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청년 첫경력 보장제 지원서엔 경력 등 스펙 요구 [지원사업&대회]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붙잡아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책상 위에 놓인 교과서만 보지 말고, 책상 위로 올라서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외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경험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키팅 선생님의 교육철학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다. 듀이는 교육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교육은 삶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삶 그 자체”라고 했고, 학생들에게 ‘배울 것’이 아니라 ‘할 것’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경험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되새기는 것에서 배운다”고 했다.
청년 일자리 정책에도 이 원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교육 수료증이나 보여주기식 프로그램이 아니다. 실제로 해보고, 실패하고, 배우고, 그 경험이 다음 일자리로 이어질 수 있는 기회다.
4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열린 2025 해양수산 취업박람회 에서 구직자들이 등록을 위해 줄지어 서 있다. 해양수산 분야 청년고용 창출과 퇴직 인력의 재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행사는 100여개 이상의 해양수산 분야 기업·기관이 참여한다. 2025.9.4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래서 전재수 부산시장이 내놓은 ‘부산청년 첫경력 보장제’에 기대가 컸다. 특히 스펙이 없어도 괜찮다”, 청년에게 첫 경력을 만들어주겠다”, 기회의 부산을 만들겠다”는 메시지는 지금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정확히 겨냥하는 듯했다. 경력직을 선호하는 채용시장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역설적으로 경력이 없다는 것이다. 기업은 경력자를 찾고, 청년은 경력을 쌓을 기회를 찾는다. 이 악순환을 지방정부가 끊어주겠다는 취지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문제는 정책의 이름이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다. 정책의 이름만 보면 청년의 미래를 바꿀 것처럼 보이는데, 정작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만큼 준비되어 있는 정책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시범사업이라서 부족할 수 있다. 나는 이 정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의 입장이다. 이렇게 중요한 정책이라면 지금보다 훨씬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재수 시장의 부산시정은 스펙 없는 청년에게 기회를 주겠다”면서 이력서에는 무엇을 요구하는가? 경력직 중심의 채용시장 때문에 첫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에게 실무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해놓고 실제 참여 과정에서 작성하게 되는 입사지원서에는 학력, 경험사항, 경력사항, 자격 및 면허, 기타사항 등을 적어야 한다.
물론 기업이 사람을 선발하기 위해 최소한의 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정책의 취지와 선발 방식 사이의 간극이다. 첫경력 보장제의 출발점이 무엇인가. 경력이 없어 취업하기 어려운 청년에게 첫 경력을 만들어주겠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첫 경력을 만들어주기 위해 선발하는 과정에서 다시 경력과 경험, 자격증과 각종 스펙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면 의문이 생긴다.
그럼 이 정책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미 준비가 잘 된 청년을 골라 첫 경험을 제공하는 정책인가? 아니면 준비가 부족해서 노동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에게 실제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인가? 양자는 전혀 다르다. 정책의 대상이 후자라면 선발 기준부터 달라져야 한다.
청년의 스펙을 평가하는 정책이 아니라 청년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존 듀이가 말한 교육의 핵심은 경험이었다. 그런데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정책이 또 다른 ‘경험 선발’이 되어버린다면, 그것은 정책의 목적과 수단이 뒤집힌 것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이번 사업에 제시된 일경험 기업과 직무를 하나씩 살펴보면 정책의 현실이 더욱 선명해진다. A기업은 환경기계설비 기업으로 생산기술·설계(R&D) 직무를 제공한다. 환경기계설비 제작을 위한 제관, 자재 정리, 제작·설치 보조와 제작도면 및 설치도면 작성 등이 업무에 포함되어 있다. 급여는 월 215만원이다. B기업은 용접기·레이저 장비·자동화 시스템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생산·조립공정 보조, 부품검사, 완제품 검사, 재고관리 등의 업무를 제공하며 월 220만원이다.
C기업은 IoT 기반 산업안전 플랫폼 기업이다. 하지만 이번 일경험 직무는 작업지시서에 따른 조립·포장, 자재관리, 제품 이송, 외관검사 등이다. 월 235만원이다. D기업은 선박엔진용 유압기계를 생산한다. 선박엔진용 유압기계 조립·테스트·포장 업무이며 월 235만원이다.
E 기업은 선박 항해·통신 장비와 스마트십, 사이버보안 분야의 기업이다. 이곳에서는 선박 사이버보안, 네트워크 구조 분석, 시스템 커미셔닝, 네트워크 및 사이버보안 테스트를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월 220만원이다. F기업 역시 선박용 엔진 핵심부품을 다루는 기업이지만 직무는 터보차저 수리 엔지니어 및 공장작업이며 월 215만원이다.
10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2025 부산청년 글로벌 취업박람회가 청년 구직자들로 붐비고 있다. 이번 박람회에는 미국, 일본, 호주 등 9개국 34개 기업이 참여해 부산 청년 인재 280여 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2025.11.10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리고 이 모든 일자리는 공통적으로 채용 규모가 매우 작다. 기업당 대부분 1명, 많아야 2명이다. 이것이 시범사업이라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정책의 홍보 규모와 실제 정책의 규모 사이에 문제가 발생한다.
부산의 수많은 청년에게 첫 경력을 보장하겠다”고 선언한 정책과 실제로 제공되는 자리가 기업별 1~2명 수준이라면, 이것은 ‘보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 충분한가. 또한, 월 215만~262만원. 이것이 부산이 말하는 ‘첫 경력’의 현실이다. 첫 경력을 ‘보장’하는 것인가, 첫 경력을 ‘경쟁을 통해 얻을 기회’를 제공하는 것인가. 표현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
또 정규직 전환 기회 제공.” 이 문장을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과 정규직으로 전환될 기회가 있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혹시 잘하면 정규직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고문이 아니다. 첫 경력 보장제가 정말 취업 연계 정책이라면 최소한 어떤 기준으로, 어떤 절차를 통해, 어느 시점에 전환여부가 결정되는지, 그리고 정규직 전환 목표와 취업유지율, 몇 퍼센트 정도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는지가 제시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규직 전환 기회”라고만 써놓으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기업은 기회를 제공했다”고 말할 수 있고, 청년은 정규직이 될 줄 알고 참여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사이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은 결국 청년이다. 청년정책에서 ‘기회’라는 말은 가장 아름다운 단어이면서 동시에 가장 위험한 단어가 될 수 있다. 기회라고 말하면서 결과에 대한 책임을 모두 청년에게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시는 시범사업 이후 첫경력 보장제의 기간을 최대 1년으로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다시 질문해야 한다. 2~4개월의 일경험을 1년으로 늘리면 갑자기 ‘양질의 일자리’가 되는가? 양질의 일자리에는 임금, 고용 안정성, 직무의 전문성, 경력 인정, 교육훈련, 성장 가능성, 정규직 전환 가능성, 조직문화 등이 함께 들어가야 한다.
따라서 부산시가 정말 첫경력을 보장하고 싶다면 단순히 기간을 늘리겠다”가 아니라 경력의 질을 높이겠다”고 말해야 한다. 예를 들어 1년을 근무하더라도 매일 단순 반복 업무만 한다면 그것이 청년의 경력으로 얼마나 인정받겠는가? 반대로 4개월이라도 하나의 프로젝트를 맡고 결과물을 만들고, 멘토의 평가를 받고, 포트폴리오와 경력증명서로 남는다면 훨씬 강한 첫경력이 될 수 있다. 결국 핵심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경험의 밀도다.
전재수 시장과 참모가 정말 청년을 이해하고 있다면 이 질문부터 던져야 한다. 왜 청년들이 일경험 사업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나 단기근로를 선택하는가?” 청년 입장에서 월 215만~235만원 수준의 급여를 받으면서 출퇴근하고, 4대보험에 가입하고, 조직에 적응하고, 정해진 업무를 수행하는 것과 당장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을 비교해보자.
일부 청년에게는 오히려 후자가 더 합리적일 수 있다. 왜냐하면 청년에게는 월급만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거비가 필요하고, 교통비가 필요하고, 식비가 필요하다. 취업 준비를 위한 자격증 비용도 필요하고, 면접을 위한 옷도 필요하고, 때로는 학자금과 대출도 갚아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첫경력”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청년이 낮은 보수를 감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청년의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청년이 돈을 보고 아르바이트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시간에 대한 대가를 계산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청년의 언어’가 정책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책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자의 삶을 아는 것이다. 아쉬운 지점은 청년이 왜 취업을 어려워하는지에 대한 생활세계의 분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청년에게 취업은 단순히 경력이 없어서” 어려운 것이 아니다. 지역에 따라 일자리가 다르고, 직무와 전공이 맞지 않으며, 부산에서 얻은 경험이 수도권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지 불안하다. 부산에 기업은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직무가 없고, 원하는 직무가 있지만 급여가 낮고, 급여가 괜찮으면 출퇴근이 어렵고, 출퇴근이 가능하면 고용이 불안정하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가 19일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에서 전재수 부산시장과 손을 맞잡고 있다. 2026.8.19 연합뉴스
그리고 무엇보다 부산에서 미래를 그릴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남는다. 청년이 부산을 떠나는 이유는 자신의 5년 뒤, 10년 뒤를 부산에서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첫경력 보장제는 단순 일자리 사업이 아니라 부산의 산업정책과 연결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 연결고리가 약하다.
더욱 아쉬운 대목이 있다. 전재수 시장은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하고, 선거기간 내내 해양수도를 이야기해 왔다.최근에도 해양산업, 항만, 조선, 해양수도, HMM, 에이치라인과 같은 키워드를 강조해 왔다. 그렇다면 전재수 시장의 청년정책도 당연히 부산의 산업전략과 맞물려야 한다.
그런데 이번 일경험 기업 목록을 보면 해양·조선 관련 기업이 일부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부산이 그토록 강조해온 해양수도 전략과 비교하면 규모와 구조가 너무 제한적이다. 물론 일부지만, 부산의 미래산업과 정확히 연결되는 기업이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쪽을 전략적으로 확대했어야 한다.
부산 청년의 첫경력을 부산의 미래산업에서 만든다.” 얼마나 좋은 정책 메시지인가? 조선, 항만, 해운, 선박 사이버보안, 스마트십, 해양AI, 항만물류, 해상법·해양규범, 해양환경, 친환경선박, 디지털트윈 등 부산이 실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산업에 청년을 투입하고 전문성을 쌓게 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사업은 아직 그런 전략적 그림이 선명하지 않다. 해양수도를 말하면서 정작 청년의 경력 설계에서는 해양수도가 희미해지는 것이다. 해양수도라는 도시의 산업전략과 청년정책이 따로 노는 순간, 청년정책은 단기 일자리 사업으로 전락한다.
정책의 품질은 결국 사람의 품질과 연결된다. 여기서 정치적 인사 문제를 무조건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부산시가 청년정책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의 전문성과 현장 경험을 공개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시장 비서실을 포함한 핵심 보좌진 구성에서도 구의원, 시의원 출신의 경력을 가진 인사들이 세대교체라는 이름으로 청년 정치인이 다수 배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나이가 젊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청년이 반드시 청년정책 전문가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젊음’과 ‘청년정책 전문성’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청년은 연령대가 아니다. 청년은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독립하고, 주거를 마련하고, 경력을 쌓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는 구체적인 삶의 과정이다. 정치권에서 젊은 나이에 활동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청년의 노동시장 경험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현장에서 사람을 뽑아본 경험, 기업의 인사 구조를 이해하는 경험,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을 운영해본 경험, 취업준비생과 직접 상담한 경험, 노동시장의 데이터를 분석한 경험이다. 청년정책을 만드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청년이라는 나이’가 아니라 ‘청년의 현실을 읽는 능력’이다.
청년정책은 ‘젊은 사람 몇 명 앉혀놓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정책 결정 과정에 청년을 참여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청년정책의 본질은 청년을 행사장에 앉히는 것이 아니다. 청년이 실제로 정책 설계 단계부터 질문을 던지고, 예산을 검토하고, 사업모델을 수정하고, 성과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첫경력 보장제라면 최소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청년에게 물었어야 한다. 월 얼마를 받아야 참여할 것인가?”, 몇 개월이면 충분한가?”, 어떤 직무 경험이 경력으로 인정되는가?”, 기업에서 어떤 업무를 해야 포트폴리오가 남는가?”,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는다면 무엇을 보장받아야 하는가?”, 중소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수도권 기업에서도 인정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부산에서 취업하고 싶은가, 아니면 부산에서 경험을 쌓고 수도권으로 가고 싶은가?”, 왜 아르바이트를 선택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정책 설계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정책은 청년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는 이야기하지만, 청년이 실제로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황종우 해양수산부 장관이 27일 부산 영도구에서 열린 제31회 바다의 날 기념식에서 청년과 지역에 힘이 되는 해양수도권 을 주제로 대국민 보고를 하고 있다. 2026.5.27 연합뉴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전면 재설계’다. 첫경력 보장제는 지금보다 훨씬 커져야 한다. 다만 지금처럼 가면 안 된다. 시범사업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용서할 수는 없다. 지난 10년간 청년정책 전문가로 활동해온 필자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경력 없는 청년’을 선발할 때 스펙보다 잠재력을 평가해야 한다. 직무 적합성, 학습능력, 문제해결능력, 성실성 등을 판단할 수 있는 무스펙 전형으로 선발해야 한다. 특히 취약계층, 장기 미취업 청년, 고졸 청년, 지방대 청년 등 기존 노동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했던 청년에게 별도의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정규직 전환 기회’를 ‘전환 목표’로 바꿔야 한다. 기업별로 정규직 전환 목표를 제시하게 하고, 사업 종료 후 실제 전환율을 공개해야 한다. 기회를 제공했다”는 식의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셋째, 기업당 1~2명 배치하는 방식에서 산업별 트랙을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해양·항만 트랙, AI·디지털 트랙, 스마트제조 트랙, 친환경·에너지 트랙, 바이오·헬스 트랙콘텐츠·서비스 트랙, 창의융합형 인문사회 창업 트랙 등으로 구성하고, 부산의 전략산업과 직접 연결해야 한다.
넷째, 1년이라는 기간보다 ‘경력의 질’을 관리해야 한다. 청년에게 단순 업무만 맡기지 말고 반드시 프로젝트를 부여해야 한다. 그리고 결과물을 남겨야 한다. 프로젝트 결과보고서, 포트폴리오, 직무평가서, 역량인증서, 경력증명서 등을 제공해야 한다.그래야 4개월의 경험도 다음 취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섯째, 기업에게도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 기업은 단순히 정부 지원을 받아 청년을 값싸게 활용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계획을 제출하고, 직무계획을 공개하고, 청년의 업무성과를 평가해야 한다. 사업 종료 후에는 청년의 만족도와 전환율까지 평가받아야 한다.
여섯째, 청년의 임금을 현실화해야 한다.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주면서 ‘첫경력’이라는 이름으로 청년의 희생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전재수 시장이 정말 청년의 미래를 투자한다면 기업에 대한 지원금뿐 아니라 청년 개인에게 지급되는 직무경험 장려금, 교통비, 주거비, 교육비 등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부산의 산업정책과 반드시 연결해야 한다. 해양수도를 말한다면 해양산업에서 청년의 첫경력을 만들어야 한다. HMM 같은 대형 해운기업뿐 아니라 부산의 강소기업, 조선기자재 기업, 항만물류 기업, 선박 사이버보안 기업, 스마트십 기업, 해양AI 기업을 연결해 ‘부산 해양청년 커리어 패스’를 만들 수 있다.
부산에는 수많은 청년정책이 있었다. 청년수당, 청년 일경험, 취업지원, 창업지원, 각종 교육과 프로그램이 반복됐다. 그런데 청년이 계속 부산을 떠난다면 질문해야 한다. 왜 사업은 많은데 청년은 체감하지 못하고, 부산을 계속해서 떠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없으면 정책은 계속 늘어나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청년이 원하는 것은 정책 사업의 수가 아니다. 다. 좋은 일자리가 있고, 성장할 산업이 있고,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고, 일하다가 다른 회사로 옮길 수 있고, 창업했다가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고, 경험을 쌓은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도시. 그런 도시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첫경력 보장제’는 사실 아주 중요한 정책이다. 첫경력은 청년의 이력서 한 줄이 아니다. 첫경력은 청년이 부산에 남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를 결정하는 첫 번째 분기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을 발표할 때 청년을 앞세우는 것은 쉽다. 청년 간담회를 열고 사진을 찍는 것도 쉽다. 청년과 함께하겠습니다.” 청년이 떠나지 않는 부산을 만들겠습니다.” 기회의 부산을 만들겠습니다.” 말 자체는 너무 좋다.
청년정책은 감성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성과는 숫자로 증명해야 한다. 몇 명에게 제공했는가. 얼마를 지급했는가. 어떤 일을 했는가. 몇 명이 취업했는가. 몇 명이 정규직이 됐는가. 6개월 뒤에도 그 직장을 다니는가. 1년 뒤에도 부산에 남아 있는가. 그 경험이 다음 취업에서 실제로 인정받았는가.
나는 이번 첫경력 보장제가 완전히 실패했다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지금이 제대로된 사업을 구상해야 하는 전략적 판단의 시기라고 생각한다. 시범사업이기 때문이다. 시범사업의 존재 이유는 완벽한 정책을 처음부터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작게 시작하고, 문제를 발견하고, 고쳐서 크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재수 시장과 보좌진은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이번 사업은 아직 부족합니다.” 기업 수가 적었습니다.” 청년 수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일자리의 질을 충분히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정규직 전환을 강제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사업에서 바꾸면 된다. 그것이 행정의 정상적인 학습 과정이다. 존 듀이가 말한 것도 결국 그것이었다. 실패는 교훈적이다. 진심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성공만큼이나 실패에서도 많은 것을 배운다.” 문제는 실패 그 자체가 아니다. 실패하고도 실패하지 않은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다.
부산의 청년정책에는 ‘청년의 눈높이’가 필요하다. 전재수 시장과 특히, 젊은 참모들에게 꼭 한번 묻고 싶다. 월 220만원을 받고 부산에서 4개월 동안 첫경력을 쌓겠는가? 그 경험이 끝난 뒤 정규직 전환이 보장되지 않아도 참여하겠는가? 그 업무가 단순 생산보조라면 어떻겠는가? 출퇴근 시간이 왕복 세 시간이라면 어떻겠는가? 4개월 뒤 다시 이력서를 들고 취업시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어떻겠는가? 그때도 청년에게 기회를 제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제대로된 청년 정책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책상 위에서 떠들어대는 좋아보이는 정책과 청년의 삶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확실하지만 행복한 정책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현장을 가야 한다. 기업을 만나야 하고 청년을 만나야 한다. 취업준비생과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만나야 한다. 중소기업 인사담당자를 만나야 하고, 첫 직장을 그만둔 청년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물어야 한다. 도대체 왜 부산을 떠나는가?”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NOL 씨어터 대학로 우리카드홀에서 열린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 프레스콜에서 출연 배우들이 주요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2026.7.21 연합뉴스
키팅 선생은 학생들에게 삶을 사랑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학생들에게 네가 알아서 노력해라”고 말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교실의 틀을 깨뜨렸다. 존 듀이 역시 교육을 삶과 분리하지 않았다. 경험이 없으면 배울 수 없고, 경험을 통해 성장하려면 직접 해볼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청년정책도 마찬가지다. 청년에게 제대로된 충분한 기회를 주지 않고 경험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경력을 요구하면서 경력을 만들 기회를 주지 않는 노동시장. 스펙을 요구하면서 스펙을 쌓을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사회. 경력직을 요구하면서 신입에게 경력을 요구하는 모순. 바로 이것을 깨뜨리겠다고 나온 정책이 첫경력 보장제다. 그렇기 때문에 더 엄격하게 바라봐야 한다. 정책 이름 자체가 ‘첫경력 보장제’이기 때문이다. 거창한 이름을 붙인 만큼 그 이름에 걸맞은 책임도 져야 한다.
첫경력을 ‘보장’하겠다면, 기회만 보장하지 말고 경력의 질을 보장해야 한다.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면, 단순한 일거리가 아니라 다음 일자리로 연결되는 경력을 제공해야 한다. 해양수도를 말하겠다면, 청년이 부산의 해양산업에서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청년에게 무엇을 해줬다는 정치가 아니라 청년이 무엇을 할 수 있게 만들었는지를 증명하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
다시 시작하자. 첫경력 보장제는 오히려 부산이 반드시 제대로 만들어야 할 정책이다. 다만 지금의 모습 그대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기업의 숫자만 늘리고, 기간을 4개월에서 1년으로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책의 크기가 아니라 정책의 세부적인 설계부터 바꿔야 한다.
청년이 스펙을 갖추지 못해서 참여할 수 없는 첫경력 사업이라면 안 된다. 월 200만원대의 임금을 받고 단순 업무를 하다가 다시 취업시장으로 돌아가는 사업이라면 안 된다. 정규직 전환 기회”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청년에게 기대만 심어주는 사업이라면 안 된다. 해양수도를 말하면서 정작 부산의 해양산업과 청년의 커리어를 연결하지 못하는 사업이라면 안 된다.
무엇보다 청년의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정책을 만들고, 젊다는 이유만으로 청년의 목소리를 대표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청년정책의 대상은 청년이지만, 정책의 기준은 청년의 삶이어야 한다. 부산의 청년은 더 이상 보여주기식 정책을 원하지 않는다. 청년은 간담회 사진 한 장을 원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청년센터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또 하나의 교육 프로그램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첫 직장을 만들 수 있는 기회,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 부산에서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을 원한다. 그리고 그 기회가 진짜라면 청년은 부산에 남을 이유를 찾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청년이 떠나지 않는 부산”을 외쳐도 청년은 떠난다. 정치는 결국 말이 아니라 청년 당사자의 삶과 미래를 바꾸는 일이다.
첫 경력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 약속을 믿고 부산에 남은 청년이 4개월 뒤, 1년 뒤 자신의 이력서를 펼쳤을 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부산이 내게 제대로 된 기회와 직업을 줬다.” 지금 첫경력 보장제에 필요한 것은 홍보가 아니다. 그 말 한마디를 실제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전재수 시장이 정말 청년을 붙잡고 싶다면 이제 홍보를 멈추고 첫경력 보장제를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시범사업에서 무엇이 부족했는지 인정하고, 청년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기업의 현장을 다시 확인하고, 산업전략과 일자리정책을 다시 연결하고, 정규직 전환과 취업연계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성과를 숫자로 공개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정말 청년에게 ‘첫 번째 경력’을 만들어주자. 그때 비로소 ‘첫경력 보장제’라는 이름을 사용할 자격이 생길 것이다.
존 듀이의 또 다른 말을 마지막으로 떠올려본다. 사람은 문제에 직면했을 때에만 비로소 생각한다.” 지금 부산이 직면한 문제는 분명하다. 청년이 부산을 떠나고 있다. 그리고 그 청년들에게 부산에 남아라”고 말하려면 먼저 물어야 한다.
우리는 부산에 남을 만한 첫 번째 이유를 만들어주고 있는가?” 청년이 살고 싶어하고, 청년 스스로 남고 싶어하는 도시는 청년에게 떠나지 말라고 설득하지 않는다. 떠날 필요가 없는 도시를 만든다. 부산의 첫경력 보장제도 이제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이수영 시민기자 tndudfl1566@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