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종근 9년 선고, 여인형 18년·이진우 15년 견줘 선처 [사회혁신]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왼쪽부터), 이진우 전 국군수도방위사령관, 문상호 전 국군정보사령관,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 [헌법재판소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12·3 비상계엄 때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병력을 배치한 지시를 한 혐의를 받는 군 고위 장성 가운데 무죄라고 항변했던 지휘관들에게는 징역 10~18년형이 선고된 반면, 뉘우치며 부하들을 선처해줄 것을 호소한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에게는 징역 9년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이현경 부장판사)는 21일 내란중요임무종사,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에게 징역 18년을 선고했다.이진우 전 국군수도방위사령관에겐 징역 15년이 선고됐다. 조은석 내란특별검사팀은 두 사람에게 각각 징역 30년을 구형했는데 절반가량만 선고됐다.
문상호 전 국군정보사령관에겐 징역 12년, 사태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던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겐 징역 10년, 곽 전 사령관에게는 징역 9년이 각 선고됐다. 특검은 박 전 총장에게 징역 25년, 문 전 사령관과 곽 전 사령관에는 각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피고인들이 모두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재판부는 일시 석방된 상태였던 이진우 전 사령관·박안수 전 총장·곽종근 전 사령관에 대한 보석 결정을 취소했다.
재판부는 이들이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와 중앙선관위 등에 병력을 투입하고 정치인 체포조를 편성·운영한 혐의를 대부분 유죄로 인정했다. 이 과정에 직권을 남용해 부하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혐의도 대부분 유죄로 판단했다.
여 전 사령관은 위헌·위법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국가세력 합동체포조 를 편성해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정치인 10여 명을 체포하려 했다고 판단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선관위 장악과 전산 자료 확보를 지시받고 방첩사 병력을 선관위 등으로 출동시킨 혐의,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과 군사법원 재판에서 계엄군의 선관위 침투와 관련해 위증한 혐의도 사실로 봤다.
재판부는 정치인 합동 체포조, 부정선거 전담 수사단 운영에 관한 내용이 담긴 여 전 사령관의 메모를 근거로 그가 사전에 윤석열 전 대통령 등과 적극적으로 모의했다고 짚었다. 윤 전 대통령, 김용현 전 장관 등과 사전에 수 차례 모임을 가지며 비상계엄 선포 목적이 위법함을 인식했다고도 지적했다.
이진우 전 사령관은 계엄이 선포되자 수방사 병력의 국회 출동을 지시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그가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 직전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의원들을 끌어내라 는 취지의 지시를 받고 이를 부대원들에게 그대로 전달했다고 짚었다.
4일 새벽 국회 본청에 진입한 군 병력이 국민의힘 당대표실쪽에서 본회의장 으로 진입하려 하자, 국회 직원들이 소화기를 뿌리며 진입을 막고 있다. 2024.12.4 연합뉴스 자료사진
박안수 전 총장은 계엄사령관으로서 위헌·위법한 포고령을 발령하고 경찰청장에게 국회 봉쇄 지시를 하달하는 등 내란에 가담한 혐의가 유죄로 판단됐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이 위헌·위법한 포고령을 발령해 국회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려 한다는 사실을 박 전 총장이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행위를 윗선으로부터 강요받았다고 항변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군사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육군 참모총장으로서 당시가 비상사태가 아님을 인식했음에도 윗선에 따로 건의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특전사령부, 수방사령부 병력을 국회로 출동시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직권남용 혐의는 무죄로 판단됐다. 박 전 사령관이 병력이 국회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거나, 출동 상황을 사후에 보고받았을 뿐이라는 이유에서다.
문상호 전 사령관은 계엄 사전 모의에 가담하고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혐의를, 곽종근 전 사령관은 국회와 더불어민주당 당사, 선관위 과천청사 등에 특전사 병력을 출동시킨 혐의에 대해 각각 유죄가 인정됐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와 관련해 국가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내란죄는 어떤 범죄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대하다 며 피고인들은 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저버리고 특정 세력을 위해 군을 정치적으로 사용했다 고 비판했다.
곽종근 전 사령관에 대해 재판부는 윤석열, 김용현과 여러 차례 식사 모임을 하며 비상계엄 선포의 목적에 대해 듣고 위법성을 인식했으며, 선포 당일 특전사 병력을 국회 등에 침투시켰다 며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막기 위한 가장 주도적 역할을 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 고 꾸짖었다. 이어 다만 수사 초기 양심선언을 한 후 자술서를 냈고, 이후 윤석열 탄핵 사건과 내란 혐의 재판에서 일관되게 진술해 왔다 며 관련법에서 이를 필요적 감면 사유로 규정한 점은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했다 고 설명했다.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은 선고 직후 국민을 지키고 헌법을 수호해야 할 군의 핵심 지휘관들이 그 책무를 저버린 데 따른 책임을 확인한 판결 이라면도 피고인별 형량이 예상과 달리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에 아쉬움을 표한다 고 밝혔다. 이어 판결문의 구체적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뒤 항소 여부와 그 범위를 결정할 것 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1월 3일 내란 사건 재판에 출석한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의 진술 장면. MBC 화면 갈무리
이날 선고를 앞두고 곽 전 사령관에 대해선 5·18유족어머니회 일동과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회 시의원 일동, 더불어민주당 한민수·양부남·부승찬·박범계 국회의원, 강북시민연대 등 2000여 명이 재판부에 정상참작을 해달라는 탄원서를 전달해 화제가 됐다.
1980년 5월 계엄군이었던 공수부대의 폭력과 총격으로 가족을 잃은 5·18 유족 어머니들은 탄원서에서 계엄 소식을 듣고 80년 5월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사격 모습이 떠올라 트라우마로 밤을 지새웠다 며 하지만 곽 전 사령관의 현명한 지휘로 유혈 사태 없이 마무리되는 것을 지켜봤다 고 밝혔다. 이어 80년 5월에도 곽 전 사령관 같은 지휘관이 있었다면 무고한 희생이 없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든다 며 상부 명령으로 병력을 파견했지만 이성적 판단으로 충돌을 막았고,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가결 즉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재투입 명령을 거부하고 전 병력 철수를 지시해 국민의 생명을 지켰다 고 강조했다.
또한 곽 전 사령관은 국회 국정조사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화폰을 통해 국회 문을 부수고 인원들을 끌어내라고 직접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며 탄핵 심판 변론에서도 윤 전 대통령이 끌어내라고 지시한 대상이 요원이 아닌 국회의원이었다고 밝혔다. 다양한 증언과 증거에 의해 진실로 말하고 있음을 사실로 확인했다 고 설명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회 시의원들도 탄원서를 통해 곽 전 사령관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자수서를 제출하고, 헌법재판소와 법정에서 일관되고 진솔한 진술로 계엄의 불법성을 밝히는 데 앞장선 공익신고자 라며 모든 책임을 부하들에게 돌리고 반성조차 없던 80년 5월의 군 지휘관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고 적었다.
이어 곽 전 사령관이 홀로 5·18 국립묘지를 참배해 무자비한 폭력에 희생된 영령을 추모하고 광주의 아픔에 참회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며 진실을 밝히고자 한 공과를 살펴 그가 자유의 몸으로 남은 재판과 조사에 임할 수 있도록 선처해 달라 고 호소했다.
윤재순(왼쪽) 전 대통령실 총무비서관과 국민의힘 임종득 의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편 윤석열 정부 당시 국가안보실 인사 개입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윤재순 전 총무비서관과 국민의힘 임종득 의원에 대해 법원이 공소기각을 선고했다. 내란 특별검사팀의 수사 범위를 벗어났다는 이유에서인데 내란특검이 기소한 사건 중 공소 기각된 사례는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이완규 전 법제처장에 이어 세 번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오세용 부장판사)는 이날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두 사람에 대한 공소를 기각했다. 공소기각 판결은 공소제기 절차가 법률을 위반한 경우 등에 사건의 실체를 판단하지 않고 소송을 종결하는 절차다. 앞서 내란특검팀은 윤 전 비서관에게 징역 5년, 임 의원에게는 징역 3년을 각각 구형했다.
윤 전 비서관은 2023년 9월쯤 국가안보실 산하 국가위기관리센터에 파견되는 무인기 전략화 담당 장교 임용 과정에 지인의 청탁을 받고 당시 안보실 2차장이던 임 의원과 임기훈 당시 국방비서관에게 특정 인물을 임용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임 의원은 윤 전 비서관과 공모한 혐의가 적용됐다.
특검팀은 12·3 비상계엄과 관련한 평양 무인기 침투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을 인지해 관련성이 있다고 보고 윤 전 비서관과 임 의원을 지난해 12월 불구속기소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사건이 내란특검법이 정한 수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평양 무인기 사건과 범행 주체가 완전히 다르고, 해당 사건 피의자들과 공범 관계에 있지 않으며 상호 교류나 접촉도 없었다는 취지다. 두 사건의 범행 시기가 약 13개월가량 차이가 나는 데다 범행 목적과 수단에서 관련성을 찾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다.
다만, 공소기각 판결의 경우 적법한 수사기관이 다시 수사해 재차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만큼 경찰 등 다른 수사기관이 내란특검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아 재수사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앞서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박 전 장관은 내란 혐의에 대해 징역 25년을 선고했지만, 김건희 씨의 수사 무마 청탁을 받아준 혐의에 대해선 특검팀의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공소 기각을 선고했다. 계엄 해제 직후 안가 회동 에서 계엄에 관한 논의가 없었다는 취지로 국회에서 위증한 혐의로 함께 기소된 이 전 처장에 대해서도 동일한 판단을 내렸다.
3대 특검(내란·김건희·순직해병) 전체로는 아홉 번째로, 나머지 여섯 건은 모두 김건희특검이 기소한 사례다. 김씨의 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특혜 의혹 수사 과정에서 별건 뇌물 혐의로 기소된 국토교통부 서기관은 공소사실 전부에 대해 공소기각 판결을 받았고, 지난 6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나머지 피고인들은 일부 혐의에 공소기각 판단을 받았다. 김건희 집사 로 불린 김예성씨의 일부 횡령 혐의와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의 증거인멸 혐의에 대한 공소기각 판단도 지난 7월 대법원에서 각각 확정됐다. 김예성씨의 동업자인 조영탁 IMS모빌리티 대표는 항소심에서도 횡령 등 일부 혐의에 대한 1심의 공소기각 판단이 유지됐다. 건진법사 전성배씨가 기업으로부터 청탁 대가로 금품을 받는 데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변호사 역시 항소심에서 일부 혐의에 대해 공소기각 판결을 받았다.
정교유착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통일교 한학자 총재는 지난 8월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지만, 증거인멸 지시와 교단 자금 횡령 혐의는 김건희특검법상 수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소기각됐다.임병선 에디터 byeongseon1610@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