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학생 명부 의원들 부치치 협력자 물러나라 [뉴스] 지난 총선 결과 세르비아 의회의 과반 의석을 차지한 학생 명부 정당 대표들이 29일(현지시간) 수도 베오그라드의 선구자 공원(Pionirski Park)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새 정부 운영 계획 등을 밝히고 있다. 2026.10.29.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25일(현지시간) 세르비아 조기 총선 결과 과반 의석을 차지해 14년 동안 권력을 장악한 알렉산다르 부치치 정부를 축출한 대학생들이 앞세운 정당 학생 명부 의원들이 대대적인 숙청을 촉구하고 나섰다고 영국 BBC가 29일 전했다. 경찰, 정보기관, 사법부 고위 인사들도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학생 명부란 이름만 들으면 대학생들이 직접 의회에 진출한 정당처럼 보이지만, 정확히는 학생들이 주도해 후보자를 선정하고 시민사회 인사들을 모아 만든 정당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주로 조직과 의사결정을 담당했고, 실제 후보자들은 교수·의사·농민·전문가·예술인 등 다양한 직업군으로 구성됐다.
이번 총선에서 승리한 학생 명부 소속 당선자들은 이날 의회 맞은편 파이어니스 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법을 위반한 모든 경찰관의 즉각 해임을 요구하며 경찰, BIA 보안국, 대테러 부서장들을 지목해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아울러 학생 명부는 지식인, 교수, 예술가, 운동선수, 그리고 최대 12명의 의사와 외과의사로 구성된 신참 정치인 그룹에 정치체제를 크게 혁신하는 임무를 맡기기로 결정하는 투표를 그 임무를 맡기기로 투표를 통해 결정했다. 유럽 국가 가운데 정치체제를 이렇게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재설정하자고 투표하는 일은 아주 드물다고 방송은 지적했다.
하지만 권력 이양에는 몇 주가 걸릴 것이며, 학생운동 지도부는 그 기간에 전 정권의 부정행위 증거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베오그라드 주민들이 28일(현지시간) 정치적 구호와 낙서들로 어지러웠던 시내 중심가 청소에 일제히 힘을 합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대학생들의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학생운동 지도자들이 만든 정당 학생 명부가 지난 25일 조기 총선 결과 의회 과반 의석을 차지해 14년 동안 철권 통치를 해 온 알렉산다르 부치치 정권을 무너뜨린 지 사흘 만이다. 2026.10.28. AFP 연합뉴스
당선자들이 기자회견을 연 선구자 공원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처럼 반정부시위 천막들이 늘어선 곳이었다. 부치치 전 대통령이 25일 밤 패배를 인정한 지 몇 시간 만에 천막촌은 해체됐고, 다음날 아침 자원봉사자들이 청소를 하겠다며 몰려들었다. 마리야 밀로바노비치(25)는 공원 벤치를 닦던 중 이건 첫 번째 대청소일 뿐이고, 새로운 대청소가 지금 시작되고 있다. 우리는 매우 기대되면서도 준비돼 있다 고 말했다.
유럽 각국에 커다란 충격을 안긴 세르비아 학생운동은 2024년 11월 이 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노비사드 시의 철도역 지붕이 무너져 16명이 사망한 참극에 항의하는 시위에서 시작됐다. 학생들의 목표는 책임자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고, 세르비아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에 책임이 있는 광범위한 부패 혐의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담대한 약속을 했다. 이들은 학생 계획(Student Plan)에 의거해 약탈을 중단하고, 훔친 물품을 국가 예산에 반환하며, 교육과 경제에 직접 투자하겠다 고 다짐한다.
부치치 충성파 숙청은 이미 세르비아 국영 방송사 RTS에서 시작됐다. 만야 그르치치 국장이 사임했다. 신임 국회의원 미르야나 니콜리치는 세르비아 시민들이 진실한 정보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RTS가 몇 년간 정부의 이익에 봉사해 왔다고 말했다.
신임 의원들은 텔레콤 스르비야의 수장 블라디미르 루치치도 물러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 세르비아 대통령 대행인 부치치 충성파 아나 브르나비치는 반대 세력이 법치주의가 아닌 혁명적 정의 를 선택했으며, 그들이 싫어하는 모든 언론을 폐쇄하려 한다 고 힐난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중앙은행 총재를 지냈으며 신임 의원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인 데얀 쇼슈키치는 6개월 안에 핵심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며 첫 6개월 동안 미디어 환경이 해방되고, 부패와 싸우며, 법률에 따라 운영되는 기관들과 정해진 법률과 정화(lustration)법이 도입되길 바란다 고 밝혔다. 정화란 세르비아인의 권리를 침해한 부치치 정부나 당 조직의 구성원을 공직에서 배제하는 것, 다시 말해 숙청을 의미한다.
물론 이런 숙청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세르비아의 주요 권위가 오랫동안 부치치와 그의 정당에 의해 장악되어 왔기 때문이다. 베오그라드에 본부를 둔 유럽정책센터의 스트라힌야 수보티치는 궁극적으로 새 행정부가 과거에 잘 운영된 부문들과 다리를 놓아야 한다 고 믿는다고 털어놓았다.
조기 총선에서 당선된 141명 전원은 세르비아 전역의 대학생들이 길고 비밀스럽고 신중하게 준비된 과정을 통해 선발했으며, 국가의 완전한 재건을 위한 운동 계획을 실행하는 임무를 맡게 됐다. 몇 달 동안 논의를 거쳐 정치적 의제들을 합의했다. 이제는 학생들이 직접 계획하지 않고 다양한 당선자와 지원자 팀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학생 명부 의원 당선자 가운데 또 다른 주요 인물은 베오그라드 대학 유기화학 교수인 라도미르 사이치치이다. 그는 BBC에 실질적인 메커니즘은 현장에서 개발될 것이지만, 새 국회의원들은 1200쪽 분량의 길고 상세한 계획을 고수할 것 이라고 말했다. 사이치치는 또 의회가 결정을 내리고 있지만, 이번 변화는 학생들의 노력으로 주도됐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의견을 매우 소중히 여기고 긴밀히 협력할 것 이라고 다짐했다.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25년 9월 2일(현지시간) 중국 수도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회담을 갖기 위해 만나고 있다. 2025.92. 풀 로이터 자료사진 연합뉴스
그러나 정치 초년생들이 대다수이고, 명확한 지도자가 없는 데다 국제무대에서 세르비아의 국가적 이익을 어떻게 확보해나갈지 등 일련의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방송은 지적했다. 세르비아는 유럽연합(EU) 가입 후보국이자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유럽 블록 가입 시도는 오랫동안 뒷전으로 밀려 왔으며, 발칸반도의 이웃 국가들은 계속 추진하고 있다.
EU는 학생 명부의 승리를 신속히 환영하며, 법치주의, 언론 자유, 부패 척결 개혁을 지지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학생 명부의 선거 공약 가운데 EU 통합 부문은 매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블록을 단지 세르비아의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 로 묘사하고 있다.
몇 년 동안 베오그라드는 EU와 동방 파트너인 러시아, 중국 사이에서 외교 정책을 균형 있게 맞춰왔다. 베오그라드는 2022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인 침공 이후 모스크바에 제재를 가하지 않음으로써 유럽 나라들과 다른 행보로 이목을 끌었다. 그 대가로 세르비아는 국내 안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우대 가스 가격을 받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부치치의 권좌 유지를 간접 지원해 왔다.
학생들이 외교정책 방향을 바꿀 계획이 있다는 뜻은 아니며, 세르비아의 외교 정책 변화는 우선순위가 아닐 수도 있다. 쇼슈키치는 옛 유고슬라비아 전쟁 중 부과되니 유엔 제재를 언급하며 우리는 그것이 주로 평범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국가 정책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고 말했다.
새 정부의 초기 초점은 아마도 국내 개혁에 맞춰질 것이며, 오는 12월에 치러질 예정인 대통령 선거 준비에 매달려야 할 상황이다. 부치치 전 대통령은 법적으로 대통령 3선 출마가 금지돼 있지만, 패배한 세르비아 진보당이 반격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우리는 그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그들을 이길 것이다.
부치치는 2012년 자신이 창당한 SNS의 총선 승리 직후 부총리 겸 국방장관으로 실권을 장악했다. 2014년에는 총리로 공식 취임했고, 2017년에는 상징적 국가원수인 대통령으로 자리를 옮겨 실권을 유지했다. 그가 장기 집권하는 동안 언론, 사법부 등 견제 세력에 대한 통제가 강화됐다. 여러 차례 선거는 부정 투표 의혹과 폭력 사태로 얼룩졌다.
특히 친정부 성향의 재벌을 통해 장악한 미디어가 야권 정치인들을 반역자 로 낙인찍는 식의 선전 활동에 동원됐고, 잦은 조기 선거는 자금력이 부족한 야당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부치치는 노비사드 참극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약 2년간 이어지자 조기 총선을 결정하고 대통령직에서 내려와 다시금 총리에 도전하는 과감한 수를 뒀다.국영 매체를 통한 정적 공격이 계속됐고, 현금 살포성 정책과 연금 인상, 도로 신설, 의약품 가격 인하 등 공약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번 총선 결과 부패·정경유착 척결과 변화를 갈망하는 청년과 유권자들의 표가 집결했다. 52.7%라는 압도적인 득표를 일궈낸 학생 명부 후보자들이 의회 전체 250석 중 과반을 차지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푸틴식 도박 이 33년 만의 최고 투표율을 기록한 선거 속에서 역효과를 낳았다 고 진단했다. 집권 세력이 선거 제도를 통해 독재적 권력을 이어가는 선거 권위주의 가 실패했다는 분석으로 풀이된다. 푸틴 대통령도 임기를 두 차례 연달아 마친 2008년 자신의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에 당선시키고 자신은 총리로 내려갔으며, 대통령 임기 관련 헌법개정이 이뤄진 뒤인 2012년 대통령으로 복귀한 바 있다.
AFP 통신은 학생들의 이번 승리는 인구 약 600만명의 세르비아에 중대한 정치적 변화를 가져왔다 며 지난 4월 헝가리에서 오르반 빅토르 전 총리가 패배했던 상황을 연상시킨다고 해설했다. 더 나은 교육환경과 미래를 요구하는 최근 유럽 전역의 학생운동에도 영감을 줄 수 있다고도 짚었다.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밀라노,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지에서 벌어지는 거센 시위가 헝가리, 세르비아 등 선거 결과에 따라 추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시각이다.하지만 14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뤄낸 세르비아에는 축하 분위기 아래 막연한 불안감도 감지된다.
블룸버그는 다만 학생 명부 진영이 부치치의 지정학적 균형 전략을 상당 기간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코소보가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EU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기조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분석 때문이다.
한편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가 실권한 지 6개월 만에 세르비아 총선에서 부치치가 학생 주도 야권에 패하자 러시아에 침울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고 지난 26일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당장 세르비아의 대러시아 정책이 바뀔지는 불확실하다. 선거에서 승리한 학생명부 는 선거 전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군사적 중립을 유지하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도 추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학생 명부 관계자인 요보 바키치도 26일 러시아 RT방송에 러시아를 강대국이자 역사적으로 중요한 협력 상대라고 평가했다. 그는 세르비아의 외교정책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집권 후 기존 입장을 뒤집을 수 있다는 부치치의 주장을 일단 부인했다.
그럼에도 러시아 정치권에서는 세르비아가 EU 가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EU의 대러시아 정책에 보조를 맞추라는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 신문 모스콥스키 콤소몰레츠는 세르비아 새 정부의 실제 노선은 선거 공약이 아니라 새 내각의 첫 결정으로 드러날 것으로 예상했다.
러시아는 EU 회원국 중에서는 로베르트 피초 총리가 이끄는 슬로바키아를 여전히 우호적인 국가로 보고 있다. 프랑스의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의 집권 가능성과 혼란스러운 현상황, 독일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 (AfD)의 지역 선거 성과를 반기고 있지만 부치치의 패배는 기존 우방과의 관계가 계속 유지될지 가늠해야 하는 과제를 남겼다.
러시아 외교전문지 러시아인글로벌어페어스의 표도르 루키야노프 편집장은 오르반의 실권 이후 헝가리와 EU의 관계가 가까워진 사례를 거론하며 세르비아도 EU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러시아로서는 기대할 만한 좋은 일이 없다 고 말했다.임병선 에디터 byeongseon1610@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