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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프란체스카 홍의 도전과 민주적 사회주의 의 미래

프란체스카 홍의 도전과 민주적 사회주의 의 미래
[사람들]
민주당 주지사 후보 프란체스카 홍이 2026년 8월 11일 위스콘신주 매디슨에서 열린 예비선거 개표 방송 시청 파티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프란체스카 홍(Francesca Hong)이 0.4% 차이로 민주당의 위스콘신주 주지사 경선에서 패배했다. 여러모로 너무나 아쉬운 소식이다. 승패라는 단순한 수치적 결과에만 얽매여 홍이 얼마나 수많은 악조건과 걸림돌 속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고 의미 있는 정치적 성과를 거둔 것인지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이번 경선은 단순한 당내 경쟁을 넘어, 풀뿌리 진보좌파 정치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증명해 보인 역사적 변곡점이었기 때문이다. 홍의 삶의 궤적을 돌아보면 그의 정치가 왜 커다란 진정성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홍은 식당에서 설거지하고 요리하던 노동자 출신에 대학 졸업장도 없이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집 없는 세입자였다. 온갖 좌절과 방황을 이겨낸 홍의 삶을 살펴보면, 인생의 밑바닥까지 가본 이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홍은 2011년 공화당 주정부의 공공부문 노동권 박탈 시도(스콧 워커 주지사의 단체교섭권 박탈 법안)에 맞선 투쟁에 노조원인 부모를 따라 참가하며 급진화하고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나중에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DSA, 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 조직에 가입하고 위스콘신주 하원의원도 됐다. 현장 노동자로서 겪은 삶과 투쟁이 그를 정치의 주체로 일어서게 만든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번에 홍은 위스콘신의 민주당 주지사 후보로 도전했다. 학벌도, 정계 인맥도, 자산도 없고,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완전한 아웃사이더였지만 말이다. 더구나 위스콘신은 미국 중서부의 대표적인 스윙(경합) 지역으로 민주당의 힘이 크지 않았다. 전체 인구에서 백인 비중이 압도적이고 아시아계는 극소수에 불과하며, 1950년대 반공주의 마녀사냥을 이끈 조셉 매카시의 고향으로 그 어두운 그림자가 여전히 남아 있는 지역이었다.   위스콘신 노동조합들의 프란체스카 홍 지지 포스터  이곳에서 스스로를 민주적 사회주의자라 밝힌 아시아계 여성의 도전 자체가 기적이었고, 보수적 압력에서 멀지 않은 미국 중서부의 한복판에서 기존 정치의 프레임을 정면으로 깨뜨린 사건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홍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순식간에 민주당에서 지지율 1위가 됐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원래부터 진보적이고 민주당 강세 지역인 뉴욕에서 조란 맘다니의 급성장을 뛰어넘는 사건이었다. 전통적인 진보 요새가 아닌 위스콘신에서 이름 없던 아시아계 여성 사회주의자가 주지사가 될 수 있다면, 모든 게 가능하다는 지지자들의 기대와 반대자들의 공포가 제기됐다. 기득권 체제의 오랜 성벽에 균열이 생기자, 변화를 갈망하는 대중의 뜨거운 열기와 그것을 막으려는 기득권의 저항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 흐름을 차단하려는 트럼프와 공화당의 필사적 공격은 당연했다. 그들은 아직 민주당 후보로 확정되지도 않은 홍을 극단적 공산주의자 , 심지어 지하디스트 라고 선제 공격했다. 공화당뿐 아니라 대부분의 주류 언론들은 홍에게 부정적이었고 10년 전 SNS까지 뒤지며 작은 말실수나 흠집을 찾아내서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바다 건너 한국의 조선일보까지 이런 공격에 동참할 정도였다. 언론들은 먼 과거의 발언들을 맥락 없이 낱낱이 잘라내어, 그를 위험한 과격파 로 몰아세우는 공세를 펼쳤다. 문제는 미국 민주당의 기득권 주류도 이런 공격에 동조했다는 사실이다. 홍이 믿을 수 없는, 불안한, 본선에서 패배할 후보라는 공격이 계속됐다. 당내 보수·중도파는 진보적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집요하게 의심했다.    프란체스카 홍을 공격하는 조선일보 - 관련 기사 화면 갈무리 그들은 출마를 포기했던 사람(데이비드 크롤리)을 다시 불러서 홍을 막을 후보로 세웠고, 민주당의 토니 에버스 위스콘신 현 주지사가 앞장서 크롤리를 도왔다. 에버스는 만약에 홍이 이기면 도와야 하겠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이라고 말했다. 선거 자금도 홍보다는 크롤리에게 압도적으로 몇 배나 더 많이 몰아줬다. 예컨대 홍은 소액 다수의 후원금을 힘겹게 모아서 광고비로 50만 달러를 쓰는 동안 크롤리는 400만 달러를 쓸 수 있었다. 즉 민주당 주류는 위스콘신의 지지자들에게 사실상 홍을 찍지 마라 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따라서 이런 여러 악조건과 걸림돌 속에서도 홍이 크롤리를 거의 이길 뻔하다가 0.4% 차이로 아깝게 패배한 것은 놀라운 일이고 큰 성과라고 보는 게 맞다. 자금과 조직의 거대한 열세를 메우고 이처럼 바짝 추격할 수 있었던 동력은 오직 홍의 선명한 주장과 공약이었다. 홍은 무상 공공보육, 공공교통, 공공식료품점, 주거비 안정, 최저임금 20달러, 학자금 대출 탕감, 주 32시간 노동제, 부유세 강화, 이민세관단속국(ICE) 폐지,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반대 등을 약속하고 주장했다. 특히 시민들의 불만이 큰 데이터센터 건설 중단을 약속한 유일한 후보였다. 지금 미국에서 데이터센터는 일방적으로 건설되면서 수도요금과 전기요금을 폭등시키며 빅테크 기업들에만 이익을 안기는 공공의 적 이 되고 있다. 홍은 이런 상황에서 ‘점진주의’는 무책임하다. ‘큰 위기’에는 그에 걸맞은 속도의 ‘큰 해결책’이 필요하다 라고 주장하며 급진적 방향을 분명히 했고, 자신의 선거운동을 노동계급이 자신의 힘을 되찾아가는 더 큰 운동의 일부 라고 규정했다. 홍의 선거운동은 거대 자본이 아닌 대중의 능동적 참여로 채워졌다. 선거 자금은 부족했지만 홍을 지지한 자원봉사자 7천여 명은 14만 번 가까이 집들을 방문해 문을 두드리고 대화를 하며 직접 지지를 호소했다. 변두리와 농촌 지역까지 가서 노래 모임과 음식 행사를 찾아다녔다. 민주당 지지자의 30%가 스스로 민주적 사회주의자 라고 답하는 여론조사가 나오는 상황에서, 이런 급진적 공약과 풀뿌리 선거운동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아슬아슬한 패배가 이러한 의미와 성과를 삭제할 수는 없다. 사실, 11월 본선을 위해서도 홍은 크롤리보다 더 나은 후보였다.   색깔론을 펴며 좌파 척결 을 선포하던 트럼프 - 관련 방송 갈무리 스윙(경합)주는 좌도 우도 아닌 중간이 아니다. 그보다는 어느 당에도 충성하지 않으며 반기득권 정서가 큰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기득권 양당 체제에 환멸을 느낀 무당층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2016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 힐러리 클린턴이 아니라 버니 샌더스가 이긴 곳이 위스콘신이다. 따라서 부정선거 음모론을 지지하는 트럼프 충성파 MAGA주의자인 공화당 후보 톰 티파니를 꺾기 위해서도 홍이 민주당의 후보가 될 필요가 있었다. 크롤리는 체제의 철저한 개혁을 요구하는 표심을 수용하기에는 너무 상징성이 약하고, 기득권에 맞서기보다 그 일부로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 점에서 버니 샌더스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같은 DSA의 전국적 스타 정치인들이 공개적으로 홍을 지지하며 선거운동을 돕지 않은 것은 아쉽다.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얼마 전에 이들이 지지했던 진보 후보의 과거 막말과 성폭력 의혹 등이 드러나면서 사퇴한 아픈 기억 때문에 더욱 몸을 사리게 됐다는 평가가 있다. 경합주에서 무당층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서로가 거리를 뒀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홍이 나는 전국 DSA의 강령을 전부 지지하지는 않는다 고 말한 적도 있다. 홍이 추수감사절 폐지 , 경찰 예산 삭감 등의 과거 SNS에 올린 과격한 발언과 말실수들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바로잡지 못하면서 거리를 두게 됐다는 말도 있다. 정체성 정치 보다는 계급과 민생 정치 가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문화 전쟁보다는 생계비가 중요하다 는 이런 식의 대립 구도는 다소 기계적이고 일면적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이나 카멀라 해리스가 실패한 이유는 그들이 여성과 인종을 내세웠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신자유주의나 이스라엘 집단학살 지지와 연결시켰기 때문이다. 정체성 정치 와 계급 정치 는 얼마든지 급진적인 방식과 내용으로 결합될 수 있다. 조란 맘다니는 무슬림 이민자 소수인종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노동계급의 삶의 문제와 고통을 대변했다. 노동계급의 민생 문제 안에서 정체성을 포섭하는 것은 가능하다.   완전히 새로운 뉴욕시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맘다니 당선자. AP 연합뉴스 사실 홍이 과거에 추수감사절 폐지 나 경찰 예산 삭감 을 말한 구체적 맥락을 살펴보면 이해가 가는 면이 있다. 실제로 추수감사절은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학살과 수탈을 화합과 감사 로 포장하면서 시작된 역사를 숨기고 있다. 또한 조지 플로이드 등 흑인들이 경찰 폭력으로 죽어가던 상황에서 중무장 경찰과 감옥에 쓰이는 돈을 줄이고 정신보건, 주거, 빈곤 구제를 위한 복지 인프라에 투자하자는 주장은 충분한 설득력이 있었다. 물론, 이것이 이해나 동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그런 주장과 정책을 반드시 그대로 고집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홍은 과거의 그런 주장을 철회하거나 톤 다운했다. 하지만 경쟁자들은 계속 그것을 약점으로 잡아서 집요하게 파고들며 프레임을 전환하려 했다. 그런 공격에 함께 맞서지 않은 것이 더 문제일 수 있다. 왜곡된 프레임 공세 앞에 수동적으로 물러설 때, 공격과 프레임은 더욱 공고해지기 마련이다. 그만큼 샌더스나 코르테스같은 이들의 선택은 더욱 아쉽다. 결국, 이번 위스콘신에서 벌어진 논쟁과 평가는 민주적 사회주의 의 바람이 민주당 주류의 훼방을 뚫고 뉴욕 같은 진보적 대도시뿐 아니라 경합 지역까지 더 넓게 퍼져나가기 위한 방향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로 이어진다. 진보 정치가 전통적 거점에 머무르지 않고 불확실성이 교차하는 경합 지역으로 확장하기 위해 치러야 할 정치적 기회비용과 전략이 질문의 핵심이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들과 DSA는 당선 가능성 을 위해 과거의 급진적 발언과 지향 들을 신속하고 과감하게 삭제하거나 바로잡아야 할 것인가?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키며 전진해 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도 정해진 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선명성을 유지하면서도 광범위한 대중적 동의를 획득하는 균형점을 찾으며 힘을 모으는 일은 진보 좌파가 직면한 고도의 정치적 과제이다. 한국인에겐 저항의 피가 흐르고 있다 , 우리도 여기서 [한국의 대통령 탄핵 같은] 그런 운동을 만들어야 한다 , 한국인과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트라우마와 회복력의 역사 라고 말하던 프란체스카 홍의 이번 도전과 성과는 미국을 넘어서 진보 좌파 정치운동 일반이 언제든 부딪힐 수밖에 없는 이런 고민에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0.4%의 차이로 막을 내린 선거 결과는 실패가 아니라, 모든 진보적 운동이 돌아봐야 할 중대한 이정표로 남았다.  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misotolen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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