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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는 끝났는데… 왜 극우는 돌아오는가
[칼럼]
이병권 인문연구가는 최근 본지에 청년 극우화를 다룬 16부작 연재를 통해 그 역사적 배경과 오늘의 조직·문화·미디어 환경을 분석하고, 대안까지 심도깊게 제시한 바 있다. 이번 연재에서는 《시민이 세운 권력, 어떻게 시민의 것으로 지킬 것인가》를 주제로 민주개혁정부의 지속가능성의 조건을 묻는다.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브라질을 비롯한 해외 사례와 한국의 현실을 함께 살핀다. 극우세력의 위협이 지속되는 가운데, 민주정부와 집권당은 무엇을 지키고, 집중해야 하며, 또한 무엇을 바꾸어야 하며, 시민은 선거 이후에도 어떻게 권력의 주인으로 남을 수 있는지 묻는다. 생활의 개선과 개혁의 이행, 권력의 책임과 자기교정, 시민의 지속적인 참여와 견제를 통해 민주공화국을 지킬 조건을 짚는다(편집자 주). 브라질 시민은 다시 룰라를 선택했다. 2026년 10월 25일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Luiz Inácio Lula da Silva, 1945~) 대통령은 유효표의 51.79%를 얻어 네 번째 당선을 이루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 1955~) 전 대통령의 장남 플라비우 보우소나루(Flávio Bolsonaro, 1981~)는 48.21%를 얻었다. 1차 투표에서 뒤졌던 룰라가 결과를 뒤집으며 보우소나루 계열의 재집권을 막았다. (브라질 고등선거법원, 2026.10.26.) 그러나 패배한 후보가 얻은 지지도 가볍게 볼 수 없다. 쿠데타 시도 등의 범죄로 징역 27년 3개월을 선고받은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가 결선에서 유효표의 절반에 가까운 지지를 얻었다. 지도자를 처벌하고 선거에서 그 계열의 집권을 저지했지만, 그들을 떠받친 정치적 기반은 남았다. 브라질 연방대법원 재판부는 보우소나루가 2022년 선거에서 패배한 뒤에도 권력을 유지하려 했다고 판단해, 2025년 9월 11일 쿠데타 시도 등 다섯 가지 범죄에 유죄를 선고했다. 헌정질서를 공격한 행위에 책임을 물은 중요한 성과였다. 다만 한 지도자의 처벌이 그를 지지한 세력의 쇠퇴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로이터·AP통신, 2025.9.11.) 플라비우에게 투표한 시민 모두가 쿠데타를 지지했다고 볼 수는 없다. 생활의 어려움과 치안 불안, 노동자당 정부에 대한 실망 등 서로 다른 판단이 선택에 작용했을 수 있다. 각 요인의 비중은 따로 살펴야 한다. 룰라의 승리 역시 하나의 정책이나 선거 전략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 글에서 주목할 것은 극우가 다시 집권을 다툴 수 있었던 기반이다. 브라질 극우세력은 지도자의 처벌 이후에도 어떻게 그 힘을 유지했는가. 독재는 끝났는데, 독재의 권위를 내세우는 정치는 왜 다시 영향력을 얻었는가. 이를 이해하려면 민주화 이후에도 남은 역사적 유산과, 그것을 오늘의 지지로 바꾸는 조직을 함께 살펴야 한다.   26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브라질 대통령이자 대선 후보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가 대선 결선 투표 승리 후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2026. 10. 26 [AP=연합뉴스] ■ 반공 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하나의 권력으로 묶었다 브라질의 반공주의는 냉전보다 오래되었다. 1935년 공산주의자들과 연계된 군사봉기 이후 반공은 군부와 보수세력을 결집하는 강력한 언어가 되었다. 여기에 미·소 냉전과 1959년 쿠바혁명이 더해졌다. 미국은 라틴아메리카에서 공산주의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경계했고, 브라질의 군부와 보수세력은 토지개혁과 재분배 요구를 공산주의의 위협과 연결했다. 이들이 지키려는 이해관계는 서로 달랐다. 대농장주는 토지개혁을, 기업가는 노동운동과 재분배를 경계했다. 보수적 종교계는 무신론과 전통적 도덕의 변화를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군부는 이를 국가안보의 문제로 묶었다. 서로 다른 세력이 ‘공산주의로부터 나라를 지킨다’는 구호 아래 모였다. 반공은 공산당에 대한 반대를 넘어 사회개혁과 정치적 반대자를 억압하는 명분이 되었다. (호드리구 파투 사 모타〔Rodrigo Patto Sá Motta, 1966~〕, 『‘붉은 위험’을 경계하며: 브라질의 반공주의, 1917~1964』, 2002) 미국도 쿠데타 세력을 지원할 준비를 했다. 1964년 쿠데타 당시 미국 정부는 주앙 굴라르트(João Goulart, 1919~1976)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군부가 강한 저항에 부딪힐 경우 무기와 탄약, 연료를 공급하고 필요하면 전투병력을 투입할 태세를 갖추었다. ‘브라더 샘 작전(Operation Brother Sam)’이었다. 공개된 문서와 대통령 녹음은 미국이 쿠데타의 성공을 뒷받침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미국 국가안보기록보관소, 「브라질 군사쿠데타 50주년」, 2014.4.2.) 1964년 3월 말 시작된 쿠데타는 굴라르트 정부를 무너뜨렸다. 군부는 위기를 수습한 뒤 물러나지 않았다. 1985년까지 21년 동안 권력을 장악하며 노동조합과 학생단체, 농민조직과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했다. 나라를 구하고 질서를 회복한다는 명분 아래 시민의 권리를 빼앗았다. 고문과 살해, 강제실종도 국가 차원에서 조직되었다. 2014년 국가진실위원회는 군사독재기의 중대한 인권침해가 광범하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최고위층이 계획하고 명령한 국가정책의 일부였다고 밝혔다. 위원회의 공식 조사 범위는 1946~1988년이었고, 군사독재기의 범죄가 조사의 중심을 이루었다. 위원회가 확인한 사망·실종자 434명은 입증된 사례의 수이며, 고문과 불법 구금 등을 포함한 전체 피해 규모가 아니다. 독재의 범죄를 일부 군인과 경찰의 과잉행위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이 조사에서 드러난 결론이었다. (브라질 국가진실위원회, 『최종보고서』, 2014; 휴먼라이츠워치, 2014.12.10.) 반공의 적으로 지목된 시민은 정치적 권리뿐 아니라 생명과 신체의 안전까지 빼앗겼다. 군부와 그 지지세력은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시민을 정치적 경쟁의 상대에서 국가가 제거해야 할 적으로 바꾸었다. ■ 시민은 독재를 끝냈지만, 청산은 충분하지 않았다 독재를 끝낸 것은 군부의 자발적인 양보만이 아니었다. 노동자의 파업과 학생운동, 인권운동이 정권을 압박했다. 1983~1984년에는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디레타스 자(Diretas Já·직선제를 지금)’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시민은 자신을 통치할 사람을 직접 결정하겠다고 요구했다. 민주화 과정에서 군부가 전면적으로 패배하거나 구체제가 해체된 것은 아니었다. 군부가 추진한 점진적 개방과 시민의 저항, 야당과 독재 지지세력 일부의 협상이 함께 작용했다. 1985년 3월 15일 군부 직접통치가 끝나고 민간정부가 출범했지만, 그해 정권교체는 선거인단의 간접선거를 통해 이루어졌다. 1988년 10월 5일 새 민주헌법이 공포되었고, 이듬해에야 대통령 직접선거가 다시 실시되었다. (브라질 하원 라디오, 「민주적 이행」·「투표의 재민주화」, 2005.3.15.)   2026년 10월 16일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 주이시디포라에서 열린 유세 행사에서 브라질 대통령이자 재선 후보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가 손을 흔들고 있다. EPA 연합뉴스       시민은 대통령을 직접 선출할 권리를 되찾았고, 군사독재의 법질서를 대신할 민주헌정의 기반을 세웠다. 오랜 저항의 성과였다. 그러나 권리의 회복은 독재범죄에 대한 충분한 책임 추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1979년 사면법은 정치범의 석방과 망명자의 귀환을 가능하게 했다. 이후 브라질 법원은 이 법이 국가폭력 가해자들도 처벌에서 보호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독재의 진실을 밝히는 일과 가해자에게 형사책임을 묻는 일 사이에는 오랜 간극이 남았다. (휴먼라이츠워치, 2014.12.10.) 불충분한 청산만으로 오늘의 극우세력을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가해자의 책임을 충분히 규명하고 처벌하지 못한 역사는 독재를 미화하는 정치가 파고들 여지를 남겼다. 고문과 실종의 책임이 흐려지면 독재를 질서와 발전의 시대로 포장하기 쉬워진다. 시민을 억압했던 군사적 권위도 강한 지도력으로 다시 내세울 수 있다. 민주화는 통치의 규칙을 바꾸었다. 그러나 과거의 통치를 정당화했던 주장과 그 주장을 받아들이는 세력까지 없애지는 못했다. 그 유산이 새로운 정치적 영향력을 얻으려면 오늘의 불만과 결합해야 했다. ■ 반공은 반노동자당 정서와 결합해 극우 연합을 넓혔다 독재에 맞선 노동운동에서는 새로운 정당이 성장했다. 1980년 2월 창당된 노동자당(Partido dos Trabalhadores, PT)에는 노동조합 지도자와 여러 좌파 흐름, 지식인과 지역사회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노동자의 조직과 다양한 사회운동을 기반으로 출범한 정당이었다. (제툴리우 바르가스 재단, 『브라질 역사 아틀라스』, 「노동자당」, 발행일 미표기·2026.10.9. 확인) 극우세력의 반공 언어는 노동자당 안의 다양한 흐름과 정책의 차이를 지웠다. 노동자당과 사회개혁 세력을 공통의 적으로 묶었다. 냉전이 끝난 뒤에도 반공은 국내의 정치적 상대를 공격하는 언어로 남았고, 반노동자당 정서와 결합하면서 새로운 힘을 얻었다. 그 정서가 확대된 데에는 집권세력에 대한 실망도 작용했다. 노동자당은 2003년부터 2016년까지 대통령직을 맡았다. 2013년 이후의 정치적 위기와 경기침체, 대규모 부패 사건, 범죄에 대한 불안은 노동자당을 비롯한 기존 정당의 신뢰를 흔들었다. 보우소나루는 그 틈에서 부패 척결과 강력한 치안을 약속하며 기존 정치에 맞서는 인물로 자신을 내세웠다. 오래된 반공 언어가 현재의 불만과 결합하면서 지지의 범위를 넓힌 것이다. (웬디 헌터·티머시 J. 파워, 「보우소나루와 브라질의 반자유주의적 반격」, 『민주주의 저널』 제30권 제1호, 2019) 2025년 발표된 한 연구는 보우소나루주의(Bolsonarismo)를 신파시즘, 극단적 경제자유주의, 기독교 보수주의, 군사적 권위주의가 결합한 극우 담론 연합으로 분석한다. 서로 다른 흐름이 반공주의와 반노동자당 정서를 통해 공통의 적을 설정하고 협력했다는 것이다. (안드레 카이젤·알바루 비앙키, 「극우 담론 연합으로서의 보우소나루주의」, 『카데르누 CRH』 제38권, 2025) 시장의 자유를 강조하는 세력과 군사적 통제를 선호하는 세력은 국가의 역할을 두고 충돌할 수 있다. 종교적 도덕을 앞세우는 세력과 경제적 이익을 우선하는 세력의 관심도 다르다. 그럼에도 노동자당을 권력에서 밀어내는 데서는 협력할 수 있다. 함께 배제하려는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극우세력의 주장에 모순이 있다는 지적만으로 그 결속을 무너뜨리기 어려운 이유다. 오늘의 극우세력은 독재의 유산을 현재의 정치적 동원에 활용한다. 과거의 권위를 내세우면서도 정부에 대한 새로운 불만을 흡수하고, 선거를 통해 권력을 확보하려 한다. 이들이 어떻게 시민을 만나고 불만을 정치적 지지로 바꾸는지 살펴야 한다.   브라질 야당 대선 후보로 나선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브라질 연방상원의원. 2026.10.25. [AP=연합뉴스] ■ 교회와 지역의 관계가 정치적 지지를 만들었다 공통의 적대감만으로 지지가 유지되지는 않는다. 주장을 반복해서 전하고 시민을 행동으로 이끌 조직이 필요하다. 브라질 극우세력의 성장을 온라인 선동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사람들이 어디에서 만나고 누구의 말을 믿는지도 중요하다. 군사독재 성립 당시에는 보수적 가톨릭의 동원이 중요했다. 오늘날 극우세력의 지지 기반을 살필 때에는 보수적 개신교 지도자와 오순절·신오순절 교회의 영향력도 주목해야 한다. 정당·노동조합·교회의 변화를 비교한 연구는 오순절 교회가 상당수 시민이 정치를 경험하는 주요 공간으로 부상했다고 분석했다. 과거 룰라를 지지했던 복음주의 유권자들 사이에서 2018년 보우소나루 지지가 확대된 변화도 이러한 조직적 조건 속에서 살폈다. (엘리자베스 매케나, 「세금과 십일조: 보우소나루주의의 조직적 기반」, 『국제사회학』 제35권 제6호, 2020) 실제 선거운동은 그 연결을 보여준다. 2018년 로이터는 보우소나루의 선거운동 관계자들이 전국의 종교 지도자들을 만났고, 일부 지도자가 신도들에게 그를 지지하도록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신도 자원봉사자들은 교회 밖에서 선거 유인물을 나눠주고 친구와 이웃에게 지지를 권했다. 지도자의 지지 선언이 신도들의 접촉과 권유를 거쳐 지역의 선거운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로이터, 2018.9.27.) 그 과정에서 종교적 가치와 정치적 선택도 연결되었다. 보우소나루를 지지한 일부 지도자는 성소수자의 권리와 학교 교육의 변화를 기독교적 가족에 대한 위협으로 제시했다. 보우소나루 지지는 그 위협으로부터 신앙과 가족을 지키는 선택으로 설명되었다. 정책의 내용과 효과를 따지는 논쟁이 신앙을 지키는 편과 해치는 편의 대결로 바뀐 것이다. (로이터, 2018.9.27.) 2018년의 사례만으로 2026년 선거의 지지 형성과 최종 결과를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정치적 주장이 생활 속 관계를 따라 전달되는 경로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평소 함께 예배하고 교류하는 사람의 권유는 낯선 정치인의 광고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미 신뢰하는 지도자와 이웃이 온라인 메시지를 반복해서 전하고 지지를 권하면, 정보의 확산이 투표와 행동의 동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시민이 정치를 접하는 중심 공간이 바뀌면, 그들의 불만을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지도자와 조직도 달라진다. 정당과 노동조합, 지역사회 조직이 시민과 맺는 관계가 약해진 자리에 다른 조직의 설명과 권유가 들어설 수 있다. 민주세력이 선거에서 이겼다는 이유만으로 시민과의 일상적 연결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물론 개신교 신자나 농업 종사자, 군·경 출신 전체를 극우세력으로 묶어서는 안 된다. 같은 신앙과 직업을 가진 시민도 정치적 선택은 다르다. 보수적 신앙이나 시장 중심의 정책 자체가 헌정파괴를 뜻하지도 않는다. 판단할 대상은 특정 지도자와 조직이 불안과 이해관계를 어떻게 동원하며, 어떤 행위를 하는가이다. 정치적 상대를 국가와 신앙의 적으로 규정하면 공존의 여지는 좁아진다. 선거에서 패배했을 때 상대의 통치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기도 어려워진다. 선거에 참여한다는 사실만으로 민주주의의 원칙까지 존중한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패배를 받아들이는지, 반대자의 권리를 인정하는지, 국가기관을 권력 유지에 동원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사상의 명칭보다 행위와 그 결과가 판단의 기준이어야 한다. 국내의 지지 조직에 국외의 정치적 지원이 더해지기도 했다. 트럼프 정부는 2025년 7월 보우소나루에 대한 기소를 부당한 정치적 박해로 규정하며 브라질 상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다른 나라의 사법절차를 경제적 압박의 명분으로 삼은 것이다. 보우소나루를 박해받는 지도자로 내세우는 주장에 미국 대통령이 힘을 보탠 사례다. 이러한 국제적 연결의 작동 방식과 한계는 후속 글에서 살펴볼 것이다. (미국 백악관, 행정명령 제14323호, 2025.7.30.) ■ 선거의 승리 이후에도 남은 과제 이번 선거에서 보우소나루 계열은 대통령직을 되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 패배를 정치적 기반의 붕괴로 해석할 수는 없다. 의회 선거에서도 그가 속한 자유당 후보들의 강세가 나타났다. 대통령선거에서의 패배와 의회·지역·종교조직에 남은 영향력을 구분해야 한다. (로이터, 2026.10.6.) 동시에 극우의 조직력이 시민의 선택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룰라는 1차 투표의 열세를 뒤집었다. 그 승리를 평가하려면 극우의 동원뿐 아니라 민주정부의 정책과 시민의 대응도 함께 살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은 그 가운데 주목할 사례다. 브라질 의회는 결선 이전인 10월 16일, 임금 삭감 없이 주당 유급휴일을 이틀로 늘리고 최대 노동시간을 단계적으로 40시간까지 줄이는 헌법 개정을 공포했다. 룰라가 지지한 주5일 근무와 노동시간 단축이 약속을 넘어 입법으로 이어진 것이다. 실제 시행과 선거에 미친 영향은 구분해 평가해야 하지만, 노동자의 휴식과 생활 개선 요구에 응답한 정책이라는 의미는 분명하다. (브라질 하원, 2026.10.16.) 그 성과가 남은 과제를 없애지는 않는다. 재선은 앞으로 권한을 행사할 기회를 부여한다. 지난 임기의 모든 선택을 승인하거나 책임을 면제하지는 않는다. 생활의 불안과 불평등, 범죄조직의 지배와 국가기관의 감독 실패는 선거가 끝났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극우의 재집권을 저지한 정부에는 시민이 변화를 요구했던 조건을 개선할 책임이 남는다. 브라질의 경험은 독재를 끝내고 헌정파괴의 책임을 묻는 일이 왜 선거 이후의 개혁으로 이어져야 하는지 보여준다. 처벌받은 지도자를 대신할 인물은 등장할 수 있다. 기존 조직과 이해관계가 남아 있다면 새로운 불만을 모아 다시 집권을 시도할 수도 있다. 그 힘을 약화시키려면 범죄에 책임을 묻는 일과 함께, 시민의 불만이 생겨나고 쌓이는 조건을 바꾸어야 한다. 한국에서도 시민의 저항과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로 12·3 계엄이 저지되었고, 이후 탄핵과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두 나라의 역사와 제도는 다르다. 그러나 헌정질서를 지켜낸 뒤에도 그 질서를 위협했던 세력의 기반이 남고, 새 정부에는 시민이 맡긴 과제를 수행할 책임이 있다는 점은 함께 생각할 수 있다. 그 책임은 시민에게 지지를 요청하는 것만으로 다할 수 없다. 시민은 자신이 세운 정부에도 정책의 근거를 묻고 잘못을 고치라고 요구할 수 있다. 민주정부가 그 요구에 응답하는 일은 극우의 위협 때문에 미룰 과제가 아니다. 시민의 권리와 생활을 지키라고 맡겨진 권한을 행사하는 일이다. 다음 글에서는 룰라 정부의 고용·소득 성과와 생활정책을 살피고, 그 성과에도 남은 생활비와 부채, 치안의 불안, 공적 책임의 문제를 검토한다. 재선에 성공한 정부가 무엇을 이어가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시민이 맡긴 권한의 책임을 묻는다.  이병권 인문연구가 lbkwon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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