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돌로 쓴 인간의 정신이다 [뉴스]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년 2월 8일~1900년 1월 20일)
건축에 관한 책이라고 해서 건축을 배우는 마음으로 펼쳤다가는 뜻밖의 곳에서 멈춰 서게 된다. 존 러스킨의 『건축의 일곱 등불』은 건축양식이나 건축기술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건축이 인간의 삶과 정신, 노동과 신앙, 역사와 사회를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묻는 책이다. 1849년에 출간된 이 책에서 러스킨은 좋은 건축을 이끌어야 할 일곱 가지 정신을 ‘등불’에 비유한다. 희생(Sacrifice), 진실(Truth), 힘(Power), 아름다움(Beauty), 생명(Life), 기억(Memory), 복종(Obedience)이다. 러스킨에게 건축은 단순한 건물의 문제가 아니다. 건축은 한 시대의 정치와 삶, 역사와 종교적 신념이 물질적 형태로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건축물을 바라보는 일은 그 건물을 만든 사람들과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읽는 일이 된다.
1. 희생의 등불 ― 좋은 건축에는 인간의 정성이 들어간다
첫 번째 등불은 희생이다. 러스킨이 말하는 희생은 건축을 위해 무조건 많은 돈을 쓰라는 뜻이 아니다. 그는 건축을 인간의 정성과 헌신이 표현되는 행위로 바라본다. 인간이 신이나 더 높은 가치를 위해 자신이 가진 힘과 노동을 바치는 것, 그리고 그 정성이 건축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여기에서 러스킨은 건축의 가치를 값이나 규모로 판단하는 시선에서 벗어난다. 인간이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가, 얼마나 귀한 것을 바쳤는가가 건축의 중요한 가치가 된다. 그래서 오래된 성당이나 건축물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그 건물의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바쳤던 시간과 노동, 기술과 신앙이 그 안에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러스킨에게 건축은 인간이 무엇을 소중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무엇을 위해 자신의 힘을 바쳤는지를 보면 한 시대의 정신을 알 수 있다. 건축이란 결국 돌과 벽돌을 쌓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무엇에 바치는가를 보여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2. 진실의 등불 ― 건축은 거짓된 얼굴을 가져서는 안 된다
두 번째 등불은 진실이다. 러스킨은 건축에서 진실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건축의 재료와 구조가 실제 모습과 다르게 보이도록 꾸미는 것, 구조적 기능과 관계없이 겉모습만 흉내 내는 것을 비판한다. 그가 말하는 건축적 진실은 단순한 도덕적 정직성보다 구체적이다. 돌은 돌답게, 나무는 나무답게 사용되어야 하며, 건축물의 구조와 재료가 가능한 한 정직하게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장식에서도 나타난다. 건축의 아름다움을 위해 장식을 사용할 수 있지만, 장식이 건축의 실제 구조를 속이는 방식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러스킨이 건축의 진실을 강조하는 까닭은 건축을 하나의 언어로 보았기 때문이다. 건물은 말없이 자신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따라서 건축이 거짓된 외관을 갖는다면 그 자체가 잘못된 언어가 된다. 이 대목에서 책은 건축론을 넘어 삶의 문제까지 생각하게 한다. 인간의 얼굴도, 사회의 제도도, 종교의 언어도 겉과 속이 다르면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러스킨이 일반적인 도덕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에서 재료와 구조와 표현의 진실성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구체성이 그의 논의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3. 힘의 등불 ― 건축은 인간의 힘과 장엄함을 보여준다
세 번째 등불은 힘이다. 러스킨에게 건축의 가치는 인간이 건축물을 세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건축물이 인간의 노력과 힘을 어떻게 보여주며, 동시에 자연의 거대한 힘과 장엄함을 어떻게 연상시키는가가 중요하다. 그는 건축의 웅장함을 단순한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정신이 물질을 통해 만들어내는 감동의 문제로 바라본다. 여기에서 러스킨의 자연에 대한 관심이 드러난다. 건축의 장엄함은 자연의 창조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거대한 산과 절벽,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며 인간이 느끼는 숭고한 감정이 건축에서도 표현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그는 건축의 가치가 한편으로 인간의 힘에서 받은 인상, 다른 한편으로 자연적 창조의 이미지를 어떻게 담느냐에 달려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힘의 등불은 단순히 튼튼한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힘이 어떻게 아름다운 형태로 조직되고, 그 힘이 자연의 장엄함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를 묻는 것이다. 러스킨에게 건축은 인간의 오만을 드러내는 기념비가 아니라 인간의 힘과 자연의 위대함을 함께 생각하게 만드는 예술이어야 했다.
4. 아름다움의 등불 ― 자연을 바라보는 눈에서 아름다움이 태어난다
네 번째 등불은 아름다움이다. 러스킨에게 아름다움은 건축가가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연 속에서 아름다움의 근원을 찾는다. 나뭇잎과 꽃, 식물의 형태와 자연의 선과 색채를 관찰하고 그것을 건축의 장식과 형태에 어떻게 옮겨낼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렇다고 자연을 그대로 복사하자는 뜻은 아니다. 자연에서 발견되는 질서와 형태, 생명력을 인간의 예술적 감각을 통해 건축에 표현하는 것이다. 러스킨은 아름다움을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자연의 창조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과 연결한다. 그래서 건축의 장식은 아무 의미 없이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표현해야 한다. 이것이 러스킨이 고딕 건축을 높이 평가한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고딕 건축의 장식에는 인간의 손으로 자연을 관찰하고 그것을 돌과 조각으로 표현한 흔적이 살아 있다고 그는 보았다. 아름다움은 완벽하게 매끈한 표면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손과 자연에 대한 관찰이 만나는 곳에서 건축은 생생한 아름다움을 얻는다.
5. 생명의 등불 ― 건축에는 살아 있는 인간의 손길이 있어야 한다
다섯 번째 등불은 생명이다. 여기서 러스킨은 건축의 세부와 장식, 특히 장인의 작업을 중요하게 다룬다. 건축이 살아 있다는 것은 건물이 실제로 움직인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의 창조적 정신과 손길이 건축물에 살아 있다는 의미다. 러스킨이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완벽한 형태보다 장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건축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고, 그 차이 속에 인간의 개성이 들어간다. 장인은 재료를 다루면서 자신의 판단과 감각을 사용한다. 그 과정에서 건축에는 생명력이 생긴다. 이 때문에 러스킨의 건축론은 단순한 미학론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노동을 통해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생명의 등불은 결국 건축에서 인간적인 창조성을 지키라는 요구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이 부분은 더욱 흥미롭다. 효율과 대량생산이 모든 것을 똑같이 만들어낼 때, 인간의 손과 개성이 사라질 가능성을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은 러스킨의 논의를 오늘날에 적용한 해석이지, 그가 19세기에 인공지능이나 현대 자동화를 논했다는 뜻은 아니다.
6. 기억의 등불 ― 좋은 건축은 시간을 기억한다
여섯 번째 등불은 기억이다. 이 장에서 러스킨의 건축관은 역사관으로 확장된다. 그에게 건축은 한 시대가 지나간 뒤에도 남아 있는 기억의 형태다. 한 세대가 건축물을 만들고 다음 세대가 그것을 바라보면서 과거의 사람들과 만난다. 그래서 러스킨은 오래된 건축물을 단순히 낡은 건물로 보지 않는다. 그 건물에는 과거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과 노동, 신앙과 문화가 남아 있다. 건축물을 보존한다는 것은 돌이나 벽돌을 보존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 건물이 품고 있는 시간을 보존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것은 오늘날 도시 재개발을 생각하게 한다. 낡았다는 이유만으로 오래된 건축물을 모두 철거한다면 우리는 편리한 공간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장소가 간직했던 기억을 잃게 된다. 러스킨에게 건축은 현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매개다. 따라서 좋은 건축은 그 시대의 흔적을 남겨야 한다. 그리고 좋은 사회는 이전 세대가 남긴 건축적 유산을 함부로 지워서는 안 된다. 기억은 건축을 과거에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잊지 않게 하는 힘이다.
7. 복종의 등불 ― 건축은 자기만의 독창성보다 질서와 공동체를 배운다
마지막 일곱 번째 등불은 복종이다. 오늘날 ‘복종’이라는 말은 다소 불편하게 들린다. 그래서 러스킨의 이 장을 현대적인 자유의 개념만으로 읽으면 그의 주장을 오해하기 쉽다. 러스킨이 말하는 복종은 단순히 권력자에게 굴복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는 건축과 예술이 제멋대로의 독창성을 추구해서는 안 되며, 일정한 질서와 공통의 원리, 전통과 규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건축에서 복종, 통일, 공동체, 질서를 중요한 원리로 제시한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거나 기존의 원칙에 반항하는 것만으로 독창성을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러스킨 특유의 시대적 한계도 분명히 있다. 오늘날 우리가 자유와 창조성, 개인의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점에서는 그의 ‘복종’에 관한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그의 질문 자체는 여전히 의미가 있다. 모든 사람이 자기 뜻대로만 건축한다면 도시는 어떻게 될까. 건축에 아무런 공통의 질서가 없다면 아름다운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러스킨은 건축을 개인의 자기표현만으로 보지 않았다. 건축은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내는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지막 등불은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까지의 등불을 하나의 질서 안에 묶어준다.
건축을 넘어 삶을 말하는 책
『건축의 일곱 등불』은 건축학 책이면서 동시에 인간에 관한 책이다. 러스킨은 건축에서 희생을 보았고, 진실을 요구했으며, 힘과 아름다움을 생각했다. 장인의 손에서 생명을 발견했고, 오래된 건물에서 기억을 읽었다. 마지막에는 개인의 독창성만으로는 공동체의 건축을 세울 수 없다며 질서와 공동체를 이야기했다. 일곱 등불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정성을 다해 만들고, 거짓되지 않게 만들며, 인간의 힘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배우며, 인간의 손길을 담고, 과거를 기억하고, 공동체의 질서 속에서 함께 만드는 것. 이것이 러스킨이 생각한 건축의 정신이었다.
책을 덮고 나면 건축물만 다시 보이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아가는 집과 동네와 도시가 새롭게 보인다. 우리는 무엇을 짓고 있는가. 얼마나 크게 짓느냐보다 어떤 정신으로 짓고 있는가. 얼마나 빨리 낡은 것을 허무느냐보다 무엇을 기억하기 위해 남겨두어야 하는가. 그리고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 속에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 러스킨은 19세기의 건축을 이야기했지만, 그 질문은 21세기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건축은 결국 돌과 나무와 벽돌의 이야기가 아니다. 건축은 인간이 세상에 남기는 정신의 흔적이다. 그래서 건축물을 읽는다는 것은 한 시대의 인간을 읽는 일이며, 한 도시의 모습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 도시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왔는지를 묻는 일이다. 『건축의 일곱 등불』은 바로 그 오래된 질문을 우리 앞에 다시 밝혀 놓는다.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