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렁에 빠진 미국, 동맹국 끌어들여 확전 노리나 [국제]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영국 남부 페어퍼드 공군기지 인근에서 남성 5명이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국은 이들을 폭발물법 위반 혐의로 체포한 뒤 테러 행위 준비 혐의를 추가했다.
미국과 영국에서 사건의 배후에 이란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이란 전쟁에서 페어퍼드 기지를 사용한 뒤 이란이 해당 기지를 공격 대상으로 거론한 바도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드러난 내용을 보면 석연치 않은 대목이 적지 않다.
영국 남부 페어퍼드 공군기지 로이터 연합뉴스
우선 폭발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영국 당국은 용의자들이 타고 온 차량 세 대와 이들의 주거지를 조사했으나 차량에서 휘발유가 나왔을 뿐 폭발물을 찾지 못했다고 같은 달 29일 밝혔다. 이들이 해당 기지에 테러를 하려 했다는 근거가 확인되지 않은 셈이다. 그렇다면 영국 경찰은 애초에 용의자들을 왜 폭발물법 위반으로 체포했는지 그리고 체포 후 테러 관련 혐의를 추가한 근거가 무엇인지 의문이 생긴다.
두 번째는 용의자들이 신속하게 석방된 점이다. 체포된 이들은 사건 다음 날 조건부 보석으로 풀려났다. 폭탄 테러 관련 혐의를 받는 용의자들이 체포 하루 만에 석방된 것은 이례적이다. 심지어 경찰이 초동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전에 보석 결정이 내려졌다.
일반 사건에서 영국 경찰이 자체 판단으로 용의자를 구금할 수 있는 시간은 24시간이다. 경정급 승인을 받으면 36시간으로 늘릴 수 있다. 테러법 제41조를 적용하면 경찰 권한으로 48시간까지 구금할 수 있다.
영국 경찰 당국은 용의자 5명에게 테러 행위 준비 혐의를 적용했으므로 테러법 제41조에 따라 더 오래 구금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영국 경찰은 이 권한을 쓰지 않고 용의자들을 단 하루 만에 풀어주었다. 영국 당국이 중대 사건이라고 규정한 것을 고려하면 석연찮다.
세 번째로 용의자들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된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지난 30일 보도에 따르면, 용의자가 체포 직전 영국 긴급전화 999에 몸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다만 왜 전화했는지, 무엇을 신고했는지 등 통화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용의자들이 어떻게 페어퍼드 기지에 그렇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한 지역 주민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기지 주변 보안이 강화되었는데도 문제의 남성들이 그 거리에 접근할 때까지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용의자가 더 있다는 주장도 있다. 경찰에 신고했다는 주민은 자신이 본 사람이 분명히 다섯 명보다 많았다”라며 8~10명가량으로 보였다고 증언했다.
■ 페어퍼드 사건의 세 가지 시나리오
사건의 진상을 단정하기 어렵지만, 세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실제로 이란이나 러시아, 이슬람 세력 등이 배후에 있을 가능성이다. 영국 당국은 외국의 개입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연계 가능성이 있는 대상으로 이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러시아 등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폭발물이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테러 범죄였을 가능성 자체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두 번째는 실제 벌어진 일보다 과장되었을 가능성이다. 가령 실행된 범행은 휘발유 절도 같은 단순 사건인데, 미국과 영국 당국이 이란 전쟁 개입을 지지하는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부풀려 활용하고 있을 수 있다.
세 번째는 기획된 조작 사건일 가능성이다. 미국은 통킹만 사건처럼 자신의 필요에 따라 사건을 조작한 전례가 숱하게 있기 때문에, 조작 사건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폭발물이 발견되지 않았고 용의자들이 하루 만에 보석으로 풀려나는 등 사건이 허술하게 전개된 점을 보면 조작 사건이라고 단정하기도 쉽지 않다.
영국 페어퍼드 공군기지에 출동해 경계하고 있는 경찰들 연합뉴스
■ ‘외국 세력’ 거론하며 안보 위기 강조하는 미·영
주목할 점은 미국과 영국 정치권이 진상이 드러나기도 전에 사건을 이란 등과 연계하면서 군사적 강경 여론을 고조시키는 데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앤디 버넘 영국 총리는 30일 BBC 인터뷰를 통해 해당 사건에 대해 이란이 연루됐을 강력한 정황이 있다”며 우리(영국 정부)가 추후 적절한 때에 더 많은 걸 말할 수 있겠지만, 이란이 역할을 한 것으로 우리가 믿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웨스 스트리팅 영국 국방장관은 28일 노동당 전당대회 연설 서두에서 페어퍼드 사건을 거론하며 미국과 영국의 동맹은 세계 어느 두 나라보다 긴밀하며, 우리의 자유를 증오하고 우리에게 해를 끼치려는 자들에 맞서 항상 함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연설 말미에서도 지금처럼 전쟁 위협이 큰 적이 없다”며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면 우리는 그것에 대비해야 한다. 지금의 상황에 행동과 힘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7일 기자들에게 우리는 오랫동안 그들을 감시해 왔고 마침내 검거했다”고 말했다. 28일에도 우리는 용의자들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며 나는 답을 알고 있다. 아주 구체적으로 말할 수도 있지만, 말하고 싶지 않다”라고도 했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28일 폭스뉴스에 출연해 사건의 배후에 외국 세력”이 있다며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여러 가지 이유로 방송에서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며 이 사건은 분명히 외국 세력의 개입이 있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며칠 안에 이와 관련한 더 많은 소식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이며, 이란이 배후에 있을 가능성도 언급했다.
한국 언론들은 폭발물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 테러라더니 빈 드럼통뿐?”...영국 공군기지의 ‘촌극’」(YTN, 2026.9.30.), 「‘테러범 아니라 휘발유 도둑?’…英미군기지 사건 폭발물 발견 안돼」(뉴스1, 2026.9.30.) 등으로 제목을 달았다. 해당 사건을 황당한 해프닝이라고 여기는 대체적인 흐름이다.
수사가 계속될수록 해당 사건이 테러일 가능성이 희미해지는 반면, 미국과 영국의 지도자급 인사들에게서는 갈수록 더 강경한 발언이 나오는 것도 특이한 현상이다.
앤디 버넘 영국 총리 AP 연합뉴스
■ 호르무즈에서 DMZ까지…한국에도 이어지는 압박
한편, 한국도 영국과 비슷한 일을 겪고 있어 주목된다.
올해 5월 4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나무호가 피격됐다. 미국은 조사가 채 이뤄지기도 전에 이란의 소행으로 단정하며 한국에 파병을 압박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은 한국의 화물선을 포함해 무관한 국가들에 몇 차례 발포했다”며 아마도 한국이 그 임무(프로젝트 프리덤)에 동참할 때인 듯하다”라고 말했다.
며칠 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협상에서 진전이 있었다며 태도를 바꾸면서 당장의 압박은 잦아들었다. 그러나 미국의 파병 요구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은 지금도 파병을 압박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분쟁에 개입하게 되는 파병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정부는 우리 국민과 선박의 안전을 위한 호르무즈 기여 방안은 계속 검토하고 있다. 청해부대 활용 등을 둘러싼 논의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국민의힘 등은 파병을 해야 한다며 이를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더해 9월 21일에는 지뢰 폭발 사건도 발생했다. 유엔군사령부는 30일 군사분계선 남측에서 북한제 대인 지뢰를 발견했다며 정전협정 위반으로 판단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유엔사는 북한군이 해당 지뢰를 언제, 어떤 경로로 매설했는지까지는 밝히지 않았으며 위반 책임 주체도 명시하지 않았다.
지난 22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 상공에서 수리온 헬기가 이동하고 있다. 전날 인근 DMZ에서 지뢰 추정 폭발 사고로 육군 장병들이 중상을 입어 군 당국이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 사진 = 연합뉴스
한국군은 북한이 최근 국경 요새화 작업 과정에서 이 지뢰를 매설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북한은 전면 부인하고 있다.
과거에 묻은 북한제 지뢰가 남아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북한이 최근에 해당 지역까지 진출해 지뢰를 묻어 두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무엇보다 지뢰를 매설하러 해당 지역까지 오려면 북한군도 그곳까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먼저 개척해야 한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나도록 북한이 만든 이동로가 발견됐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여기서 상기할 것은 진상이 무엇이든 이런 사건이 생기면 대결 분위기가 고조되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사건이 터지면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는 원색적인 목소리가 신중론보다 훨씬 자극적으로 전달되기 쉽다.
실제로 유엔사가 북한 지뢰라고 단정하며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하자, 국민의힘은 북한을 향해 강경 대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지뢰 폭발로 부상을 입은 전상 장병들에게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말하며 대북 확성기 방송과 대북 전단 살포를 재개”하고 북한 지도자에 대한 참수 훈련을 즉각 시작해야 한다”고 핏대를 세웠다.
이것이 끝도 아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9월 23일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북한군 포로 2명을 한국으로 보냈다고 밝혔다. 한국과 우크라이나가 이를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했는데도 일방적으로 공표한 것이다. 젤렌스키의 돌출 행동이 남북 간 대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효과를 낳는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키릴로 부다노프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최근 남북한 군사분계선 부근에서 또 다른 사건이 발생했다”며 상황은 날로 악화되고 있으며, 통제 불가능한 (무력 충돌의) 도화선이 터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했다. 한반도 전쟁 위기를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발언이다.
■ 위기의 수혜자는 누구인가?
영국에서 이란발 안보 위협이 부각되면 누구에게 이득인가? 또 한국에서 대결 분위기가 고조되면 누가 가장 큰 혜택을 보는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이다.
미국에는 이런 상황이 동맹 결속과 동맹국의 역할 확대를 요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한국은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안보 위기가 고조되면 미국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커지고, 그만큼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기도 어려워진다.
미국은 한국이 자국의 패권 전략에 더 적극적으로 동참하길 바란다. 호르무즈 파병을 요구하는 것과 함께 동아시아에서의 역할을 키우길 주문하고 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9월 17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국제안보학술회의에서 한국을 집단방위의 결정적 중심”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고 있다. 호르무즈 파병 요구에 거리를 두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일본과 필리핀이 중국을 겨냥한 군사협력을 빠르게 확대하는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움직임은 신중한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군 포로 송환 폭로나 지뢰 사건 같은 일이 이어질수록, 미국이 한국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더욱 높일 여건이 조성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이길 수도, 멈출 수도 없는 미국의 선택
전쟁에 끌어들이려는 시도 철저히 막아야
미국은 이란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수렁에 빠져 있다. 전쟁에서 이길 수도 없고, 협상도 여의찮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 휴전하려면 최소한 호르무즈 해협 개방은 얻어 내야 한다. 그런데 이란은 이런 선물을 줄 생각이 없다. 이란과 러시아에서는 휴전하면 미국이 위기를 모면하고 전열을 정비할 시간만 벌어 주는 꼴이라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물론 미국이 더 양보하면 협상은 타결될 수 있다. 지난 6월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과 MOU를 맺으려 한 것이 바로 그런 사례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 지나치게 양보했다는 비판이 빗발치자, 트럼프 대통령은 MOU를 사실상 무산시켰다. 그러니 미국이 양보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쟁에서 이길 수도, 전쟁을 멈출 수도 없는 미국은 동맹국의 참여를 확대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쏟게 될 것이다. 동맹국을 끌어들여 미국의 부담을 줄이고 이란·러시아와의 협상에서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런 미국에 특히 한국과 영국이 눈에 들어온 듯하다.
이란·러시아와 합의하지 못한 채 전쟁이 길어질수록 미국은 동맹국을 끌어들이기 위한 압박의 강도를 더욱 높여 갈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 대해선 북한군 포로 송환 폭로와 지뢰 사건이, 영국에 대해선 기지 테러 의혹 사건이 압박의 매개로 활용될 가능성이 우려된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이 조속히 끝나길 고대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휴전이 아니라 확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 무엇이 화약고에 불을 붙이게 될지 모를 일이다. 미국이 동맹국을 끌어들여 확전에 나서는 것이 제3차 세계대전의 촉발점이 될 수도 있다. 전쟁의 불똥이 절대 한반도로 튀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이형구 시민기자 9hk70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