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노래한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 가 던진 질문 [사람들] 멜론 곡 소개 페이지
얼마 전 노래 한 곡이 음원 차트에서 눈에 띄는 기록을 만들었다. 머무르 의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다. 이 곡은 2026년 10월 2일 기준 멜론 톱100 최고 18위까지 올랐다. 그런데 이 노래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는 데 있지 않다. 보컬을 생성형 음악 AI인 수노(Suno)를 활용해 구현했다는 점 때문이다.
머무르 는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바탕으로 직접 가사를 쓰고 곡의 기획과 프로듀싱 디렉션을 맡았으며,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자신의 음악적 상상을 실제 음원으로 구현했다. ‘AI가 노래를 만들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질문이 생긴다. 과연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아마 많은 사람은 가장 먼저 AI가 만들었으니 AI 음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 순간부터 질문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무엇을 결정했는가. 누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는가. 누가 어떤 결과물을 선택했는가. 누가 그것을 하나의 작품으로 세상에 내놓았는가. 이것은 단순히 AI 음악의 저작권을 둘러싼 기술적 논쟁이 아니다. 앞으로 ‘창작자’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인간의 창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시 묻는 문제다.
우리는 오랫동안 창작자를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해 왔다. 작곡가는 오선지에 음표를 적고, 화가는 붓을 들고, 작가는 문장을 직접 쓰며, 가수는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한다고 생각했다. 창작자의 가치는 결과물을 직접 생산하는 행위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기술은 언제나 이 경계를 바꾸어 왔다. 사진기가 등장했을 때 사진이 예술인가를 두고 논쟁이 있었고, 전자음악과 신시사이저가 등장했을 때 기계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음악이 될 수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생성형 AI는 이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이제 기술은 단순히 인간의 손을 보조하는 것을 넘어 아이디어를 실제 결과물로 변환하는 과정까지 돕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인간이 직접 만들었는가’만을 물어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인간이 창작 과정에서 무엇을 결정하고 무엇을 표현했는가’다. 머무르 사례가 의미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가사로 표현하고, 어떤 음악을 만들 것인지 기획하고, AI가 만들어낸 결과물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한다. AI는 인간의 상상을 소리로 구현하는 도구가 된다. 이것은 인간과 AI 중 누가 창작자인지를 가르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AI가 어떤 방식으로 협업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결국 음악을 듣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그 음악이 어떤 알고리즘에서 나왔는가만이 아니다. 그 음악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전달하는지, 그리고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가 더 중요하다. AI라는 도구를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작품의 문화적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수노(Suno)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바로 이 지점에서 법의 문제가 등장한다. 현행 저작권 체계에서 중요한 출발점은 인간의 창작적 기여다. 생성형 AI가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이유만으로 그 결과물 전체에 인간의 저작권이 자동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AI를 창작 도구로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의 창작적 기여가 모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역시 생성형 AI 활용 저작물의 저작권 등록 문제를 별도로 다루면서 인간의 창작적 기여를 중심으로 관련 기준과 실무를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앞으로 매우 중요한 원칙이 될 것이다. AI를 사용했는가, 사용하지 않았는가라는 이분법으로는 복잡한 창작 과정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직접 가사를 쓰고, 음악의 구조와 분위기를 설계하고, AI가 생성한 여러 결과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고, 다시 수정하고, 편집했다면 인간의 창작적 선택은 분명 존재한다. 반대로 아무런 창작적 개입 없이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그대로 이용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저작권 판단은 ‘AI 사용 여부’보다 ‘인간의 창작적 기여가 무엇이었는가’를 중심으로 더욱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AI를 이용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드는 것’과 ‘AI가 기존 창작물을 학습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이다.
한 창작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사를 쓰고 수노 를 이용해 음악을 만드는 것은 AI를 창작 도구로 사용하는 문제다. 반면 생성형 AI가 기존 음악산업에 존재하는 수많은 음원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저작권이 있는 작품을 어떻게 이용했는지는 학습데이터와 권리자의 문제다. 전자는 AI를 사용하는 새로운 창작자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이고, 후자는 기존 창작자의 작품이 AI 생태계에서 어떻게 이용되고 보상받을 것인가의 문제다.
두 문제를 하나로 묶어 ‘AI 음악은 위험하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AI를 사용하는 창작자도 보호하고, AI 학습에 자신의 작품이 이용되는 기존 창작자의 권리도 보호하는 두 가지 정책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이제는 ‘AI를 어떻게 합법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창작 생태계 안에 편입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논의의 중심이 이동해야 한다.
나는 이 변화에서 중요한 정책적 교훈을 발견한다. 기술을 막는 것과 기술을 무제한으로 허용하는 것 사이에는 수많은 선택지가 존재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라이선스와 보상이라는 시장의 질서다. 기존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AI 학습에 제공할지 여부를 선택하고, 제공한다면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으며, AI 기업은 합법적으로 필요한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금지와 방임 중 하나가 아니라 권리자와 기술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이다.
AI 음악의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목소리’다. 이것은 저작권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AI로 새로운 가상의 목소리를 만들어 음악을 제작하는 것과 특정 가수의 목소리를 허락 없이 복제하거나 정교하게 모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특정인의 목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그 사람의 정체성과 연결된 중요한 인격적·경제적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가수의 음색과 창법을 모방한 AI 음원을 만들어 실제 가수가 부른 것처럼 유통한다면 저작권뿐 아니라 성명·초상 및 퍼블리시티와 관련된 권리, 계약, 부정경쟁 등 다양한 법적 쟁점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AI 딥페이크 음악이 실제 아티스트를 사칭하거나 스트리밍 시장을 교란하는 사례까지 등장하면서 앞으로는 ‘AI가 음악을 만들었는가’라는 질문보다 ‘누구의 정체성을 이용했는가’라는 질문이 더욱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AI 아이돌 스위티즈(마이블링 제공) 연합뉴스
따라서 앞으로 AI 음악에 관한 법과 정책은 적어도 몇 가지 서로 다른 문제를 구별해야 한다. AI를 창작 도구로 이용하는 문제와 AI가 기존 작품을 학습하는 문제, AI로 새로운 음성을 생성하는 문제와 특정인의 음성을 복제하는 문제, AI가 만든 결과물과 인간이 AI를 활용해 만든 작품의 문제는 각각 다른 기준으로 접근해야 한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AI 플랫폼의 이용약관이다. 창작자는 흔히 자신이 만든 결과물은 당연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AI 서비스에서의 이용권이나 상업적 이용 가능 여부와 저작권법상 저작권의 발생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예컨대 수노 역시 유료 구독자의 상업적 이용과 소유권에 관한 약관을 두고 있지만, 서비스상 권리와 각국 저작권법에 따른 저작권 보호 여부는 구별하고 있다. 따라서 AI 창작자는 단순히 결과물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떤 서비스와 어떤 조건으로 창작했는지까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는 ‘창작 과정의 기록’이 중요해질 것이다. 과거에는 완성된 작품이 가장 중요한 증거였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완성된 파일 하나만으로 누가 어떤 창작적 기여를 했는지를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 사람이 처음 작성한 가사는 무엇이었는지, 어떤 프롬프트를 사용했는지, AI가 생성한 여러 결과물 중 무엇을 선택했는지, 어떤 부분을 수정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편집했는지, 최종적으로 어떤 창작적 결정을 내렸는지를 기록할 필요가 있다.
프롬프트, 초안, 생성 결과, 수정 이력, 편집본, 최종본과 인간의 기획·디렉션 기록 등이 하나의 창작 과정의 이력이 될 수 있다. 앞으로는 이를 ‘창작 프라버넌스(Provenance)’, 즉 창작물의 생성과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이력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미술품에 작품의 출처와 소유 이력이 중요하듯 디지털 창작물에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라는 이력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AI 창작물의 표시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나는 AI를 이용했다면 적절한 투명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표시가 ‘AI로 만들어졌으니 가치가 낮다’는 낙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진이 등장했을 때 카메라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사진작가의 창작성을 부정하지 않았고, 디지털 편집 프로그램이 등장했다고 해서 사진의 예술적 가치가 사라지지도 않았다. 마찬가지로 AI를 창작 과정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의 창작적 의도와 열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AI 창작물에 대한 일률적인 가치 절하가 아니라 창작 과정에 대한 투명한 정보 제공이다. 이용자가 콘텐츠의 성격을 알 수 있도록 하되, AI라는 단어 하나가 작품의 문화적 가치를 미리 결정하지 않도록 하는 균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AI 저작권 정책은 어디로 가야 할까.
첫째, AI 사용 여부보다 인간의 창작적 기여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 가사 작성, 구성, 선곡, 편집, 디렉션, 수정, 배열과 같은 인간의 창작적 선택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AI는 창작의 주체와 도구 사이에서 다양한 형태로 기능할 수 있으며, 그 모든 경우를 하나의 기준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
둘째, AI 창작물의 창작 과정과 인간의 기여를 기록하고 입증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저작권 등록이나 분쟁이 발생했을 때 창작 과정에 대한 자료가 실질적인 증거로 활용될 수 있도록 관련 표준과 기술적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셋째, AI 학습데이터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라이선스와 보상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기존 창작자의 작품을 아무런 대가 없이 AI 산업의 원료처럼 사용하는 방식도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반대로 모든 학습을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 역시 기술혁신과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을 지나치게 제한할 수 있다. 권리자가 선택하고, 이용자는 합리적으로 보상하며, AI 기업은 예측 가능한 조건에서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넷째, 특정인의 목소리와 정체성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자신의 목소리를 AI 기술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하고 그에 따른 수익을 얻고 싶은 아티스트의 선택권도 보장해야 한다. 보호와 활용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동의와 통제, 그리고 정당한 보상이다.
다섯째,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AI 창작 접근권’을 확대해야 한다. 이 부분이야말로 AI 시대 문화정책에서 가장 큰 철학적 전환이 필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문화산업은 소수의 창작자가 작품을 만들고 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을 향유하는 구조였다. 작곡가가 음악을 만들고, 가수가 노래하고, 작가가 책을 쓰고, 화가가 그림을 그리면 대중은 그것을 소비했다.
그러나 생성형 AI는 이 구조를 바꾸고 있다. 어제까지 음악을 듣기만 했던 사람이 오늘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 수 있다. 평생 악기를 연주해보지 못한 사람이 머릿속의 음악을 실제 소리로 구현할 수 있다.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사람이 자신의 기억과 상상을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다. 영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제작비와 장비가 없었던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어볼 수도 있다.
네이버 블로그 이동현의 AI교육 갈무리
문화의 생산수단이 소수의 전문가에게서 더 많은 사람에게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이것은 단순한 기술혁신이 아니다. 나는 이것을 문화 생산의 민주화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여기에서 ‘문화 향유자’와 ‘창작자’ 사이의 경계도 달라진다. 사람은 더 이상 만들어진 문화를 소비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표현하고, AI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그것을 다시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존재가 된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창작자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해왔는지도 모른다. 음악을 전공해야 음악을 만들 수 있고, 그림을 배워야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며, 영화를 공부해야 영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술은 인간에게 계속해서 새로운 표현의 수단을 제공해왔다.
AI도 그 연장선에 있다. AI가 인간의 창작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창작할 수 있는 방법을 늘려주는 것이다. 물론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창작자가 많아질수록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는 책임은 더욱 중요해진다. 타인의 작품을 허락 없이 복제하거나 학습에 이용해서는 안 되고, 특정인의 목소리와 얼굴을 동의 없이 이용해서도 안 된다. AI가 만든 결과물을 고의적으로 인간이 직접 만든 것처럼 속이는 행위 역시 적절한 기준에 따라 다뤄져야 한다.
창작의 민주화에는 반드시 권리의 민주화와 책임의 민주화가 함께 따라와야 한다.모두가 창작자가 될 수 있다면, 모두가 다른 사람의 창작권을 존중해야 한다. 이것이 AI 시대의 새로운 문화윤리다. 결국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AI냐 인간이냐’가 아니다. AI가 인간을 대신해 문화를 만드는 세상과 인간이 AI를 활용해 더 많은 문화를 만들어내는 세상 사이에서 어떤 방향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다. 나는 후자의 가능성을 더 크게 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AI가 발전한다고 해서 인간 창작자가 사라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해야 할 창작의 종류가 달라질 수 있다. 과거에는 음표를 직접 입력하고 편집하는 데 많은 시간을 사용했다면 이제는 어떤 음악을 만들 것인지 고민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기술적 능력의 부족 때문에 표현하지 못했던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도 있다. 제작비가 부족해 세상에 나오지 못했던 이야기가 새로운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도 있다.
이것은 창작의 종말이 아니다. 어쩌면 창작의 확장이다. 그래서 이제 저작권법도 질문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다. ‘누가 만들었는가’만 물을 것이 아니라 ‘누가 창작적 결정을 내렸는가’를 물어야 한다. ‘AI가 사용되었는가’만 볼 것이 아니라 ‘어떤 데이터가 학습에 이용되었는가’를 살펴야 한다. ‘누구의 목소리인가’를 묻고, ‘그 목소리를 사용할 권한이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창작자가 등장할 수 있는 환경인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저작권은 창작자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법이다. 그러나 그 궁극적인 목적을 창작물을 영원히 독점하게 만드는 데 있다고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창작자가 정당한 보상을 받고, 그 보상을 통해 새로운 창작이 계속 이루어지는 문화적 생태계를 만드는 것 역시 저작권 제도의 중요한 목적이다.
그렇다면 AI 시대에는 더욱 정교한 균형이 필요하다. 기존 창작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창작자가 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AI 기업이 혁신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창작자의 노동과 권리가 무상으로 소모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문화콘텐츠가 빠르게 만들어지도록 하면서도 이용자가 자신이 보고 듣는 콘텐츠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국 AI 시대의 저작권은 ‘보호냐 혁신이냐’라는 양자택일을 넘어야 한다. 보호를 통해 혁신을 가능하게 하고, 혁신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창작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네이버 블로그 법률사무소 특허사무소 덕승재 갈무리
다시 처음의 노래로 돌아가자.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라는 제목은 묘하게 지금의 AI 시대와 닮아 있다. 우리는 기술이 발전하면 인간의 창작이 더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생성형 AI가 등장하자 우리는 먼저 두려워했다. 내 일자리는 어떻게 되는가. 내 창작물은 어떻게 되는가. AI가 만든 것은 진짜 예술인가. 누가 창작자인가.
그 질문들은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그 질문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AI가 창작의 문턱을 낮추면서 이제 평범한 사람도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문화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도 함께 바라봐야 한다. 어쩌면 AI 시대의 진짜 질문은 ‘AI가 인간의 창작을 대신할 것인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렇게 물어야 한다. AI를 통해 더 많은 인간이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표현할 수 있게 될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기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법과 제도가 결정한다. 우리가 어떤 저작권 질서를 만들고, 어떤 시장을 만들고, 어떤 창작자를 보호하고, 어떤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을 열어주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AI 시대의 문화정책은 기존 창작자를 보호하는 것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새로운 창작자가 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AI 산업의 혁신도 막아서는 안 되지만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기존 창작자의 권리를 희생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AI 없는 세상’이 아니다. 공정한 AI 창작 생태계다. 그 생태계에서는 창작자가 보호받고, 권리자는 정당한 보상을 받으며, 기술기업은 예측 가능한 규칙 아래 혁신하고, 이용자는 자신이 소비하는 콘텐츠에 대해 알 권리를 가지며, 무엇보다 평범한 사람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창작자는 더 이상 소수의 전문가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그것을 노래로 만들고, AI와 함께 자신의 감정을 하나의 작품으로 세상에 내놓는 순간, 그 사람 역시 창작자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저작권은 창작의 문을 닫는 법이어서는 안 된다. 창작자를 보호하면서도 더 많은 사람이 그 문을 통과할 수 있도록 만드는 법이어야 한다.
AI가 인간을 대신해 문화를 만드는 시대가 아니라, 더 많은 인간이 자신의 문화를 만들 수 있도록 AI가 도구가 되는 시대.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AI 시대에 다시 정의해야 할 ‘창작’의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 꿈꾸던 어른이 되어야 한다면, 이제 기술을 두려워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그 기술을 어떤 세상에 사용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AI가 무엇을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AI를 가진 인간이 어떤 문화를 만들 것인가. 앞으로의 저작권과 문화정책이 답해야 할 질문은 바로 그것이다.
이수영 시민기자 tndudfl1566@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