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모리의 딸 취임 바라보는 기대 섞인 희망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네 번째 도전 끝에 대통령선거에서 0.27% 포인트 차이로 당선된 케리코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이 지난 7월 29일 취임식 도중 참석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2026.7.29 AP 연합뉴스
지난 7월 29일 케이코 후지모리가 페루의 새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취임식의 흥분과 팡파르가 사라진 8월 초, 필자는 뉴욕의 페루 이민 커뮤니티인 퀸즈 엘머스트를 찾았다. 화려한 잔치상을 치우고, 차분히 앉아 차를 한 잔 마시는 분위기였다.
식당 또는 길에서 만난 페루 이민자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후지모리 정부에 대한 기대는? 페루 정치 역사에서 가장 큰 논쟁거리로 취급되는 아버지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은? 페루에게 미국은 무엇인가? 미국에 정착한 페루 이민자들을 통해 후지모리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정리해 보려는 의도였다.
올해 페루 대선에서도 부정 선거 의혹이 제기됐다. 페루 리마에서 선거 부정을 규탄하는 포스터를 든 시위자.(AP 뉴시스)
정치 변화와 관련한 대화 중에 자주 듣는 두 단어는 기대(anticipation)와 희망(hope)이다. 이 둘은 다른 개념이다. 기대는 어느 정도 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루어질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는 상태를 반영한다. 직장인들이 연말 보너스를 말할 때 자주 쓰인다. 액수를 꼭 집을 수는 없지만, 전년도에 비해 어느 정도 윤곽은 짐작할 수 있다.
희망은 흔히 말하는 50대 50 에 가깝다. 51대 49 가 더 정확하다는 분석이 많다. 이루어질 가능성과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반반이지만, 전자에 1%가 더 붙은 마음 상태이다. 여기 1%는 낙관적(optimism)임을 말한다. 대학 입학 원서를 제출해 놓고 합격 여부를 기다리는 학생들과 대화할 때 자주 듣는다. 희망사항이나 낙관적이다.
때로 두 단어가 합쳐진다. Hopeful Anticipation, 즉, 희망찬 기대 또는 기대에 찬 희망 으로 번역한다. 후지모리 정부 출범을 보는 뉴욕의 페루 이민자 사회는 지금 기대와 희망 사이에서 조국을 바라보고 있다. 더 정확히 묘사하면 조심스럽다(cautious)는 단어가 더해진 상황이다. 기대에 찬 희망을 조심스럽게 간직하고 있다.
어렸을 적, 학교 앞 길가에서 파는 병아리를 사서 가슴에 품고 집으로 가져올 때의 마음이 그랬던 것 같다. 병아리가 쉽게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동시에 중닭이 되고 어미 닭이 되어 계란을 낳을 것이란 조심스러운 희망도 있었다.
올해 페루 대통령선거 결선에서 후지모리 후보는 0.27%포인트(4만 9641표) 차이로 승리했다. 지난 10년간 8명이 대통령직을 거치는 혼란스러운 정치 현실 속에서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후지모리는 네 번째 대선 도전 끝에 당선됐다. 그녀는 선거에 앞서 정치자금과 관련된 스캔들로 구속기소되었지만, 헌법재판소는 기각 결정을 내렸다.
1991년 7월 페루 수도 리마에서 열린 한 군대 행사에서 행진하는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전 대통령(가운데). 현 후지모리 대통령의 아버지로, 영욕의 정치 여정 끝에 2024년 사망했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녀의 아버지는 2024년 세상을 떠난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이다. 페루 정치사에서 가장 큰 논란의 대상으로 기록된 인물이다. 정치와는 거리가 먼 농업경제학자이며 교육자였던 그는 대통령이 되자 강권 정치를 폈다. 공산 반군 진압과 일정한 경제 안정을 이루었지만 인권탄압과 부정부패를 자행해 감옥에 갇혔고 10여 년 수감 생활 끝에 풀려났다. 그는 부패 스캔들에 휘말리자 일본으로 도피해 수배 상태에서 일본 참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하는 기행을 벌이기도 했다. 딸 후지모리는 열아홉 살 때부터 아버지 옆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후지모리 ver. 1 = 후지모리 ver. 2 의 선입견과 우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페루의 정치 분열은 후지모리 정부에 대한 불안감을 높이고 있다. 일부 야당 의원들은 후지모리 대통령의 첫 국정연설이 시작되자 이에 항의하며 퇴장했다. 좌파 단체와 시민들도 거리에서 반대 시위를 벌였다. 분열된 정국은 충돌을 예고한다.
그럼에도 후지모리 정부에 대한 뉴욕 페루 이민자들의 조심스러운, 기대 섞인 희망 은 어디서 오는가? 그 이유를 이민자들이 스스로 느끼는 페루의 민족 기질에서 찾을 수 있다. 페루인은 오늘 먹을 것이 있다고 내일을 계획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다. 무엇이든 하려 든다. (Peruvians don t stop planning for tomorrow just because they have something to eat today. They will try to find something to do.) 취재 중에 비슷한 말을 자주 들었다. 또 70%에 달하는 페루의 비공식 경제 규모도 페루인의 잠재적 창의성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도 만났다.
미국 뉴욕 퀸즈 길거리에서 페루의 대표적 전통 음식 세비체 를 만들어 파는 카를로스. 지금은 초라해 보이는 노상이지만 그는 번듯한 세비체 식당 운영을 꿈꾸고 있다. 페루인은 창의적이며 역동적인 사람들이라고 했다.(이길주 시민기자)
카를로스는 8년 전 미국에 왔다. 어떻게 입국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퀸즈 엘머스트 노상에서 음식을 만들어 판다. 페루를 대표하는 음식 세비체(Ceviche) 는 일종의 회무침이다. 익히지 않은 생선에 레몬즙과 양파 등 야채를 섞은 음식이다. 지난 3년 매일 이 장사를 해왔다는데 값이 저렴하고 맛이 있어 행인들이 좋아한다고 했다.
질문에 돌아오는 답이 무덤덤하게만 느껴지는 카를로스는 페루 이민사회를 활동적인 공동체(active community)로 묘사했다. 그에게 활동성은 현재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기회를 찾아감을 뜻했다. 자신이 그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세비체를 거리에서 만들어 파는 카를로스는 허가증을 받은 푸드 트럭이 아니면 노상 조리를 금하는 도시 법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경찰의 제지에 신경 쓰이지 않느냐는 물음에 어깨를 치켜세워 답을 대신했다.
카를로스의 담력은 그의 꿈에서 나온다. 맨해튼의 대표적인 세비체 레스토랑 미션 세비체(Mission Ceviche) 같은 식당을 운영하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맨해튼 유니언 스퀘어 인근에 위치한 미션 세비체 는 단순한 식당이 아니다.
뉴욕 맨해튼의 대표적 페루 식당 Mission Ceviche . 정치 불안, 마약, 가난, 혼란으로 페루를 바라보는 선입견에 대항하는 문화 공간의 역할도 하고 있다. (이길주 시민기자))
이름부터 간단치 않다. 미션은 사명 이란 뜻도 있고, 스페인의 원주민 지역 점령 당시 선교 목적을 띠었지만, 군사적 요새와 경제 활동 중심이 된 정착의 중심지였다. 이 식당은 세비체가 상징하는 페루 문화를 이제는 미국 사회에 전파하는 요새 같은 곳이었다.
페루가 아우르는 태평양, 안데스, 아마존의 맛과 향을 음식에 담아낸다는 비전을 갖고 있는 Mission Ceviche 의 셰프 호세 루이스 차베스. (Mission Ceviche 홈페이지 캡처)
셰프 호세 루이스 차베스는 때로 페루를 정치 불안, 마약, 가난, 혼란으로 묘사하는 미디어와 싸움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페루가 태평양, 안데스산맥, 아마존 밀림의 특성을 품고 있는 생태 다양성의 땅이라며 각기 독특한 지역의 향기를 음식으로 표현하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 음식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이야기를 전하며, 문화를 기리는 방법입니다 — 한 접시, 한 식탁, 한 번의 나눔이 모여서요. 그의 조리 철학이다. 그는 페루와 페루 요리가 문화 상품으로서 웰빙 시대에 큰 시장성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푸드 트럭을 운영하는 호세는 페루의 민족 음식인 닭 구이 전도사다. 요리 중간중간에 랩을 하면서, 술보다 더 좋은 것이 페루의 음식(간식)이라 노래한다. 정치에 큰 관심은 없다면서도 페루도 자신처럼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길주 시민기자)
퀸즈 길가에서 푸드 트럭을 운영하는 호세는 대단한 민족주의자로 보인다. 그의 트럭은 온통 페루(Peru) 전단으로 뒤덮여 있다. 사진을 찍고 싶다니 자신 있게 두 손으로 랩 포즈를 취했다. 그의 푸드 트럭 인기 메뉴는 닭 요리이다. 닭을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연기에 실려 냄새는 멀리 간다. 그의 푸드 트럭에는 랩 가사처럼 읽히는 광고 문구가 있다. Lo que no cura una cerveza, lo cura un antojito. 직역하면 맥주로 해결 안 되는 건, 간식이 해결해 준다 이다. 의역하면 자기 음식이 술보다 낫다는 주장으로 들린다.
퀸즈 페루 이민 사회는 닭 구이 메카라 할 수 있다. 닭 하면 페루, 페루 하면 닭 하는 메시지가 들리는 것 같다. 우파 정권은 개인이 사업할 수 있는 기회를 확장할 것이란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있었다. (이길주 시민기자)
나중에 알아 보니 페루인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음식이 숯불에 구운 닭 요리인 뽀요 아 라 브라사(Pollo a la brasa) 였다. 매년 7월에는 구운 닭의 날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 페루는 국민 한 사람당 닭을 가장 많이 먹는 남미 국가가 되었다. 닭 요리도 민족적 자부심의 도구이다. 퀸즈 페루 이민사회의 모토가 있다면 닭 하면 페루, 페루 하면 닭 일지도 모른다.
페루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한 퀸즈의 자칭 리마 4총사는 후지모리를 지지하는 이유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언급했다. 반군 게릴라들이 변전소를 폭파하면 그날 밤을 어둠 속에서 보내야 했다고 전했다. 현 대통령의 아버지인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이 상황을 종결시켰다고 믿고 있었다. (이길주 시민기자)
이 네 중년 남성은 자신을 퀸즈의 리마 4총사 라 했다. 어린 시절을 리마에서 보냈다. 이들은 후지모리의 소위 광팬 은 아니었다. 이 정부를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면서도 희망을 감추지 않았다. 이들의 희망은 의외로 소박했다. 과거 페루의 공산 게릴라 세력 빛나는 길(Shining Path, 스페인어: Sendero Luminoso) 에 대한 기억이 후지모리를 지지하는 가장 큰 이유인 듯했다. 딸도 어떤 면은 아버지를 닮길 원한다 고 했다.
게릴라들은 가족들이 모이는 저녁시간을 노렸다. 스케일 큰 작전을 펼치지 않았다. 변전소 하나를 폭파하면 마을이 어두워졌다. 그나마 하루가 끝나고 가족이 함께 앉아 저녁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즐거워하는데 전기가 나가면 좌절감이 컸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대통령이 되고 점차 이런 불안의 시간은 줄어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치안이 아직도 불안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두운 식탁과 화면이 꺼진 텔레비전은 거의 없다고 페루의 친척들이 전한다고 했다.
후지모리의 당선은 트라우마의 결과라 해도 된다. 마오 사상으로 무장한 공산 반군이 페루 사회를 극한 혼란 속에 빠뜨렸던 기억이 투표에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 기억은 이민 2, 3세들도 부모 세대로부터 전해 들었지만 생생하게 재생되었다. 두려운 삶이 부족한 삶보다 견디기 어려웠다(Fear was worse than shortages). 어디도 완전하게 안전한 곳이 없었다(Nowhere was completely safe). 후지모리의 선거 구호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 말을 페루 이민자들은 자주 되뇌었다.
페루 이민 2세인 크리스챤은 페루 민족성에는 사업가 정신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정치가 창의성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후지모리 정부에 대해 조심스럽게 기대 섞인 희망을 말했다. (이길주 시민기자)
크리스챤은 페루 이민 2세이다. 비교적 젊은 나이인데 페루 식당을 운영한다. 후지모리 정부가 자신과 같은 이민자들이 조국으로 돌아가 기업 풍토를 형성할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2026년 월드컵이 끝났지만 월드컵과 관련된 식당 내부 장식은 그대로다. 우리는 남미 사람들이다. 월드컵 결승전 끝났다고 월드컵 끝난 것 아니다. 월드컵 분위기와 여운은 계속 남아 있다. 특히 이번 아르헨티나의 패배를 설욕해야 한다는 남미인들의 결기는 앞으로 4년을 갈 것이고, 이는 비즈니스에 도움이 된다 고 했다. 월드컵은 영원하다는 그의 기발한 사업 마인드를 페루에서 펼치려는 포부가 크다.
크리스챤의 식당 이름이 Sabor Peruano II 인 사실이 힌트를 준다. 페루 이민사회는 조국으로 돌아가 프랜차이즈 사업을 펼치는 희망도 갖고 있다. 후지모리 정부=자본주의의 팽창 희망이 자리 잡았다. (이길주 시민기자)
문제는 있겠지만 페루의 미래에 희망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퀸즈 페루 이민자 사회의 보편적 사고를 부추기는 요소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놀랍게도 경제강국 대한민국 이었다. (계속)이길주 뉴욕통신원 kiljy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