8.15. 교도 로이터 연합뉴스
다카이치 총리의 영령에 대한 마음은 불변”
자민당 핵심간부들로는 스즈키 간사장 외에 아리무라 하루코 총무회장, 니시무라 야스토시 선거대책위원장이 참배했으며, 원래 참배할 예정이었던 고바야시 다카유키 정조회장은 자신의 지역구 치바현의 폭우피해지를 둘러보기 위해 이날 참배를 미뤘다.
스즈키 간사장은 참배 뒤 다카이치 총리의 다마구시료를 대리로 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총리가 자민당 총재로서 사비(개인 돈)로 다마구시료를 냈다며 다카이치 총재의 평소 영령에 대한 마음은 나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총무상과 경제안보상 재임 중에는 매년 패전일에 계속 참배했으나, 2024년 자민당 총재선거에 입후보했을 때는 기자들에게 내심, 마음의 문제다.앞으로도 (참배를) 계속하고 싶다”며 총리에 취임하더라도 참배를 계속하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러나 2025년 10월 총리 취임 뒤에는 올해 4월의 춘계례대제(봄철에 일본 각지 신사에서 올리는 주요 제사행사) 기간을 포함해 야스쿠니 신사에 직접 참배하지는 않았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참배 뒤 기자들의 질문에 응하지 않고 바로 차를 타고 떠났다. 그는 농림수산상, 환경상 시절을 포함해서 매년 8월 15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2025년 10월 방위상 취임 뒤의 기자회견에서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건 분들에 대해 존숭의 염,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부전(不戰)의 맹세를 하는 것 자체는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8월 15일, 일본의 제2차 세계 대전 항복 81주년을 맞아 도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일본 국회의원들이 신토 사제를 따라가고 있다. 2026.8.15. 지지통신 AFP 연합뉴스
아사히 중국과 한국의 반발 피할 수 없을 것”
일본 패전일에 방위상이 참배한 것은 2024년에 기하라 미노루 당시 방위상(지금은 관방장관)이 참배한 이후 두 번째이며, 그 이전에는 2021년에 기시 노부오 당시 방위상이 패전일 이틀 전에 야스쿠니를 참배했고, 방위성이 성으로 승격되기 전인 2002년에는 나카타니 겐 방위청장관이 패전일에 야스쿠니를 참배했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현직 방위상의 야스쿠니 참배에 중국과 한국이 반발할 것은 필지의 일이라고 지적했다.
국가책임과 가해 역사 덮어 감추는 ‘영령’타령
이와 관련해 포토저널리스트(사진작가) 야스다 나쓰키 D4P 부대표는 아사히에 기고한 논평에서 다카이치 총재의 평소 영령에 대한 마음은 나도 잘 알고 있다”고 한 스즈키 간사장 말을 겨냥해 ‘천황을 위해’ 전사하면 ‘영령’이 될 수 있다고 선전하면서 전쟁에 동원한 국가폭력의 역사를 얼마나 알고 있다는 것인가. ‘영령’은 그런 국가책임과 가해의 역사를 덮어 감추려는 말로 기능해 오지 않았나”라고 비판했다.
야스다 부대표는 또 식민지 지배 때문에 일방적으로 ‘황국신민’이 돼 가족들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야스쿠니에 ‘합사’된 (조선)사람들이 지금도 계속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며 이런 역사적 경위까지 포함해서 (진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면, 각료와 총리의 참배를 ‘내심, 마음의 문제’로 왜소화하고 바꿔치기할 순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8월 15일 모두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으로 참배한 오노다 기미 외국인정책담당상. 2026.8.15 아사히신문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쟁범죄자 14명도 합사
야스쿠니에는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주범인 도조 히데키 육군대장·총리를 비롯한 A급 전범자 14명도 합사돼 있다. 이들은 ‘쇼와 순난자’ 명목으로 1978년 10월 17일 합사됐으며, 이는 일본정부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는 도쿄 전범재판 판결을 사실상 부정하고 그들을 애국순국자로 추모함으로써 일제의 전쟁범죄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14명은 도조와 함께 사형당한 도이하라 겐지 육군대장·관동군 관계자, 마쓰이 이와네 육군대장·중지나 방면군 사령관, 무토 아키라 육군 중장·군무국장, 히로타 고키 총리·외무대신, 이타가키 세이시로 육군대장·관동군 참모장, 기무라 헤이타로 육군대장·버마 방면군 사령관, 병사한 도고 시게노리 외무대신, 그리고 종신형을 받은 고이소 구니아키 육군대장·총리, 우메즈 요시지로 육군대장·관동군사령관·참모총장, 시마다 시게타로 해군대장·해군대신 등이다.
고이즈미 방위상 야스쿠니 참배의 5가지 문제
아사히는 고이즈미 방위상의 야스쿠니 참배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5가지로 정리했다.
먼저 ‘A급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에 현직 방위상이 참배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짚었다. 야스쿠니 신사는 예전 군국주의 시절(일제) 정신적 지주였던 국가신도의 중심적 시설이고, 극동국제군사재판(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군 등 연합군이 주도한 전범 처리 ‘도쿄 재판’)에서 ‘A급 전쟁범죄자’로 판정받은 14명이 합사돼 있다. 일본 방위성은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육해공 3자위대의 야스쿠니 신사 ‘부대(군대) 참배’를 금지하고 있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사인(개인)’ 입장에서 하는 참배임을 강조하지만 그가 국가조직의 수장이라는 점은 지워질 수 없어 사실상 자위대원들의 야스쿠니 참배를 부추기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두 번째로, 고이즈미 방위상의 발언을 문제삼았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참배 뒤 기자들의 취재에 응하지 않았으나, 2025년 10월의 방위상 취임 때는 기자회견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건 분들에 대해 존숭의 염,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부전의 맹세를 하는 것 자체는 어느 나라에서나 당연한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야스쿠니 참배를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기 위한 당연지사라는 강변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전의 농림수산상, 환경상 시절을 포함해 매년 8월 15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그의 아버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도 2001년 총리 취임 뒤 매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해 한국, 중국과의 관계를 경색시켰다. 특히 총리 퇴임 직전인 2006년에는 8월 15일 패전일 당일에 참배했는데, 현직 총리가 패전일에 참배한 것으로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이후 21년만의 일이었다.
세 번째, 특히 지금 악화일로인 중국과의 관계에 끼칠 영향에 대해 짚었다. 다카이치 총리의 지난해 10월 ‘대만 유사시’ 관련 국회 답변 이후 중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중국은 다카이치 정권의 방위력(군사력) 강화에 대해 ‘신형 군국주의’라며 거듭 비판해 왔다. 일본은 중국에 동조하는 나라들이 늘어날 것을 경계하면서 중국의 주장을 부정하는 대응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고이즈미 방위상의 참배를 근거로 중국이 일본의 ‘신형 군국주의’ 비판을 재개할 가능성이 있다.
81주년 광복절을 맞아 서울 보신각 앞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끝장 낸 것을 기뻐하며 참가자들이 세 차례 만세를 외치고 있다.환호를 보내고 있다. 2026.8.15 AP 연합뉴스
한국과의 관계 악화 가능성 우려
네 번째, 한국과의 관계 악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참배가 ‘양호한 기조’ 위에 있는 한국과의 관계에도 찬물을 끼얹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취임 뒤 한국의 안규백 국방장관과 여러차례 회담하고 한국 공군기의 오키나와 급유 지원 등 ‘방위협력·교류를 조금씩 진척시켜 왔다.
일본은 자위대와 한국군간 연료 등의 물자를 원활하게 상호융통할 수 있게 하는 ’물품역무 상호제공협정‘(ACSAㆍ상호군수지원협정)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한국에는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를 배경으로 특히 ’진보(혁신)계‘의 이재명 대통령 지지층에서 일본과의 방위협력 강화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뿌리 깊다. 고이즈미의 참배는 이런 과제를 한층 더 복잡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다섯 번째로 고이즈미의 정치적 행보로 인한 대외관계 악화 가능성, 특히 한국과의 관계에 대한 외무성 등 관련 부서의 우려다. 외무성 관계자는 고이즈미 참배와 관련해 중국과의 관계는 이미 악화될대로 됐으나 문제는 한국이다. 양호한 분위기가 끝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고이즈미는 방위성의 우두머리이자 장차 총리 후보 물망에 올라 있기도 한 정치가다. 총리관저의 관계자는 공인으로서의 방위상 역할보다 우파의 지지라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강제합사당한 한국인 2만 1000여 명 유족들 소송
한국과는 일제 강점기에 강제동원당했다가 사망한 수만 명의 한국인(조선인)들을 본인은 물론 유족과의 상의도 없이 일본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을 제사지내는 야스쿠니 신사에 일방적으로 합사한 중대한 문제가 문제가 있고, 이를 둘러싼 유족들의 합사 폐지 및 배상 요구 소송 제기로 재판도 진행 중이다.
자료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어서 정확한 수를 확인할 순 없으나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는 ’2만 1000여 명‘의 조선인 강제동원 전몰자들이 합사돼 있다. 대다수는 식민지배 시절 일본군의 군인, 군속으로 강제동원당했다가 전사한 사람들이다.
조선인 전몰자들의 야스쿠니 합사는 192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으나 일본 패전과 군국주의 해체 뒤인 1959년에 1만 9650명이 한꺼번에 합사되면서 그 차원과 의미가 달라졌다. 조선인 합사는 한일 국교정상화 1년 전인 1964년에도 82명이 합사되는 등 1975년(509명)까지 계속돼 왔다.
문제는 일본의 일방적인 합사와 그에 대한 유족들의 반발이다. 유족들은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 조선인 전몰자 합사가 본인과 유족들의 동의 없이 일본정부의 자료와 결정을 토대로 일방적으로 이뤄졌다고 반발하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2001년 이후 유족들은 일본정부와 야스쿠니 신사를 상대로 합사 취소와 손해배상 등을 요구하며 잇따라 소송을 제기해 왔다.
일본 최고재판소 청구기한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
2025년 1월 17일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는 유족들 27명의 상고를 기각했다. 그 근거는 ’제척기간‘이었다. 1959년에 합사된 지 2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국가배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났다는 얘기다. 이는 야스쿠니 신사 합사가 정신적인 피해를 안겨 주지 않았다”고 적극적으로 판단해서가 아니라 20년이라는 기간 제한으로 청구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 최고재판관들 중엔 이에 대한 다른 의견을 낸 재판관도 있었다. 미우라 마모루 재판관은 유족이 자신들이 받아들이지 않은 합사로 사망한 근친자들을 경애하고 추모하는 평온한 정신생활이 방해받을 수 있다며 유족의 고통에는 법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도 결국 이번 청구에 대해서는 제척기간 문제가 있다”며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본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진상규명과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매번 이런 제척 사유 등을 들이대며 거의 모두 배상 불가 판결을 내려 왔다.
8월 15일, 일본 도쿄에서 욱일기 문양의 옷을 입은 남성들이 제2차 세계 대전 항복 81주년을 맞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며 전몰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2026.8.15. 로이터 연합뉴스
그럼에도 유족들의 소송은 오히려 더 확대
지금도 소송은 진행 중이다.
2025년 9월 제3차 소송에서 한국인 유족들 6명은 도쿄 지방재판소에 새소운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에는 ’손자 세대‘가 처음으로 원고로 나섰다.
요구 내용은 야스쿠니 신사의 제사 명부 등에서 고인들의 이름을 삭제할 것”, 합사에 대해 사죄할 것”, 일본정부의 정보제공 행위에 대해 책임 질 것”, 그리고 손해를 배상할 것” 등이다.
2025년 12월에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소송이 제기됐다. 12월 23일 한국인 유족 10명이 서울 중앙지법에 제소한 이 소송은 야스쿠니 신사의 한국인 합사에 대해 한국 법원에 제소한 최초의 소송이다. 원고 쪽은 일본정부와 야스쿠니 신사를 상대로 합사 취소와 총액 8억 8000만 원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원고 쪽은 사전합의 없는 일방적 합사가 인격권과 추모 애도의 자유, 양심과 종교의 자유 등을 침해했다고 주장한다.
또 올해 6월에는 재일동포 3세 여성이 처음으로 합사 취소 소송에 참여했다. 이 여성의 경우 조부모 형제 2명이 일본해군 군속으로 강제동원돼 전사했다는 사실과 그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다는 사실을 조사를 통해 확인한 뒤 제소했다.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야스쿠니 신사 합사 소송문제는 일본 최고재판소의 기각으로 끝난 게 아니라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다. 끝나기는커녕 오히려 법정투쟁이 한국에까지 무대를 넓혀가면서 손자 세대까지로 확대되고 있다.한승동 에디터 sudohaan@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