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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국가폭력에 해직된 교사의 원상회복 장관이 나서라

국가폭력에 해직된 교사의 원상회복 장관이 나서라
[사회혁신]
2000년 시행한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줄임말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줄임말 민주화보상심의위)가 설치됐습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민주화보상심의위는 전교조 해직교사들을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하고 증서를 주었습니다. 1989년 해직되고 15년이 흐른 뒤 민주 정부에서 행한 일입니다. 그 이후 국가는 피해 회복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증서 한 장이 전부였습니다. 또다시 2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한국 사회 교육 민주화와 민주주의는 진전되었음에도 그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의 피해는 제대로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2022년 진실과화해위원회에서 전교조 해직 사건을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인한 중대한 인권침해’로 결정하고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관련 국가기관의 모든 피해 회복 조치를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여전히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80년대 20대~40대 청장년 해직 교사들은 37년이 지난 지금 60대~80대가 되었습니다. 1989년 1527명이 강제 해직당하고 37년이 지난 지금 100명 이상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1989년 5월 28일 전교조 창립대회 최초 예정 장소였던 한양대에서 결성대회에 참가한 교사들을 전경들이 군홧발로 짓밟는 장면(출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해직교사 백서 자료 사진) 5.28 결성대회에 참가한 교사들은 전국 각지에서 200명 정도였는데 경찰의 원천봉쇄를 뚫고 전날 한양대에 집결했다. 8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 교사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안정권은 교육대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정권 차원에서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만들고 11개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참여해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줄임말) 교사들을 탄압했습니다. 안기부(오늘날 국정원), 검찰, 경찰, 보안사, 교장, 장학사 등 온갖 수사정보기관과 인맥을 동원해 노동조합에 가입한 교사들을 회유, 협박하고 감시했습니다. 청장년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노동조합을 만든 이유는 단순합니다. 100년 넘게 교육계에 만연한 비리와 부패에 눈 감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전교조 교사들은 촌지(뇌물)를 거부했습니다. 촌지 문화는 교육활동을 크게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전교조 교사들은 참고서 선정에 따른 부교재 채택료를 거부했습니다. 부교재 채택 대가로 뒷돈을 받게 되면 그것은 고스란히 참고서 가격을 높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수학여행(오늘날 테마 여행) 업자들의 뒷돈을 거부했습니다. 당시 학교장 상당수는 관행처럼 숙박업자들에게 뒷돈 받기를 당연시했습니다. 그것 또한 여러 학생을 한 방에 몰아넣는 숙박시설, 형편없는 식사와 관련이 깊었습니다. 무엇보다 전교조 교사들이 가장 분노한 것은 국가주의 교육행정이었습니다. 교사를 상부 지시를 이행하는 말단 행정 요원 정도로 생각하는 반교육적인 학교 문화, 바로 100년 넘게 교육계에 만연한 낡은 질서에 분노했습니다. 학습지도안 검열 문화가 대표 사례입니다. 그 당시 모든 교사는 가르치는 내용을 학습지도안으로 작성해 일일이 검열받아야 했습니다. 한 마디로 일제 식민지 교육과 군사독재 권위주의 질서에 찌든 부조리한 현실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공문서 한 장으로 교사와 학생을 각종 행사에 동원하는 황당한 행태와 교육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지막지한 체벌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폭력 문화 그 자체였습니다. 교사가 학생을, 선배가 후배를 때리는 폭력 문화가 학교의 일상이었습니다.   1989년 광주광역시 서강고 3학년 졸업생들이 졸업식날 해직된 전교조 선생님들을 기리며 교정에 세운 참교육비석으로 졸업생들이 십시일반 모금하여 교정에 세웠다. 그 시절 고등학생 운동이 참교육을 열망하며 참교육 요구투쟁으로 승화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고난 끝에 참교육 기념비석이 지금은 전남대 교정에 있다.(출처: 정희곤, 장권호 선생님 제공) 제일 견디기 힘든 점은 과거 반민족행위를 일삼던 친일 문인의 작품을 칭송하고 학생들이 암기해 시험 치는 교육계 현실이었습니다. 거짓 역사와 기교로 가득한 문학 작품을 교육의 이름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해 교과서에 버젓이 실어 놓고 학생을 평가하도록 강요한 게 당시 교육계 풍경이었습니다. 모두 교육계 역사 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이었습니다. 민족교육, 민주교육, 인간화교육, 바로 전교조 참교육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1500여 교사가 1989년 6월~9월 사이에 대량 해직당합니다.   1989년 7월 14일 구로고등학교 전교조 교사 양달섭 선생님 지키기 거리 시위 도중 전투경찰의 진압봉에 맞아 박종필 군(17세)을 비롯해 20여명 학생이 부상을 당했다.(출처: 전교조 학생 권리 침해 사례집 자료 사진) 불의에 떨쳐 일어난 중고등학생들 또한 항의 집회, 거리 시위, 혈서 쓰기, 투신 등으로 국가폭력에 격렬히 저항했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줄임말 전교조)에서 발간 『학생 권리침해 사례집』(1989) 통계에 따르면 탄압이 집중됐던 1989년 5월 29일~8월 17일까지 전국에 걸쳐 212개 학교에서 34만 6594명의 학생이 항의 집회와 시위 농성에 참여했습니다. 그에 따라 경찰서에 연행과 형사처벌, 그리고 퇴학, 정학 징계 등으로 희생 또한 너무 컸습니다. 올해로 민주화운동관련자 증서를 받은 지 22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8월 7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위로했습니다. 녹화사업, 전교조, 사북탄광, 서산개척단 등 공권력의 부당한 남용으로 인권을 짓밟힌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진심으로 위로하며 사과했습니다. 응원봉과 빛의 혁명으로 탄생한 민주정부 4기다운 모습입니다. 이제 대통령의 사과와 위로에 상응하는 조치가 뒤따라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향한 대통령의 진정성이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전교조 해직교사의 경우 다음 네 가지를 신속히 이행하길 바랍니다. 맨 먼저 대통령의 사과와 위로에 진정성을 담아내기 위해 교육부 장관은 교육부 명의로 전교조 대량 해직 사건에 대해 공식사과해야 합니다. 전교조 대학살은 정권 차원에서 일사불란하게 자행된 국가폭력입니다. 그렇지만 형식적으로는 교육부 산하 교육청별로, 그리고 사립학교 재단별로 파면, 해임, 면직 처리를 했습니다. 따라서 당시 주무 부처이고 지금도 상처를 치유할 주무 부처로서 교육부가 나서서 대통령의 사과와 위로의 진정성을 이행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대통령의 사과와 위로의 진정성을 담아내기 위해 대통령 직속 ‘국가폭력피해회복위원회’를 설치해야 합니다. 피해자 대표가 참여하는 위원회에서 신속한 결정으로 피해 회복이 이루어지도록 조치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이재명 정부는 민주정부답게 국가폭력의 피해자인 원고와 맞서서 소송으로 다툴 일이 아닙니다. 피고인 법무부는 국민 세금으로 변호사를 고용해 법정에서 다투기보다 법원의 화해권고결정안을 즉각 수용해야 합니다. 폭력의 상처를 치유하고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선 신속한 처리가 중요합니다. 네 번째로 교육부 장관은 국가폭력으로 희생된 전교조 해직교사 원상회복을 위한 특별법을 위해 대통령 정무특보와 집권여당 당대표를 만나 강력히 법안 통과를 촉구하십시오. 의결정족수를 충분히 충족하기에 집권 여당이 의지만 있다면 이번 정기 국회에서 특별법 통과도 가능합니다. 만일에 집권 여당이 그럴 의지가 없어 보인다면 교육부 장관이 앞장서서 정부 입법 발의로 특별법을 추진해 주십시오. 지난 한 달 반 사이에 전교조 해직교사 다섯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이태영 선생님, 곽동찬 선생님, 조명준 선생님, 김상문 선생님, 김복희 선생님이 바로 그분들입니다.   1989년 전교조 해직교사로 교육민주화와 민주주의 진전에 열정을 바친 김복희 선생님은 2018년 결성한 교육민주화동지회 부회장으로 헌신했다. 안타깝게도 급성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었음에도 아픈 몸을 이끌고 상경해 4차 변론 당시 법정에서 모두 진술하는 등 해직교사 원상회복을 위해 헌신했다.(출처: 교육민주화동지회 제공) 며칠 전 돌아가신 김복희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석 달 전 법정에서 아픈 몸을 이끌고 낭독한 모두 진술은 그 시절 아픔을 되뇌기에 충분했습니다. 김복희 선생님은 혈액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임에도 아픈 몸을 추스르며 서울로 올라와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중략) 제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제 개인의 억울함만을 말씀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닙니다. 저와 함께했던 사랑하는 후배 동지는 림프암으로 생사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또 많은 선배와 후배 동지들이 병마와 노환 속에서 평생의 한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나고 있거나, 마지막 시간을 견디고 있습니다. 저희는 3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명예를 회복하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저희가 바라는 것은 특별한 특혜가 아닙니다. 국가를 상대로 진실을 바로 세우고, 빼앗긴 명예를 되찾아 달라는 것입니다. 저희는 가난했고, 억울했습니다. 그러나 교사로서 양심과 교육에 대한 신념만은 끝까지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비록 찢어진 옷을 입더라도 깨끗이 빨아 입으며 아이들 앞에 서고자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 저희는 늙었습니다. 하지만 저희의 자녀들과 손주들에게만큼은 우리들의 부모와 조부모는 정의를 위해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라는 사실을 남겨 주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교육 민주화의 역사 속에 저희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살아 있는 동안 확인하고 싶습니다.(하략)” - 2026년 7월 4차 변론 당시 김복희 선생님 모두 진술 중 일부   2026년 9월 17일 법정을 나서며 전교조 해직교사들이 국가폭력에 맞서 피해회복을 다짐하면서 교육계 역사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해 단체 기념사진을 남겼다.(출처: 교육민주화동지회 제공) 최교진 교육부 장관님, 역사 정의가 무너진 사회는 사회 정의를 세우기 어렵습니다. 교육계 역사 정의를 바로 세워야 교육 개혁도 가능합니다. 진정한 교육 개혁을 위해서도 그 출발점인 교육계 과거사부터 청산해야 합니다. 교육계 과거사 청산은 교육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된 해직 교사의 아픔을 보듬고 치유하는 원상회복에서 시작합니다. 교육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 아픔을 안고 먼저 떠난 동지들을 부디 외면하지 않길 바랍니다.하성환 시민기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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