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가 쏘아 올린 친일 청산 안한 대가 [뉴스] 우리가 청산해야 할 대상은 특정 가문의 후손이 아니라,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고 친일의 과거를 미화해온 사회의 태도다.
한 여배우의 증조부를 둘러싼 친일 논란이 뜨겁다. 당초에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이슈로 사라질 것이라 여겼으나, 미숙한 대응에 광복절이라는 시기적 의미까지 겹치면서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친일 반민족 행위에 대한 역사적 청산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대가는 때로는 이처럼 뜻밖의 방식으로 돌아온다. 시작은 미미해 보였던 논란이 시간이 흐르면서 거대한 ‘파묘’로 이어지고, 잊혀졌던 과거의 행적이 다시 세상 밖으로 끌려나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4대에 해당하는 후손에까지 선대의 친일 행적을 이유로 책임을 묻는 것은 민주주의와 법치의 원칙에 어긋난다. 혈연을 이유로 죄를 승계시키는 연좌제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으며, 친일 조상을 두었다는 사실만으로 후손의 삶과 사회적 활동까지 부당하게 재단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친일의 역사를 숨기거나 윤색하고, 선대의 과오를 축소하거나 포장하는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에 맡길 수 있을지언정, 명백한 친일 행적을 부정하거나 미화하는 것까지 ‘가족사’라는 이름으로 보호할 수는 없다.
실제로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가족사를 지닌 채 학계와 정계,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적지 않으며, 그 자체로 문제가 될 이유는 없다. 중요한 것은 선대의 행적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후손의 태도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 친일을 옹호하거나 왜곡된 역사관을 통해 선대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것은 엄연히 구분해야 한다.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밝힌 친일 반민족 행위자의 부당한 재산을 조사하고 환수하겠다는 방침 역시 이러한 역사적 정의의 연장선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환수한 재산을 독립유공자와 그 유가족을 예우하고 지원하는 데 온전히 사용하겠다는 취지 또한 마찬가지다.
해방 이후 80년이 넘도록 우리 사회에는 ‘독립운동을 한 집안은 3대가 망하고, 친일한 집안은 3대가 흥한다’는 자조가 남아 있다. 역사의 정의가 바로 서지 못한 사회에서 생겨난 씁쓸한 낙인이다.
이제는 이 오래된 전철을 끝내야 한다. 후손에게 조상의 죄를 물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역사의 과오까지 지워줄 수도 없다. 친일의 과거를 혈연의 굴레로 씌우는 것과, 친일의 역사를 미화하고 은폐하는 행위를 엄중하게 비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청산해야 할 대상은 특정 가문의 후손이 아니라,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고 친일의 과거를 미화해온 사회의 태도다. 그래야만 독립운동가의 후손에게 가난과 희생을 대물림했던 역사의 불공정도 비로소 끝낼 수 있다.홍순구 시민기자 dran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