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일만에 쓴 포사이스 자칼의 날 , 계엄 6시간 비추다 [사회혁신] 월세가 만든 소설
프레더릭 포사이스(Frederick Forsyth, 1938~2025)는 영국 켄트주 애슈퍼드에서 태어났다. 공군 조종사를 거쳐 기자가 되었고, 로이터통신과 BBC에서 외신기자로 일했다. 파리에서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1890~1970) 대통령 암살미수 사건을 취재한 경험은 훗날 그의 대표작이 된다.
그런데 그를 소설가로 만든 직접적인 동기는 문학적 야심이 아니었다. 1969년 나이지리아 내전인 비아프라 전쟁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돈도 일자리도 없는 처지가 됐다. 포사이스는 1970년, 런던에서 빈털터리가 된 31세 기자였다. 그는 돈을 빨리 벌기 위해 소설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단 35일 동안 밤낮으로 타자기를 두드려 『자칼의 날(The Day of the Jackal)』을 완성했다. 문학적 영감보다 월세가 급했던 셈이다.
소설은 프랑스 극우 비밀조직 OAS(Organisation armée secrète)가 영국인 전문암살자를 고용해 드골을 죽이려는 이야기다. 배경에는 1962년 파리근교에서 실제로 벌어진 드골 암살미수 사건이 있다. 포사이스는 당시 현장을 취재했고, 자신의 경험과 조사자료를 소설의 뼈대로 삼았다.
1972년의 포사이스. 비아프라 전쟁 당시 자신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총알을 보여주고 있다(위키피디아)
결말을 알아도 손을 놓을 수 없는 이유
독자는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 드골은 암살되지 않았다. 1970년 자연사했다. 그런데도 책장이 넘어간다. 포사이스가 사건의 결과보다 사건이 움직이는 과정을 집요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위조신분증을 만들고, 무기를 구하고, 호텔을 예약하고, 경찰이 단서를 하나씩 좁혀가는 과정이 마치 실제 수사기록처럼 펼쳐진다.
이것이 포사이스가 스릴러에 가져온 변화였다. 상상으로 그럴듯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자처럼 조사해 실제처럼 만드는 것. 그의 소설은 허구이면서도 다큐멘터리처럼 읽혔다. 『자칼의 날』은 1971년 출간됐고 곧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의 작품들은 모두 7000만 부 이상 팔렸다.
재미있는 현실의 후일담도 있다. 1975년 베네수엘라 출신 국제 테러리스트 일리치 라미레스 산체스(Ilich Ramírez Sánchez, 1949~)가 런던에서 숨어 지내던 아파트에서 『자칼의 날』이 발견되자 한 기자가 그에게 ‘자칼’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다만 나중에 그 책은 라미레스 산체스의 소유가 아니라 다른 거주자의 책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소설 속 별명이 현실의 테러리스트에게 붙어버린 것이다.
일리치 라미레스 산체스 1973년경(위키피디아)
기자가 전쟁터에서 배운 것
포사이스의 소설이 유난히 사실적인 이유는 기자 시절의 경험 때문이다. 1967년 나이지리아에서 비아프라가 분리 독립을 선언하면서 내전이 시작됐다. 포사이스는 BBC 특파원으로 현장을 취재했고, 굶주림과 민간인의 참상을 직접 목격했다. BBC와 갈등을 빚은 그는 회사를 떠나 프리랜서로 현장에 남았다. 1969년에는 비아프라 전쟁을 다룬 『비아프라 이야기(The Biafra Story)』를 펴냈다.
훗날 그는 당시 영국 정보기관 MI6와도 관계를 맺었다고 털어놓았다. 2015년 자서전에서 1968년부터 20년 넘게 MI6에 정보를 제공했으며, 돈을 받지 않은 활동이었다고 밝혔다. 기자와 정보원의 경계가 그의 삶에서는 생각보다 흐릿했다.
2003년의 포사이스(위키피디아)
소설과 현실의 위험한 경계
1972년 『오데사 파일(The Odessa File)』은 나치전범을 추적하는 이야기였고, 1974년 『전쟁의 개들(The Dogs of War)』은 아프리카의 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쿠데타를 다뤘다.
그런데 『전쟁의 개들』에는 더욱 기묘한 현실이 따라붙었다. 포사이스는 이 소설을 준비하던 시기인 1973년 적도기니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Francisco Macías Nguema, 1924~1979)를 몰아내려는 쿠데타 계획과 접촉했다. 영국 정부문서가 공개된 뒤 이 사건과 포사이스의 관계가 드러났고, 포사이스 자신도 훗날 관련자들에게 정보를 얻기 위해 돈을 지급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자신이 쿠데타를 조직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소설을 쓰기 위해 현실의 쿠데타를 조사한 것인지, 현실의 쿠데타 경험을 소설로 옮긴 것인지 경계가 모호해진다.
1968년의 마시아스 응게마(위키피디아)
빛과 그늘
포사이스는 1997년 대영제국 훈장 가운데 셋째 등급인 지휘관장 CBE (Command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를 받았고, 보수적 정치관을 숨기지 않았다. 브렉시트에도 찬성했다. 그의 작품에는 군대와 정보기관을 유능한 질서의 수호자로 묘사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공로 하나는 분명하다. 현대사의 복잡한 사건을 대중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전쟁, 정보기관, 테러, 쿠데타, 전범추적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재미있는 서사 속에 집어넣었다. 그래서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역사를 배우게 된다.
프레더릭 포사이스(Frederick Forsyth, Master of the Geopolitical Thriller, Dies at 86 - The New York Times)
한국에서 다시 읽는 『자칼의 날』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이 저지른 비상계엄의 밤을 떠올리면 포사이스의 소설이 묘하게 겹쳐 보인다. 소설 속 암살자는 가짜신분 하나를 만들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한다. 경찰은 작은 단서 하나를 놓치지 않고 추적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벌어진 비상계엄은 불과 여섯 시간 남짓 만에 무너졌다. 현실이 오히려 소설보다 허술했던 셈이다. 여기서 세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기록이다. 포사이스는 기자처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정치적 사건도 마찬가지다. 소문이나 정치적 주장보다 수사기록, 재판기록, 군과 정부의 문서, 당사자들의 증언을 남기는 일이 중요하다.
둘째, 정보기관과 권력의 거리다. 포사이스의 삶은 기자와 정보기관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위험하게 흐려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정보기관과 군 정보조직은 권력자의 사적목적에 동원되지 않도록 법과 감시를 통해 묶어놓아야 한다.
셋째, 끝까지 추적하는 사람이다. 『자칼의 날』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영웅적인 총잡이가 아니다. 서류를 뒤지고 사람을 찾아다니며 작은 단서를 이어 붙이는 형사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사건은 흐려지고 책임은 서로에게 떠넘겨진다. 그래서 기록하고 추적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반헌법행위자의 행적을 찾아 기록하는 일도 결국 같은 작업이다.
포사이스는 빈털터리가 된 기자가 35일 동안 써 내려간 소설 한 권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됐다. 그러나 그보다 오래 남는 것은 소설의 기술이 아니라 그가 보여준 한 가지 원칙인지도 모른다. 권력의 거대한 이야기도 결국 작은 사실들의 집합이라는 것. 그래서 역사의 진실은 총보다 기록에 오래 남는다.
프레더릭 포사이스(Frederick Forsyth, Day of the Jackal author and former MI6 agent, dies aged 86 | Frederick Forsyth | The Guardian)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