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처럼 가볍지 않기, 새처럼 가볍게 날기 [뉴스] 임미성 재즈가수
요즘 ‘재미있는 사람들’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실수가 많은 사람’ ‘허당인 사람’이나 ‘맥락이 없는 사람’들이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엉뚱함과 실수가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무거워진 마음을 상쾌하게 만들어주는 ‘가벼움’에 있다.
새의 가벼움은 무게와 싸워 넘고 오르는 것
불행을 잊고 근심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시(時)를 만든 제우스 신은 우리의 삶이 시처럼 가벼워지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심오하지만 결코 내색하지 않는 시 말이다. 니체의 중력의 정신(Geist der Schwere)에 맞서는 가벼움은 춤과 아이의 상태에 있는 가벼움이었다. 수동적인 가벼움이 아니라 삶의 무게를 넘어선 초극의 가벼움. 폴 발레리는 말했다. 새처럼 가벼워야 하는 것이지, 깃털처럼 가벼워서는 안 된다”고. 진정한 새의 가벼움은 무게와 싸워 그것을 넘고 날아오르는 것임을 강조한 이 말은 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의 ‘아모르파티’를 떠올리게 한다. 삶을 긍정할 때 삶의 무게를 밀어내지 않고도 가볍게 날 수 있는 것이다.
공기를 ‘상승’과 ‘비상’의 이미지로 상상했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의 가벼움은 상승의 상상력이다. 그에게 하늘, 새, 구름, 불꽃들은 모두 위를 향해 오르고 있는 가벼움인 것이다. 그는 『공기와 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의 정신은 무거운 현실을 벗어나 위로 날아오를 때 가장 자유로워진다”고. 실제의 새가 아니지만 새가 날갯짓하듯 이미지를 상상하는 것은 하나의 의지다. 이것은 아무런 수고도 들이지 않은 수동적 가벼움과 비교될 수 없는 가벼움이다.
가스통 비슐라르
‘가벼움의 디자이너’라 불리는 마크 베르티에르(Marc Berthier 1935~2022)는 가벼움을 실물로 다루고 있다. 디자인과 산업의 관계가 수사학과 웅변의 관계와 같다는 그에게 가벼움은 ‘우아함의 한 형식’이다. 그는 대표작인 티코 라디오(고무재질의 벽돌모양)를 비롯해 플라스틱, 알루미늄으로 가구와 전자제품을 만들었다. ‘가벼움’과 ‘균형’이 바로 그가 지향하는 디자인 개념이다. 그가 만든 제품은 가볍고 심플하다. 그러나 그 가벼움은 소재를 고르고, 구조를 계산하고,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반복해서 시험한 설계된 가벼움이다. 그의 가벼움 또한 발레리가 말하고 있는 새의 가벼움이다. 근육 대신 재료와 구조로 나는 새.
정체성 불안이 가벼움을 짓누르는 하이퍼모던 사회
그러나 새와 깃털로 나뉘는 가벼움이 아닌 하이퍼모던한 가벼움에 대해 질 리포베츠(Gilles Lipovetsky 1944~ )는 『가벼움의 시대』에서 하이퍼모던한 가벼움은 대담하고, 비선형적이고, 시적이고, 시각적, 공간적, 촉각적 감각을 중시하는 형태들 속에서 자라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가 분석하고 있는 하이퍼모던 사회는 스스로를 새라고 믿고 싶어 한다. 그에 따르면 전통과 제도의 무게에서 벗어나 유동적이고 가벼워진 삶처럼 보이나 그 가벼움 아래서 사람들은 정체성의 불안, 관계의 불확실성이라는 무게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뜬 것이 아니라 바람이 부는 대로 실려가고 있을 뿐이다. 폴 발레리의 구분대로라면 새가 아닌 깃털의 가벼움에 더 가깝다.
하이퍼모던 사회에서는 새처럼 가볍게 비상하기 위해 중력의 정신을 이겨내거나, 상상하거나, 설계할 의지를 갖기가 어려워진다. 그가 그리고 있는 하이퍼모던 인간은 자신이 새라고 믿고 있는 깃털인지도 모른다. 새이고 싶어하는 깃털의 운명은 믿음과 실제 사이의 간극 속에서 살아간다. 마치 열린 결말의 영화처럼 다양한 해석으로 지속된다. 그러나 새와 깃털로 구분되고 판단되지 않는 가벼움, 불안정한 가벼움이야말로 삶의 무게를 줄이는 원동력은 아닐까.
우리는 왜 기분이 좋을 때 날아갈 것 같다”, 혹은 행복할 때 꿈만 같다”고 말하는지 알지 못한다. 때때로 편안해질 때는 저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허밍을 자주 하면 호흡이 편안해지고 숙면에도 도움이 된다) 그것은 새, 꿈, 허밍으로 나타나는 기쁨과 긍정의 세계가 모두 가볍기 때문이다. 그래서 활기찬 사람의 발걸음은 가볍다. 가벼움을 쫓는 것은 삶의 본질로 향하고자 하는 인간의 몸짓이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을 비워야 하는 것은 죽음을 가볍게 맞이하기 위해서다.
언제나 가벼움을 향해 있는 재즈의 ‘초극의 가벼움’
『동경 이야기』로 유명한 일본의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는 인간 무리라는 것은 시시한 얘기는 늘 주고 받지만 막상 중요한 얘기를 나누려 하면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런 영화를 찍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중요한 얘기를 시시하게 다룰 줄 아는 능력은 7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러면 시시한 얘기는 왜 늘 주고받을 수 있을까. 시시한 얘기가 마음을 가볍게 해주고, 어색한 자리에서는 편안함을, 예민한 사람에게는 신경이 피로하지 않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때로 시시한 얘기. 실없는 얘기들이 삶의 고단함을 덜어준다. 그러니 야스지로의 말처럼 중요한 얘기도 가볍게 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오즈 야스지로
새가 하늘을 나는 것은 가벼워서만은 아니다. 공기의 흐름을 자각하고, 날겠다는 의지로 바람을 거스르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인 결과다. 재즈의 즉흥연주는 오래 익힌 형식을 놓아주기 시작할 때 감각은 비상하고 선율은 날아오른다. 가벼워지면 신바람이 나고, 신바람이 나야 즉흥의 무아지경에 들어설 수 있다.
경직된 모든 것은 어둡고 무겁다. 가벼움은 유연함, 편안함, 긍정을 아우른다. 재즈의 시작은 가볍지 않다. 재즈의 형식, 문법, 리듬을 익히고, 앙상블이 유연해지기까지 시행착오를 거듭해야만 한다. 유려한 연주지만 어쩐지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연주자가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다는 신호다. 편안하고 쉬워 보이는 스윙이 가장 어려운 것은 스윙은 하는 게 아니라 스윙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스윙이 된다는 건 스윙처럼 가벼워졌다는 의미다. 연마하고 잊는 것, 또 발견해 나가는 것이 재즈의 속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가벼움을 향해 있다. 바로 ‘초극의 가벼움’이다.
끝내 가볍게 날아오르지 못한 나의
마르크 티에르는 가벼움의 개념은 무중력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가벼움이란 구식화를 멀리 하면서 본질적인 것을 향해 가는 것이다. 이것은 디자이너의 영원한 도전 가운데 하나다”라고 말한다. 역시 ‘가벼움의 디자이너’다운 명언이다. 그러나 이 말이 디자이너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구식화를 멀리하면서 본질적인 것을 향해 가는 것! 니체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다. 본질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때 시시한 얘기와 잡다한 말들이 혹은 실수가 역동적인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 진짜로 가벼운 삶은 우리에게 더없이 천진해질 것을 요구한다. 운명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며 긍정하는 그 가벼움은 삶을 지나쳐버리는 일시적인 가벼움이 아니다. 소통과 유동적인 삶의 스타일이며 마음 속 깊이 자리하는 가벼움이다. 노력과 수고를 드러내지 않는 가벼움, 이것이 내가 꿈꾸는 가벼움이다.
아쉽게도 이번에 출시한 7분짜리 싱글 앨범 에서 간과한 것은 가벼움이었다. 깊이 잠겨 있어야 할 진지함의 수고가 드러났다. 어려워도 쉽게 들리는 ‘초극의 가벼움’은 내게는 여전히 아득해 보인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고, 작품은 세상에 나왔다. 이제 남은 일은 깃을 다듬어 다시 가볍게 날아갈 준비를 하는 것! 이번에는 ‘제주 신화 자청비’를 ‘비밥’으로 해볼까?
(※ 참고로 이번에 출시한 싱글 앨범 의 엔딩은 대금과 보컬의 스캣의 극적인 대비를 보여주고 있다. 스캣의 컨셉은 목소리가 아닌 또 하나의 악기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런 시도뿐만 아니라 연주곡의 솔로를 보컬이 목소리로 연주하는 경우도 많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의 재즈보컬 Camille Bertault가 완벽하게 재현한 를 한번 감상해 보시기를 권한다. 세계적으로 많은 재즈 보컬들이 도전한 고난이도 곡인데 앞서 얘기한 ‘초극의 가벼움’을 느낄 수 있는 버전이다)
임미성 laelld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