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도 장군도 귀족도 다 웃음거리로 만든 사나이 [사람들] 뇌물을 주고 판사 자리에 오른 인물이 재판을 주재하고, 군복만 요란한 장군이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노래로 늘어놓는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지 않은가. 그런데 이건 오늘 한국 뉴스가 아니라 150년 전 런던 무대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윌리엄 슈웽크 길버트(William Schwenck Gilbert, 1836~1911). 극작가이자 대본작가이며 시인이었다.
1880년경 엘리엇 앤 프라이(Elliott & Fry)가 촬영한 W. S. 길버트(위키피디아)
변호사에서 풍자꾼으로
길버트는 런던에서 태어나 공무원과 변호사로 잠깐 일했지만 적성에 안 맞았다. 어릴 때 이탈리아에서 산적에게 납치됐다가 몸값을 치르고 풀려난 적도 있다는데, 출발 자체가 범상치 않았다. 1860년대부터 잡지에 풍자시와 삽화를 기고하며 이름을 알렸고, 이때 다듬은 뒤틀린 유머감각이 훗날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는 이른바 거꾸로 세상(topsy-turvy) 스타일로 발전한다. 이 스타일의 핵심은 간단하다. 사회가 당연하다고 믿는 위계와 권위를 뒤집어 놓고, 그 안에서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이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워지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길버트가 자신의 밥 발라드(Bab Ballad) 중 상냥한 앨리스 브라운(Gentle Alice Brown) 을 위해 그린 삽화 중 하나(위키피디아)
작곡가와 흥행사, 세 사람의 삼각편대
1871년 길버트는 작곡가 아서 설리번(Arthur Sullivan, 1842~1900)과 처음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을 이어준 흥행사는 리처드 도일리 카트(Richard D Oyly Carte, 1844~1901)였는데, 이 삼인조가 만든 열네 편의 희극 오페라를 흔히 사보이 오페라 라 부른다. 재판 풍자극 〈배심원 재판〉(1875), 해군을 놀리는 〈군함 피나포어〉(1878), 〈펜잔스의 해적〉(1879), 귀족원을 대놓고 조롱한 〈이올란테〉(1882), 그리고 일본을 배경으로 빌려 영국 관료사회를 통째로 비꼰 〈미카도〉(1885)까지, 흥행은 매번 대성공이었다.
일본을 배경으로 빌려 영국 관료사회를 통째로 비꼰 〈미카도〉(1885) (위키피디아)
웃기면서 아프게 찌르는 방식
길버트의 무기는 노골적인 비난이 아니라 과장된 순진함이었다. 〈군함 피나포어〉의 장군은 자기가 얼마나 유능한지 장황하게 노래하지만 정작 실전 지식은 하나도 없다. 〈배심원 재판〉의 판사는 부잣집 못생긴 딸과 결혼한 덕에 자리를 꿰찼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관객은 웃으면서도, 저 인물이 실제로 자기 나라의 법정과 군대와 의회를 빗댄 것임을 안다. 검열과 명예훼손 소송이 흔하던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풍자는 권력을 직접 겨냥하되 총알이 아니라 웃음으로 쏘는 가장 안전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길버트는 1870년에 쓴 소극(farce)인 삽화로 소개된 작품을 개작하여 (1884)로 만들었다. (위키피디아)
균열과 최후
1890년 길버트와 설리번, 카트 세 사람은 극장 운영비를 둘러싸고 크게 다퉜다. 이른바 카페트 소송 으로 불리는 이 갈등에서 길버트는 법적으로 이겼지만 세 사람의 관계는 회복되지 못했다. 그 뒤로도 몇 작품을 더 함께 냈으나 예전 같은 흥행은 없었다. 길버트는 1907년 기사 작위를 받았고, 1911년 자기 집 호수에서 물에 빠진 젊은 여성을 구하려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까지 몸을 던져 누군가를 구한 셈이니, 어쩌면 그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이지 않은 장면이 죽음이었을지도 모른다.
1880년대 후반의 길버트(위키피디아)
한국이 곱씹어볼 대목
길버트가 살았던 시대와 지금 한국이 겹치는 지점은 뜻밖에 많다. 권위는 스스로를 진지하게 포장할 때 가장 우스꽝스러워진다는 것, 그리고 그 우스꽝스러움을 정확히 짚어내는 웃음이야말로 권력을 흔드는 힘이 있다는 것을 그는 무대 위에서 증명했다. 2024년 12월 3일 밤 이후 한국에서도 계엄이라는 시대착오적 망동을 다룬 패러디와 밈이 쏟아졌다. 무거운 사법절차나 정치공방보다 오히려 그런 웃음이 시민들의 분노와 허탈함을 더 빠르게, 더 널리 퍼뜨리기도 했다. 길버트의 판사가 자기 출세 비결을 스스로 노래하듯, 오늘날 청문회에서 스스로 무너지는 답변을 내놓는 공직자들의 모습도 따지고 보면 한 편의 희극이다.
풍자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시민이 권력을 감시하는 오래된 도구다. 코미디 프로그램이 정치인 흉내를 냈다고 압박받고, 풍자 만평이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하는 일이 지난 윤석열 정권 아래 벌어졌던 한국사회에서, 150년 전 런던 극장가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던 이 남자의 이야기는 가볍지만은 않다. 웃음을 두려워하는 권력일수록 그 웃음이 겨누는 지점이 정확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판사도, 장군도, 귀족도 다 무대 위에서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길버트처럼, 지금 한국은 권력을 마음 놓고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는 시절을 다시 맞았다. 눈치 보며 아껴뒀던 웃음이라면, 지금이야말로 마음껏 꺼내 쓸 때다.
런던 빅토리아 엠뱅크먼트에 있는 W. S. 길버트 기념비 (조지 프램프턴 작, 1914년) (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