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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이슬 내린 길을 앞장서 걷는 사람, 이슬받이

이슬 내린 길을 앞장서 걷는 사람, 이슬받이
[사람들]
반갑습니다. 우리말의 결을 살려 마음을 보듬는 ‘토박이말 결지기’입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이슬받이 낮에는 구름이 끼어 있으면 한결 지내기가 좋다가도 해가 나면 찬바람을 틀지 않고 견디기가 어려운 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침에는 짧은 옷차림이 서늘하게 느껴져 긴옷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이처럼 낮과 밤의 온도 차이가 커지면 아침 풀잎에 맺힌 이슬을 만날 법도 한데, 요즘은 이슬조차 만나기가 쉽지 않은 듯합니다. 며칠 전 아침 일터로 오는 길에 풀밭으로 들어가는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무엇을 찾는 것인지 풀 사이를 살피면서도 이슬에 옷이 젖을까 봐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떠오른 토박이말이 있었습니다. ‘이슬받이’입니다. 이슬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슬받이’를 여러 가지 뜻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이슬이 내리는 무렵 , 양쪽에 이슬 맺힌 풀이 우거진 좁은 길 , 이슬에 젖지 않도록 허리 밑으로 두르는 도롱이 , 이슬이 내린 길을 갈 때 맨 앞에 서서 가는 사람 , 그리고 차일 따위를 쳐서 내리는 이슬을 막는 일 을 모두 ‘이슬받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여러 뜻을 한데 놓고 보니 ‘이슬받이’라는 말이 참 재미있습니다. 모두 이슬과 아랑곳한 말이지만, 이슬이 내리는 때를 가리키기도 하고, 이슬이 맺힌 길을 가리키기도 하며, 이슬을 막는 물건이나 일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제가 오늘 남달리 마음에 담아 두고 싶은 뜻은 ‘이슬이 내린 길을 갈 때에 맨 앞에 서서 가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맨 앞에 서면 이슬을 먼저 맞습니다 이슬이 흠뻑 내린 풀밭길을 여러 사람이 지나간다고 생각해 봅니다. 맨 앞에 선 사람은 아직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풀을 헤치며 가야 합니다. 풀잎에 맺혀 있던 이슬은 고스란히 그 사람의 바짓가랑이나 옷자락에 닿습니다. 뒤따라가는 사람은 어떨까요? 앞사람이 지나가며 풀잎을 건드리고 이슬을 털어 놓았기 때문에 맨 앞에 갈 때보다 덜 젖을 것입니다. 맨 앞에 선 사람이 이슬을 먼저 받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슬받이’라는 말을 단순히 이슬을 맞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만 볼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앞에서 먼저 젖는 사람의 모습까지 함께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지나지 않은 길에는 이슬이 많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많습니다. 누군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그 앞에는 아직 아무도 걸어 보지 않은 길이 놓여 있습니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기 어렵고, 어디에서 걸려 넘어질지도 알 수 없습니다. 앞서 가는 사람이 하나하나 살피고 부딪치며 길을 만들어야 뒤에 오는 사람들이 조금 더 편하게 갈 수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앞사람이 겪은 시행착오를 피할 수도 있고, 앞사람이 만들어 놓은 길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새로운 길을 열어 가는 사람은 자기 몫보다 더 많은 이슬을 맞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슬받이’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앞장서는 사람의 수고는 뒤에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수고는 뒤에 있는 사람에게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길이 어느 정도 닦이고 나면 사람들은 편하게 걸어갑니다. 그러다 보면 그 길을 처음 걸으며 어디로 가야 할지 살피고, 풀숲에 발을 내딛고, 온몸으로 이슬을 맞았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기 쉽습니다. 하지만 길이 처음부터 반듯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누군가는 먼저 가 보았고, 누군가는 실패도 했을 것이며, 누군가는 남들이 망설이는 동안 한 걸음 먼저 내디뎠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장선다는 말에는 용기뿐 아니라 감당해야 할 몫도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슬받이’는 혼자만의 희생을 말하는 것일까요?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앞에 선다고 해서 언제나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고, 뒤에 선다고 해서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어떤 일은 앞장설 사람이 필요하고, 어떤 일은 서로 자리를 바꾸어 가며 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 늘 앞에 서서 젖어 주기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이슬받이가 되어 앞에서 길을 열어 준 사람이 있다면, 뒤에 있는 사람은 그 수고를 알아주고 함께 걸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한 사람이 계속 이슬을 맞는 것이 아니라 어느 때에는 자리를 바꾸어 앞에 설 수도 있어야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슬받이’는 앞장서는 사람의 수고를 알아차리게 하는 말이면서 서로의 몫을 살피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이슬받이를 만나기 어려워졌습니다 요즘은 이슬이 많이 맺힌 풀밭길을 걸을 일이 예전보다 훨씬 줄었습니다. 길도 잘 닦여 있고, 사람들이 다니는 곳에는 포장된 길이 놓여 있습니다. 새벽 풀밭에 들어가 이슬을 흠뻑 맞으며 길을 갈 일도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슬받이’라는 말을 처음 듣는 분이라면 그 뜻이 조금 낯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말의 뜻을 알고 나면 실제 이슬이 없어도 그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남들이 아직 가지 않은 곳에 먼저 가 보는 사람, 다른 사람들이 편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앞에서 길을 살피는 사람, 그 과정에서 남들보다 먼저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바라보며 ‘이슬받이’라는 말을 한 번 떠올려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이슬을 맞은 사람에게 손뼉을 보내고 싶습니다 저는 아침에 풀밭을 조심스럽게 헤치며 가던 그 사람을 보면서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앞서가는 사람을 보며 용감하다”, 대단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말만으로는 앞선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감당했는지 다 담아내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맨 앞에 선 사람은 남들이 아직 맞지 않은 이슬을 먼저 맞습니다. 옷이 젖을 수도 있고, 발이 미끄러질 수도 있고, 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와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누군가 먼저 한 걸음을 내디뎠기에 뒤에 있는 사람들이 조금 더 편하게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고맙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뜨거운 손뼉이라도 보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슬은 사라져도 발자국은 남습니다 아침 햇살이 비치면 풀잎에 맺힌 이슬은 어느새 사라집니다. 먼저 걸어간 사람의 옷을 적셨던 물방울도 마르고, 뒤따라가는 사람은 마른 길을 걷게 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먼저 지나간 흔적은 남습니다. 이슬을 먼저 맞은 사람이 있었기에 뒤따르는 사람의 옷은 조금 덜 젖습니다. 누군가 먼저 길을 살폈기에 다음 사람은 조금 더 안심하고 걸을 수 있습니다. 이슬은 사라져도 앞장선 사람의 수고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침 풀밭에서 이슬을 찾는 사람을 보다가 만난 ‘이슬받이’라는 말이 저에게는 그래서 더 오래 남습니다. 여러분 곁의 ‘이슬받이’를 떠올려 보세요 우리 둘레에도 남들이 알아주기 전에 먼저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먼저 살피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앞에 서고, 뒤따르는 사람들이 조금 편하게 갈 수 있도록 자기 몫의 수고를 먼저 감당하는 사람들입니다. 혹시 지금 떠오르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그 사람에게 꼭 거창한 말을 하지 않아도 좋겠습니다. 당신이 먼저 가 이슬받이가 되주어서 고맙습니다.” 그 한마디면 충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슬이 내린 길을 앞장서 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오래된 우리말 ‘이슬받이’를 오늘 다시 만났습니다. 이슬을 만나기 어려운 시대라 해도, 이 말이 가리키는 사람의 모습까지 사라진 것은 아닐 테니까요. [마음 나누기] 여러분 곁에는 남들이 걷기 편하도록 먼저 이슬을 맞으며 길을 열어 준 ‘이슬받이’가 누구인가요? [한 줄 생각] 이슬을 먼저 맞은 사람 덕분에 뒤따르는 사람의 옷은 덜 젖습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 이슬받이 뜻: ① 이슬이 내리는 무렵.     ② 양쪽에 이슬 맺힌 풀이 우거진 좁은 길.     ③ 길을 걸을 때 이슬에 젖지 아니하도록 허리 밑으로 두르는 도롱이.     ④ 이슬이 내린 길을 갈 때에 맨 앞에 서서 가는 사람.     ⑤ 차일 따위를 쳐서 내리는 이슬을 막는 일. 보기: 이슬이 많이 내려서 이슬받이를 앞세우고 풀밭길을 걸었습니다. 오늘 한마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걸으며 이슬을 맞은 이슬받이들에게 고맙다는 마음을 전합니다.   [토박이말 길잡이] 결지기 이창수  이창수 시민기자 malji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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