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 에 열광했는데…등굣길은 여전히 불안하기만 [교육] 넷플릭스 참교육 이 던진 사이다 맛은 판타지였지만, 우리 아이의 등굣길 불안은 지독한 현실이다.
선을 넘는 학생과 학부모, 이를 방조하는 교사 때문에 무너진 교실을 가상의 교권보호국 이 이에는 이 식으로 응징한다는 이 판타지 액션물은 공개 직후 단숨에 글로벌 1위에 오르며 화제가 됐다. 교육 현장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다뤘다 는 열광과 폭력을 낭만화했을 뿐 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사이, 정작 이 넷플릭스 발(發) 사이다에 기민하고도 괴이쩍게 반응한 쪽은 다름 아닌 현실의 교육 행정이었다.
지난 1일, 전국 시·도 교육감들이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앞다퉈 꺼내든 1호 결재는 마치 넷플릭스 대본을 그대로 옮겨온 듯했다. 충남교육감은 취임 첫 날 교권보호관 추진단 출범에 서명했고, 강원과 제주 역시 명칭만 다를 뿐 교권 보호 전담 기구 신설을 일제히 최우선 과제로 발표했다. 대중의 분노가 끓어오르는 곳마다 영웅적 기구를 뚝딱 세우는 발빠른 행정력이 참으로 눈물겹다.
내가 나화진 되겠다 참교육 현실판?…교사들, 안민석에 연락 쇄도 [지금이뉴스] / (사진출처) YTN 유튜브
그 중에도 압권은 경기도였다. YTN을 비롯한 언론에는 이건 아닌데 싶은 다소 낯선 뉴스가 줄을 이었다. 안민석 경기도교육감이 당선인 신분으로 극 중 조직을 본뜬 교육활동보호국 신설 구상을 밝히자, 특전사와 해병대 출신 교사들이 앞다투어 내가 현실판 나화진(극 중 주인공)이 되겠다 며 지원이 쇄도했다는 것이다. 수십 년간 곪아 터진 공교육의 모순을 특정 개인의 완력 과 영웅주의 에 외주화하려는, 어쩌면 관료 행정의 가장 얄팍한 민낯이었다.
물론 반작용도 있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참교육 식 교권 보호는 파시즘 이라며 날을 세웠다. 학교 현장의 문제는 끝까지 폭력이 아닌 교육적인 방식 으로 풀어야 한다는 그의 지적은 흠잡을 데 없이 올바른 원칙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씁쓸하긴 매한가지다. 한쪽은 포퓰리즘에 취해 완력을 앞세운 영웅 놀이에 빠져 있고, 다른 쪽은 고상한 원칙론만 읊조리는 것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 사이에 당장 매일 아침 우리 아이의 등굣길을 지켜줄 제도의 울타리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당장 우리 지역의 학교 앞 현장만 봐도 행정의 무기력함은 여실히 드러난다. 엊그제 학교 회의 중 들은 이야기다. 최근 등굣길 골목에서 담배 피우는 고등학생들에게 훈육을 시도하던 학교 보안관이 도리어 곤욕을 치를 뻔했는데 젊은 경찰관이 나타나 위기를 모면했다는 것이다. 등굣길 안전을 위해 배치됐지만, 법적으로 학생을 제지할 명확한 권한이 없는 보안관들은 그저 완장 하나 찬 관찰자 로 덩그러니 서 있을 따름이다.
교육청들이 으리으리한 전담 기구를 만들거나 앙상한 원칙을 부르짖는 사이, 정작 아이들이 매일 걷는 길은 낡은 제도 속에 방치돼 왔다. 학교전담경찰관(SPO)과의 연계를 통해 이들의 권한을 명문화하고 실질적 보호망을 짜야 한다는 목소리는 늘 이념 다툼과 예산 핑계 때문에 밀려났다.
학교 보안관은 학교 안팎의 안전을 관리하는 전담 인력이다. 아이들의 등하교와 교통안전 지도는 물론, 외부인 출입 관리, 폐쇄회로(CC)TV 관리 등 다양한 일을 맡는다. 코로나 감염병이 기승을 부리던 2020년 5월 28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교보안관이 소나기가 쏟아지자 아이들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교실로 데려가고 있다. 2020.5.28 연합뉴스 자료사진
불과 30여 년 전, 열한 살이던 나는 혼자 시내버스를 타고 학원을 오갔다. 열 살의 봄날에는 외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돼지저금통의 배를 갈라 시내버스와 시외버스, 다시 군내버스를 번갈아 타며 홀로 3시간 거리를 찾아가기도 했다. 세상은 눈부시게 발전했는데 왜 우리는 아이의 등굣길조차 온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는 걸까. 주말에 근처 놀이터에 놀러 가겠다고 나서는 아이에게 핸드폰을 쥐어주고, 위치어플로 아이의 실시간 위치를 살펴 보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통계를 보면 강력범죄는 장기적으로 감소 추세라는데 2026년 국민안전 인식조사에서 국민의 절반 가까이는 여전히 안전을 심각한 문제로 느낀다고 답했다. 열한 살 아이를 위치추적 앱으로 살피는 부모의 마음은 결코 유별난 과잉 보호가 아니다. 숫자로만 안전하다고 자화자찬하는 국가와, 판타지 드라마에 기대 면피하려는 행정을 믿지 못해, 부모 개개인이 사비와 불안한 마음을 갈아 넣는 처절한 생존 전략일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특전사 출신의 영웅도, 교실 밖에서 읊조리는 고상한 원칙도 아니다. 학교보안관의 권한을 실질적인 법으로 뒷받침하고, SPO와 학부모, 이웃이 촘촘하게 엮이는 등굣길 관계망을 복원하는 일이다. 거창한 이념의 깃발을 내리고, 우리 아이들의 위태로운 발걸음 곁에 투박하지만 튼튼한 제도의 울타리를 세우는 것. 그것이 임기를 시작한 교육감들과 지금의 교육자치, 나아가 정치가 당장 답해야 할 진짜 참교육 이다.조태희 시민기자 jotaehu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