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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생명 위협하는 사업주 흑마술, 어떻게 막나
[노동]
지난번 칼럼에서 디엔오토모티브 납축전지 생산 울산공장에서 의사가 노동자들의 진짜 혈중 납농도 수치를 숨기기 위해 몸속 중금속을 낮추어주는 킬레이트주사를 맞도록 만든 사건을 다루었다. 이 희대의 사건은 사업주에게는 마술이었다. 그러나 노동자와 산재예방을 부르대는 필자 같은 이들에겐 흑마술이었다. 마술은 때론 보는 이에게 잠시나마 행복과 즐거움을 주지만 흑마술은 오롯이 사람을 해코지하고 죽이려 사용하는 술법이다. 대한민국 초유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사건을 톺아보면 다른 회사와 의료기관에서는 이와 유사한 불법 행위가 없는지, 왜 이 회사가 의사와 짜고 이런 일을 벌이게 됐는지, 그 첫 단추는 언제 누가 누구와 어떻게 꿰었는지 등 풀어야 할 숙제가 우리 앞에 많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144명 숨진 탄광촌 참사를 산재 예방 기회로 삼은 영국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은 수많은 산재·직업병을 가장 일찍 그리고 가장 많이 겪었다. 1960년대 들어서도 산재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1966년 탄광 지대였던 웨일스 애버팬에서 석탄폐기물이 붕괴하면서 인근 학교와 주택을 덮쳐 어린이 116명을 포함한 144명이 숨지는 참사가 일어났다.   영국 애버팬 참사 현장 학교에서 석탄폐기물에 매몰된 어린 소녀를 극적으로 구조해 구출해 경찰관이 안아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그 성찰의 결과로 영국은 1970년 로벤스위원회를 출범시켜 3년간의 작업 끝에 1972년 ‘로벤스 보고서’를 펴냈다. 산재예방의 철학과 원칙을 담은 이 보고서는 국내에서도 2022년 당시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전문가의 번역과 해제를 바탕으로 펴낸 바 있고 지금도 산재 예방 분야 관계자들의 지침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산업안전보건 시스템을 사업장 스스로 위험을 관리하는 자율안전관리체계로 바꾼 역사적 출발점이 되었다. 하지만 이 보고서가 나온 지 50여 년이 지났으나 우리나라 일터에서는 이 보고서가 강조한 자율관리체계가 현장에서는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 바로 디엔오토모티브 노동자 납중독 은폐다. 생산과 이익을 위해서 전력을 다하나 노동자 생명과 건강에는 무관심을 넘어 아예 범죄 성격의 실태 은폐를 10년 동안 저질렀다는 사실을 이 회사에서 새로 생긴 노조가 밝혀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이 회사 노동자뿐만 아니라 산업보건학계와 직업환경의학계 전문가들도 회사와 이에 가담한 의사 등에 대해 분노를 드러냈다. ‘국민소득 4만불 시대, 공장에서는 납중독’ 부끄러운 한국 지난 21일 국회에서 ‘디엔오토모티브 노동자 납중독 의혹 규명을 위한 전문가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울산 동구가 지역구인 민주당 김태선 의원이 주최하고 한국산업보건학회와 대한직업환경의학회 주관이었는데 관련 전문가와 노조 대표와 회사 안전실무책임자, 노동부 담당 과장 등 사건 관계자들이 모두 발표자와 토론자로 참여했다. ‘국민소득 4만불 시대, 대한민국 공장에서 납중독이 일어나고 있다’라는 토론회 슬로건이 눈에 확 띄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새로 드러난 사실은 킬레이트요법은 증상이 없는 경우 하지 말도록 했음에도 회사가 노동자를 속여 의료기관이 시행토록 강행했으며 납 노출 차단과 감소를 위한 작업환경 개선(관리)이 최우선임에도 회사는 이를 내팽개치고 불법적 성격을 띤 노동자 혈중 납 농도 낮추기에 몰두했다는 것이다. 또 놀라운 사실은 회사가 의료기관과 짜고 불법을 저질렀음에도 관련법인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상 처벌 규정 미비로 회사 책임자와 의료기관을 처벌할 수 없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와 함께 그동안 일부 병의원은 입구에 킬레이트요법이 혈관 청소, 혈관 노폐물 제거, 혈관 독소 제거 등에 효과가 있다는 입간판을 세워두고 선전해 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국회에서 열린 디엔오토모티브 납중독 사건 토론회에 앞서 참가자들이 기념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촬영: 안종주 지금도 디엔오토 공장은 황산·납 가득, 직원은 회사 걱정 이날 회사 쪽 대표로 나온 송진욱 안전보건실장은 유해물질이 나오는 설비에 대한 밀폐 강화와 자연 환기 개선, 공기공급, 주기적 청소 등을 위해 내년 상반기까지 70여억 원을 투입해 작업환경을 바꾸겠다”라는 회사 계획을 발표했다. 엄청난 이익을 내는 기업이 그동안 작업환경 개선은 ‘나 몰라’라 하다가 비난에 휩싸이자 뒤늦게 반성하는 듯한 조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연이어 사망사고를 내 국민의 지탄 대상이 돼 불매운동까지 벌어진 파리바케트 SPC그룹의 사례와 판박이로 닮았다. 사건이 불거진 지 7개월이 지난 지금도 디엔오토모티브 울산공장에서는 황산 미스트가 비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다. 노동자들은 작업장 내 대표적 유독성 물질이자 발암물질인 납과 안티몬 등이 뒤섞인 흄과 분진을 들이마신다. 회사 김상헌 대표는 이번 사건이 불거지기 전까지 열악한 작업환경을 살펴본 일이 사실상 없다고 노조 쪽은 말한다. 만약에 자신이 납축전지 제조 공정에서 하루만 일해 봤더라도, 킬레이트요법이란 불법 속임수까지 동원해가며 노동자를 부리지는 않았을 터다. 더더군다나 일터 환경을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데도 일부 노동자들은 자신의 건강 걱정 보다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회사가 망하기라도 한다면 자신이 일자리를 잃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을 느끼며 회사 측에 강하게 대응하는 것을 꺼린다고 한다. 늘 일자리 불안에 떠는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현실 비극이다.   디엔오토모티브 울산공장 배터리 제조공정 라인의 모습. 황산과 납 흄이 한데 엉켜 바닥에 하얗게 쌓여 있다. 금속노조 울산지부 제공 디엔오토 사건은 빙산의 일각 디엔오토모티브가 10년간 킬레이트요법이란 흑마술로 형해화시킨 특수건강진단제도와 더불어 직업병 예방의 다른 한 기둥인 작업환경측정제도 또한 제구실을 못 하고 있다는 게 이번 사건에서도 드러났다. 디엔오토모티브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건에 깊은 우려와 관심을 보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산안법 시행령의 ‘작업환경측정방법(제189조)’에는 작업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져 작업시간과 유해인자에 대한 근로자의 노출 정도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을 때 실시할 것”으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으나 이를 정확하게 지키는 측정기관이 과연 얼마나 될까? 지금까지 많은 사례에서 측정 수치를 조작했다. 또한 측정 전에 회사가 청소·환기하거나 작업을 정상적으로 하지 않은 작업장에서 측정해왔다. 40년 전쯤의 원진레이온 때도 그랬고 이번 디엔오토모티브도 그랬다. 이런 뿌리 깊은 거대한 부패와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통 큰 결단이 필요하다. 1988년 원진레이온 참사로 도입된 많은 제도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그 뒤 20년 가까이 지났으나 원진레이온의 교훈을 외면한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를 비롯한 반도체·전자 산업계에서는 많은 노동자가 쓰러져갔다. 다시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이번엔 노동자 집단 납중독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반인에겐 낯선 킬레이트요법이란 흑마술을 디엔오토모티브가 부렸다. 산재의 역사를 잊었는데 미래 노동자 안전은 있을까 노동부는 산안법으로 회사 책임자를 처벌할 수 없게 되자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행위로 경찰에 고발했다. 김앤장이 회사 소송대리인을 맡았다. 따라서 회사 대표 등이 무죄로 나올 가능성도 있고 유죄로 인정되더라도 징역형이 아닌 가벼운 벌금형의 솜방망이 처벌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1988년 대한민국 최악의 직업병 참사인 원진레이온 사건 때에도 당시 노동부는 회사 대표 등 책임자 전원 구속기소 운운했으나 결국 벌금형으로 마무리됐다. 이제 산업 현장에서 왜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지는지 정부와 국회, 관계자들은 모두 성찰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산재·직업병 역사를 망각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산재·직업병의 역사를 잊은 국가에 노동자 안전의 미래는 없다. 안종주 언론인, 보건학 박사 산재·직업병의 역사를 고찰하는 작업과 함께 한국판 로벤스위원회를 꾸려 산업안전보건 선진 혁신을 위한 보고서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영국이 로벤스위원회를 3년간 꾸렸듯이 우리도 2~3년간 위원회를 작동해 앞으로 적어도 30~50년간 대한민국의 산재·직업병 예방 지침서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산업안전보건 관련 법제와 행정조직을 혁신해야 한다. 노동자 생명과 안전에는 여야가 없다. 따라서 이 위원회는 국회에 두어 운영할 것을 제안한다. 당장 내년부터는 이 위원회가 작동하기를 기대한다. 원진레이온, 삼성전자, 디엔오토모티브처럼 생산과 이익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더 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안종주 진단 jjahnpa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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