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로그인   회원가입   초대장  
모니터링&뉴스레터   페투미X사회혁신
페투미X사회혁신   서비스 소개   아카이브   이야기   이용 안내
페이지투미는 사회혁신분야의 새로운 정보를 일주일에 3번, 메일로 발송해드립니다.

link 세부 정보

정보 바로가기 : 이런 전쟁, 다시는 없어야 …노근리 76년 뒤

이런 전쟁, 다시는 없어야 …노근리 76년 뒤
[사회혁신]
지금으로부터 76년 전 이맘 때, 우리나라에 커다란 비극이 일어났다. 1950년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노근리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 사건을 자세히 다룬 책으로 『노근리 그 후』(오연호 저, 1999)가 있다. 절판됐지만 지금도 중고거래를 통해 어렵지 않게 책을 구할 수 있다. 피란시켜 주겠다던 미군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북한군은 빠르게 내려왔다. 7월 14일 이승만은 편지로 맥아더 장군에게 한국군 지휘권을 이양했다. 미군은 7월 16일부터 20일까지 대전지구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북한군의 진격을 막지 못했다. 큰 피해를 입은 미군은 다시 후퇴길에 올랐다. 7월 25일, 후퇴하던 미군은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주민들을 피란시켜 주겠다며 불러 모았다. 미군은 주민들을 철로 위로 데려갔다. 잠시 무전을 주고받던 미군은 주민들을 철로에 남겨둔 채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잠시 후 비행기가 날아와 철로를 폭격했다. 어머니가 나를 맨 밑에 엎드리게 하고 그 위에 내 여동생을 얹고 당신 몸으로 우리를 감쌌어요. 폭격 후 일어서니 어머니는 하복부와 발목에 파편을 맞아 피투성이고 여동생은 한쪽 눈이 피범벅이 돼 있었어요. (철로 폭격에 대한 생존자 정구식 씨의 증언) 폭격이 끝난 뒤 미군은 이제 진짜 안전한 곳으로 피란시켜 주겠으니 모두 나오라 고 명령했다. 미군이 총을 겨누고 있었기에 주민들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미군은 주민들을 굴다리 밑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굴다리를 향해 총과 포를 쏘았다. 사격은 29일까지 이어졌고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내 두 살 난 딸아이는 총소리에 놀라고 더위에 질식해 울어댔어요. 함께 있던 시어머니가 하도 딱해 그 애를 업고 굴다리 밖으로 잠시 바람 쏘여 준다고 나갔는데, 그 아이에게 미군이 총을 쏴 버렸어요. 즉사했어요. (딸을 잃은 박선용 씨의 증언) 모든 민간인은 적으로 간주하라 미군은 왜 평범한 주민들을 향해 총을 쏘았던 것일까. 노근리 사건 생존자 정구헌 씨는 이렇게 증언했다. (당시 연희전문 사학과 2학년에 다니던) 형이 굴다리 근처에 온 미군에게 왜 아무 죄 없는 우리를 아무 이유 없이 죽이는지 그 이유나 알고 싶다 고 했지요. 그 미군의 답은 피란민이라 할지라도 의심나는 사람은 모두 죽이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았다 는 거예요. 이러한 증언은 공개된 미군 문서에서도 뒷받침되었다. AP통신이 보도한 미군 25사단 통신명령문에 전투지역에서 눈에 띄는 모든 민간인은 적으로 간주될 것이며 그에 따른 조처를 취할 것 이라는 지시가 담겨 있는 것이 확인됐다. 노근리와 같은 비극이 발생한 것은 미군이 주민들을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적 으로 간주하고 조처 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업은 할머니마저도 적 으로 여겨질 뿐 예외가 되지 못했다.   노근리 쌍굴 다리 대학 신입생이 처음 마주한 전쟁의 참상 내가 『노근리 그 후』를 특별히 기억하는 것은 대학교 새내기 때 독서토론 동아리에 가입해서 읽은 첫 책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대학에 들어올 때까지 한국 현대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전쟁에 대해서도 뚜렷한 인식이 없었다.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군인들끼리 싸움을 하는 것이고, 민간인도 언제든지 징용되어 끌려갈 수 있다는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군인들이 민간인 마을에 들어가 학살하는 일은 임진왜란과 같은 먼 과거에나 벌어지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노근리 그 후』에서 구체적인 자료와 증언으로 접한 전쟁의 참상은 너무나도 끔찍했다. 동아리에서 1학년들끼리 이 책을 읽고 토론할 때, 우리는 모임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한 친구가 울면서 뛰쳐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책에 기록된 내용이 너무 잔혹했기 때문에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전쟁 이후에도 이어진 폭력과 범죄 이 책의 특징은 노근리 사건을 과거의 단일한 비극으로 고립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전쟁 중에 벌어진 민간인 학살에서 전쟁 이후의 주한미군 범죄로 시선을 확장한다. 1965년에는 트럭에 타고 있던 미군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에게 올가미를 던져 50미터를 질질 끌고 가는 일이 벌어졌다. 1962년에는 미군이 군견에게 한국인을 물게 하고 저항하는 피해자에게 발길질을 하거나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는 사건도 있었다. 1957년에는 세 살배기 아이가 미군 송유관에 올라앉아 있다가 총탄 세례를 받고 숨지는 일이 있었다. 미군 군법회의는 가해 미군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오발 했다는 책임을 물어 3개월간 봉급의 3분의 2를 몰수했을 뿐이다. 미군에게 있어서 한국 어린이의 생명을 앗아간 것은 실수 보다도 가벼운 일이었던 것일까. 책에 소개된 대표적인 미군 범죄 중에는 1992년 윤금이 씨 사건도 있다. 이 사건은 지난 9일 SBS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가해 미군은 윤금이 씨를 폭행하여 살해한 뒤 시신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범죄가 얼마나 잔혹했는지 그 참상을 글로 옮기기 어려울 정도다. 이야기를 들은 김풍 씨는 인간의 존엄이 없는 변태적인 놈 이라며 분개했다. 『노근리 그 후』 저자 또한 너무나 잔혹한 미군 범죄를 두고 인간은 없다 라고 표현했다. 불평등한 관계가 만든 당신들의 천국 저자는 미군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원인으로 한미 간의 불평등한 관계를 꼽았다. 미군에게 작전통제권이 있는 현실과 한미상호방위조약,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가 불평등을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이런 불평등으로 한국은 미군에게 당신들의 천국 이었다고 말한다. 이승만은 전쟁 후에도 측근들이 미군 범죄에 대해 보고하며 미군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했을 때 다음과 같이 주의를 주었다고 한다. 미국은 우리가 어려울 때 도와준 친구야. 우리가 위급할 때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미국뿐이야. 미국 군인의 비행이 신문에 나면 대미감정이 좋지 못해지니 되도록 신문에 보도되지 않고 처리하도록 해야 해. [김종오 『변질되어가는 한국현대사의 실상 상(上)』, 종소리, 1989, 229쪽)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그에 따른 불평등을 감수한 결과, 노근리 사건과 미군 범죄에 미온적으로 대응하게 되었음을 그대로 보여 주는 발언이다. 저자가 말한 불평등한 상황은 아직도 개선되지 않았다. 전시작전통제권은 환수되지 않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미SOFA가 불평등한 것도 여전하다. 그래서일까, 미군 범죄는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1967년 미군 범죄 발생 건수는 1710건이었다. 2024년 주한미군 범죄는 635건이었다. 범죄가 꽤 줄어든 것 같지만 그렇게만 볼 것도 아니다. 주한미군 병력이 1967년 5만 8000명에서 현재 2만 8000명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병력 대비 범죄 발생 비율을 따지면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올해 언론에 보도된 미군 범죄만 해도 여럿이다. 6월 8일 주한미군 4명이 이태원 거리에서 한국인 여성을 성희롱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미군은 항의하는 여성 일행을 폭행하고 싸움을 말리던 시민까지도 얼굴을 여러 차례 가격해 기절시켰다. 가해 미군은 미국 측에 인도되었다. 정확히 한 달 뒤인 7월 8일에도 비슷한 사건이 반복됐다. 만취한 미군 병사가 자신을 부축해 주려던 가게 점원을 폭행한 것이다. 이렇듯 『노근리 그 후』가 던진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노근리가 오늘에 던지는 경고 책 뒤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다.  어떤 명분이건 전쟁이 나고 외국군이 들어오면 또 우리 동네 사람들처럼 아무 이유 없이 당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이 노근리 생존자의 말은 결코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최근 전쟁이 벌어진 이란만 봐도 그렇다. 폭격으로 학교에 있던 어린이 등 17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실수는 누구나 한다 라며 책임을 외면했다. 노근리 생존자의 말 그대로 아무 이유 없이 당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노근리 그 후』는 국가와 군대가 외면했던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겼다는 데 커다란 가치가 있다. 이 책은 노근리 사건을 하나의 비극적인 예외로 다루지 않는다. 전쟁 중 민간인 학살과 전쟁 이후 반복된 주한미군 범죄를 하나의 역사적 흐름 속에 놓고, 불평등한 관계가 어떻게 평범한 사람들의 존엄을 무너뜨렸는지 묻는다. 국제적 대결과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지금, 평화와 주권,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묻는 『노근리 그 후』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묵직한 경고로 다가온다. 발간된 지 27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 책을 다시 꺼내 들게 되는 이유다.이형구 시민기자 9hk704@gmail.com


최근 3주간 링크를 확인한 사용자 수

검색 키워드


주소 : (12096) 경기도 남양주시 순화궁로 418 현대그리너리캠퍼스 B-02-19호
전화: +82-70-8692-0392
Email: help@treeple.net

© 2016~2026. TreepleN Co.,Ltd. All Right Reserved. / System Updated

회사소개 / 서비스소개 / 문의하기 /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