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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미친 사람에게도 신의 몫 있다 토머스 스캐터굿

미친 사람에게도 신의 몫 있다 토머스 스캐터굿
[칼럼]
토머스 스캐터굿(Thomas Scattergood, 1748~1814)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럴 만하다. 그는 대통령도 아니고 장군도 아니며, 심지어 이름난 학자도 아니었다. 평생 가죽을 무두질해서 먹고산 미국 필라델피아의 퀘이커교도였다. 그런데 이 수수한 무두장이 한 사람이 없었더라면, 정신질환자를 사슬에 묶어 구경거리로 팔던 시대가 조금 더 오래 갔을지도 모른다.   토머스 스캐터굿(Thomas Scattergood (1748-1814) - Find a Grave Memorial) 여섯 살에 아버지를 잃은 소년 스캐터굿은 1748년 미국 뉴저지 벌링턴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고, 결혼한 첫 아내 엘리자베스 베이컨은 결혼 8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 뒤로 그는 평생 우울증에 시달렸고, 퀘이커들 사이에서 우울한 예언자 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별명치고는 꽤 노골적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우울한 남자가 훗날 자신과 똑같이 마음이 무너진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는 사실이다.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가장 잘 이해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인가 싶다. 1783년 그는 사라 호스킨스와 재혼했고, 퀘이커 목회자로 나서 미국 곳곳의 모임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1794년, 마흔여섯의 나이에 배를 타고 영국으로 건너가 6년을 눌러앉는다. 감옥과 학교, 고아원을 돌아다니며 설교하던 그가 우연히 들른 곳이 인생을 바꿔놓았다. 영국에서 만난 요양원 하나 1796년 요크에서 윌리엄 튜크(William Tuke, 1732~1822)라는 퀘이커 상인이 요양원 이라는 시설을 세웠다. 튜크가 이 일을 벌인 계기는 단순했다. 같은 퀘이커교도 여성 한 명이 요크의 정신병원에 갇혀 학대받다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당시 정신병원이란 곳은 환자를 사슬로 묶고, 돈을 받고 구경꾼들에게 구경시키는 곳이었다. 사람이 아니라 동물원의 전시품 취급을 받은 셈이다. 튜크는 이런 방식을 뒤엎어, 사슬 대신 대화와 노동과 휴식으로 환자를 대하는 시설을 만들었다. 나중에 이 방식은 도덕적 치료 로 불리게 된다. 스캐터굿은 1799년 이 요양원을 찾아가 서른 명 남짓한 환자들과 함께 조용히 앉아 있었다고 일기에 적었다. 눈물이 났다고도 썼다. 그는 이 모습에서 뭔가를 본 것이다. 미친 사람을 짐승 취급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돌볼 수 있다는 사실을.   윌리엄 튜크(위키피디아) 미친 것은 죄가 아니다 1800년 필라델피아로 돌아온 스캐터굿은 원래 학교 교사로 일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우울증과 알코올중독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자꾸 마주치면서 마음을 바꿨다. 1811년 그는 퀘이커 연례모임에 정신질환자를 위한 시설을 세우자는 제안서를 냈다. 근거는 신학적이면서도 단순했다. 모든 사람 안에는 신의 몫이 있으니, 광기도 노예제나 가난처럼 걷어내야 할 장애물이지 벌 받을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얼핏 종교적 수사처럼 들리지만,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주장이었다. 정신병은 신의 벌이거나 악마 들림이라 믿던 시대에, 이 무두장이는 그냥 아픈 것뿐 이라고 잘라 말한 셈이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에서는 필리프 피넬(Philippe Pinel, 1745~1826)이라는 의사가 파리의 정신병원에서 환자들 쇠사슬을 손수 풀어주고 있었다. 스캐터굿과 피넬은 서로 만난 적도 없고 종교도 신념의 배경도 전혀 달랐지만, 거의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면 병도 나아진다는 것. 가끔 역사는 서로 다른 대륙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생각을 떠올리게 만든다.   필리프 피넬(위키피디아) 병원 문은 못 보고 눈감다 1813년 필라델피아 연례모임은 마침내 위원회를 꾸려 병원 건립기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위원 중에는 스캐터굿 자신과 튜크의 손자인 새뮤얼 튜크(Samuel Tuke, 1784~1857)도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스캐터굿은 병원이 완공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1814년 장티푸스에 걸려 세상을 떠났고, 3년 뒤인 1817년에야 프렌즈 병원(Friends Hospital) 이 첫 환자를 받았다. 미국에서 이런 방식으로 세워진 최초의 정신병원이었다. 무두장이가 죽고 병원이 문을 연다. 이야기치고는 좀 허무하지만, 원래 씨 뿌리는 사람과 열매 따 먹는 사람은 다른 법이다. 스캐터굿의 이름은 지금도 이 병원재단과 관련단체에 남아 있다.   새뮤얼 튜크(위키피디아) 한국에서 정신을 놓은 건 누구인가 스캐터굿의 이야기를 오늘의 한국에 그대로 옮겨놓으면 뭐가 보일까. 한국에서는 여전히 정신병원 강제입원이 가족 간 재산 다툼이나 골칫거리 처리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멀쩡한 사람도 가족 서명 몇 개면 며칠 만에 병실에 갇힐 수 있다는 현실은, 사슬로 사람을 묶던 18세기와 방식만 다를 뿐 본질은 그리 멀지 않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정치의 언어다.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일당과 이를 옹호하는 이들 일부는 반대편을 두고 정신이 이상하다 , 제정신이 아니다 식의 표현을 서슴없이 쓴다. 상대의 주장을 논리로 반박하는 대신 정신상태를 문제 삼아 아예 대화 상대에서 지워버리는 방식이다. 이는 새로운 수법이 아니다. 소련은 체제에 반대하는 이들을 정신병원에 감금했고, 여러 권위주의 정권은 흔히 반대자를 미친 사람 으로 낙인찍어 그들의 말을 들을 필요조차 없게 만들었다. 스캐터굿이 필사적으로 주장했던 것은 정반대였다. 이성을 잃은 사람에게도 신의 몫이 있으니 함부로 재단하지 말라는 것. 오늘 한국사회가 정치적 반대자에게든, 실제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이웃에게든 이 무두장이의 말을 한 번쯤 곱씹어볼 이유는 충분하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순간, 그 사회는 이미 병들어 있다는 사실을 200년 전 우울한 예언자가 먼저 알고 있었으니까.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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