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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스토리의 차이, 정치인과 짐승의 차이
[사회혁신]
오동진 영화평론가 넷플릭스에 새로 공개된 벤 에플렉 감독, 주연의 스릴러 영화 은 소개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작품이다. 플롯이 복잡하고 따라서 이야기 전개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등장인물마다 사연과 약점을 지니고 있어 모두가 다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그 점을 하나하나 연결하면 영화의 모든 비밀을 다 알려주는 스포일러가 된다. 이 영화를 찾아볼 사람들에게 ‘예의’가 아닌 것이다. 다만 이 영화 이전에 일본의 거장 감독 구로자와 아키라가 1963년에 만든 영화 을 봤다면 이번 영화의 흐름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은 2025년, 그러니까 불과 1년 전에 미국 스파이크 리 감독이 같은 제목으로 리메이크했다. 이 영화는 또 다른 OTT 플랫폼인 ‘애플 티비(Apple TV+)’에 라는 제목으로 올라 있다. 이때는 댄젤 워싱턴이 주연으로 나왔다. 원작은 범죄 스릴러의 대가 에드 맥베인의 소설 『킹의 몸값』이었다.   원작 『킹의 몸값』에서 설정만 빌린 오리지널 시나리오 그렇다면 역시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이라거나 앞선 두 영화의 리메이크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서는 미묘한 해석 차이를 낳는다. 의 경우 원작에서 설정만 가져온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얘기는 ‘결’과 ‘흐름’을 크게 달리한다.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의 구성, 캐릭터와 행태들이 다 다르다. 을 리메이크보다 오리지널 시나리오 영화라고 하는 이유이고 그렇게 보는 게 더 타당해 보인다. 게다가 원작 『킹의 몸값』은 일종의 수사물 소설이다. 에드 맥베인은 현재 일반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TV 시리즈 같은 작품을 시초격으로 개발한 작가였다. 이 전작들에서 가져온 설정은 다음과 같다. 유명 인사(에서는 성공한 기업 사장, 에서는 영향력이 강한 음반 프로듀서이고 이번 에서는 LA 시장 후보)의 아들이 납치되는데 처음엔 그것 때문에 혼비백산하다가 납치범의 오인으로 집에서 일하는 일꾼의 아이가 대신 납치된 것을 알게 되자 주인공이 몸값 지불 여부를 놓고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다는 얘기이다. 이런 설정은 세 작품이 동일하다. 그러나 그것이 해결되는 과정은 아주 다르다. 은 납치범의 동기나 그가 주인공에게 가지고 있는 원한 같은 것이 중요하지 않다. 은 그보다 일련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추악성이 얼마나 깊고 큰 것인가를 보여주는데 더 주목한다. 매우 영화적이고 극적인 전개이고 그에 따른 결말이지만 우리 자신 역시 충분히 저럴 수 있을 것이라는 곤혹스러운 자각에 빠지게 한다. 영화의 결말에서 사건의 모든 과정은 은폐되고, 왜곡되며, 꾸며진다.   불법체류자 아이를 정치 거물 아이로 착각한 유괴범(들) 주인공 마크 킴벌(벤 에플렉)은 LA 시장 선거를 앞두고 있다. 그는 현재 상대 당 후보에게 4% 포인트 뒤지고 있으며 막판 스퍼트를 위해 선거 자금을 쏟아 부어야 할 처지다. 킴벌의 약세는 라틴계 유권자들 쪽이다. 그의 선거 참모인 샘(스티븐 연)은 마크의 저택을 담보로 잡자고 한다. 그러나 아내 애비게일, 곧 애비(케리 워싱턴)와 요즘 부부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은 마크는 마음이 꺼려진다. 그는 이래저래 아내 몰래 집 돈을 선거에 투입했으며 만약 이번에 시장에서 떨어지면 파산하게 된다. 참모 샘은 어떻게든 그를 ‘구워삶아’ 선거 자금을 마련하려고 한다. 아내 애비는 애비대로 비밀이 있다. 그녀는 심리상담가이고, 1년 전 여름에 UCLA 교수인 론(레이 피셔)을 만나 혼외관계에 빠져 있다. 킴벌 부부의 아들 데니(크리스토퍼 우들리)를 돌보는 유모이자 가정부 세실리아, 곧 세시(아드리아나 파스)도 멕시코에서 온 불법체류자 남자 라몬(루이스 헤라르도 멘데스)과 한창 열애 중이다. 그녀는 집주인인 애비에게 라몬의 취직을 부탁하려 애쓴다. 라몬은 멕시코에서 ‘카파타스(Capataz)’였다. 목장의 현장감독을 말하는 스페인어로, 그가 야생동물을 총으로 사냥하는데 능숙한 사람임을 가리킨다. (이 대목은 영화의 결론 부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라몬에게는 아들 헥터(제이콥 에스트라다)가 있으며 집주인 아들 데니와 같은 또래이다. 세시는 라몬 부자가 불법체류라는 약점 때문에 늘 전전긍긍이다. 아이의 유괴는 할로윈 거리 축제에 세시가 데니와 헥터 두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가 벌어진다. 아이 둘은 똑같이 닌자 거북이 캐릭터 복장과 가면을 쓰고 나간다. 납치범의 착각은 여기서 발생하는 것이다.   정치인의 결단에 중요한 건 진실일까, 이야기일까 유괴를 소재로 한 보통의 영화라면 과연 누가 이들 부부에게 원한을 갖고 있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역시 초반부에 이에 대해 약간의 ‘밑자락’을 깐다. 범인은 마크 킴벌이 과거 지방검사 시절 지지했던 환경법안 때문에 자신의 회사가 파산하고 그에 따라 집과 가족을 잃은 사람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영화는 마크 킴벌이 이 환경법안을 옹호하는 TV 인터뷰 장면을 살짝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 에서 아이 유괴 납치 자체는 이야기의 맥거핀(눈속임 장치)이다. 결국 이 영화가 하려는 얘기는 딴 데서 나온다. 처음에 아들 데니가 납치된 줄 알았다가 아이가 멀쩡하게 돌아왔고 곧이어 다른 아이가 대신 납치됐다는 것을 알게 된 킴벌 부부가 이제는 경찰에 신고할 생각을 하자 선거의 핵심 참모인 샘(스티븐 연)은 그렇게 되면 선거에서 지게 될 거라며 이렇게 말한다. 진실과 이야기는 별개죠. 진실은 진짜니까 설득력이 있고 압박을 받아도 헷갈리지 않아요. 진실과 이야기가 일치하면 좋지만 다르면 이야기가 우세하게 되죠.” 킴벌은 자신의 진실은 멕시코 불법체류자의 아들을 전 재산을 부어서 구해내는 것에 있다고 말하지만 샘은 이렇게 반박한다. 당신의 진실은 라틴계 지지율 2~3%가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같은 얘기 같지만, 사실은 다른 것이다. 마크 킴벌 부부는 아이를 구하려는 것인가, 지지율을 올리려는 것인가. 인간이냐 짐승이냐는 이 차이에서 벌어진다. 이 영화의 제목이 왜 인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의 핵심 주제는 바로 이 대화에 담겨 있다. 진실과 이야기의 차이.   인간과 짐승의 갈림길에 던져진 옵션들 샘의 주선으로 킴벌 부부는 미국 정가의 해결사 데일(질리언 앤더슨)을 소개받는다. 몸값 현금 7백만 달러라는 거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데일이란 정체불명의 여자는 수수료를 20% 요구한다. 그리고 세 가지 옵션을 제안한다. 첫째, 사건을 경찰에 가지고 간다. 둘째, 몸값을 주고 아이를 돌려받는다. 셋째, 납치범들을 처리한다. 경찰에 신고할 경우, 진실과 이야기 중 이야기가 우세해진다. 온갖 억측과 소문이 뒤따를 것이다. 예컨대 자신의 아이가 납치됐다고 생각했을 때는 신고를 안 하고, 가정부가 사귀는 남자의 아들이라는 걸 알게 된 후에야 신고한 이유에 대해 사람들의 비난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라틴계 사람들이다. 이러면 마크 킴벌은 선거에 진다. 반면 돈을 주고 아이를 데려오는 일은 정상적인 듯 보이지만 마크로서는 700만 달러, 거기다 수수료 140만을 더한 막대한 돈을 잃게 된다. 마크 킴벌이 선택하는 것은 세 번째다. 그리고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다. 영화의 결말은 지극히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꾸며지고 은폐된다. 진실과 스토리에서 결국 스토리가 이긴다. 근데 그건 현실 정치에서도 늘 그럴 것처럼 느껴진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유럽이나 정치와 선거가 얽혀 있는 모든 일에 있어 진실다운 것은 거의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은 모든 것이 어떻게 이야기를 꾸미느냐에 달려 있다는 차갑고도 참혹한 현실을 그린 작품이다. 정치와 정치인은 어쩌면 다 그럴 것이다. 추악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럼에도 일부는 진실할 것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 자체가 착시에 불과하다는 것을 난타하듯 직설하는 내용이다. 이건 그저 영화일 뿐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현실에서 다들 결국 저렇게 행동할 것이라는 인식을 준다. 일종의 비현실의 현실성이자 영화적 현실성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맘 편하게 정치인이란 다 저렇다” 치부해 버리는 건 어떨까 정치에 대해 피로도가 극심해진 요즘 같은 시대에 이 영화 은 혐오심을 부추기기보다는 정치와 정치적 인간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역설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정치인들이 짐승과 같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마치 기이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과 같다. 벤 에플렉과 맷 데이먼의 회사인 ‘아티스트 에쿼티’가 제작했으며 한국의 CJ가 대주주인 미국 영화사 ‘피프스 시즌’(FIFTH SEASON)이 투자했다. 재미있고 흥미로우며 지금의 우리 정치권을 돌아보게 한다. 그 점에서 의미‘까지’ 있는 영화이다. (사진 출처: 넷플릭스)오동진 ohdjin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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