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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종교의 억압이 사회적 공포로 바뀔 때 ‘레위기’

종교의 억압이 사회적 공포로 바뀔 때 ‘레위기’
[칼럼]
오동진 영화평론가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레위기 10장 1절~2절) 레위기는 야훼(하나님)를 모시는 규율에 대한 것을 담고 있는 성경이다. 근본주의자들은 이 레위기를 문자주의로 (하나님이 아니라 이 규율을) 철석같이 섬긴다. 그래서 종종 문제를 일으킨다. 동성애의 문제가 대표적이다. 레위기 18장 22절 그리고 20장 13절에 쓰여 있다.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율법의 행함’으로 끔찍하게 파괴되는 동성애 아이들 호주 영화 는 바로 그 ‘율법의 행함’이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가를 얘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종교의 억압이 인간의 본성을 침해하고 사회적 공포로 전환될 때 사람들의 내면이 얼마나 훼손되고 무너지는가를 그려 나간다. 퀴어 영화는 많지만 퀴어호러 영화는 흔치 않다. 는 평범한 영화가 아니다. 할리우드에서 독특한 작품들을 배급하는 회사로 유명한 ‘네온(NEON)’이 이 영화의 전 세계 배급(한국 포함)을 주도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호주 외딴 마을(빅토리아주의 아웃백으로 보이지만 확실치 않은, 가상공간이다)의 폐쇄적인 기독교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청소년 나임(조 버드)과 라이언(스테이시 클라우센)은 서로에게 끌린다. 성적 욕망에 불탄다. 둘은 외곽의 창고에서 밀회를 즐긴다. 학교나 교회에서 둘의 관계는, 당연히 비밀이다. 그런데 라이언이 ‘바람을 피운다’. 라이언은 하필 목사의 아들인 헌터(제레미 블루잇)와도 관계가 생긴다. 나임은 질투에 휩싸인다. 그가 목사의 집에 찾아가 라이언과 헌터의 관계를 밀고한다. 두 아이는 곧 구원치유사 앞에 무릎을 꿇려 앉히게 된다.   구원치유사는 아이들 눈앞에 라이터를 켜며 가스라이팅, 곧 최면을 건다. 레위기 10장을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 주님의 거룩한 권능으로 더러운 죄악을 씻어 주소서. 두 개의 불이 있습니다, 주님. 하나는 더럽히는 불이요 하나는 정화의 불입니다.” 아이들은 발작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때부터 모든 아이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동성애자 아이들은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스스로를 자해한 듯 폭력을 당한다. 심지어 죽기까지 한다. 마치 신에 의한 불의 심판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라이언은 분열된 모습으로 나임 앞에 나타나 어떤 때는 연인처럼, 어떤 때는 괴물이나 살인자처럼 폭주한다. 나임과 라이언은 서로를 만날 때마다 이렇게 묻는다. (내 앞에 있는 너가) 바로 너니?”   따라야 하는 건 하나님 말씀인가, 인간이 만든 도그마인가 아이들은 퀴어로서 정체성을 확인하고 지키려 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환경은 그렇지 않다. 교회는 이들을 죄인 취급한다. 규율을 중요시하는 교회 공동체는 이들을 억압한다. 나임의 엄마(미아 바시코프스카)는 이 문제를 잘 아는 것처럼 보인다. 헌터 같은 애를 괴롭히는 애들은 늘 있어. 결국 그 증오심이 헌터를 죽인 거야.” 그러면서도 엄마는 구원치료사 앞에 아들을 데려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난 너까지 잃을 순 없단다.” 엄마는 순응자다. 자신이 속한 종교 공동체의 규율이 아들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자애가 남자애를 좋아하는 일이 이 엄마에게 아들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를 심어준다. 종교의 억압이 사회적 공포로 전환될 때 심지어 모성마저 왜곡시킬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영화 는 종교의 보수적인 도그마와 사회의 뒤처진 시스템이 여전히 동성애에 대해 올바른 정치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제일 무서운 건 동성애자인 아이들에게 마음속으로 스스로가 죄인이거나 괴물이라는 잘못된 자의식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이는 곧 ‘죄의식의 내면화’다. 내면에 괴물을 갖고 살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는 붕괴한다. 공멸한다. 이 같은 비극은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의 말씀’ 대신 사람이 만든 규율을 절대화할 때 시작된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보다 사람이 만든 하나님의 규율만을 따르려는 자, 오히려 영혼이 올바르지 못하다. 1220년대의 성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름을 땄던 빈자의 성인)’가 결국 데우스 미히 딕시트(Deus michi dixit)”라고 말한 후 죽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하지 그 얘기를 강령화한 도그마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와 같다. 이탈리아 감독 릴리아니 카바니가 37년 전에 만든 영화 와 는 기묘하게도 주제 면에서 닮은 구석을 선사한다.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짓밟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초상 의 첫 장면은 공포영화답게 피가 흐른다. 수영장 매니저인 여성이 사람들을 내보내고 혼자 샤워하던 중 누군가를 만나 서로를 희롱하다가 갑자기 변을 당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누군가는 나오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이 ‘누군가’가 중요하다. 살인마일까, 하나님이 보낸 사자일까, 아니면 내게 가까운 누구인가. 영화 속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바, 그 ‘누군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의 형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동성 연인일 수도 있고 엄마일 수도 있으며 평소 좋아했던 록커일 수도 있다. 불에는 더러운 불이 있고 정화의 불이 있으며 그것 역시 어쨌든 똑같은 불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사람의 욕망에는 더러운 욕망이 있고 순수한 욕망이 있다는 얘기일 수 있다. 욕망의 이분법은 종교와 사회(특히 중세사회)가 도덕률이란 구실로 사람들(피억압 계층)을 통제하고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 낸 규율 같은 것이다. 사람들이 그 이분법에 가스라이팅 되면 자신의 욕망이 또 다른 자신의 욕망을 짓밟게 한다. 억압한다. 자신이 내면의 또 다른 자신으로 파괴하는 일을 서슴지 않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가 하려 하는 얘기는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가혹한 공포에 관한 얘기다. 영화가 무섭지는 않다. 끔찍하고 섬뜩하다. 사회가 인간의 본능을 이렇게 억압해도 되는 가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호러 영화지만 성찰적이고 사회적이다. 는 퀴어 영화이지만 퀴어 영화가 아니다. 는 지금 우리들의 일그러진 초상에 관한 영화다.   할리우드 주류가 ‘눈도장’ 찍은 퀴어호러의 한국 상륙은 21일 최근 들어 퀴어와 호러 장르가 결합한 퀴어호러 영화가 대세의 흐름 속에 있다. 퀴어가 호러를 통해 대중들에게 공격적으로 다가서고 있다는 의미이고, 이는 일정 부분 퀴어 장르 영화가 주류가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더 나아가 LGBTQ+ 문화가 세상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보다 전면화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는 올해 초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에서 마지막으로 열린(2027년부터는 콜로라도주 볼더시로 이전한다) 선댄스영화제 미드나잇 섹션에서 상영돼 큰 관심을 받았다. 지난 7월 열린 3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감독인 아드리안 키아렐라는 최고상인 작품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배급사 네온은 선댄스 현장에서 이 영화의 전 세계 판권을 500만 달러(약 65억)에 사들여, 퀴어호러 장르의 대세적 전망을 할리우드 주류가 주목하고 있음에 ‘눈도장’을 찍어 주었다. 동성애는 이제 주홍글씨와 같은 낙인이 아니라 돈이 되는 문화산업이 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영화 는 21일에 전국 개봉된다. 아직 열흘 남았다. 그때쯤 극장가의 간판들이 많이 바뀌게 될 것이다. (사진 제공 : 수입사 찬란)오동진 ohdjin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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