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밭을 어지럽히며 걷지 말라 청년정치에 던지는 의미 [칼럼] 7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 사고조사 과정 및 결과 정보공개청구 유가족 기자회견에서 HL만도 평택공장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승모 씨의 유족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9.7
오늘도 수많은 청년이 취업과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한다. 학자금 대출을 갚고 월세를 감당하며, 불안정한 일자리 속에서 내일을 걱정한다. 중소기업에서 낮은 임금을 견디고, 위험한 공장에서 안전을 걱정하며 일하는 청년도 있다. 이들에게 ‘청년’은 치열한 생존이자 고단한 현실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청년은 활용할 수 있는 자격이다. 현장경험과 전문성은 배제한 채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배려받아 과분한 기회를 얻어, 경력을 쌓고, 정치권으로 진출하는 이들에게 청년은 정계 진출을 위한 스펙이자 신분 상승의 명분으로 기능한다. 비슷한 세대가 청년을 팔아 자신의 입신양명만 노리는 것이다.
정작 열심히 일하는 청년에게는 닿지 않는 기회가 청년을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일부에게는 연이어 주어지는 것처럼 보인다면, 이쯤에서 물어야 한다. 그들은 청년을 대표하는가, 아니면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대표하고 자신의 이익을 강하게 추구하는가.
청년정책 거버넌스와 시민사회는 청년의 목소리를 제도에 반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소수 기득권들이 자신들끼리 만든 청년단체의 임원 경력을 바탕으로 각종 위원회에서 청년할당을 통해 자리를 차지하고, 위탁을 받으며, 공공사업의 주요 자리를 거치고, 그 이력을 국회 보좌진 취업과 국회 비례대표 및 지방의원 출마, 공공기관 임원 등으로 이어간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청년단체 대표에서 청년센터 운영 책임자로, 다시 정치권과 공공부문으로 이어지는 경력의 사다리다. 청년활동이 공익을 위한 참여가 아니라 내부 인맥을 통한 자리의 순환으로 변질된다면, 그것은 참여 민주주의가 아니라 ‘대표 자리 돌려막기’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들이 말하는 청년의 범위다. 고졸 청년, 장애인 청년, 다문화 청년, 탈북민 청년의 목소리는 그들의 대표성 안에 얼마나 담겨 있는가. 그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한 적이 있는가. 중소기업과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청년, 산업재해 위험을 감수하며 생산 현장을 지키는 청년, 생계를 위해 여러 일을 병행하는 청년은 청년정책의 설계와 배분 과정에서 얼마나 발언권을 갖는가.
다양한 청년을 위한다는 구호는 넘쳐나지만, 정작 자신이 차지한 자리를 다른 청년에게 양보하거나 새로운 진입 경로를 열어주는 모습은 얼마나 찾아볼 수 있는가. 청년이라는 공통점만으로 청년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다.
이러한 구조는 기성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맞물린다. 정당은 청년 인재를 영입해 세대교체와 청년 소통이라는 명분을 얻고, 일부 활동가는 청년 대표라는 이력을 발판으로 권력의 핵심부에 진입한다. 서로의 필요가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이 문제는 어느 한 정당이나 특정 단체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청년조직의 경력이 정치권 진입과 공적 직위 확보에 유리한 경로로 작동하고, 그 과정에서 선발 기준과 경쟁의 공정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는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청년정치의 문제를 특정 정당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다. 어느 당에 속했는지가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기회를 얻었는지, 그 기회를 통해 무엇을 바꾸었는지, 다른 청년에게도 참여의 문을 열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정당의 색깔이 달라도 청년을 대표한다는 명분이 내부 인맥과 경력의 순환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데이터처의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8월 15세 이상 취업자는 2915만1000명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18만4000명 증가했다. 다만 청년층 취업자는 14만3000명 줄며 46개월째 감소세를이어갔다. 사진은 9일 서울의 한 대학 일자리플러스센터 모습. 2026.9.9. 연합뉴스
청년정치의 문턱을 낮추는 것과 특정한 경력 경로를 사실상 유리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참여할 기회는 넓히되, 공적 직위와 위원회 선임에는 투명한 기준과 책임 있는 검증이 따라야 한다. 청년이라는 이유로 배제되어서도 안 되지만, 청년이라는 이유만으로 검증에서 예외가 되어서도 안 된다.
청년을 위한 정책의 성과보다 젊은 얼굴과 그럴듯한 이력이 앞서면, 청년은 기성 정치권의 구색 맞추기용 소모품으로 전락한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주변에서 경력을 쌓는 경로가 보통의 청년의 노동과 역량을 통한 경쟁보다 유리하게 작동한다는 의구심이 커질수록, 청년정치에 대한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공공사업과 일자리 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청년센터 위탁 운영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다음 공공기관 일자리나 임기제 공무원 자리를 보장하는 자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종사자의 고용 안정은 존중해야 하지만, 고용 승계와 정규직 전환은 법적 기준과 재정 여건, 채용의 형평성을 바탕으로 판단해야 한다.
공익위원이나 각종 위원직 역시 청년 몫을 채우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전문성과 독립성, 실제 활동 성과를 검증하지 않은 채 익숙한 인물들이 그럴듯한 핑계를 대가며, 여러 자리를 차지한다면, 대표성의 확대가 아니라 자리의 순환일 뿐이다.
물론 청년단체 활동이나 정치 참여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공개된 경쟁에서 실력과 전문성, 성과로 기회를 얻었다면 당연히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폐쇄적인 인맥과 상호 간의 자리 보장이 공정한 경쟁을 대신했다면, 그 기회를 누린 사람부터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공적 기회는 개인의 전리품이 아니며, 대표성은 사유할 수 있는 자산이 아니다.
청년정책은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얻은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오늘도 위험한 작업장에서 안전을 걱정하고, 중소기업에서 묵묵히 일하며, 취업과 주거비 앞에서 버티는 청년들을 위한 정책이다.
서산대사의 시구로 널리 알려진 말에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말라”는 뜻의 경계가 있다. 뒤에 오는 사람은 앞서간 사람의 발자국을 길로 삼기 때문이다. 정확한 문구와 전승에는 이본이 있지만, 오늘의 청년정치에 던지는 의미는 분명하다. 먼저 기회를 얻은 사람이 어떤 길을 남기느냐에 따라 다음 청년이 걸을 길도 달라진다.
청년을 위한다면서 청년을 팔고, 청년을 위하고, 대표한다면서 능력과 관계없이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끼리 기회를 나눈다면 그것은 대표가 아니라 사유화다. 이제 청년 활동과 정치가 증명해야 할 것은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으며, 누구의 목소리를 제도에 담았왔는지 증명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어떤 경험과 전문성으로 무엇을 바꾸었으며, 자신이 얻은 기회를 다른 청년에게도 열어주었는가 하는 것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길마저 독점해서는 안 된다. 청년을 대표한다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걸어온 길이 다른 청년에게도 열려 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이수영 시민기자 tndudfl1566@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