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 전수조사, 공공성 회복과 농지살림의 출발점 [뉴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14일 경남 함양군청에서 열린 함양군 이·통장 대표 농지 전수조사 현장 간담회 에 참석, 관계자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6.10.14. 연합뉴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농지 전수조사를 두고 말들이 많다. 논란이 된 것들 가운데는 꼼꼼히 살펴 보완해야 할 것들도 있고, 본질은 놓친 채 여론을 엉뚱한 방향으로 호도하는 것들도 적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시대 상황에 맞게 농지에 대한 인식도 변화해야 하고, 그 방향은 농지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확대하여 우리 농업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번 조사는 지난 2월 국무회의에서 나온 대통령의 농지 투기 조사 지시가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4월 농지 전수조사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5월부터 행정정보와 항공사진 등을 대조하는 기본조사를 실시했다. 8월부터는 투기 위험군과 추가 확인이 필요한 농지를 대상으로 현장 중심의 심층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1996년 농지법 시행 이후 취득한 농지를, 내년에는 그 이전에 취득한 농지를 대상으로 조사가 이루어질 계획이다.
농지 조사의 필요성은 분명하다. 정부는 투기성 농지 소유 및 이용을 바로잡고,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해 농지제도 개선에 활용하는 것을 이번 조사의 목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동안 농지에 대한 제도와 관리의 부실로 부재지주와 임차농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고, 농지 투기를 막고 농민의 권리를 보호하기도 어려웠다는 점에서 더 이상 이런 상태를 계속 방치해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정치권과 언론 문제 제기, 무책임한 정치공세도
그런데 농지 전수조사 계획이 발표되자 정치권은 물론 농업 현장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농지 투기 근절’이라는 정책 목표와 ‘실제 농사짓는 농민의 경작권과 생존권 보호’라는 현실적 요구 사이의 충돌이 확인되고 있다. 고령화, 상속, 관행적 임대차 등으로 농지 소유자와 실제 경작자가 다른 경우가 많은 것이 농촌 현실인데, 투기 근절을 앞세운 획일적인 단속이 오히려 농민의 영농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질병이나 상속 등으로 인한 개인 사정이나 관행적 임대차를 투기적 행위와 구분하지 않으면, 제재를 우려한 소유자의 계약 해지나 갱신 거절로 실제 농사짓던 사람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2024년 기준 전체 경지면적의 47.0%가 임차농지인 현실도 작용하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9월과 10월에 농지 전수조사 후속조치를 발표하면서 농업 현장의 우려를 달래고자 했다. 물론 투기와 중대한 불법 전용에는 엄정 대응 방침을 유지했다.
그런데 이번 조사를 둘러싼 정치권과 언론의 문제 제기는 아쉬운 점이 많다. 대통령의 지시로 충분한 준비와 소통 과정 없이 조사가 추진된다는 비판은 타당할 수 있다. 사실 이번 조사가 급하게 추진되는 과정에서 오해와 논란이 필요 이상으로 커졌고, 여론에 떠밀려 후속 조치를 내놓는 모습은 조사 자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게다가 이번 농지 조사가 투기 근절에 초점이 맞춰져 여론화된 점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준비 부족과 현장 혼란을 이유로 조사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고 조사 중단을 요구하거나, 농민을 농지에서 몰아내 태양광 사업에 활용하려 한다는 비판은 무책임한 정치적 공세에 가깝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어촌공사는 지난 11일 농지 전수조사에 대한 농업인들의 궁금증과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12일부터 농지 전수조사 상담센터 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경기도 파주시 일대 농지. 2026.10.11. 연합뉴스
농지 조사로 우리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
이번 논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은 전수조사가 농지의 공공성과 지속가능성 실현으로 이어져 한국 농업이 새롭게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위반 사례를 적발하고 제도적 허점을 보완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조사가 끝난 뒤에도 실제 농사짓는 사람은 물론 다음 세대까지 지속가능하게 농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생산 기반을 안정적으로 마련하는 방안이 계속 강구되어야 한다.
소유와 경작이 분리된 현실 충분히 살펴야
투기 억제와 경작권 보호는 함께 달성해야 할 목표다. 두 목표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소유와 경작이 분리된 현실을 제도가 충분히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에 따른 조치에는 실제 경작자의 존재와 계약 관계, 그 땅에 들인 노력과 시간까지 반영해야 한다.
정부도 임차농 보호 신고센터와 대체 농지 알선 등의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를 출발점으로 삼되, 다른 땅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같은 면적의 땅으로 농사를 옮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정부가 추진하는 농지의 규모화와 집적화 정책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농지 이전 과정에서 친환경 경작 등 지원 필요
농사를 위한 물리적 환경과 시설, 판로는 지역마다 다르다. 특히나 오랫동안 토양을 돌보며 쌓아 온 경험과 축적된 시간은 복제하기 어렵다. 친환경농지가 대표적이다. 화학물질 사용을 줄이고 토양을 관리해 온 과정과 결과는 단순한 면적 계산으로 대체할 수 없다. 농지를 옮기는 과정에서 인증 유지와 재취득에 필요한 조건을 다시 갖추는 데는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친환경 경작의 이력을 확인하고, 필요한 전환 기간과 소득 공백을 지원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농지 조사가 농지별 생산 환경과 조건에 대한 구체적 평가로 이어지고 농지 이전과 보전 과정에서 맞춤형 지원으로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지역별 사정도 함께 살펴야 한다. 개발 기대와 전용 압력이 큰 지역에서는 농업용 토지를 지키는 일이 시급하다. 반대로 경작자를 구하기 어려운 지역에서는 농지를 이용할 사람과 시설, 판로를 연결하는 일이 우선이다. 같은 휴경이라도 투기적 방치인지, 재해나 건강 문제 때문인지, 경작 여건이 나빠진 결과인지에 따라 대응이 달라야 한다. 모든 농지를 한 가지 처방으로 다룰 수는 없다. 그만큼 투기 근절을 넘어서 구체적이고 다각적인 농지 조사는 계속되어야 한다.
조사의 성과에 대한 평가 기준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적발 건수와 처분 면적뿐 아니라 임차농의 경작 지속, 장기계약의 확대, 유휴농지의 회복, 친환경농지로의 전환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농지의 공공성이란 이런 구체적인 현황 파악과 대책 마련을 통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지난 8일 농지 전수조사에서 투기 목적의 농지법 위반만 처분하고, 상속농지와 관행적 임대차 등 투기와 무관한 농지법 위반은 처분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경기도 고양 일대 농지. 2026.10.8. 연합뉴스
줄어드는 농지와 어긋난 제도를 바로잡아야
농지를 보존하고 지키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 농업의 기반 자체가 빠르게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방 직후만 해도 우리나라(남한) 국민 70% 이상이 농가에 속하고 국토의 20% 이상이 경작지인 농업사회였다. 80년이 지난 지금 농가인구는 전체 인구의 4% 안팎이고, 경지면적도 정점이던 1968년 이후 계속 감소해 현재 지적상 농지는 국토의 약 18.8%, 논과 밭으로 실제 이용되는 경지는 약 14.9%에 불과하다. 문제는 기후위기와 글로벌 식량공급망 불안이 심화되는 상황에서도 이런 감소 추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경작할 땅을 보전하는 문제와 그 땅을 이어서 가꿀 사람의 문제를 함께 풀어내는 것이 핵심 과제임이 분명하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자넌 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농지 전수조사 후속 조치와 제도 개혁 방향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정부는 특별조치법 제정을 통해 상속 농지와 고령농 보유 농지 등 5가지 유형을 현재 진행 중인 농지 전수 조사 처분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2026.10.8. 연합뉴스
경자유전 원칙, 현실변화에 맞춰 제도 손질해야
농지제도의 기본 원칙인 경자유전은 여전히 중요하다. 농사짓지 않는 사람이 토지를 투기 수단으로 삼고 농민의 노동과 삶을 좌우하는 구조는 막아야 한다. 문제는 헌법 제121조는 경자유전 실현을 위한 국가의 노력과 소작제도 금지를 규정하면서도, 생산성 향상과 합리적 이용, 불가피한 사정에 따른 임대차와 위탁경영을 법률에 따라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에 맞게 헌법을 포함한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
소유 여부나 형식적인 자경만으로 농지를 제대로 관리하기 어렵다. 농지를 살 자금이 없는 청년에게는 안정적인 임차가 농업에 들어가는 통로가 된다. 농사를 줄이려는 고령농에게는 믿고 땅을 맡길 상대가 필요하다. 농민의 소유 기회를 넓히는 정책과, 소유하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경작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농지의 집적화도 세심히 살펴야 한다. 기계화와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혜택이 기존 대규모 농가에 집중되면 신규 농업인의 진입은 어려워질 수 있다. 규모화 자체의 찬반보다 확보한 농지가 누구에게 어떤 조건으로 배분되는지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
고령농의 노후 문제도 제도를 통해 종합적으로 풀어야 한다. 농지에 생애 자산이 묶여 있는 농민에게 땅값과 임대수입은 생활 문제와 직결된다. 그렇다고 개발 기대에 따른 가격 상승에 노후를 맡겨두면 새로 농사짓는 사람의 진입 비용은 높아진다. 필요한 것은 고령농의 생활과 은퇴를 지원하면서 농지가 다음 경작자에게 이어지게 하는 장치다. 개발 기대이익을 공적으로 보장하는 일과 농민의 노후를 보장하는 일은 구별해야 한다.
농지 보전과 이용, 농민의 생활을 따로 다루던 제도들을 종합적으로 연결하는 일은 농지 보전과 확대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 여기에 더해 농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농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참여가 중요하다. 농업 기반 자체가 빠르게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농지의 공공성과 지속가능성은 농지 문제를 국민 전체 과제로 자리잡게 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수입 농산물이 식탁과 생활 물가에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가운데, 도시 소비자들이 자신의 농산물 이용이 농지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농지 살림에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9월 30일 충북 충주시 하나로마트 탄금점에서 지역 농민들과 농지 전수조사와 관련한 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6.9.30. 연합뉴스
한살림의 농지살림운동 경험이 보여주는 가능성과 과제
이런 문제를 생산자와 소비자의 협력으로 풀어보려 한 사례로 한살림의 농지살림운동이 있다. 한살림은 생산자가 좋은 먹거리를 책임 있게 생산하고 소비자가 그 생산을 꾸준한 이용으로 뒷받침하는 관계를 만들어 왔다. 올해 창립 40주년을 맞은 한살림에는 약 100만 세대의 소비자 조합원이 함께하고 있다. ‘생산과 소비는 하나’라는 원칙을 가지고 도농직거래에 기반한 생활협동조합을 이끌어오고 있는 한살림은 먹거리로 맺어진 관계를 씨앗과 농지, 농민의 삶을 함께 지키는 일로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살림에서도 생산자의 고령화 속에서 오랫동안 가꾼 친환경농지가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었다. 생산자가 은퇴한 뒤에도 토양 관리와 친환경 경작이 이어지려면, 개별 농가의 상속이나 매매에만 맡겨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땅을 공동으로 확보하고 새로운 경작자와 연결하려는 구상은 이런 필요에서 출발했다. 여기에는 생산자 의식조사 결과도 참고가 되었는데, 2014년 조사에서 은퇴 후 농사를 물려줄 후계자가 ‘없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 생산자 회원의 2/3 수준(64.7%)이었다.
결국 한살림은 생산자 고령화와 후계자 부재로 외부인에 매각시 관행필지로 전환되어 유기농지가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고, 공유 농지 확보를 통해 임차농 생산자와 귀농자들이 안정적으로 생산활동에 함께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농지살림운동’을 전개하기로 의견을 모았고, 논의 과정을 거쳐 2016년에 ‘농업회사법인 농지살림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헌법의 경자유전 원칙에 따라 농지 취득 자격 요건이 엄격한 상황에서 농민 생산자와 도시 소비자가 공동으로 자금을 모아 농지를 취득하고 운영 과정에 공동으로 참여할 수 있는 조직체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농지살림운동의 첫 사업은 출자 및 후원자 모집을 통해 괴산에 있는 우리씨앗살림농장 인근 농지를 매입하는 일이었다. 한살림이 2026년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씨앗살림농장은 초기 60여 종에서 300여 종으로 토박이씨앗 보전과 재배 범위를 넓혀 왔다. 매년 500여 건의 씨앗 나눔과 손 모내기 및 벼베기 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함께 귀농인의 집 운영도 이어가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들의 협력적 관계를 통해 함께 마련한 농지를 매개로 공공성을 높여가는 의미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경험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농민이 안정적으로 경작할 땅을 확보하고, 소비자가 생산을 지지하며, 씨앗과 땅, 농사 지식이 이어질 때 공동 확보한 농지의 가치도 커진다는 점이다. 생산물의 판로가 불안한 채 땅만 마련하거나, 다음 경작자가 없는 상태에서 소유만 공동화해서는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농지를 확보하는 일과 그곳에서 농사가 계속되게 하려면 생산자와 소비자의 긴밀한 협력과 연대가 중요하다.
다만 이러한 활동이 더 넓게 확산하려면 자발적 모금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 현재 한살림의 농지살림운동은 목표한 만큼 활동이 활발하지 못하다. 내부적 요인도 있지만, 제도적 기반 부족과 농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부족은 풀어야 할 과제다. 우리 현실에서 자발적 모금으로 확보가능한 농지 규모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매입 대상 농지가 나타나야 모금운동을 전개하는 방식으로는 계획을 갖고 운동을 지속시키기 쉽지 않다. 하지만 농지살림의 필요성은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커지고 있다. 획기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농지를 매개로 한 시민의 공익적 참여가 충분히 보장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조국혁신당 신장식 당 대표가 9월 30일 당 민생기병대가 국회에서 농지제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를 주제로 개최한 농지전수 조사 긴급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6.9.30. 연합뉴스
농지의 공공성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 필요
농지의 공공성과 관련해 농지법 제3조도 농지를 식량 공급과 국토환경 보전에 필요한 한정된 자원으로 보고, 공공복리에 맞게 관리하며,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기후재난과 공급망 불안이 생산과 수입의 안정성을 흔드는 시대에 공공성 원칙은 더욱 중요해졌다. 농지가 훼손되면 생산 기반이 줄고 도시민의 먹거리와 생활 물가, 재난 대응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소유권과 재산권을 둘러싼 갈등을 넘어, 농지를 개인의 재산이자 사회 전체의 생존을 떠받치는 공적 자원으로 인식해야 한다.
농지의 가치는 식량 생산에만 있지 않다. 유엔식량농업기구가 설명하듯 토양은 물과 양분의 순환, 기후 조절, 생물다양성, 탄소의 저장과 방출에 관여한다. 건강한 토양과 주변 식생은 기후 재난의 충격을 줄이고 생산과 생활의 회복을 돕는다. 다만 농업 활동에서도 메탄이 발생하고, 비료와 농약의 과도한 사용은 물과 토양에 부담을 준다. 농지 보전과 함께 토양 관리, 적정한 비료 사용, 물 절약, 서식처 보전 등 생태적 전환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이러한 과정에서 공익적 가치를 보전하는 비용과 책임은 사회가 함께 나눠야 한다.
농지의 공공성 실현을 위한 방안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검토될 수 있다.
첫째, 농지 보전 목표를 국가의 기후·식량 계획과 연결해야 한다. 개발에 따른 자산 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가 농지 이용을 좌우하는 상황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기후재난에 대비한 식량자급과 생태적 완충 기능을 함께 고려해 농지 보전 목표를 세우고, 이를 뒷받침할 농지의 생태적 관리와 이용을 지원해야 한다. 농지의 면적을 확보하는 일과 그 땅의 생산력·생태적 기능을 유지하는 일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다양한 주체가 참여할 수 있는 구조와 제도적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 임차농·청년농·귀농자와 도시 소비자가 출자·모금·기증·기부·회비 납부 등 재정 마련과 함께 우리 농산물 이용, 도농교류, 조직 운영 등 다양한 분야에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참여는 농업 현실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지속적인 협력을 뒷받침한다. 다만 법정 범위에서 비농업인의 출자가 가능한 농업회사법인도 농지 취득·이용과 사업범위의 제한을 받는다. 일반 재단이나 소비자협동조합이 공익 목적을 내세워도 농지를 자유롭게 취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농지와 관련해 공공성을 원칙으로 소유와 이용, 운영에 대한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에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셋째, 공공재정과 시민의 참여를 연결해 지속적인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공공임대용 농지매입 예산을 더욱 확대하고 농지은행의 공공매입·장기임대가 현장에서 실효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 한살림 같은 생협은 연차별 목표를 세워 생협과 생산자 조직의 잉여금 일부를 농지살림기금으로 적립할 수 있다. 조합원의 동의를 얻어 일부 물품가격에 목적기금을 반영하면 일상적인 이용도 농지살림으로 이어질 수 있다.
넷째, 농민의 생활 보장과 안정적인 판로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 평생 형성한 자산의 상당 부분이 농지에 묶여 있는 농민에게 땅값과 임대수입은 노후 문제와 직결된다. 농민기본소득과 돌봄 확대 등으로 농민 생활 지원이 확대되어야 노후를 땅값 상승에 의존하는 구조도 바꿀 수 있다. 농사를 계속하는 생산자에게는 예측 가능한 판로가 장기적인 토양 관리와 작물 전환을 시도할 기반이 된다. 도농 직거래와 생협의 역할을 넓히고 학교·공공기관·복지시설의 공공급식으로 연결해야 한다. 특히 생협을 통해 도시 소비자의 조직화된 힘이 생산과 유통을 뒷받침할 때 농지살림은 농업살림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농지 매입과 운영의 투명성, 이용의 공공성을 보장해야 한다. 농지살림운동이 특정 조직의 자산을 늘리는 사업으로 흐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공공성은 소유 주체의 이름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매입 기준과 자금 사용, 농지 배분에 관한 정보를 공개해 참여자들이 운영을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농민의 경영 자율성과 의사결정 참여, 감당 가능한 임대료를 보장하고 생태적 관리 의무를 명확히 해야 한다. 공익 목적으로 모은 자산이 사적 이익으로 바뀌지 않도록 처분 및 배당을 제한하고 해산 시 재산 귀속도 정해야 한다.
농지살림을 농업의 미래 지키는 사회적 약속으로
농지는 농민의 삶터만도, 토지 소유자의 재산만도 아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먹거리가 생산되는 기반이자 토양과 물, 생물다양성을 지키고 기후위기와 식량위기에 대응하는 사회 전체의 자산이다. 농지에는 현재의 소유자와 경작자뿐 아니라 오랫동안 땅을 일구어 온 사람들의 노동과 경험, 그곳에서 살아가는 생물, 농지에서 생산되는 먹거리에 의존하는 시민들, 그리고 미래세대의 삶까지 연결되어 있다. 농지살림운동은 바로 이러한 관계에 사회적 책임을 부여하는 일이다. 이를 위한 비용과 위험을 사회 전체가 함께 나누고, 토양과 씨앗, 농사 지식이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후위기와 식량위기의 시대에 농지를 지켜야 하는 이유다.
따라서 농지를 지키는 일을 농민에게만 맡길 수 없다. 농민에게는 안정적으로 농사를 계속할 수 있는 조건을, 시민에게는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먹거리를, 다음 세대에게는 다시 농사지을 수 있는 생산 기반을 남기는 일을 공동의 사회적 과제로 만들어야 한다.
당연히 농지살림운동도 사회 전체의 운동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 출발점은 지역마다 지켜야 할 농지와 계속 농사를 짓고자 하는 사람을 찾아 연결하는 일이다. 농지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존 경작자의 경작권을 보장하고 청년농과 귀농인의 진입 기회를 넓히며, 농사에 필요한 시설과 주거, 판로까지 함께 마련해야 한다. 특히 오랫동안 토양을 가꾸어 온 친환경농지와 지역의 생산 기반은 단순히 다른 농지로 대체할 수 없는 만큼, 그동안 축적된 농사의 시간과 경험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와 지방정부의 정책적·재정적 뒷받침도 필수적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농지 전수조사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여러 논란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사를 통해 농지가 사회적 관심사로 등장한 점은 중요하다. 다만 조사가 투기성 농지와 불법 이용을 적발하는 데서 끝난다면 그 효과는 제한적이다. 누가 농지를 소유하고 실제로 경작하는지, 어떤 농지가 방치되거나 개발 압력에 놓여 있는지, 어느 지역에서 새로운 경작자가 필요한지를 지속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나아가 농지의 소유와 이용 여부뿐 아니라 토양과 수자원, 기후재난 위험, 생태적 가치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그래야 어떤 농지를 우선적으로 보전할지, 어느 곳에 생태적 회복이 필요한지, 어떤 지역에 새로운 농업인을 연결해야 할지 판단할 수 있다. 농지 전수조사를 단속을 위한 일회성 사업이 아니라 농지의 공공성과 지속가능성을 회복하는 전환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정규호 생명학연구회 부회장, 녹색국가 저자
결국 농지를 살리는 일을 농업을 살리고 우리의 삶과 미래를 지키는 사회적 약속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그 시작은 농지를 부동산이나 개인의 자산으로만 바라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국민의 먹거리와 생태적 안전, 미래세대의 삶을 떠받치는 공공적 자원으로 바라보는 일부터다. 이러한 인식 전환이 정책과 제도로 이어지고 농민·소비자·시민·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때, 농지살림운동은 개별 조직의 활동을 넘어 한국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사회적 실천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정규호 생명학연구회 부회장 ecosociet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