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프로젝트’ 속도전, 어디로 무엇 향해 달려가나?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난 7월 13일, 서울 참여연대 에서 열린 시민사회 단체 관계자들의 3대 메가프로젝트 규탄 시민사회 기자회견 정규호
3대 메가프로젝트, 기대와 우려의 엇갈린 시선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일대가 기록적 폭염과 가뭄, 산불로 큰 고통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 연일 전해진다. 폭염으로 인한 초과 사망자만 1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적 상황이 눈앞의 현실이 된 듯하다.
이런 가운데 우리 사회의 관심은 정부가 발표한 ‘메가프로젝트’에 온통 쏠려 있다. 6월 말 정부는 반도체와 피지컬AI, AI 데이터센터를 축으로 한 초대형 국가 산업 전략인 ‘3대 메가프로젝트’ 구상을 국민 보고회 형식을 빌려 발표했다. ‘메가’(mega)라는 말 자체가 규모와 파급력이 거대하고 엄청나다는 것을 의미하듯이, 천문학적 규모의 자본과 기술, 인력과 시간이 투입되는 거대 사업 계획이 국가 핵심 의제로 갑자기 던져졌다. 정부는 이토록 중대한 사업을 사전 정보 제공이나 여론 수렴 없이 갑작스레 발표해 버렸고, 이후 이 사업은 우리 사회 전반의 의제와 관심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유럽을 강타한 폭염 못지않게 그 열기가 너무 강렬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대한민국 대도약’을 내건 3대 메가프로젝트는 6월 초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맞아 발표한 ‘대체 불가 대한민국의 꿈’을 구체화한 것이다. 여기에는 인프라 건설 등 정부 차원의 공적 지원과 삼성과 SK 등 민간기업의 대규모 자본 투자를 강력하게 결합시켜 지역을 첨단산업 거점으로 만들고 산업구조 전반을 새롭게 재편하는 계획이 담겨 있다.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한 김민석 전 국무총리가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주최한 3대 메가프로젝트와 지방주도성장을 위한 토론회 를 찾은 의원들의 요청에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6.7.7. 연합뉴스
그런데 아직 계획 단계이지만 앞으로 미칠 영향력이 상당한 만큼, 이 사업을 두고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지역 균형발전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 미래 성장동력과 글로벌 기술 패권 확보를 목표로 내세운다. 삼성과 SK 등 관련 기업은 정부의 세제 및 금융지원과 규제 완화 및 인허가 절차 단축, 신속한 인프라 건설 등 전폭적인 공적 지원을 활용해 투자 위험을 줄이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주민들도 일자리와 세수 확대, 생활 여건 개선 등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사업 발표 직후 실시된 한 여론조사를 보면, 긍정 평가(68.6%)가 부정 평가(26.4%)의 2.5배를 넘고, 사업 대상인 광주·전라 지역의 긍정 여론은 9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상당하다. 4700조가 넘는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자원이 투입되는 만큼 지역사회와 한국경제 구조, 기후와 생태계, 미래세대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7월 13일에는 136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서 메가프로젝트 사업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공동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그동안 주로 제기된 문제들로, ‘생태적 측면’에서는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기와 용수의 안정적 공급의 한계 문제와 기존 자원 배분 구조와 충돌할 가능성, 탄소배출 증가와 탄소중립 기조 훼손, ‘전기국가’가 초래할 신규 핵발전소 확대 가능성, 환경영향평가 절차 간소화에 따른 생태 파괴 우려 등이 강조되고 있다. ‘노동 측면’에서는 유해 물질 노출에 따른 노동자 건강 위해 문제, 자동화·외주화·하청화로 인한 노동의 불균형과 불안정 문제, 입주기업에 대한 주 52시간 노동 규제 완화와 기간제 노동자 사용 기간 연장에 따른 노동권 악화, AI 자동화에 따른 고용 전환 대책의 부재 등이 주로 지적되고 있다.
이처럼 국가적 중대 사안을 놓고 찬반 의견이 다양할 경우 민주적 절차와 합의 과정을 통해 보다 나은 대안을 찾아가야 하는데, 메가프로젝트는 충분한 논의 없이 갑작스레 발표된 데다, ‘속도’를 앞세워 민주적 토의 과정을 축소·생략하려 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균형 발전’을 내세우지만 실제 추진 과정에서의 갈등과 함께 지역과 산업, 노동 영역 전반의 또 다른 불균형이 불가피한데, 이를 민주적으로 다루기는커녕 신속한 추진을 명분으로 밀어붙임으로써 민주주의 자체를 왜곡·축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이 메가프로젝트를 개발 폭주”로 규정하고 비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속도’를 앞세운 메가프로젝트가 초래할 문제점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려 한다. 여기에는 메가프로젝트 사업의 타당성과 정당성 논의가 전력 및 용수의 수급과 생태적 한계 용량이라는 생물-물리적 차원에 맞춰지게 되면, 논쟁의 흐름이 자칫 전문가 중심의 기술공학적 논의로 제한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도 자리하고 있다. (생태와 노동 등 다른 측면의 구체적 문제 제기는 공동행동 기자회견문과 민들레 7월 13일자 유정길의 글 등을 참조하기 바란다).
7월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3대 메가 프로젝트 지원 특별위원회 의 당정 협의에서 한병도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6.7.22. 연합뉴스
첨단산업 움직이는 ‘속도’라는 엔진의 속성
3대 메가프로젝트는 ‘국가’와 ‘자본’, ‘기술’을 긴밀하게 결합한 가운데, ‘속도’를 강력한 엔진으로 장착하고 있다. 막대한 자원과 행정력을 투입해 실행 속도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속도전’이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데는, 프로젝트의 핵심인 반도체, AI, 로봇 산업이 초격차 전략을 핵심으로 하는 첨단산업인 점도 주요하게 작용한다.
전통적인 제조업에서는 후발주자가 기술을 학습하며 선도자를 추격할 가능성이 있지만, 첨단산업에서는 한 번 발생한 기술과 생산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확대되는 경향이 강하다. 먼저 진입한 기업이 더 많은 고객과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기술 혁신에 활용해 다시 더 많은 투자를 끌어들임으로써, 선도주자가 만든 경로의존성이 후발주자에게 장벽으로 작용한다. 특히 반도체, AI, 로봇 시장은 재편 속도가 빠르고 산업 생태계가 아직 정립되지 않은 만큼, 초창기에 신속히 기술 표준과 플랫폼, 공급망을 장악하는 것이 생존의 핵심 과제로 인식되면서, 골든타임을 놓치면 낙오하고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속도에 대한 집착을 더욱 키운다.
이 속도전에는 기술 개발 속도뿐 아니라 데이터센터, 전력망, 용수, 공장, 교통, 도시 등 인프라 건설의 속도도 포함된다. 따라서 메가프로젝트와 관련한 예산과 법, 거버넌스 체계를 아우르는 총력 지원으로 투자와 집행 속도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 핵심 전략이 되고 있다. 여기에는 지역균형발전과 일자리 창출, 기술 패권을 통한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매력적인 명분이 더해진다. 나아가 선도적 시장 선점과 공급망 주권 확보, 기술 패권 등이 안보 논리와 결합하면 속도전의 정당성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첨단산업 특성상 속도가 중요하다는 것과, 엄청난 자원을 투입해 사회 전반의 구조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국가 전략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속도는 누군가에게 새로운 투자와 이윤의 기회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경제-사회-생태적 부담을 지우고 삶의 터전을 근본적으로 바꿔버린다. 그만큼 ‘속도’는 정책과 행정의 영역을 넘어 정치적 언어가 되고 있다.
속도는 경쟁력의 기반인 동시에 리스크의 근원이기도 하다. 기술혁신 속도가 빠른 만큼 투자 자산의 수명은 짧아지고, 지금 최적화된 인프라는 금세 낡아서 미래로 가는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선도자로서 감당해야 할 초기 비용의 부담과 리스크가 큰 것도 문제다. AI와 반도체의 수요 확대 전망 자체가 불확실한 가운데 대규모 투자가 불황기의 부담으로 되돌아올 위험성에 대해서는 주식시장이 먼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메가프로젝트는 지역 불균형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과 기술 패권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라는 불안감 등 사회·심리적 요인까지 결합시켜 속도전을 부추기고 있다.
3대 메가 프로젝트 규탄 시민사회 136개 단체 관계자들이 13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반도체·AI데이터센터·피지컬AI 산업육성 정책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7.13. 연합뉴스
‘속도전’이 초래할 민주주의의 위기들
3대 메가프로젝트는 ‘속도전’, ‘거점전’, ‘총력전’, ‘국가대항전’, ‘패권 경쟁’ 같은 전시적 긴급 상황을 떠올리는 용어로 사업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강조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시민사회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참여와 실행 과정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한가한 사람들의 딴지 걸기나 발목잡기로 취급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본래 ‘느림’을 기본 가치로 한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사실관계를 검토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부작용에 대한 대안을 찾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며, 이로 인한 느림이나 지체는 비효율이나 결함이 아니다. 그런데 충분히 묻고 따지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 효율성을 높이려는 ‘속도전’의 논리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시간을 제약한다. 메가프로젝트처럼 정부가 속도를 앞세워 산업단지 조성과 자원 공급을 서두를수록 환경영향평가, 주민 설명과 의견수렴, 지방의회 논의 과정 등은 형식화될 가능성이 높다.
빠른 결정이 좋은 결정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신속한 결정이 오히려 장기적 비용과 부담을 키우고 불신과 갈등을 누적시킬 수 있다. 행정 절차 단축과 규제 완화를 통한 메가프로젝트의 속도전이 민주주의와 주민의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에 대한 사려 깊은 검토와 대책이 필요하다.
속도와 민주주의 시간의 충돌 문제는 지역 단위에서 더 구조적으로 나타난다. 메가프로젝트의 첨단산업은 한국경제 전체에 차지하는 비중을 키울 뿐만 아니라, 이것이 경제적 의존이 직접적이고 관계가 촘촘한 지역사회에 미칠 영향은 절대적이다. 메가프로젝트를 통해 세수와 일자리 확대를 기대하는 지방정부와 지방의회, 산학협력을 기대하는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 새로운 성장 출구를 기대하는 지역 주민과 언론 등은 해당 지역에 투자할 기업의 이해관계와 강력하게 결합할 것이 충분히 예상된다.
하지만 특정 지역에 특정 기업과 산업을 속도전으로 집중시키는 것은 지역사회 민주주의 구조 자체를 바꿔버릴 수 있다. 약 60년 전 피터 바흐라크와 모턴 바라츠가 「권력의 두 얼굴」에서 제기한 ‘무의사결정’(non-decision making) 이론은 이런 현실을 의미 있게 설명해 준다. 무의사결정은 상정된 안건이 검토 과정을 통해 부결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의제가 안건으로 상정하는 것 자체를 사전에 차단해 버리는 것을 말한다. 특정 기업이나 산업이 특정 지역에 과도하게 집중되면 이들은 단순한 경제 주체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고용과 세수, 정체성, 미래 전망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권력 주체가 되고, 이들에게 불리하거나 불편한 의제는 등장 가능성 자체를 구조적으로 배제시켜 버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선거와 공청회 등 민주적 절차와 제도가 존재하지만, 지역에서 비중이 커서 지역 전체 이익을 대변하는 기업이나 산업의 입장에서 자기 검열이 작동하고, 문제 제기자는 배반자로 낙인찍혀 소외되기 쉽다. 이렇게 되면 금기의 영역은 커지고 비판 기능은 사라지게 되어 지역 민주주의는 위축되고 형식화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주권’을 강조한 정부에서 ‘지역주권’을 위축시키고 황폐화하는 거대한 역설이 메가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민주주의 측면에서 메가프로젝트를 통한 주주자본주의의 확대 문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3대 메가프로젝트는 AI 시대의 ‘국가 성장 정책’인 동시에 ‘기업가치 상승 전략’이다. 프로젝트의 수혜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형 반도체 기업과 관련 플랫폼, 데이터센터, 건설, 전력 기업 등에 집중되고, 이것이 해당 기업의 가치와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사업이 지역균형발전과 국가 경쟁력 향상이라는 공공적 명분 아래 추진되지만, 그 성과가 주가 상승과 시가총액 확대로 평가될 경우, 공공은 인프라 건설 비용과 생태, 노동, 지역 차원의 부담을 떠안고, 주주는 미래 수익을 선점하는 구조가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주주자본주의는 기업의 목적을 주주의 수익 극대화로 제한시키고 탄소배출, 노동 불안, 지역사회 피해 같은 비용은 외부화시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값싼 화석연료를 사용해 생산비를 낮추고, 주가, 배당, 분기 실적 등 단기적 수익성을 우선하는 것이 주주자본주의 기업의 특징인 만큼. 기후 위기 시대에 요청되는 생태민주주의의 가치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래서 주주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는 방향에서 지역주민, 노동자, 소비자, 미래세대를 함께 고려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제시되고, 기업의 목적과 이사회의 책임, 가치사슬 전반에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제도적 노력이 강조되고 있는데, 메가프로젝트를 추동하는 속도전은 이런 대안적 시도 자체를 가로막을 가능성이 크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7월 13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첨단산업 전력·용수 공급 인프라 혁신전략 을 발표하고 있다. 2026.7.13. 연합뉴스
메가프로젝트의 경로의존성과 기후위기 시간과의 충돌
이재명 대통령은 메가프로젝트를 통해 ‘대체불가’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이 말 자체에 이미 대한민국의 틀을 회귀 또는 복원 불가능한 상태로 바꾸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들어가 있다.
실제로 메가프로젝트를 통한 대규모 투자와 인프라 및 산업 생태계 조성은 물리적, 제도적 측면 전반에 강한 경로의존성을 만들어내고, 국가와 자본을 공동운명체로 강력하게 결합시킬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우리 사회의 에너지 체계, 산업 및 공간 구조, 노동 구조 역시 총체적으로 바뀌어 고착될 전망이다. 교육 체계 역시 AI·로봇 전문인력을 5년간 1만 명 양성하는 계획에서 보듯이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이처럼 메가프로젝트는 단순한 산업정책이 아니라 전력과 물, 토지와 노동, 지역공간과 미래세대의 시간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놓는 초대형 국가사업이다. 문제는 자원의 투입 규모와 정치적 상징성이 결합해 경로의존성과 고착성을 키울수록, 매몰 비용도 커지게 되고 미래 선택 가능성은 제한된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상황 변화에 신속·유연하게 대응하면서 방향을 전환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지금은 경제-사회-생태계 전반의 중층적 복합위기 시대로, 자원을 효과적으로 재배치하고 유연하게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국가의 전략적 기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만큼 메가프로젝트가 국가를 개발국가로 회귀시키거나 기업국가·경쟁국가로 탈바꿈시킬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결코 가볍지 않다.
메가프로젝트가 만들어내는 경로의존성은 기후위기의 시간과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기후위기 대응에는 속도감 있는 국가의 역할이 분명 중요하지만, 첨단산업 육성에 쏟아붓는 속도전은 생태적 전환을 위한 시간 감각과 충돌하며, 비용과 부담을 미래로 떠넘겨 버린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은 막대한 전력과 용수를 필요로 하는 만큼, 해당 지역의 생태적 부담을 키우고 국가의 탄소중립 목표와도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산업정책은 시장과 경쟁, 투자자의 시간을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기후위기는 장기적이고 누적적이며 되돌리기 어려운 특성을 가지고 있어, 생태계의 회복 시간과 이를 지탱하는 민주적 숙의의 시간이 중요하다. 결국 지금 필요한 질문은 얼마나 빨리 갈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어떤 조건으로, 어떤 미래를 향해 갈 것인가”이다.
비전과 철학의 부재, 독일 Industry 4.0 의 교훈
3대 메가프로젝트에서 첨단 기술을 앞세운 초대형 투자 발표는 있으나 이것이 만들어낼 미래 사회에 대한 비전과 철학은 지금까지 잘 보이지 않는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첨단 기술이 뭔가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느낌은 강하게 드는데, 구체적으로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낼지는 여전히 모호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정책에 대한 이해와 개입의 여지, 발언권은 매우 제한된 채, 우물쭈물하면 경쟁에서 낙오한다는 두려움만 반복해서 주입되고 있다. 결국 이런 상태에서는 ‘알아서 잘 판단했겠지’, ‘신속하게 추진하면 결국 좋은 결과가 오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는 속히 거둬들일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서 ‘Industry(인더스트리) 4.0’의 경험은 곱씹어볼 만하다. Industry 4.0은 2010년대 초 독일이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제시한 스마트 제조, 디지털 전환 전략으로, 지능화를 통해 생산 공장과 공급망을 효율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자동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만으로는 노동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효율성 개선만으로는 자원 사용과 탄소배출 총량을 줄이지 못한다는 점이 과제로 확인되었다. 이런 반성 속에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21년 ‘Industry 5.0’을 제안하며, 산업의 목적을 일자리와 성장, 주주가치 중심에서 벗어나 인간 복지, 지구 한계, 이해관계자 가치로 확장할 것을 제시했다.
Industry 5.0이 강조하는 ‘지속가능성’, ‘회복탄력성’, ‘인간에 대한 존중’이라는 세 가지 가치는 3대 메가프로젝트가 다뤄야 할 과제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생산성 향상만으로는 산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시대에 메가프로젝트 사업이 탄소중립과 생태적 지속가능성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지, 수출주도형 대기업 의존이 강한 한국경제의 구조를 메가프로젝트 사업이 더 고착시킬지 아니면 새로운 전환의 계기를 만들어 낼 것인지, 그리고 이 사업을 구성하는 자동화와 데이터화가 노동자를 소외시키지 않고 존엄과 창의성을 갖춘 존재로 역할 하도록 할 수 있는지를 세심히 살펴야 한다.
회복탄력성을 되찾는 시간의 정치 필요
국가 정책에서 속도의 중요성을 외면할 수는 없지만, 기후위기가 시대적 과제로 등장한 지금 우리가 정직하게 답해야 할 질문은 메가프로젝트를 최우선 과제로 총력을 기울이면 지속가능한 미래와 행복한 삶이 보장되는가”이다.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가 늘고 관련 기업의 매출과 주가가 상승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전력과 물 소비가 급증하고 탄소배출과 생태적 부담이 커져 탄소중립 경로에서 벗어난다면, 기후위기 시대에 이를 온전한 성공이라 부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메가프로젝트라는 초대형 사업에 공적 자원을 집중 투입한다는 것은 결국 다른 분야에 쓰여 왔거나 쓰이게 될 자원의 배분 구조를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여기에다 불확실성 속에서 한국경제 전체의 쏠림과 의존성은 더욱 커져서 ‘카지노 경제’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7월 말 기준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식의 시가총액은 코스피 전체의 약 58.1%를 차지한다. 소위 삼전-닉스 경제로 불릴 만큼 이들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한데, 지난 1년 사이 주가 변동에서 확인되듯이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너무 커서 소위 ‘꼬리가 머리를 흔든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속도’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대기업에 인허가 단축은 시장 선점의 기회이지만, 지역 주민에게는 사업의 영향과 피해를 묻고 따질 시간을 빼앗는 일이 될 수 있다.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의 조기 완공은 정책적 성과일 수 있어도, 노동자에게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교육과 전환의 시간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미래세대에게는 되돌릴 수 없는 탄소 경로와 생태적 부담을 물려줄 수 있다. 잘못 설정된 속도는 재정 낭비는 물론 미래에 대한 선택의 범위 자체를 제한시킨다.
대안은 획일적인 감속이 아니라 ‘시간의 정치’를 통한 속도의 재구성과 시간의 재배치다. 기술혁신의 시간, 인프라 건설과 운영의 시간, 노동과 교육의 시간, 지역공동체의 관계 및 합의형성의 시간, 민주적 숙의의 시간, 생태계가 회복되는 시간, 미래세대의 시간은 서로 다르며, 여기에 기후위기의 임계점을 막기 위해 전환을 서둘러야 하는 긴급한 시간도 존재한다. 이러한 다양한 시간의 성격을 세심하게 읽고 무엇을 가속하고 무엇을 신중히 검토하며 무엇을 감속해야 하는지를 민주적으로 구분하고 재배치하는 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메가프로젝트의 속도전이 만들어내는 가속화는 시간 인식과 작동을 획일화시킨다. 문제는 속도의 빠름 자체를 넘어서 단일한 시간 지표로 기후위기 대응 및 전환을 위한 시간의 다차원적 특성을 외면하고 억압하는 데 있다.
속도의 재구성을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메가프로젝트처럼 돌이킬 수 없는 규모의 정책은 한꺼번에 동시에 추진하기보다 단계별 계획과 집행, 중간 점검과 보완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공공 인프라와 세제 혜택을 받는 기업에는 지역 고용, 중소기업 참여, 기술 공유, 수익의 환원 같은 공적 책임 구조를 투명하게 만들고, 노동자, 지역주민, 시민단체 등 폭넓은 이해당사자에 대한 정보 제공과 의견 수렴, 의사결정 참여의 기회를 제도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주주자본주의의 단기적 속성을 견제해야 한다.
불확실성이 급속히 커지는 위험사회에서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노력 또한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기서 회복탄력성은 단순히 충격을 견디는 능력을 넘어서 잘못된 판단을 인정하고 경로를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빠른 국가’가 반드시 ‘강한 국가’는 아니며 ‘좋은 국가’는 더더욱 아닐 수 있다. 사회적 성찰과 집단적 숙의를 생략한 빠른 국가는 오히려 ‘위험한 국가’가 될 수도 있다. 책임의 기제가 생략된 속도는 경쟁력이 아니라 위험의 가속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기후위기 시대에 속도에 대한 강조가 미래세대에게 되돌릴 수 없는 탄소 경로와 생태적 부담을 남겨줘서는 안 될 일이다.
정규호 생명학연구회 부회장, 녹색국가 저자
바람직한 국가는 대규모 시설을 가장 빨리 짓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산업을 생태적 한계 안에서 관리하고 그 이익과 부담을 정의롭게 배분하는 국가다. 메가프로젝트 역시 산업 경쟁력을 위한 속도전을 넘어서 생태적 한계와 민주적 숙의 과정을 고려하고, 지역공동체와 노동자의 전환 시간을 보장하며,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을 고려하는 예민한 시간 감각의 정치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정규호 생명학연구회 부회장(『녹색국가』 저자) ecosociet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