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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 권력을 웃음거리 만든 아서 시모어 설리번
[사람들]
영국 빅토리아 시대 런던, 해군제독도 경찰청장도 상원의원도 무대 위에서 웃음거리가 되는 걸 막지 못했다. 노래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 노래를 쓴 사람이 아서 시모어 설리번(Arthur Seymour Sullivan, 1842~1900)이다.   1888년의 설리번(위키피디아) 밴드마스터 아들, 왕실 예배당에서 시작하다 설리번은 런던 램버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군악대 지휘자였고, 여덟 살 무렵 이미 악단의 거의 모든 악기를 다룰 줄 알았다. 그는 왕실예배당 소년합창단을 거쳐 왕립음악원에서 공부했고, 이어 독일 라이프치히로 유학을 떠났다. 스물한 살에 셰익스피어 『태풍』을 관현악곡으로 써서 단숨에 영국에서 가장 촉망받는 젊은 작곡가로 떠올랐다. 본인은 평생 진지한 예술음악 작곡가로 기억되고 싶어 했다. 찬송가 믿는 사람들은 주의 군대니 나 가곡 잃어버린 화음  같은 작품이 그 증거다. 하지만 역사는 그를 전혀 다른 이름으로 기억한다.   채플 로열(Chapel Royal)의 성가대원이었던 설리번 초상화(위키피디아) 언어의 마술사를 만나다 1871년, 극작가 윌리엄 슈웽크 길버트(William Schwenck Gilbert, 1836~1911)와 처음으로 손을 잡고 무대극 한 편을 만들었다. 둘을 엮어준 사람은 흥행사 리처드 도일리 카트(Richard D Oyly Carte, 1844~1901)다. 카트는 프랑스산 야한 무대극이 런던을 휩쓸던 시절,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순수한 영국식 희극 노래극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렇게 길버트의 날카로운 대사와 설리번의 유려한 선율이 만나 25년 동안 14편의 작품을 함께 쓴다. 군함 피나포어 , 펜잔스의 해적 , 그리고 가장 유명한 미카도 가 이 협업의 결실이다. 카트는 런던 최초로 전깃불을 밝힌 사보이 극장까지 지어 이들의 무대를 받쳐 주었다.   왕립음악원 제복을 입은 16세의 설리번(위키피디아) 웃음 뒤에 감춘 날카로운 칼 이 작품들의 진짜 무서운 점은 겉으로는 유쾌한 노래극인데, 속을 들여다보면 당대 권력기관을 통째로 조롱했다는 사실이다. 군함 피나포어 는 아무 경험도 없이 정치적 연줄만으로 해군 제독 자리에 오른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워 영국 해군 지휘부를 비꼬았다. 펜잔스의 해적 에서는 겁 많고 무능한 경찰들이 노래를 부르며 우왕좌왕하는 장면으로 치안조직을 비웃었다. 이올란테 는 상원을 통째로 무대에 세워 놓고, 능력도 없이 태생만으로 자리를 차지한 귀족들을 정면으로 겨눴다. 심지어 당시 오스카 와일드 같은 인물들이 이끌고 유행하던 예술지상주의 운동까지 놀림감으로 삼았다. 그런데도 검열에 걸리지 않았다. 너무 재미있고,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조롱당한 당사자들조차 극장에 앉아 함께 웃었다.   1879년경 지휘자로서의 설리번을 묘사한 캐리커처위키피디아) 카펫을 둘러싼 전쟁 그러나 이 환상의 협업도 돈 문제 앞에서 무너졌다. 1890년, 카트가 사보이 극장 로비에 새 카펫을 깔면서 그 비용을 세 사람의 공동수익에서 슬쩍 끌어다 쓴 사실이 드러났다. 길버트가 이를 문제 삼으면서 세 사람은 법정소송까지 벌였다. 세상을 향해 위선과 허영을 그토록 예리하게 풍자하던 두 사람이, 정작 자기들끼리는 카펫 한 장 값으로 등을 돌린 셈이다. 관계는 회복되지 못한 채 이후로도 몇 작품을 더 함께 냈지만 예전 같은 온기는 없었다. 신장염을 오래 앓던 설리번은 1900년 심장이 멎어 눈을 감았다. 향년 58세였다.   런던 국립 초상화 미술관 소장, 1888년 밀레이가 그린 설리번 초상화(위키피디아) 한국에다 대입해보면 설리번과 길버트가 보여준 건 단순한 교훈이다. 정면으로 권력을 향해 삿대질하면 검열과 탄압이 따라오지만, 노래와 웃음에 실어 보내면 권력자 스스로 극장표를 사서 조롱을 감상하러 온다는 것이다.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의 계엄이 선포됐을 때,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이 응원봉을 흔들고 아이돌 노래를 개사해 부르며 저항한 장면이 세계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이유도 비슷하다. 무겁고 엄숙한 구호보다 흥겨운 노래와 유머가 더 멀리, 더 깊이 퍼진다. 풍자는 두려움을 마비시키고, 함께 웃는 사람들 사이에 연대를 만든다. 동시에 사보이 극장의 카펫 소동도 곱씹을 만하다. 거대한 권력을 상대로는 그토록 예리했던 두 사람이 정작 작은 이익 앞에서는 동지끼리 갈라섰다. 한국의 시민사회와 개혁진영에서도 낯익은 풍경이다. 바깥의 거대한 부정에는 하나로 뭉치다가도, 작은 자리와 몫을 둘러싼 다툼으로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를 자주 본다. 설리번의 이야기가 남기는 건 결국 이것이다. 권력을 웃음으로 무장해제 시키는 재능만큼이나, 그 웃음을 만든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지키는 일도 어렵고 소중하다는 것.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130여 년 전 런던 사보이 극장 무대에 오른 조롱은 지금도 웃음 속에서 살아 남아 있다.   아서 설리번 기념비, 영국 런던 빅토리아 엠뱅크먼트 가든(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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