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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이 ‘감정문맹 증후군’에 빠져있는 건 아닌지
[뉴스]
지지와 배신, 기대와 실망, 헌신과 철회가 교차하는 감정의 진폭이야말로 한국 정치사를 관통해온 숨은 서사일지 모른다. 2003년의 강준만과 2026년의 유시민을 나란히 세워 보면, 이 감정 정치는 한 사람의 변심이 아니라, 진영 내부에서 ‘지켜야 할 가치’와 ‘변화해야 할 현실’ 사이의 긴장이 드러난다. 2003년 7월, 강준만 교수는 『노무현 죽이기』에서 노무현을 이렇게 그렸다. 노무현과 그 일행은 현재 맷집으로 버티고 있다. 그 맷집마저도 마음에 안 든다며 보수에서부터 진보에 이르기까지 다 돌을 던지고 있지만, 맷집 좋은 것도 죄인가? 노무현과 그 일행이여! 꿋꿋하게 버텨라. 내가 장담하지만 곧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다.” 노무현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변한 강준만의 1년 이 문장 속 노무현은 사방에서 돌팔매를 맞으면서도 맷집으로 버티는 개혁 정치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강준만이 바라본 그는 아직 쨍하고 해 뜰 날”을 기다릴 수 있는 희망의 대상이었다. 이 말이 나오고 1년 남짓한 시간은, 어떤 정치 작가의 상상력으로도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극적인 사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북송금 특검을 둘러싼 갈등, 열린우리당 창당, 대통령 탄핵과 그에 이은 총선, 그리고 이후의 대연정 제안까지, 한 편의 숨 막히는 서사가 현실 정치에서 생중계되었다. 이 과정에서 열린우리당 창당은 새천년민주당과 호남 기반에겐 우리가 대통령을 만들었는데, 대통령이 우리를 버렸다”는 서늘한 감정으로 다가왔다. 지역과 계보로 엮인 민주개혁 진영의 오래된 연합이, 신개혁 vs 구민주”라는 새로운 지도와 함께 갈라지는 장면이었다. 그 와중에 국회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고 대통령이 직무 정지를 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와중에 DJ·호남 기반은 배신감을 토로하며 등을 돌리기도 했고, 동시에 이른바 뉴노무현”이라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지지층이 유입되었다. 지역과 세대, 계층의 균열선을 다시 긋는 재편이 일어났다. 누군가에게 노무현은 ‘우리의 대통령’에서 ‘저들 쪽의 대통령’으로 이동했고, 또 다른 이에게 그는 처음으로 나를 대표한다고 느끼게 하는 대통령”이 되었다. 참으로 드라마틱한 변화였다. 어느 순간부터 노무현은 ‘우리와 말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자기 길을 가는 대통령’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 결과가 강준만 교수의 2004년 8월의 문장이다. 노무현은 예전의 노무현이 아니다. 그는 어느새 어설픈 마키아벨리가 되었다.” 조악한 이분법을 휘두르며 자신의 지지세력을 규합하는 선동가가 되었다.” 노무현 일행은 지금 ‘증오의 정치’를 하고 있다.” 2003~2004년 강준만과 2025~2026년 유시민 1년 전까지 쨍하고 해 뜰 날”을 약속하며 응원하던 대통령이, 이제는 어설픈 마키아벨리이자 증오의 정치에 빠진 선동가”가 된다. 사랑이 실망으로, 실망이 분노로, 분노가 냉혹한 단죄로 변하는 감정의 궤적이 이 문장들 사이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극적인 변신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거칠게 문제 삼았던 사람이 유시민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유시민은 노무현을 둘러싼 진보 지식인의 비판을 과도한 내부 공격”으로 보았다. 그는 노무현이 조중동과 보수야당이라는 거대한 기득권과 싸우는 한가운데서, 진보 내부의 지식인들이 대통령을 겨냥해 돌을 던지는 것은 결국 수구언론의 프레임에 동조하거나 적어도 거기에 힘을 보태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노무현 죽이기’에 편승하지 말고, 개혁 정부가 버틸 수 있도록 지지해야 할 때라는 인식이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그 유시민이 2025년과 2026년 사이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겪은 변화를 보면, 2003년과 2004년 사이의 강준만이 떠오른다. 2025년 6월 대선 당시만 해도 유시민은 이재명 후보를 검찰공화국을 끝낼 수 있는 정치적 수단”으로, 그리고 민주개혁 진영이 다시 한 번 도전할 수 있는 기회의 매개로 보며 공개적으로 옹호했다. 노무현·문재인 서사를 계승한 인물로서, 그는 이재명 정권을 통해 다시 한 번 검찰개혁과 사회개혁을 밀어붙일 수 있다고 기대하는 발언을 여러 방송과 유튜브에서 쏟아냈다. ‘독단적 리더십’ 비판 속에 담긴 애정   유튜브 ‘다스뵈이다’ 400회 영상 캡처. 그러나 2026년 여름, 같은 유시민의 말투는 한층 차갑고 냉혹해져 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열렬히 지켜주고 응원했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민주당과 민주개혁 진영을 토대로 한 ‘증축’이었다. 기존 구조 위에서 방을 더하고, 층을 올리고, 부족한 설계를 보완하는 방식의 개혁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재건축’을 택했다. 기존 입주자, 곧 기존 지지층과 기존 민주당을 충분히 설득하지 않은 채 구조와 인사, 연합 전략을 통째로 바꾸려 한 것처럼 보인다는 비유다. 재건축은 법적으로도 기존 입주자의 동의가 필수인데, 이 정치적 재건축은 그 절차를 무시한 채 진행됐다는 것이 그의 비판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당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채권자의 의식과 그런데 당신은 우리를 패싱했다”는 배신감이 겹쳐 있다. 검찰개혁의 지연, 평택을 공천과 조국 낙선, 중도 확장을 명분으로 한 인사 방향 등 일련의 선택들이, 유시민의 눈에는 코어 지지층의 염원을 배신한 재건축”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는 또한 청와대 참모들을 직언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하며, 이재명 대통령의 눈과 귀가 멀어졌다”고 지적한다. 이 장면은 2000년대 중반 강준만이 노무현의 소통 문제를 거론하며 리더십의 폭력성”, 조악한 이분법”을 비판하던 장면과 묘하게 포개진다. 이쯤 되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2026년 유시민은, 2003년의 강준만인가?” 강준만과 유시민. 둘 모두 한때는 자신이 지지한 대통령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옹호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같은 대통령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비판한다. 둘 모두 그 전환의 근거로 ‘소통의 부재’와 ‘독단적인 리더십’ ‘직언하지 않는 참모들’을 지목했다. 둘 사이의 공통점은 더 있다. 자신이 지지한 대통령의 성공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나온 ‘애정 어린 비판’이라는 주장도 같다. 2004년에 강준만 교수는 한 인터넷 언론에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서신의 형식을 빌어 한 때 노무현을 열렬히 지지했던 내가 오죽하면 이런 고언을 하겠느냐는 호소까지 했다. 유시민 작가가 유튜브에 출연하여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한 후 이제 초심으로 다시 시작하자”고 호소하는 장면이 비슷해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5.20 채권과 구속의 정치 언어에서 엿보이는 ‘감정문맹’ 물론 두 시기는 사연과 조건이 다르다. 노무현 정부는 취약한 당 기반과 지역주의, 보수언론의 공세 속에서 불안한 다리를 건너야 했고, 지금의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훨씬 복잡한 연합 구조와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 검찰개혁과 정당 재편, 연합 전략을 둘러싼 갈등의 구체적 내용도 서로 다르다. 그러나 구조는 놀랄 만큼 닮아 있다. 한때 우리가 함께 만들었다”고 믿는 지도자를 향해, 지지자가 일정 시점에서 당신이 우리를 배신했다”고 선언하는 순간, 지지와 사랑은 가장 강력한 비판과 공격으로 뒤집힌다. 정치는 언제나 사랑과 미움의 언어로 기록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민주당 지지층을 A, B 그룹으로 나누고, 코어지지층과 뉴이재명으로 갈라 부르며 서로를 재단하는 데 너무 익숙해지고 있다. 마치 정치의 모든 갈등이 몇 개의 분류표로 정리될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을 그룹 단위로만 호출하고 감정과 맥락은 잘라내 버리는 이 거친 문법 속에서 나는 일종의 감정문맹을 본다. 독일 신경과학자 마렌 우르너는 『감정사회』에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정치도, 사회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정치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감정들을 조율하고, 이를 공동의 가치와 이상으로 연결하는 협상의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또 감정을 억누르거나 사적 영역에 가둬두는 대신, 인식하고 표현하며 다루는 능력이 민주주의의 조건이라고 강조한다. 우르너가 말하는 ‘감정문맹’은 남의 감정은커녕 자기감정조차 읽지 못하는 상태, 글을 못 읽는 문맹처럼 감정을 해독하지 못하는 상태다. 사랑과 미움 사이에 존재하는 넓은 감정의 스펙트럼 문제는 세상이 이미 나노 단위로 개인의 취향과 감정을 읽어내는 알고리즘의 시대에 들어섰다는 데 있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르고, 오전의 나는 오후의 나와 다르다. 한 사람 안에도 상반된 감정과 복합적인 판단이 공존한다. 그런 시대에 너는 A그룹, 나는 B그룹”, 너는 코어, 나는 뉴이재명”이라는 구분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거친 도식일 뿐이다. 사람을 집단 라벨로 대체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우르너의 말을 빌리면, 감정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집단으로만 분류하는 바로 그 태도야말로 감정문맹의 전형이다. 김종대 국방전문가·전 국회의원 사람의 감정은 여러 층위에서 다양하게 형성된다는 점을 존중하고 정치적 태도에 대해서도 사려 깊은 판단이 요구된다. 이런 정치적 소통의 핵심은, 지지자가 대통령에게 더 많은 것을 ‘구속’하는 데 있지 않다. 서로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끝까지 말을 섞는 소통의 구조다. 대통령이 지지자의 상실과 소외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지지자는 대통령의 정치적 제약과 현실의 복잡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할 때에만, 사랑과 미움 사이에 놓인 넓은 스펙트럼이 드러난다. 그 스펙트럼에는 실망도 있고, 유보도 있고, 조건부 지지도 있고, 비판적 지지도 있다. 사랑 아니면 미움, 지지 아니면 적대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진짜 정치적 소통이 시작된다.김종대 매의눈 jdkim20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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