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수호해야 할 국회의장의 헌법 탈선 발언 [뉴스] 조정식 국회의장이 28일 현직 대통령의 연임 개헌 문제는 결국 주권자 국민의 선택”이라고 말한 것이 큰 파장을 불러왔다. 실언이나 부주의에서 비롯된 발언이라도 문제지만 그게 아니라면 87년 민주항쟁을 통해 성립된 헌법 정신을 정면으로 위협하는 것이다. 논란이 거세지자 조 의장 측은 원론적 입장을 밝힌 것 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더욱 분명한 해명과 입장 표명이 필요해 보인다.
조 의장의 발언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당시 대통령에게 효력이 없다 는 헌법 제128조의 정신을 거스르는 것이다. 이 조항은 단지 헌법 130개 조항 중 하나에 그치는 게 아니다. 이승만과 박정희 등의 오랜 독재를 겪으면서 장기 집권을 막고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뤄내기 위한 범국민적 합의의 산물로서 마련된 것이며, 그러므로 현행 헌법의 한 기원이며 그 정신을 집약한 조항이랄 수 있다. 독재자들이 권력 연장 야욕으로 헌법을 고쳐 임기를 늘렸던 비극적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도입한 헌정 수호의 안전장치 인 것이다.
이에 반하거나 벗어나는 것은 그같은 헌법 정신과 민의에 대한 위협이며 탈선이다. 페이스북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적잖은 이들이 조 의장의 발언을 맹렬히 규탄하고 나선 것은 이 헌법 조항을 도출해 낸 국민적 합의가 지금에도 여전히 굳건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조정식 국회의장이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취임 첫 기자 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6.7.28 [국회사진기자단]
한인섭 교수가 페이스북에 쓴 것처럼 1948년부터 1987년까지 사사오입 개헌 등 온갖 헌정 파괴의 교훈을 담아 1987년 주권자가 피와 땀과 눈물로 쟁취해 낸 특별한 조문이며, 이 조항 덕분에 장기집권의 불안을 덜고 여야 간 정권 교체의 가능성도 열리는 등 민주헌정 정착에 큰 기여를 했다 는 데 대해 대다수의 국민들이 폭넓게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제기되는 의문은 조 의장의 문제의 발언이 과연 작정한 것이었느냐, 아니면 단순 실언이었느냐는 것이다. 이 발언이 나오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의 부주의한 발언으로 볼 여지가 있긴 하다.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개헌 추진을 공식화하는 과정에서 ‘야권이 개헌을 반대하는 이유로 이 대통령 임기연장 문제가 거론된다’는 질문을 받고는 연임 개헌론을 꺼냈다가 이 발언을 하게 된 것이었다. 조 의장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개헌의 최종 관문은 국민투표이고, 헌법의 주인은 국민이니 무엇을 헌법에 담을지도 국민이 정하면 된다는 원론적 설명으로도 볼 수 있다. 조 의장은 ‘야권에서 현직 대통령 임기연장 개헌을 반대한다’는 물음엔 그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기에는 시기상조 아니냐”면서도 권력구조 개편 관련해 현직 대통령의 연임 개헌 문제 등등은 결국 주권자인 국민 여론과 국민 선택의 문제”라고 답했다. 그러나 조 의장이 놓친 것은 현직 대통령 연임 개헌 불가는 이미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여전히 확고하다는 것이다. 최소한 이것만큼은 국민의 선택을 구할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며, 그러므로 조 의장이 보였어야 할 반응은 ‘국민의 선택’과 같은 류의 말이 아니라 단호한 차단이었어야 했다.
자칫 누구보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지위에 있는 이가 헌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라는 의문까지 나올 수 있다. 헌법을 위반하고 불법계엄으로 국가 권력을 찬탈하려 했던 윤석열의 내란 기도를 시민들과 함께 막아내 그 존재 가치를 증명했던 국회의 수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점에서 조 의장의 발언은 더욱 충격파가 컸다. 개헌을 추진하는 조 의장이 지금 보여줘야 할 것은 개헌 이전에 ‘헌법 준수’에 대한 확고한 의지다.
지난 개헌절 때 강력한 개헌 의지를 밝혔던 조 의장은 이날 발언으로 스스로 개헌 동력을 상당한 정도로 떨어뜨린 결과가 됐다. 1987년 헌법체제에 대해서는 더욱 실질적이고 광범위한 민주주의 체제를 위해 고쳐야 한다는 여론이 오래 전부터 형성돼 있다. 개헌 논의는 무엇보다 국민 기본권 확장과 시대 변화에 부합하는 국가 체계 개편 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조 의장의 발언과 같은 사태로 개헌 논의가 출발에서부터 왜곡된다면 40년 만의 개헌 기회 자체가 좌초할 수도 있다.
이같은 상황들을 종합하자면 국회의장은 당장 문제의 발언을 명확하게 취소해야 마땅하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 는 식의 회피성 해명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의당이 성명에서 이를 애매한 발언으로 열어두는 것은 87년 헌법이 이룩한 민주주의적 성과와 민의에 대한 명백한 위협 이라고 지적했듯이 ‘애매한’ 태도로는 안 된다.
더욱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수상한 발언들이 다시는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다. 조 의장의 발언은 조원철 법제처장이 지난해 10월 이 대통령의 연임에 대해 국민이 결단할 문제 라고 했던 발언까지 환기시킨다. 10개월 간의 시차를 두고 나온 이들 발언이 연결돼 있다는 세간의 의혹이 커지지 않게 하려면 더욱 분명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조 의장이 두 달 전까지 이 대통령 정무특보였다는 점이 일으킬 수 있는 의구심과 겹쳐 자칫 ‘연임 개헌’론이 이 대통령 뜻으로 간주되지 않도록 하려면 더더욱 조 의장의 분명한 발언 철회와 해명, 사과가 필요하다.
이명재 에디터 promes6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