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시민교육 안착에 필요한 선결 조치들 [교육] 배재고 야구부 사태 이후 학교 시민교육에 대해 교육계 관심이 집중되었다. 국가교육위원회 차정인 위원장은 지난 23일 ‘학교 시민교육 기본원칙’을 직접 발표했다. 학생에게 존중과 관용, 공감과 정의, 참여와 협력하는 삶을 가르치겠다고 했다. 나아가 진실을 추구하는 디지털 시민성을 기르고, 사람을 차별하고 조롱하는 혐오의 언어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반(反)시민적 행위임을 깨닫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은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28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가칭 『공존과 소통의 민주시민』 교과서를 내년에 연구 개발해서 2028년부터 학교 현장에 보급하겠다고 했다. 다시 말해 시민교육을 담당했던 기존 도덕 윤리와 사회 교과를 대신해 민주시민교육을 전담하는 새로운 독립 교과서를 내년에 개발하려는 계획이다. 학생들의 ‘통합적 민주 시민역량’을 기르기 위해 2028년부터 고등학교에 보급하고 중학교, 초등학교로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올해 초 업무 보고에서 이미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법무부 등 관련 부처의 협조를 받아 민주시민교육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지난해 초·중학교까지 했던 헌법 전문 외부 강사 특강을 올해 고등학교까지 확대해 시행하겠다고 했다.
글쓴이는 학교 시민교육에 대해 교육 관련 정부 기관의 수장들이 보여준 열의와 의지에 눈길이 갔다. 학교 시민교육을 학교 현장에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해서 반드시 이행해야 할 최소한의 선결 조치 몇 가지를 제언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학교 시민교육 국가 기본원칙’ 가운데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한 논쟁성, 명확성, 시의성, 안전성에 대한 것이다. 차정인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은 교사의 교육활동이 외부의 부당한 압력이나 간섭을 받아서는 안 된다”라며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하 「교원 지위 향상 특별법」) 상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국가교육위원장의 발표 내용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효성을 담보하려면 관련 법 개정이 절실하다. 다시 말해 교사가 교육자로서 행한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해 민사상, 형사상, 행정상 책임을 묻지 않아야 한다. 국가가 나서서 교사의 교육활동을 보호하기 위해선 당장 「교원 지위 향상 특별법」 개정이 시급하다.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침해한 사안이 형사상 처벌 대상인 경우 교육부 장관과 교육감은 수사기관에 고발할 수 있다”가 아니라 반드시 고발한다”는 의무조항으로 개정해야 한다. 현재 조항조차 2023년 서이초 교사 비극 직후 개정한 내용이다.(출처: 하성환)
학교 시민교육 수업에서 시의적절하게 논쟁성 강한 주제를 다룰 때 교사가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려면 강력한 보호조치가 필요하다. 국가교육위원장의 발표대로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거울삼아 우리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악성 민원으로 2주에 한 명씩 교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대한민국 교육 현실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다음달 임시국회에서 「교원 지위 향상 특별법」 제20조(피해 교원에 대한 보호조치) 제4항을 즉시 개정해야 한다. 제20조 제4항은 교육활동 침해 행위가 형사처벌 규정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 교육부 장관이나 교육감은 수사기관에 고발할 수 있다”는 조항을 반드시 고발해야 한다”라는 의무 조항으로 개정해야 한다.
2023년 7월 서이초 교사 비극 직후 2024년까지 서울의 한 초등학교 등굣길에 걸린 공교육 정상화를 촉구하는 펼침막(출처: 하성환) ‘배운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것은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란 표어가 교권이 무너진 학교 현장의 절박한 외침을 에둘러 표현한 느낌이다.
요컨대 교사의 교육활동 보호에 국가가 적극 행정을 펼쳐야 한다. 그러할 때 교사는 가르치면서 희망을 간직할 수 있고 배우는 학생들은 꿈을 키울 수 있다. 이를 위해 국회에 공을 떠넘기지 말고 교육 관련 정부기관 수장들이 나서 정부 입법으로 즉시 개정 발의해야 한다.
2010년대 김상곤 진보 교육감 시절 경기도교육청이 개발 보급한 시민교육 교과서들(출처: 하성환)
다음으로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이 의도하는 학교 시민교육 관련 교과서 발행 문제이다. 이는 전국 최초 진보 교육감으로 당선된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 시절에 이미 개발, 보급된 ‘시민교육’ 교과서가 여러 종류 존재한다.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과 『지구촌과 함께하는 세계 시민』 , 그리고 『평화 시대를 여는 통일 시민』 교과서가 바로 그것이다. 2015년엔 경기도교육청이 서울시교육청과 업무협약을 맺어서 서울에서도 극히 일부이지만 사용하고 있다. 이후 서울 이외에 강원도, 세종시, 광주광역시, 전남, 전북, 경남, 인천광역시로 확산하였고 2019년엔 울산광역시도 경기도와 업무협약을 맺어 경기도교육청의 ‘시민교육’ 교과서를 사용한다.
따라서 가칭 『공존과 소통의 민주시민』 교과서를 따로 내년에 연구, 개발할 일이 아니다. 이는 명백히 행·재정적 낭비일 뿐이다. 무엇보다 내년에 ‘시민교육’ 교과서를 연구 개발해서 2028년부터 학교 현장에 보급하는 건 너무도 늦다.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교과서를 비롯해 기존 학교 시민교육 교과서는 학습 주제와 내용 면에서 매우 우수하다. 따라서 이를 내년부터 학교 현장에 적극 보급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정근식 교육감의 구상 가운데 일반 교과군에 포함되는 세부 단원이 아니라, 독립된 별도 과목으로 신설·운영”하는 부분은 크게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특히 고교학점제를 토대로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선택하거나 학교가 공통 선택과목으로 지정”하게 한다면 나름 성숙한 시민성을 기르는 교육 효과를 적잖이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2026년 민주시민교육 강화를 정책으로 발표한 민주시민교육 부처별 협업 프로그램(출처: 교육부 보도자료)
마지막으로 학교 시민교육을 부처 협업형 프로그램으로 개발해 학교 현장에 확산하는 교육부의 시도는 재고해야 한다. 그 이유로 단발성 외부 특강은 전시 효과로 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협업형 외부 프로그램을 학교에 적용하는 것 자체가 교사의 교육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행위이다. 학교 교육은 기본적으로 정규 교육과정과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를 통해서 시행하는 게 기본원칙이고 학교 교육 활동의 기본 골격이 되어야 한다.
교사가 주당 처리하는 행정업무 시간 국가별 비교그래프(출처: 한국교육개발원 보도자료) 대한민국은 남아공, 일본 다음으로 많은 주당 8시간으로 OECD 평균(4.7시간)보다 훨씬 많다. 교사를 100년 넘도록 말단 행정 요원으로 간주하는 권위주의 교육행정의 잔재로 교육계 주요 역사 청산 과제 중 하나이다.
더구나 교육부가 법무부 등 다른 정부 부처의 협조를 받아 협업형 프로그램을 강행하면 학교 현장은 업무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는 교사에게 행정업무를 또 하나 얹히는 꼴이 되어 교사를 지치게 만든다. 교사에게 의무 없는 행정업무를 강요하는 것은 교육 노동 환경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교육부가 교사의 행정업무를 덜어주지는 못할망정 노동 조건을 악화시키는 일은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2025년 2월 15일 좋은세상연구소 회의실에서 ‘성숙한 민주시민 양성’, ‘교사의 정치기본권 획득’, ‘시민교과 탄생’을 지향하며 학교시민교육노조(KTUCE) 창립대회를 마친 후 조합원들(출처: 하성환)
7월 30일 [학교시민교육교원노동조합]의 긴급 성명서도 이 점을 명확히 비판하고 있다. 학교 시민교육이 학교 현장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려면 무엇보다 교육활동의 기본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교사가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시민교육을 실행하도록 국가는 교사의 교육활동을 보호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만인이 공감하고 동의하는 학교 시민교육에 대해 추상적인 정책이나 보여주기식 전시성 정책은 학교 현장에 시민교육을 뿌리내리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하성환 시민기자 ethics6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