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임금님 동화로 권력을 발가벗긴 안데르센 [사회혁신] 구두장이 아들, 코펜하겐으로 가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은 덴마크 오덴세의 가난한 구두장이 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한스 안데르센(Hans Andersen, 1782–1816)은 아들에게 책을 읽어 주던 사람이었지만 아들이 열한 살 때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 안네 마리 안데르스다터(Anne Marie Andersdatter, 1775–1833)는 남의 빨래로 살림을 꾸렸다.
14살이던 1819년, 소년은 유명해지겠다 며 수도 코펜하겐으로 올라갔다. 오늘로 치면 보따리 하나 들고 서울역에 내려 기획사 문을 두드린 셈인데, 노래도 춤도 연기도 어설퍼 가는 곳마다 퇴짜를 맞았다. 이 어설픈 소년을 알아본 이가 요나스 콜린(Jonas Collin, 1776–1861)이었다. 그의 주선으로 국왕 프레데리크 6세(Frederik VI, 1768–1839)의 도움을 받아 학교에 들어갔는데, 17살 늦깎이가 어린 동급생들 틈에서 라틴어를 외웠으니 그 민망함이야 짐작할 만하다. 가난한 집 아이에게 사다리가 아주 없지는 않던 시절이었다.
1869년의 안데르센(위키피디아)
지어낸 이야기로 세상을 바꾸다
1835년 안데르센은 첫 동화집을 냈다. 그림 형제, 곧 야코프 그림(Jacob Grimm, 1785–1863)과 빌헬름 그림(Wilhelm Grimm, 1786–1859)이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부지런히 주워 모았다면, 안데르센은 대부분 제 머리에서 지어냈다. 「인어공주」, 「미운 오리 새끼」, 「눈의 여왕」, 「성냥팔이 소녀」가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고, 평생 150편이 넘는 동화를 남겼다.
평단은 처음에 코웃음을 쳤다.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1813–1855)는 안데르센의 소설을 매섭게 헐뜯었다. 그러자 안데르센은 동화집 제목에서 어린이를 위한 이라는 말을 슬그머니 떼어 버렸다. 어른도 읽으라는 뜻이었으니, 이쯤 되면 배짱 한번 두둑하다.
안데르센은 걱정이 유난히 많은 사람이기도 했다. 불이 날까 봐 여행가방에 밧줄을 넣어 다녔고, 산 채로 묻힐까 봐 침대 맡에 죽은 것처럼 보일 뿐 이라고 적은 쪽지를 두었다고 전한다.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의 집에는 1857년에 손님으로 갔다가 다섯 주를 눌러앉았다. 디킨스는 그가 쓰던 방 거울 곁에 한스 안데르센이 이 방에서 다섯 주를 잤다. 가족에게는 몇 해처럼 길었다 는 뜻의 쪽지를 남겼다. 사랑에도 서툴렀다. 젠니 린드(Jenny Lind, 1820–1887)를 마음에 품었으나 그녀에게 그는 오라버니였고, 안데르센은 평생 혼자 살았다. 세계를 울린 이야기꾼도 제 사랑 앞에서는 결말을 바꾸지 못한 것이다.
오덴세에 있는 안데르센의 어린 시절 집(위키피디아)
벌거벗은 임금님과 아이의 한마디
1837년에 나온 「임금님의 새 옷」은 안데르센의 칼날이 가장 번뜩이는 이야기다. 뼈대는 빌려 왔다. 에스파냐의 후안 마누엘(Don Juan Manuel, 1282–1348)이 모은 옛이야기에 비슷한 줄거리가 있다. 안데르센은 여기에 천진한 아이의 입을 보탰다.
줄거리는 이렇다. 사기꾼 둘이 어리석거나 제 자리에 맞지 않는 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옷감 을 짠다며 나타난다. 대신들은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도 참으로 곱습니다 하고 감탄한다. 자리를 잃을까 두려워서다. 임금도 마찬가지로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감탄한다. 행렬 구경꾼들마저 이웃 눈치를 보며 박수를 친다. 이때 한 아이가 외친다. 임금님은 아무것도 안 입었네! 수군거림이 번지자 임금은 어떻게 했을까. 부끄러워 숨기는커녕 행렬을 끝까지 마쳐야 한다 며 더 꼿꼿이 걸었다. 안데르센은 거짓이 들통 나도 버티는 권력의 속성을 이미 꿰뚫고 있었다.
이 동화가 나온 때는 덴마크 왕이 절대권력을 쥔 시대였다. 그런데 12년 뒤인 1849년, 프레데리크 7세(Frederik VII, 1808–1863)가 헌법을 받아들여 절대왕정이 끝났다. 동화가 혁명을 일으켰다고까지 하면 지나치지만, 아이의 한마디가 세상 바뀌는 소리의 예고편이었다고는 할 만하다.
1836년의 안데르센(위키피디아)
성냥팔이 소녀가 어른들에게 묻는 것
1845년의 「성냥팔이 소녀」는 더 아프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밤 맨발의 소녀는 성냥 한 갑도 팔지 못한 채 얼어 죽는다. 성냥불 속에서 따뜻한 난로와 구운 거위, 돌아가신 할머니를 보았다. 아침이 되자 사람들은 몸 좀 녹이려고 성냥을 태웠구나 하고 혀를 찼을 뿐이다. 소녀를 죽인 것은 추위만이 아니라, 지나가며 외면한 어른들이었다. 안데르센은 이 장면으로 아이들의 눈물과 어른들의 양심을 한꺼번에 두드렸다.
프란츠 한프슈텡글이 그린 안데르센의 초상화(1860년 7월)(위키피디아)
오늘 한국에서 새겨 볼 것들
첫째, 아이의 한마디는 어디서 나오는가.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우리는 보이지 않는 옷감을 두고 참 곱다 고 박수치는 이들을 숱하게 보았다. 자리보전이 걸린 사람일수록 눈이 어두워진다는 점은 동화 속 대신들과 닮았다. 반대로 없다 고 말하는 쪽은 공익을 위해 입을 연 제보자, 권력눈치를 보지 않는 언론, 그리고 거리의 시민이었다. 이들을 보호하고 키우는 일이 곧 사회가 감기에 걸리지 않게 하는 길이다. 들통 난 뒤에도 꿋꿋이 행렬을 이어 가는 임금의 모습은 사과 없이 버티는 윤석열을 떠올리게 한다.
둘째, 성냥팔이 소녀는 지금 어디 있는가.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축에 든다는 통계가 되풀이해 나온다. 복지 틈새에서 홀로 세상을 떠나는 이웃의 소식도 끊이지 않는다. 제도가 있어도 신청하지 못하면 없는 것과 같다. 찾아가는 복지, 틈새를 메우는 예산이 필요한 까닭이다.
셋째, 사다리는 남아 있는가. 안데르센은 구두장이 아들이었으나 후원자와 국왕의 도움으로 글쓰기의 길에 들어섰다. 지금 우리는 개천에서 용 난다 는 말이 사라지고 수저 를 따지는 사회가 되었다. 교육과 기회가 부모재산에 매이지 않게 하는 것은 가난한 아이들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넷째,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 사회인가. 방정환(1899–1931)이 1923년 어린이날을 만들며 아이를 하나의 사람으로 대하자고 외쳤던 뜻도 여기에 닿는다. 아이의 말을 귀담아듣지 못하는 사회는 어른의 거짓말도 걸러 내지 못한다.
안데르센은 왕의 옷을 벗겼지만 사람을 헤치려 하지 않았다. 웃음으로 거짓을 드러내고, 눈물로 외면을 고발했을 뿐이다. 임금님이 벌거숭이라고 말하는 아이가 있고, 그 말을 막지 않고 들어 주는 어른이 있다면 그 사회는 아직 희망이 있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코펜하겐 로젠보르그 성 정원의 안데르센 동상(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