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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500년간 유럽 의대생 교과서 이븐 시나의 의학 정전

500년간 유럽 의대생 교과서 이븐 시나의 의학 정전
[교육]
열 살에 코란을 외우고 열여덟에 의사가 되다 이븐 시나(Ibn Sina, 980~1037)는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근처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 사람 이력서를 보면 웬만한 자기소개서 첨삭 강사도 손사래를 칠 정도다. 열 살에 코란을 통째로 외웠고, 채소 장수한테 산수를 배웠으며, 열여덟 살에는 이미 그 지역 최고의 의사로 통했다. 심지어 사만 왕조(Samanid Dynasty, 819~999) 군주의 병을 고쳐주고 그 답례로 왕실도서관 출입증을 받았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진다. 요즘으로 치면 스무 살도 안 된 나이에 대학병원장 하면서 국립도서관 프리패스까지 받은 셈이니, 옆에서 지켜보는 남의 집 부모들은 배가 아파 죽을 노릇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 나라가 곧 망했다는 점이다. 튀르크 세력이 부하라를 점령하면서 이븐 시나의 평온한 학자 생활도 끝났다. 그때부터 죽을 때까지 그는 이 궁정 저 궁정을 떠도는 신세가 된다.   1952년의 이븐 시나 초상화(위키피디아) 낮에는 재상, 밤에는 철학자 이븐 시나는 그냥 서재에 틀어박힌 샌님이 아니었다. 이란 북서부 하마단이라는 도시에서는 통치자 샴스 알다울라(Shams al-Dawla)의 병을 고쳐준 공로로 아예 재상 자리에 두 번이나 앉았다. 낮에는 국정을 챙기고 밤에는 제자들을 모아놓고 철학과 의학을 강의했다. 요즘 같으면 국무총리가 퇴근 후 대학원 강의를 뛰는 격이다. 그러나 정치판이 늘 그렇듯, 군부와 사이가 틀어지면서 목이 날아갈 위기까지 몰렸다. 겨우 살아남았지만 1021년 후원자인 샴스 알다울라가 죽자 새 통치자는 그를 반역 혐의로 성 밖 감옥에 가둬버렸다. 그런데 이 남자, 감옥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이 시기에 그의 대표작들, 즉 철학 백과사전 『치유의 서』와 의학서 『의학 정전』을 집필했다. 감옥이 그에게는 그냥 조용한 서재였던 셈이다. 결국 그는 이슬람 신비주의 수행자인 수피(Sufi)처럼 옷을 입고 수피 행세를 하며 탈출해 이란 중서부 이스파한으로 도망쳤고, 그곳에서 여생을 비교적 평온하게 보내다 1037년 하마단 근처에서 세상을 떠났다.   1271년의 이븐 시나 초상화(위키피디아) 유럽 대학교를 500년 동안 지배한 교과서 이븐 시나가 쓴 『의학 정전』은 훗날 라틴어로 번역되어 유럽 대학 의학부의 표준교과서로 채택됐다. 자그마치 17세기까지, 그러니까 500년 가까이 유럽 의대생들이 이 책으로 시험을 봤다는 얘기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그리스 의학, 이슬람 신학까지 한 그릇에 담아낸 그의 방대한 저술은 훗날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 같은 유럽 신학자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물론 반대파도 만만치 않았다. 후대의 신학자 알가잘리(Al-Ghazali, 1058~1111)는 『철학자들의 모순』이라는 책을 써서 이븐 시나 식의 그리스 철학 편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에 대해 안달루시아의 철학자 이븐 루시드(Ibn Rushd, 1126~1198)가 다시 『모순의 모순』을 써서 반박에 나섰으니, 죽고 나서도 자기 이름을 걸고 학계 논쟁을 몇 세대씩 이어가게 만든 셈이다. 살아서는 재상, 죽어서는 논쟁의 진앙지라니 이쯤 되면 인생 이력이 아니라 서사시 수준이다.   아제르바이잔 카흐(Qakh) 시에 있는 이븐 시나 기념비(위키피디아) 한국이 새겨볼 대목 이븐 시나 이야기에서 한국이 곱씹어볼 지점은 두 가지다. 첫째, 이 사람은 의사이면서 재상이었고, 철학자이면서 시인이었다. 요즘 한국식으로 말하면 이과와 문과를 넘나들고 실무와 이론을 동시에 하는 사람인데, 우리사회는 여전히 너는 뭐 하는 사람이냐 는 질문에 한 단어로 답하지 못하면 불안해한다. 입시 때부터 문과와 이과를 가르고, 취업시장에서는 전공 칸막이를 넘으면 이력서부터 걸러낸다. 그런데 정작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은 대개 이 칸막이를 아무렇지 않게 넘나든 사람들이었다. 둘째, 권력과 학문의 거리 문제다. 이븐 시나는 권력 한복판에 있다가 감옥에 갇히고도 다시 붓을 들었다. 지금 한국은 계엄과 내란, 그 뒤를 잇는 재판을 겪으며 윤석열 정권이 학문이나 언론, 사법을 얼마나 쉽게 도구로 쓰려 했는지 목격했다. 권력에 줄을 대는 지식인과 권력에 저항하며 자기 작업을 이어가는 지식인, 이 둘의 차이는 결국 감옥에 갇혔을 때 무엇을 하느냐로 갈린다. 이븐 시나는 감옥에서도 책을 썼다. 과거 한국사회에서 권력 근처를 맴돌았던 학자와 언론인들이 한 번쯤 되새겨볼 만한 대목이다.   이란 하마단에 있는 이븐 시나 무덤(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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