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당, 우물 안 난투극 넘어 창조적 연대로 가야 [뉴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당 대표 후보가 16일 경기도 수원시 수원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민주당 당 대표ㆍ최고위원 후보자 경기 합동연설회 에서 정견 발표를 마친 후 정청래 후보와 악수하고 있다. 2026.8.16. 연합뉴스
내년이면 1987년 6월 항쟁으로 쟁취한 민주화가 40년째다. 한 세대를 훌쩍 넘어 강산이 네 번 변하는 동안, 한국 정치를 지탱하고 규정해 온 민주화와 사회변동의 거대한 궤적이 이번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대표 경선이라는 무대 위에 고스란히 압축되어 투영되었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은 김민석, 정청래, 송영길이라는 세 유력 정치인의 각축전이었지만, 그 심층을 들여다보면 지난 40년의 여정에서 각기 다르게 형성되고 축적된 사고 체계와 철학, 그리고 정체성의 치열한 충돌이었다.
이번 경선 구도는 2002년 대선 정국의 기시감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박정희 시대의 발전국가 모델에서 정몽준으로 이어지는 근대화 산업·기술 엘리트의 계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김민석의 ‘정치산업 엘리트주의’ 서사와, 노무현의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자처하며 팬덤과 결합한 정청래의 ‘개혁 코어 민중주의’가 정면으로 맞붙었다. 여기에 뚜렷한 철학적 깃발 없이 이도 저도 아닌 제3의 길을 게릴라식으로 파고든 송영길이 가세하면서 복잡한 3자 대결 구도가 완성되었다. 같은 80년대 학번과 학생운동이라는 동일한 시대적 자궁에서 출발했음에도, 이들은 완전히 다른 정치적 유전자를 드러내며 충돌하고 있다.
15일 경기 수원시 수원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합동연설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김민석 정청래 송영길(오른쪽부터) 당대표 후보. 2026. 8. 16 연합뉴스
구정물 속에서 새로운 성장 연대 피어날 수 있을까
판세의 무게추는 일단 김민석 후보의 ‘중도통합-엘리트주의’ 쪽으로 확연히 기울었다. 이는 정청래 류의 개혁 코어 민중주의를 압도하며, 향후 민주당이 선명한 사회 대개혁보다는 기업과 첨단 기술 집단을 포괄하는 새로운 ‘성장 연대’에 국정의 방점을 둘 것임을 예고한다. 2002년 대선 국면에서 노무현 대신 정몽준을 선택했던 김민석의 인생 경로와도 묘하게 겹쳐지며, 집권 2년 차를 맞이한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 및 중도통합 노선과 코드를 맞추려는 현실적 포석이다. 향후 국정의 중심축이 과거사 및 내란 청산, 그리고 전면적 사회개혁보다는 성장과 통합이라는 관리형 담론으로 빠르게 이동할 것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징후다.
그러나 집권당의 대표 경선이라면 마땅히 집권 2기의 역사적 좌표와 철학적 비전을 치열하게 벼려내는 용광로였어야 했다. 이재명 정부가 표방하는 성장 중심의 국정 기조가 과연 심화되는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처방인지, ‘통합과 실용’이라는 모호한 수사가 한국 사회 대개혁의 절실한 과제들을 퇴색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치열하게 따져 물었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경선판은 시작부터 적통 논란과 친명-반명이라는 파당적 셈법에 매몰되었고, 집권당의 역사적 경로와 국가 비전을 검증할 소중한 기회는 그대로 매장되었다. 뿌리는 돌보지 않은 채 잔 가지만 치다가 황금 같은 시간을 허비해 버린 셈이다.
불확실한 미래와 변화에 대한 상상력의 부재
더욱 뼈아픈 대목은 이번 경선 과정에서 드러난 집권 세력의 정치적 품격 부재다. 후보들이 쏟아낸 거친 설전과 퇴행적 논리는 민주화 40년의 묵은 때를 배출하는 구정물에 가까웠으며, 권력과 탐욕에 찌든 기득권 세대의 민낯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새로움에 대한 지적 상상력과 시대적 열정은 완전히 증발한 채, 마치 소금물에 절여져 축 늘어진 배춧잎처럼 오직 권력 유지에 대한 집착만이 앙상하게 남았다.
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성장이 우리가 경쟁하고, 노동하고, 교육받는 일상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감동적인 설명은 없었다. 부동산 불안과 요동치는 주식시장이라는 민생의 복합 위기 속에서 국정 운영 시스템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지에 대한 통찰 역시 전무했다. 국정 지지율이 데드크로스를 맞이한 위기 국면에서, 이러한 무기력하고 퇴행적인 난투극으로 민심을 되돌릴 수는 없다.
17일 발표 여론조사꽃 ARS 조사 대통령 지지율 추이 그래프.
물론 당내 경선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정당의 내부 선거란 본질적으로 넓은 하늘을 보지 못하는 우물 안 개구리, 두꺼비, 맹꽁이들의 아귀다툼에 가깝다. 당권을 쥐기 위해 당장 눈앞의 조직된 강성 당원들의 입맛과 코드에 영합해야 하는 현실적 제약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우물 안의 계산법에 갇혀 진흙탕 싸움에 모든 에너지를 탕진한다면, 우물 밖으로 나왔을 때 마주해야 할 거대한 민심의 바다에서 순식간에 좌초하고 말 것이다. 오늘날 여야를 막론하고 몰락하는 정치인들의 공통된 패착은 보편적 국민의 민심 대신 닫힌 진영의 강성 당심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했다는 점에 있다. 우물 안의 패권 싸움에 영혼을 소진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창조적 연대’ 구축으로 실질적인 ‘구조적 다수’ 완성
이제 87년 체제 의 주역들이 누려온 지난 40년의 정치는 여기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그들이 역사의 주연이었던 1980년대는 이미 지나간 과거다. 낡은 유산과 진영 논리를 역사의 무덤에 묻고, 그 위에서 시대의 구조적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도록 완전히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진정한 민주화 40년 이후의 미래는 지난 반세기를 옥죄어 온 낡은 보수와 진보의 적대적 공존을 넘어설 때 비로소 열린다. 협치와 연합을 통해 실질적인 ‘구조적 다수’를 형성하는 새로운 ‘창조적 연대’를 구축해야만 우리 민주주의는 한 단계 더 성숙하고 강건해질 수 있다.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권력구조 개편(개헌), 정치개혁, 그리고 다당제 연합정치를 가능케 하는 선거제 개혁이 시대적 과제로 제시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껏 당권을 다퉈온 후보들의 시야 어디에서도 이러한 거시적 담론과 국가적 비전은 발견되지 않는다.
정치학적 시각에서 보면 이번 집권당의 파행은 로베르트 미헬스가 경고한 ‘과두제의 철칙’처럼 정당이 대중과 유리된 소수 엘리트의 권력 보존 수단으로 전락한 전형이자, 절차적 민주화 이후 정당이 시민사회에 착근하지 못한 채 공허한 권력게임만 반복하는 ‘미완의 민주주의’가 낳은 비극이다. 나아가 다수 시민의 상식적 요구 대신 과표집된 소수 강성 팬덤에 편승해 공론장을 왜곡하는 비민주적 포퓰리즘의 덫이기도 하다.
사회 집단지성과의 소통능력이 차기 당대표의 성공 기준
이러한 구조적 병폐를 시민사회의 공론장에서 정면으로 다루고 치열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우물 안의 작은 기득권과 패권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그 우물을 깨고 나와 공론장에서 민주주의의 질적 전환을 논쟁할 것인가. 민주당과 한국 정치가 마주한 진짜 위기와 과제는 바로 이 거대한 질문 앞에 서 있다.
김종대 국방전문가·전 국회의원
보수와 진보라는 기준선이 무너지는 미래에 ‘구조적 다수’란 무엇이며, 어떻게 형성되는가? 이는 소위 ‘당원 주권’에 갇힌 인식의 틀을 깨고, 시민사회와 사회 집단지성과의 새로운 소통을 통해 만들어져야 할 담론이다. 그 소통능력이 차기 민주당 당대표의 성공 기준이라 할 것이다.김종대 jdkim201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